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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행

계룡의 겨울 맛

 

 

 

추운 겨울 새벽 다섯시쯤
이부자리를 박차고 길을 나설 친구는 많지 않다

그리고 6시간 정도 거친 산을 탈 수 있는 친구를 추리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어진다 ·

동행이란
외로움과 위험을 나눌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
마음이 동해서 따라나선 게 아니라 친구의 청을 저버리지 못해
함께한 길이라면 황홀한 고독과 고요한 명상이 불편해할 것이다


오직 쳬력 보강과 운동후의 상쾌함을 위해 거친 산길을 사랑해 마지 않지만

근래 보기드문 새벽형 인간인 조사장은 그래도 코로나 시대에 걸맞는
좋은 길동무다 ·

아무리 먼 거리라도 안전을 생각해서 친구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는다
다만 운전 시간이 2시간 이상이면 부담스러워 하지만 …..

내가 정하는 산행 루트에 거의 불만이 없다··
체력이 좋아 웬만한 등로는 다 소화한다

서로의 등산 스탈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
조사장은 건강관리가 목적으로 빠른 등정의 목표지향형
길 위의 낭만과 등로의 풍경을 즐기는 픙류형

같이 가되 각자의 산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우린 차안에서나 하산 길에서 말과 생각을 함께 나누지만
산길에서는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과 자연과의 밀회를 즐긴다 ·

돈이 많은 친구라 모든 경비는 도맡아서 쓰고 내가 먹고 싶은 것 원만한

다 사주니 난 돈 쓸 일이 읍써서 또한 좋다.··


어둠속으로 간간히 흰 눈발이 날렸다·
어머님 댁에서 자고 나오려 했는데 영숙과 이서방이 와서
집에서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나오는 길이다 ··

조금 일찍 도착해서 동학사 주차장 위에 파킹하고
등산화를 바꿔 신고 있는데 조사장은 정확하게 6 30분에 도착했다

내 치를 거기에 두고 박정자 삼거리로 이동하다

아직 어둠이 깨어나지 않은 맑은 새벽
6
43 조사장은 이마에 불꽁지를 달고

나는 그냥 희미하게 밝아오는 공지선의 새벽과 눈을 맞춘 채

그렇게 계룡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

 

참으로 오랫만이다 ·
새해 벽두와 신록이 짙어가는 5월의 맑은 날에 올랐으니···

산신령님 삐졌겠다··
그랴도 계절이 바뀔 때는 한 번씩 오겠다고 했는데 ··

어쩐지 표정이 밝지 않으시다
잔뜩 냉기를 머금은 차가운 바람은 사무친 한을 풀어내기라도 하는 듯 그 서슬이

시퍼렇다.


장군봉 가는 길
능선에 올라서면서 눈발까지 흩날리는데 분위기 자못 비장하고 장엄해진다.
거센 바람이 몸을 밀어대자 안전 주의자 조사장이 걱정을 한다

길이 엄청 미끄러울 텐데 괜찮을라나요‥? “

: “ 오늘이 길일 입니다.

       멋진 날의 느낌이 팍팍 옵니다.
       이 정도 바람은 맞아야 겨울 산행 맛이 나지요 .

       게다가 오늘 잘하면 제대로 된 눈 산행하게 생겼네요

       새해 벽두에 눈 산행이라 일단 경사 난 거지요·”

 

 ㅎㅎ 무슨 말을 할까?

집시람이 산길이 미끄러울 테니 나한테 전화 걸어 다음으로 산행을 미루라고 몇 번 얘기 했다는데....
조사장은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무휴등정
생각보다 눈이 많다
가팔라지는 길 위에서 발길이 밀리자 안전 주의자 조사장은 아이젠을 하고
나는 내쳐 걸어 올라 장군봉에 먼저 도착했다··


장군봉
몸을 밀어내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지난번 덕유산처럼 영하15도를 넘나드는 차가운 날씨에 불어 대는

바람이 아니라 오리털 잠바를 입은 채 산행을 하기는 무리다.

거센 바람이 불어가는 장군봉 정상에서 오리털을 벗고 고어텍스 자켓을 갈아입다 ·
등허리에는 땀이 조금 배어 있고 바람에 체온은 급속히 냉각된다.

 

언제나처럼 신의 존재와 동행이 느껴졌다

계룡 신령님 오랜만이네요 .
화난 척 하지 마슈

내가 이런 날씨 겁나 좋아하는 거 다 알고 환영해 주시는 거 아니유 ··?”
ㅎㅎ 겁 대가리 상실한 무릉객 ….

그 옛날 무자비한 테러의 주범이신데 너무 나가는 거 아녀?

 

오늘은 정말 그 옛날처럼 펑펑 내리는
함박눈 맞아 보구 싶다 ··


남매탑 가는 길
요즘 왜 산신령님이 저기압 이유는 다른 데 있었네

좋은 말로 얘기해서 등산로 위험 구간을 안전하게 정비했다지만

내겐  왠지 낯설어 보이는 그 길이 닝닝하고, 맹숭맹숭하기 까지 하고

산신령님 입장에서는 웬 넘들이   허락도 안맞고  등허리에 철심을 박아 놓구

그 위에 무거운 등짐을 지우고 지랄 발광을 떤 거다.

쓰벌~~” 그래서 계룡 산신령님 후기 인상파 등록하고 입나오고 욕나오는 거지.


장군봉 능선을 타지 않은지가 1년쯤 되어 가는가?
워험 구간인 곳에는 여지 없이 계단을 놓았다 ·

많이 아프셨겠수 !”
뭐라 위로할 말이 없네요 .. 내 허락도 받지 않고 통보도 없었으니..."


그 엣날 멋들어진 자연성릉 암릉길에 철파이프가 박히던 날 대경실색했고

그 산의 아픔은 오래오래 내 가슴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몇 년 전 관음봉 오르는 칼바위 능선길이 계단으로

뒤 덮혔을 때 그 참담함과 침통 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안전의 대의 명분아래 계룡의 진면목은 그렇게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내 희미한 기억 속에 아직 남아 있는 그 당당한 모습도 머지 않아 세월 속에

희미해 질 것이다.

 

이젠 그런대로 원시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던 장군봉 능선 길도 예외가 아니다.

절벽을 내려서는 길에 쇠가둥 만 설치되어 위험하면서도 스릴과 긴장이 넘치던

구간에도 계단이 설치 되었다

이젠 장군봉 능선에서도 거친 야생을 느끼기 어렵게 되었다 ·

그 세월 따라 내 허리를 분질어 대며 포악을 떨던 산신령님 승질도 마이 죽었다.

 

그렇다고 쩨쩨하게 내가 감정 있는 건 아니우

좀 안됐다는 거지…”

 

비단 계룡산 뿐 만이 아니었다.

대한 민국에 자연 그대로 남겨진 거친 산하는 언제부턴가 완전 도륙이 나기 시작했다.

 

계룡에 들되 난 전혀 다른 계룡을 타고 있는 것이다.

길들여가는 야생과 세월에 낡아가는 인생은  어느 접점에서 평행과 교행을 반복하며

같이 세월을 앓는다. 

이 산과 이 길은 무수한 내 삶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길이다..

 

다시 건너편 비등 길이 그리워 진다.

계룡 산신령과 둘이 갈 때 라면 이젠 황적으로 가야 할 것이다.

통제구역이 풀려 그 거친 카리스마 마저 세월의 바람에 흩날리기 전에...


계단이 없던 시절 대롱 거리며 내려가기 바쁜 그 길에서 멋진 풍광을

담는다는 건 언감생심 이었다·
그랴도 계룡 산신령님이 철심이 박히는 아픔을견딘 댓가로 그 계단 난간에서

얄궃은 날씨에서도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민 붉은 태양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

이것 저것 변화 무쌍한 풍경을 다 보여주는 걸 보니

겉으로는 화난 척 하지만 그랴도 속으로는 내가 오니 반가운 거지 ….

신령님 난 그래도 당당했던 옛 모습이 눈에 선하요 ··”

나는 근엄하고 웅장한 계룡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고
눈발이 흩날리는 길 위에서 조사장의 모습은 이미 바람처럼 사라졌다 ··

신선봉 아래 전망 바위에서 계곡을 굽어보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를 향해 돌진하는 비람과 눈을 맞았다 ·

바람을 탄 눈은 내 정면으로 달려들기도 하고 계곡 아래 바람을 타고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

멋지다.

숨막히는 바람과, 세차게 달려드는 눈보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얼어 들어가는 차가운 물을 마시는 후련한 카타르시스

나는 그렇게 서슬 푸르고 기세등등한 겨울을 거침 없이 들이 마셨다.

 

바쁜 길이다.

그렇게 야생의 날바람 맛을 느끼랴

눈 날리는 계룡의 낭만에 젖고 그 풍경에 경탄해 마지 않으랴

사진을 찍으랴 !

 

내 발걸음은 또 밀리지만 또 어쩌랴!!

그게 내가 산과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인걸…..

 

큰 배재를 지나 남매탑 능선을 지나가는 데 조사장의 연락이 왔다.

어디쯤 오시냐구

"남매탑 언덕 올라가고 있으니 다와가유..!."

앞 뒤 안 돌아 보고 너무 일찍 도착해서 추운 산 골짜기에서 동행을 기다리려니

힘이 들 수 밖에...

날바람 차가운 남매탑에 있지 말고  암자에 내려가 있아라고 했다.

 

조사장은 이글루 처럼 아늑한 쉘터에서 둥지를 틀고 있었다.

눈 날리는 남매탑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상원암 처마도 감지덕지인데 공양미와 초를 보관하는 곳간이라니….

여기에서도 산신령님의 배려가 묻어 나는데….

그 시리고 차가운 시간의 한모퉁이에서 바라보는

눈 덮힌 계룡의 모습이 왜 그리도 짠 하게 가슴을 흔드는 거여 ?

 

행복이 별거야?”

이렇게 건강하게 내 좋아하는 걸 누리는 게 행복이지.”

나를 위한 바람과 눈 그리고 나를 위한 풍경들.... 

 

우리는 창밖으로 멋진 겨울 풍경이 펼쳐지는 전원레스또랑 투명 창가에 앉아

느긋한 간식과 커피를 즐겼다.

 

그 때 지나가던 웬 산님 왈 …..

거기 들어가셔도 스님이 뭐라고 안 해요?”

~~~

불쌍한 중생이 잠시 추위와 바람을 피해 창고에 들어 공양을 하거늘 법당을 내어주진

못할 망정  어느 스님이 그걸 탓하고 시비를 논할까?

 

이 장엄한 대자연 한 가운데서도 세속을 떨쳐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의

속 좁은 옹알이가 안타깝다.

 

추운 날이라 그런지 스님 코 빼기도 안 보이는 데요…” 라고 퉁은 쳤지만

스님이 나와서 뭐라 했으면 눈을 뭉쳐서 마구 던져 줬을 게다..

 

 

자연성릉

조사장은 관음봉 까지도 거침 없는 진군이다.

가장 멋진 계룡의 풍광을 내려다 보고 걷는 그 길에서 내 발걸음은 또 속절 없이

밀린다.

 

역사적인 장소 두 군데도 지났다.

이젠 아무런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머물지 않는 곳

오래 전 겁 없던 시절 조망이 출중한 자연성릉 바위 위에서 내려 뛰다가

절벽으로 굴러 떨어질 뻔 했고 그 때 다친 팔이 낫는데 5년이 걸렸다.

 

그 아래 철계단에서 등허리로 추락해서 갈빗대 두 대를 부러 뜨리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는 데 3년이 넘게 걸렸다.

 

내 생애 큰 사고는 모두 내 안방 같던 계룡산에서 계룡 산신령님 한테 기습 테러를

당한 거다.

한 때는 계룡과 그 길을 쳐다 보지도 않았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그리고 범인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신이 주도한 삶의 복선과 반전을 깨닫게 된다..

신은 그 소맷부리에 감춘 삶의 패를 그리 쉽게 내보이지 않는다.

범인은 그로 인해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월을  허비한다.

기다림과  믿음 그리고 수용이야 말로  깨달음을 통해 도의 지경에  다가가가 위해 

 범인이 갈고 닦아야 할 최선의 덕목이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강력한 빳데루로 거침 없이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를 제어한 건 계룡 신령님 이었고

그 자숙의 시간이 나를 돌아보고 내실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아직 싱싱한 내 도가니

지금도 거리낌 없이 거친 산하를 종횡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도 어쩌면

장대한 눈이 내린 날 내 허리를 분질러 댔던 계룡 신령님 심술 아니 깊은 뜻 덕분인지도 모른다.

 

눈 덮힌 그 바위 위에 올라 다시 비장의 바람 맛을 보려는 데

아뿔사 거센 바람이 절벽 쪽으로 불고 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서려다 등을 미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내려온다.

"잠시도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 계룡 신령님"

신령님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여?

이런 데서 이라시믄 안되지

난데 없는 바람 싸대구는 살인 미수여!”

헐 이 양반 뻑하면 옐로 카드를 뽑아드네…….

잘 하면 또 한 대 치시것수!”

 

그래도 눈 덮힌 계룡의 멋진 풍경이 눈길을 붙들고

겨울 산행의 낭만이 펄펄 날리는 길이다.

 

다 어디서 왔는지 도착한 관음봉에는 무수한 인파가 붐비고 있다.

정자 한 켠에서 기다리고 있는 조사장에게 줄서 있다가 인증 사진 찍자는 말을

차마 못하고 연달아 촬영하는 사람들을 제지해서 표석 인증샷 하나 찍고 하산이다.

평소 나의 행동과 달라 의아해 하는 조사장 표정에

동네 산에서 무신 사진이유?”

 

 

하산 길

낙석지대와 깎아지른 벼랑 길에 계단이 놓여지니 하산 길은 편하다.

사람들은 그 가파른 길로도 잘도 올라 온다.

많은 젊은이들은 아이젠도 없이 미끄러운 길을 오르 내린다.

겨울 빙판 길에 차가 미끄러져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빙판길 운전을 조심하고

미끄러운 산 길에서 공중부양을 해본 사람들이 그 무서움을 아는 법이다.

 

어짜피 계룡산에 왔다가 자연성릉도 걷지 않고 가는 건 계룡의 나무만 보고 숲은

거닐어 보지 않겠다는 것인데

입장료도 안내는 더 편안한 길이 있는데 굳이 돈을 내고 어려운 길로 오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다.

 

하산길이라 조사장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 오는데

너덜 산길과 은선폭포 아래 가파른 절벽 지대의 난 코스 구간을 다 지나고 난

평지 구간에서 어처구니 없는 공중부양을 했다.

둘이 이야기 하며 내려 가다가 그 때처럼 아이젠이 눈이 빙결된 돌 길에서

갑자기 미끄러 진 것이다.

 

~~~

징크스는 진짜 깨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 승질머리 못 버리시는 계룡 산신령님

이젠 세월 따라 고분고분 늙어가는 무릉객 한테 자꾸 옐로 카드 빼내들고 모하시게?

이렇게 느닺 없이 심술을 부리시니 내가 자주 안 오는 거지

"ㅎㅎ 매사 조심하라는 뜻으로 알것수 .... 무릉객도 이젠 노땅이 다 됐으니 좀 봐줘유."

머지않아  힘빠지면 허구헌날 얼굴 보구 살아야 할  낀데.....

 

 

우야튼 생각난 김에 언제 눈 발 제대로 날리는 날

작심하고 황적능선 한 번 타야겠다.

진짜 산신령님 하고 살풀이 한 번 해야지…”

 

내려와서 식당을 가렸더니

하나 같이 식당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호객을 하는데

적당히 들어가자고 눈치를 해도 조사장은 이러저러 이유를 대며  쭈빗 쭈빗 망설인다.

우리는 결국 그라다 주차장 인근 가지 다 내려 왔고

그 끝자락 호객행위가 하는 사람이 없는 식당으로 들어 갔다.

계룡 산장

동학사 음식은  원래 별 기대 안하는데 그 버섯 전골 맛이 짱이다.

"허허 ... 소 뒷걸음치다 쥐잡았네...."

 

멋진 겨울 산행에 받은 밥상도 그 맛이 출중하니 비록 코로나 무서워 목욕은 못했어도

또 어떠랴?

그 겨울 칼바람으로 몸을 씻어내고 자연성릉에서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만으로도 

오늘은 즐겁고 행복한 날이지

 

부딪힌 오른 팔과 무릎의 통증은 딱 이틀간 내 곁에 머물다 물러 갔고

그 산행의 여운은 오래 남아 내 삶을 활기차고 즐겁게 했다..

 

 

 

산 행 일 : 202126일 토요일

산 행 지 : 계룡산

산행코스 : 병사골 장군봉 큰배재 임금봉 신선봉 남매탑 관음봉 동학사

주차장

산행소요 : 6시간

: 바람 세다, 해도 뜨고 , 눈도 오고 제법 추운 날씨

: 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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