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12월 3일 올 첫 눈은 조사장과 문장대 깔딱 고개에서 싸락눈으로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발걸음 가볍게 떠난 새벽 산행인데 문장대 목전에서 눈을 맞으니
흐리게 가라 앉는 날에도 기분은 날아 갈 것 같이 상쾌했다.
그리고12월6일 문막에 첫 눈이 왔다.
명봉에 덮힌 아무도 맞지 않은 새 눈은 내가 가장 먼저 밟았다.
회사의 지역 물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눈을 이리 좋아하니 참 문제가 많긴 한 건데
강원도에 있으면서도 큰 눈을 보지 못한 건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12월 13일 새벽 5시 30분에 문막을 출발해서 포천 가는 길에는 다시 눈발이 휘날렸다.
포천에 가까이 갈수록 눈발이 강해 졌는데 애초 걱정했던 포천 영업소를 넘어가는 길은
새벽에 영화칼슘을 뿌렸는지 빙판이 지지 않아서 무리없이 넘었다.
눈발이 세지면서 시간이 한가로워 지나 옛날 생각이 났다.
장한 눈을 맞았던 군대 시절
그리고 설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백두대간 종주
식사 후에 모처럼 산꼭대기와 통화했다.
나와 동갑이고 2002년 백두대간을 함께 하고 산악회를 만들면서 우린 20년 세월의
매 주말을 함께 빠대며 그렇게 귀연과 함께 늙어 왔다.
철든 시간은 형제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형제 같은 친구!
나 : 아니 언제 까지 일만 할 거여?
꼭대기 : 나도 몰라! 할 때 까지 하는 거지
나 : 글쎄 일하는 건 좋은 거지만 코로나도 풀렸는데 또다시 삶에 매이면
우린 마지막 좋은 시절 다 흘려 보내고 마는 거여
꼭대기 : 그려 좋은 시절은 쉬 흘러 가네만 그렇다고 먼저 손 털 수는 없으니
세상 사는 게 늘 그렇군 !
아직도 문막에 있어?
나 : 그렇지
나야 엔간히 끝이 보일 때가 되었지 !
친구는 객지생활 떠돌이가 어려워서 그렇지 늘 하던 일이라 힘든 건 없잖아?
꼭대기 : 없기는? 요즘은 나랏 돈 따 먹기가 예전처럼 호락호락 하지가 않아서 힘들어
엄청난 보고서 작성에 , 감사에 스트레스가 장난 아녀 !
나 ; 우리 나이에 그런 거 신경 안쓰면 되는 거지
편한 마음으로 할 때 까지 하다가 데 까지 안되면 손 털면 되잖아..
꼭대기 : 그게 말처럼 쉬운가 ? 책임지고 맡아서 하는 일인데
걸친 다리 빼기 전 까지는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일은 워뗘?
나 : 올 상반기 ERP 도입 때 힘들었지 지금은 안정되서 힘들 건 별로 없지
내가 직접 밖에서 하는 일이 아니고…
늘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긴 하네만 다 일하믄 지불해야하는 통행세고
옛날에 근무했던 직장이니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을 도와주는 후배들도 많으니
할만은 한 셈이지
하여간 우린 아직 건강하고 일도 하니 다행이네만 세월이 빠르니 아쉬운 것도
많네. 그만둘 때 까지는 체력관리 잘 하면서 훗날을 도모 해야지
꼭대기는 감리를 맡고 있어서 아마 70 까지 일 할 것이다
일복과 일 욕심은 타고난 친구다.
난 한 2년 해외로 마음껏 가고 싶은 곳 갔다가 다시 일 한하면 모를까 하라고 해도
그 때 까지 할 마음은 없다.
꼭대기는 지금도 순천에서 근무하고 있고 주말에 출퇴근 한다.
젊은 날에도 계속 토목 현장을 떠돌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백두대간 왕복종주에 정맥 까지하고 오지 산행까지 할 건
다했다.
아이들도 둘다 7급공무원에 합격했으니 참 열심히 잘 살아 온 거다.
귀연의 돼지 삼총사
양반곰과 나와 산꼭대기가 회장을 하던 시절이 귀연산우회의 전성기였다.
코로나 때문에 귀연마차는 2년간 멈주었고 산 친구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세월과 함께 늙어 온 주축 멤버들이 이미 60대 중반이고 젊은 피가 대거 수혈되지
못했던 과도기에 마주한 코로나 사태였으니 귀연의 쇠락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나마 옛 친구들이 작은 버스로 격주로 서해랑길을 이어가고 있으니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옛 영화를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백범 회장은 올해 망년회도 하지 않을 모양이다.
코로나가 무시무시한 역병이라고 생각했던 2 년간도 우린 만났는데…
꼭대기가 전하는 소식은 우울했다.
산 선배들 대부분이 관절이 고장 나서 걷기가 힘들어지고 연배 친구들도 어려워
하는 친구가 많이 생기고 있다고….
세월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몸과 마누라는 젊은 날의 학대를 꼬박꼬박 기억했다가 힘빠지는 날 배로
돌려준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우린 산 욕심이 얼마나 드글드글 했던가?
그러고 보면 난 계룡 산신령님이 도우신 게다
산 친구들과 더불어 폭주 기관차처럼 산하를 질주하던 그 시절에 허리를 부러
뜨려 주저앉히셨으니 …
하지만 또 어쩌랴?
노무현님 왈 “운명이다 슬퍼마라!”
그동안 누렸던 기쁨과 그동안 밟고 지나갔던 행복이 얼마 인데...
신께서 젊은 그 숱한 행복의 숲을 빠대고 신이 정원을 난입한 불경의 대가를
굳이 받고자 하시겠다면 드리는 수 밖에 ..
다리가 아파 심산에 오르지 못하면 많이 아쉽고 안타깝긴 하겠지만 심산과 맞 닿은
운이 거기 까지 인걸
지금 까지 잘 살아 왔듯이 우린 또 거기서 다시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워 내야지 ….
괜찮다.
드렇다고 다들 손가락 빨고 앉아 있을 사람들이 아니니.....
세상의 멋진 산들을 두고 속절없이 늙어 가야 하는게 한탄스럽긴 하겠지만
심산을 내려온다 해도 아직은 갈 곳도 많고 , 돌아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드글드글하다.
60살 까지 제대로 직장생활 하면서 백두대간에 정맥에 현역 때 에베레스트까지 댕겨
왔던 양반곰은 관절이 쪼매 안좋아 지면서 살도 쪽 빼고 친구들과 서해랑길이나
이나 좋았던 산 길을 설렁설렁 걸어 다니다가 요새는 호주에 가 있다.
그래도 나나 꼭대기 관절은 좀 더 오래 갈 것 같으니 축복 받은 거지
난 70 중반까지는 거뜬 할 거여 !
옛날 밥먹듯이 10시간 이상을 몰아치던 산행은 내리고 이젠 느긋한 즐산을 이어가는
데다
체중까지 확 줄여 버렸으니 …!
헉 ~~
이런 아그는 함부로 하면 완돼 !
천기누설이 또한 신의 노여움을 탈 수도 있으니 ….
하여간 인생만사 새옹지마
살아 보니 너무 힘들 게 살 필요가 없다.
노년은 더욱 더 그렇지
바람부는 대로 나부끼고 구름 가는 데로 흘러 가는 거지
세월과 삶은 다 귀결지어진 대로 흘러 가는 거다.
늘 자신을 들들 볶아대고 자신을 닥달하는 건 나 자신 이었다.
고통이 나를 붙잡고 있었던게 아니라 내가 늘 고통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앗던 게지.
한 번 물어 보라 !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정말 토나오고 까무러칠 만치 힘든가 ?
나 혼자 찡찡거리고 댕댕거리면서 북치고 장구치는 건 아닌가?
잘 사는 건
좀더 느긋해지고
좀더 멀리를 내다 보는거다.
골치 아픈 건 그냥 시간과 세월에게 맡겨 버리면 된다.
월드클라스 최고의 해결사 ….
톨레랑스
관용 !
나에게도 다른사람에게도…
그리고
세상에게도
우린 지금 여유와 관용이 필요하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잿빛 세상이 온다.
늘 이렇게 잘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엄청난 만용 이었음을 머지 않아 알게 되고
자신과 세상에 좀 더 너그러울 수 없었던 무지와 어리석음을
통탄하며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리라 .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을 때
너무 힘이 들어
한 발자국도 꼼짝할 수 없을 때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다고 느낄 때
천 길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것 같을 때
그래도 그냥
주저앉고 싶지 않을 때
그순간이 되면
나를 찾아오렴
다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네게 줄게
나의 이름은 희망이야
작자미상
친구들 서해랑길 떠날 때 한 번 만나기로 하고 꼭대기와 모처럼의 안부전화를 가름했다..
문막으로 돌아 오는 길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올해는 눈이 많이 올 모양이다.
청평 국도 눈이 달리는 차량 정면으로 달려 드니 눈에 관한 무수한 추억과 상념이 위몰아 친다.
젊은 날 시린 사창리의 눈밭은 기억에 선연하다.
동초를 서던 날 이 산 저 산에서 눈에 못이겨 나무가 갈라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 가둑
내려 오던 하얀 눈은 잠자던 나의 감성을 흔들던 대자연의 충격이었다.
눈이 많았던 시절의 그 풍경들은 젊은 내 영혼에 지워지지 않은 화인처럼 남아 숱한 세월 눈
오는 벌판으로 나를 몰아 댔다.
눈은 욕망을 잠재우고 세상의 허물과 부질없는 욕심도 모두 덮어 준다.
순백의 세상!
아름다운 추억으로 돌아가고 다시 얼룩 없는 시원의 무로 회귀하는 그 흰 빛이 나는 좋은
모양이다.
어쨌든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똥강아지처럼 기뻐 날뛰게 하고 아이처럼 들뜨게 만들어
주고 또한 메말라 가는 노인의 가슴을 연인들의 가슴처럼 멜랑꼬리하고 센치멘탈하게 해주는
눈이니 그 또한 백년지기 반 가운 벗 아닌가?.
그 시절 이기자 전우 엄하사 한테 전화를 넣고 멋진 눈 소식을 전하다.
잠시 쉼터에 차를 대고 네온 불빛에 춤추며 내려 오는 눈을 맞았다.
불현 듯 지리산에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리산에도 눈이 왔을까?
올해는 지리산에 오르지 못했고 내 통산 지리산에서는 펑펑 흰 눈을 맞아 보지 못했다.
좋아!
이번 주 토요일은 약속없이 비워 놓았으니 지리산 눈 밭을 빠대보자
새벽 같이 백무동에 가서 천왕봉에 올랐다가 연하능선을 따라 세석 찍고 한신계곡으로
내려 오는 거다.
9시간이면 될까?
집으로 돌아와 막걸리 한잔 치다.
멋진 눈을 맞은 기념으로 …….
그 눈을 보며 아름다운 시절의 상념이 떠 올라 반갑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므로…
22년 12월 15일 또 내린 눈
올해는 진짜 문막에 눈이 많이 올 모양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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