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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행

4월 중순의 눈 - 계족산 황토길

 

 

 

 

난 주까지만 해도 가야지 했는데 어제 새벽에는 계족산 황토길 벚꽃을 잊었다.

새벽에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도로는 축축히 젖어 있고 찬바람이 대단하다.

간밤에 기온이 급강하 하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더니 계족산 벚꽃도 다 떨어졌겠다.

 

아쉬움이 스멀거린다.

낙화는 우리 지나간 우리 청춘처럼 그렇게 빠르다.

봄은 한 마리 새와 같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지 않으면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없는…..

3~4 월에는 눈도 깜빡이지 마라 ….

너의 봄은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어제 새벽에 계족산에 댕겨 왔으면 그래도 싱싱한 벚꽃을 구경할 수 있었을 터이다.

오늘은 날씨가 아얘 겨울처럼 혹독하다.

오리털 파카를 입고 나오면서 적당한 때 벗을까 했는데 결국은 마지막까지 계속 입어

야 했다.

 

고독한 봄날의 계족산이다.

맥스키즈 컴퍼니는 이 봄을 준비하느라 임도 한 켠에 새로운 황토로 길을 조성해

놓았다.

선양소주 조웅래 회장은 14.5km 황토길 조성과 유지에 200억 가까이를 투자하여

100만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회사규모에 비해 과다한 투자로 비춰지지만 이슈를 선점하고 기업이미지를 고양

시킨 탁월한 기업가의 혜안이다.

그  자신 또한  이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유명인사로 알려져 있으니  제대로

번 돈을 쓰는 사람인 셈이다.   

 

CNN에 한국의 명소로 소개 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통털어도 14.5km

임도 둘레길에 벚나무를 심고 맨발 황토길을 조성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대전시민들은 가까이 있어 그 가치를 폄하하지만 세계애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곳일 것이다.

지자체와 좋은 기업인이 자연을 돋보이게 만든 멋진 작품이다.

자량 출입이 통제된 걷기 좋은 황토길은 또한 전시회나 음악회와 같은 문화공간이

함께 조성됨으로써 걷기의 성지를 넘어 정서 함양과 힐링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자칫 단조로을 수 있는 임도 트레킹은 꽃 향기와 맨발 걷기로 상쇄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꽃길이라도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 마시며 걸으면 몰라도 사실

14.5km를 혼자 걷는 건 풍경의 변화가 없어 별 재미가 없다

그걸 보완하여 내가 개발한 4시간 코스가 산성으로 이어지는 산길과 임도의 조합

이다.

 

주로 먼 곳으로 떠나지 못할 때 가끔 찾는 곳이긴 하지만 벚꽃 피는 봄에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제철 풍경이다.

재작년 여름 장마 피해로 등산로가 훼손되고 난 후 아직 복구되지 않아 통제되어

있지만 난 요즘도 궃은 날에는 그 루트를 애용한다.

 

쇳소리내는 봄 바람 소리를 들으며 야외음악당을 거쳐  등산로가 있는 삼거리로

올라 가는데 길과 계단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간밤에 눈이 제법 내린 모양이다.

4월 중순의 눈!

이미 져버린 꽃들도 많은데 이 깊어가는 봄에 그것도 반도의 중심인 대전에 눈이

내리다니…..

 

지금 까지 만나지 못한 새로운 풍경이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에 날려가 간신히 남아 있는 벚꽃  위에도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갸냘픈 진달래 위에도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

언젠가 서해안 여행길에 개나리에 덮힌 눈은 보았으되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봄 풍경 이었다.

비단 날씨 뿐만 아니라 세상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은 요즘이라 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지진과 산불 그리고 이상기온으로 지구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촌에  

희대의 또라이들이 출몰하는 인간세상  까지….

 

이 봄은 참 어수선하다.

주말이 황사 아니면 비 또는 우박, 아니면 혹독한 바람과 눈

봄이 머물지 못하고 겨울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 대한민국처럼….

곁에 왔으되 다시 찾을 수 없는 병든 노인의 의미 없는 봄날처럼 … 

 

미국에서는 그 옛날 히틀러에 버금가는 새로운 또라이가 나타나 세상을 상대로 3

대전을 도발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성공적인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 받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그 허울에

가린 음지에서 괴물을 키워 낸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백마 탄 초인을 기대하는 민초들은 그들의 말발굽 아래서 성큼 다가 온 봄에도 혹독한

겨울을 견뎌야 한다.

 

오늘 계족 산길을 걷다보니 계족산신령님이 어제 출정을 유보시키신  이유가 다 있었다.

대전에서 듣도 보도 못한 풍경을 보여주시고 호되게 정신의 날을 세워 주시기 위해

봄날의 마법을 보여 주시기 위해….

 

그래도 봄과 다시 반격을 시작한 겨울 과의 교전은 인상적이었다.

막 꽃망울을 피워 올린 작은 야생화들은 수난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산성에는 대전의 야경을 내려다 보며 야영하는 비박인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궃은

날씨라 아무도 없었다.

산성 위 하얀 민들레 군락지를 찾아 갔다.

좀 늦게 피기는 해도 어제 성수 농장에서 지천에 피어난 노란 민들레를 보아서 혹여

피었나 했는데 막 몽우리를 터뜨리다가 눈 폭탄을 맞았다.

민들레는 복수초처럼 혹독한 겨울에 강한 꽃이 아니라 다시 피어날 수 있을지 모르

겠다.

어제의 눈바람에 굴하지 않고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 남은 봄을 누리고 떠날 수 있기

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년에는 어머니를 여의고 계족산의 봄도  돌아볼 겨를 없이 그렇게 떠나 보냈다.

재작년 봄에도 하얀 민들레 꽃을 많이 보았었는데 올해의 풍경과 비교하니 완전 천지

개벽이었다.

 

이 눈을 견디며 다시 봄을 노래하고 열심히 살아갈 생명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반대편

임도로 내려서서 걷는데 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 밖으로 나온 밝은 태양은 눈부신

햇살을 쏟아 냈다.

오래된 벚나무 등걸에는 어제 몰아치던 세찬 바람에 날린 벚 꽃이 마치 자생버섯인양

붙어 있었고 황토 길에도, 무덤 위에도 그렇게 흩날린 꽃잎들이 창졸간에 마주한

벚꽃엔딩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돌아 가는 길에 날씨는 여전히 싸늘했지만 사람들이 제법 눈에 뛰었다.

몇몇 사람은 새로 깔린 벚꽃 위를 맨발로 걸었는데 내가 발이 시리지 않냐고 물으니

시원해서 좋다는 씩씩한 말들이 돌아 왔다.

 

봄의 기운을 가슴 가득 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봄은 계속 진행중이고 몇몇 또라이들에 휘둘리는 세상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아무리 겨울 같은 날씨라도 봄은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칩거하지 않고 떨치고 나섰기에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봄의 그늘까지 목도할 수

있었다.

전원을 뒤덮었던 봄의 고뇌와 비탄의 광시곡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또한 유익한 시간이었고 조용히 묵상하며 우리 사는 변화무쌍한 세상과 나의

삶을 되돌아 보는 고요한 시간 이었다.

 

 

 

 

                                                           2025년  4월 13일 일요일 

 

 

 

 

 

2023년 봄의   계족산   https://go-slow.tistory.com/17941129

 

서두르는 봄 - 자꾸 빨라지는 제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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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봄의 계족산 https://go-slow.tistory.com/179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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