화양동과 도명산 유람 -2015년 8월 8일
산행코스 : 첨성대-515봉- 도명산-마애불 -학소대-화양3교
날 씨 : 무척 덥다가 한 차례 소나기
동 행 : 전환,성환,덕하,항식
시 간 : 아주 천천히 .. 약 4시간 40분 (4시간이면 널널인데..)
먼저 퇴직한 친구가 그랬다.
은퇴하는데 “노는 준비가 가장 필요한 것 같다” 고
아직 푸루댕댕한 나이지만 직장에서 별도 달았고 아이들 중 하나는 출가까지 시키고 남은 하나도 취직을
했으니 금전적인 압박이나 어려움은 별로 느끼지 않는 각도가 다른 고민 이겠다
하지만 이해가 간다.
직장이 전부인 냥 앞만 보고 바쁘게 살다가 막상 나와 보니 조직 밖의 풍경이 너무 낯설다
의심한 바 없었던 당연한 내 일들이 사라지고 나서 갑작스럽게 마주한 물 흐르는 듯 많은 시간들엔 아무런
일정도 계획도 없이 막막하다.
고기도 먹어 본 넘이 잘 먹는다고 평소에 잘 놀아봐야 노는 법을 알지
자신을 학대하고 몰아세우는 건 익숙한데 자신을 대접하고 기를 살리는 데는 젬병이라 낯선 자유가 좌표와
구심점이 사라진 삶에 오히려 부담과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취미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그래도 그건 다행이다.
잘 놀 수 있는데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해는 뉘엇뉘엇 넘어가는데 갈 길이 더 험하고 고단해지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모처럼 대학 친구들에게 통발을 넣었다.
여름산행 한번 하자고…
같은 지역사회 살면서도 내방쳐 두기엔 너무 아까운 친구들이라…
작년에도 갈기산에 다녀왔었지.
달포 전에 공지 했는데 갑작스레 일이 생긴 친구가 2명
지호는 산행하기에 너무 덥다는 이유와 은사님과의 약속….
근데 지호야 자연과 친구를 만나는데 덥다는 건 좀 거시기 하다.
날 더우니 산행해서 땀 한번 빼고 계곡에서 알탕하고 목젖이 떨어져나가는 맥주한 잔 마시자는 건데…
우야튼 도명산 신선골 유람단은 합이 다섯이다.
술 안하는 성환이 운전하여 전환,덕화 나를 무궁화 아파트 앞에서 8시에 픽업하고 남청주 케이티
지사에서 항식을 픽업하여 화양골로 가다.
식사도 안하고 나온 항식과 덕하 아침식사를 위해 올갱이 국밥을 먹으려 들렸다가 식전 댓바람에 쏘맥
순배부터 돌렸다.
예상대로 폭염의 기승은 장난이 아니고
나는 난이도가 낮은 화양교에서 첨성대 쪽 역방향 산행을 제안 했는데 항식이 첨성대 쪽에서 올라가자는
바람에 전환은 무지 고생하다.
태양에 직접 노출되는 구간은 없지만 정말 찌는 듯한 폭염이라 친구들의 페이스에 맞추어 쉬면서 천천히
올라가다.
이런 날씨에는 땀을 쭉 빼고 정상에서 막걸리를 쳐야 제 맛인데 전환이 많이 힘들어 하여 올라가다가 과일
안주와 막걸리 한 통 비우다.
날 더운 날 막걸리 마시고 가파른 비탈길 올라칠라믄 고생 쪼매해야하는 건 알제.?
.
염천시하 알딸딸하게 술먹고 치고 오르는 길이라 모두들 힘들었단다.
늘 공부만하던 전환이가 많이 힘들었다.
어쨌든 우린 무사히 정상에 올랐다.
멋드러진 소나무 아래 자리잡고 아직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막걸리 한잔을 치며 불어가는 산 바람 편에
도명 산신령님께 신선골 입적을 고했다.
정상에 오르자 햇님은 구름 속으로 숨었고 소슬한 산바람에 소나무 아래는 너무도 시원했다.
우린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오래도록 밀린이야기를 나누며 휴식하다 하산의 길을 잡았다.
.
늙어 갈수록 돋보이는 친구들이다.
요즘 노후가 가장 빵빵하다는 교수와 교사들..
그려도 항식이 팔자가 가장 좋다.
벌어놓은 돈도 많고 아이들도 취직 다 잘 됐고, 집사람이 교장샘이니 남은 여생 건강하게 잘 놀기만 하면
되니 니가 장원이다.
퇴계 선생께서 계곡 수려한 곳 9군데 모두 이름을 붙이고 시 한 수씩 읊으셨다.
팔도에 이분이 얼마나 유명한 학자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풍류에도 사랑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멋진 낭만파 묵객이었음은 아는 사람만 안다.
소백산이며, 속리산이며 죄 빠대고 다니셨던 등산 애호가셨고 매화그림과 시문에 능하셨다.
관기 두향과의 애틋한 사랑은 또 어떠했던가?
죽는 날까지 두향이 준 매화 분을 방에 들여 애지 중지하였고 돌아가실 때 물 잘 주고 잘 키우라 당부까지
했다 하지 않는가?
오호통재라!
두향은 퇴계의 임종 소식을 듣고 못내 그리워 곡기를 끊은 채 아픈 세월을 보내다가 청풍호에 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혹여 옥순봉 장회나루에 갈 일 있으면 꼭 강선대에 올라 보시라.
청풍 호숫가에 여울진 가슴아픈 사랑이 메마른 시심을 흔들어 줄지....
박사가 셋이다.
대학자 선비님이 선비 서생들을 알아보심 인가?
퇴계의 혼과 기가 친구들과 통해서인지 몇 년 만에 찾아준 무릉객을 산신령님의 반가워 하심인지 모르겠으니
우린 폭염천하 하산 길에 주옥 같은 소나기를 만났다.
약 40분여 내리 퍼붓는 소나기는 달아오른 대지와 우리 몸의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 주셨다.
게다가 우리는 아무도 없는 호젓한 화양곡에서 오늘 산행의 화룡정점을 찍었던 것이다.
대지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흐르는 계곡물이 오히려 바깥 공기보다 더 따뜻했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하는 성환 까지 웃통을 훨훨 벗고 물어 뛰어들 수 있었으니…
신선이 따로 있냐?
오늘 우리가 화양골 신선이지…
마치 어린 시절 불알친구로 돌아갈 수 있는 우리 모습이 좋지 않은가?
서로의 품성을 알고 마음을 알 수 있는 친구들
우리 기쁜 날의 추억을 함께 갖고 있는 친구들을 바쁜 세월의 이름으로 제쳐두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도 내가 통발하면 아무런 이의 달지 않고 달려오는 친구들이라 한여름에도 이런 멋과 낭만을 누리는 거지..
자연과 하나되는 기쁨과 그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술 한잔 치는 풍류를 아는 친구들이라
나도 기쁨마음으로 기꺼이 친구들과 시간을 나누는 거지
우린 돌아 오는 길에 청천면에서 버섯찌게와 버섯전 제육복음으로 술 한잔 더 얼큰하게 치고서 알딸딸해진 채
짧은 추억을 뒤로하고 대전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수고들 많았다.
특히 성환이 운전하느라 고생혔다.
가을엔 더 오래 기억될 만한 멋진 추억 만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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