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간다.
내 인생의 가을도 깊어 간다.
나무는 물기를 비워내어 마지막 고운 빛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바람 길에 흩날린다.
세월은 어깨 쭉지와 우린 가슴에서 한 웅쿰의 사랑을 떼어내었다.
아픈 어깨와 시린 가슴은 다가올 겨울을 더 춥게 만들겠지만 우린 이제 나무처럼 텅 비운 채 더 가벼워
져야 한다.
은비를 그렇게 훌쩍 떠나 보냈다.
19일과 20일은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았다.
파도 치는 푸른 동해바다가 보고 싶었지만 가장 어이없이 보낸 가을의 미련이 아직 남아
우린 통영엘 가기로 했다.
가을은 거기 어디쯤에서 뭉기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 통영은 정주의 도시가 아니었디.
그곳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떠나는 관문 같은 곳이었다.
한산도,연화도 욕지도
아름다운 남도의 보물섬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통영에서 입국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통영은 너무도 많이 가보았으되 또한 아는 것이 너무 없는 도시였다.
내 머릿 속 통영의 기억은 미륵산과 수산시장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난 첫째 날 점심 이후 통영의 여정 만을 대충 머릿속에 그려 넣었고 숙소와 먹거리는
마눌에게 일임했다.
우린 8시에 흐린 대전을 떠나 11시쯤 맑은 통영에 도착했다.
옻칠미술관
여긴 가을이 아니라 봄이다.
옻칠 미술관 마당에서 바라본 옅은 연무에 쌓인 푸른 바다는 가을이 아니라 봄날의 풍경이었다.
예로부터 옻은 자개와 어우러져 세월에 무심한 공예의 진수로 그 위상과 품위를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점차 그 무거움과 부담스런 화려함으로 젊은 세대의 취향에서 멀어지면서 실생활 보다는
에술성의 차원에서 공예의 명맥이 유지되어 오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옷과 자개로 그린 그림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 옻칠 예술의 결정판은 회화가
아닌 공예의 영역 아닐까?
청마 문학관과 생가
시인은 풍부한 감성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더 깊게 세상을 아파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부인을 두고서도 평생 가슴에서 다른 여인을 지워낼 수 없었던 청마는 부인을 떠날 용기도 사랑에 몸을
던질 용기도 없었던 나약한 남자였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가슴 깨는 애틋한 사랑을 각혈처럼 시로 쏟아냈던 시대의 로맨티스트는 아프고
슬픈 사랑에 애간장이 다 녹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룰 수 없느 슬픈사랑이 시심을 흔들고 두옥 같은 시어를 쏟아내게 만들엇지만 시인이 다 그러하듯
몇 개의 작품 말고 사후 유명세에 힘입어 발표된 많은 시들은 그의 명성에 뜬 부유물일 뿐이다.
그리움 / 유치환
청마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무제 1 /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래도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해물탕 점심식사
돌아다니는 새에 배가 고파졌다.
마눌이 검색한 어촌싱싱회 해물탕에서 해물탕 점심식사.
싱싱한 것도 좋지만 아직 푸른 바다의 기억도 채 지워지지 않은 펄덕이는 문어와 조개를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과 함께 냄비에 담아 살아 있는 채로 끓이다니….
식당 주인 왈
“숙가락으로 꾹 눌러 주세요!”
살아 있는 문어가 얼마나 힘이 좋던지 수저로 꾹 누르고 있지 않으면 몸부림에 뜨거운 국물이 사방으로
튈 것이다.
드라마보고도 눈물을 흘리지만 인간은 참으로 잔인한 동물이여
그래도 해물탕은 맛있었다.!
남망산 조각 공원
날씨는 본격적으로 더워졌다.
이건 봄은 고사하고 숫제 여름이다.
우린 입었던 못들을 모두 벗어 버렸는데 늘 단출한 여행가방을 모토로 하는 마눌은 얇은 옷을 제 놓고
와서 자켓을 벗어 던져도 부드러운 남망산 공원 산책길에서도 땀깨나 흘려야 했다.
언덕에서 통영항을 내려다 보는 것 그리고 산책로를 따라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 만으로도 화창한 봄날의
나른한 서정이 함께한다.
산타는 사람들은 70이 넘어도 걸을 수 있는 그런 길이다.
동피랑마을
젊은 연인들, 아이 손 잡은 젊은 부부들이 붐비는 곳이다.
어짜피 통영이 수많은 아름다운 섬으로 가는 길목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관광자원이 아닐 수 없다.
어시장과 여객선터미날에 미륵산 케이불카까지 설치되었으니 급기야 달동네 조경을 위해 무명화가들이
그린 담벼락 그림도 관광자원의 가치를 인정 받게 되었다.
역설적인 곳이다.
거제도 보다도 너무 볼 것이 없는 통영
그래서 어이없는 성공을 바라 본 사람들은 건너편에서 또 다른 성공을 염원하며 서피랑을 만들고 있다.
만리장성에도 흔들리지 않은 가슴이 장가계와 황산에서 마구 흔들렸던 것처럼 원래 인간과 자연의 능력은
비교대상이 이닐진대 그래도 로마에 가면 이제 볼품없는 콜롯세움을 보아야 하듯이 통영에서는 동피랑을
보아야 한다는 우스운 공식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난 냄새나는 동피랑의 골목들과 잽싸게 재래식 집을 고쳐서 까페로 만든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보다 동피루
에서 바라 본 통영항과 맑은 날의 부드러운 바람이 더 사랑스러웠다.
세병관
동피랑에서 붐비는 인파는 지척인 이곳에서는 흔적도 없다.
4천원 입장료 탓도 클 것이고 스마트폰과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들이 케케묵은 역사와
쿰쿰한 곰팡내 나는 옛 것을 외면하는 탓도 있겠다.
넓은 누대에 잠시 누웠다.
나른한 오후의 태양과 부드러운 바람 속에 잠시라도 잠들고 싶다.
수 많은 시간이 흘러 누란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해 낸 이순신의 시대도 오래 전에 끝이 났고 삼김시대도
저물었고 옛 향수와 추억으로 정권을 잡은 박근혜대통령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이 되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 아이가 커서 시집을 가고 내가 늙어 가고….
이제 넓은 세상에서 마눌과 나는 서로에게 더 소중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늘 곁에서 마지막 까지 지켜 줄 유일한 사람
은비가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니 꼭 잡았던 그 손을 망설임 없이 놓을 수 있었으리라.
잘 살고 못 살고는 이제 두 사람이 얼마나 세월과 세상에 현명해질 수 있는 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나의 딸이 세상에 좀더 지혜로워지고 세상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란다.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와 주술을 빨리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서피랑마을
우린 세병관에서 오래 휴식하고 삼도수군통제영을 돌아보고 서포루에 올랐다.
까치가 가로등 위에 도열하여 우리의 방문을 축하해 주었다.
서포루의 전망은 훨씬 더 훌륭했다.
99계단 주변 경관과 마을의풍경도 이색적이었다.
서포루 아래 망루와 건물을 없애고 어떻게 관광자원화를 할 것인가가 동피랑을 앞도하는 서피랑의
관건이 될 것이다.
태양이 서 쪽으로 기울며 석양의 붉은 빛을 언덕에 쏟아내고 있었다.
아쉽지만 더 느리게 서피랑을 관조할 여유가 없어서 우린 뚝먼지당과 99계단을 내려와서 택시를 타고
남망산 아애 주차한 곳으로 돌아 왔다.
달아공원의 일몰을 만나기 위해….
달아 공원
통영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통영대교를 건너고 해안도로를 따라 달아 공원 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숱한 날은 또 남아 있어도 한 번 돌아오고 나면 또 갈 날을 쉽사리 기약할 수 없는 우리에 인생이라
이번 여행은 느리게 힐링 하자 하면서도 돌아다니면서 또 마음이 분주해 진다.
마음만 급했지 하루 해가 잠깐이었다
한 해도 그리 빨리 흘렀으니 하루 해야 오죽할까?
허기사 엊그제 같은 시간 위로 벌써 3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 버렸다.
그 만큼 시간이 지나가면 우리 삶도 낙엽처럼 바람 길에 흩어지리라..
좀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아쉬웠지만 통영의 일몰은 아름다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잔잔하고 맑은 여행길을 고운 빛깔로 축하해주는 아름다운 일몰이었다.
살아보니 세상은 참고 견디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
보이지 않는 미래릉 위해 너의 지금을 희생하지 말아라!
넷이었다가 셋으로 줄고 다시 둘이 되고 마지막엔 하나만 남을 것이다.
고독의 밤이 찾아와도 슬프지 않을 것이다.
거기 행복한 낯과 아름다운 저녁이 있었음으로….
인생이란 시간이 정해진 짧은 여행길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여행길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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