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종주(삼공리 – 향적봉- 백암봉- 무룡산-남덕유) 일 자: 2004년 9월 19일(일) 날 씨: 맑음
01 : 35 대전 출발 02 : 50 삼공리 도착 03 : 35 덕유산 매표소 04 : 30 백련사 05 : 50 향적봉 06 : 11 해돋이 06 : 25 향적봉 출발 06 : 40 중 봉(1594m) 07 : 45 동엽령(1320m) 08 : 50 무룡산 앞 무명봉 09 : 30 무룡산(1492m) 10 : 25 삿갓골 대피소 10 : 55 삿갓봉 11 : 05 남덕유 3.3 km 전방 11 : 45 월성치 (남덕유 1.4km) 12 : 20 장수덕유 갈림길 12 : 40 남덕유 정상(1507m) 02 : 15 영각사 (남덕유 3.4km) 무참했던 지난 여름의 폭염 속에서 어렵게 잉태된 가을 그 소중한 가을의 청명한 하늘은 우울한 가을 비가 조용히 거두어 갔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04 가을은 안타깝게 내 곁을 스쳐 지나고 있다. 일주일 내내 고원의 가을은 내 눈 앞에 어른거리고 떠나지 못한 아쉬움과 미련은 가시처럼 내 목에 걸려 있었다. 그리움 그것은 가을이면 나를 따라다니는 망령이었다 심야에 혼자 떠나는 가을 여행 길 집사람은 생명보험을 들고 가라고 했다. 대전 일주산행에 함께 참가하자는 집사람의 제의도 공룡의 잔등을 함께 타자는 친구의 제의도 애써 외면한 채 나는 혼자 가을 속으로 떠난다. (아직 공룡은 제철이 아니다) 이젠 가을비가 내려도 좋다 흐르는 비에 흠뻑 젖어 솜처럼 지쳐버리면 나는 다시 가을의 열병을 앓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준비) 여장을 꾸린 다음 핸드폰 알람을 새벽 1시에 고정하고 7시 30분부터 예비동작 없이 취침 ZZZ-ZZZZZ 위대한 나의 애피타이트 못지않게 든든한 여행의 후견인 SLEEPING 야간등반을 위해 즉흥적으로 무자비하게 5시간 이상 저녁잠을 잘 수 있는 나의 탁월한 신체구조는 새벽 1시 알람 소리에 예약된 컴퓨터처럼 깨어 났다. 마누라는 벌써 비빔밥이 될만한 재료와 된장이며 고추장을 정성스레 싸놓 고도 인기척에 깨어 대책 없는 남편을 위한 늦은 저녁밥을 준비해 주었다. 성공적인 백두대간 종주며 아무런 걱정 없이 산천을 표랑할 수 있는 자유 를 만끽 하는 것도 전적으로 마누라의 이해와 배려 때문이란 걸 안다. (출발) 혼자 떠나는 걸 아는 마누라의 걱정스런 배웅을 받으며 1시 35분에 집을 나선다. 내가 가지고 떠나는 건 한 개의 배낭 빈마음 에즈라파운드의 시 그리고 막연한 그리움 차 문을 열면 차가운 가을 바람이 벌써 냉기를 품고 있다. 대진 고속도로는 어둠 한가운데서 고독하게 누워 있고 하늘엔 총총한 별이 떴다. 다음 주면 한 가위 인데 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따끔 지나는 차량이 적막을 깨고 가을 하늘을 잠시 밝히다 붉은 미등의 불 빛으로 멀어져 간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잊혀진 노래들… 내 차 안에는 그 시절 통기타 포크 송들이 잔잔하게 흐르고 지나간 시간의 아련한 추억들을 반추하고 있다. 나는 가을 여행 중이다. 무주 나들목을 지나 구천동 가는 길은 한 대의 차량도 지나지 않는다. 어둠 속의 적요와 혼자만의 고독은 내가 누리는 자유에 누가 되지 않았다. 나는 모처럼 지난 시절의 음악에 흠뻑 빠져 내 차의 속도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없고 그 많던 무인 카메라를 한 대도 의식하지도 못했다. (벌금 통지가 한 장 정도만 날아 왔으면…). (향적봉 가는 길) 무주구천동 삼공리에는 새벽 2시 50분에 도착했다. 3시 15분쯤 출발하면 산정에서 깨어나는 덕유의 새벽을 만날 수 있다. 되도록 천천히 등산화로 갈아 신고 여장을 꾸렸지만 수은등 불 빛만 교교하고 어디에도 인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동행이 없을까 싶어 등산로 입구에서 서성거린다. 막막한 어둠 덕유의 가슴으로 가는 길을 벽처럼 막아서는 그 완전한 어둠에 기가 질린다. 언젠가 혼자 산행 길에 내려선 시골 들판에서 한 줄기 빛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참담한 어둠의 기억이 살아 온다. 동행이란 이럴 때 필요한 건데….. 3시 35분 헤드랜턴을 조이고 한 손엔 후랫쉬를 하나 더 들고 어둠 속으로 떠난다. 어두운 광장을 지난 매표소에는 육중한 철문이 잠겨 있다. 마치 가서는 안될 길을 가는 절망적인 느낌을 받으며 나는 철문 한 켠을 비집고 그 무참한 고독과 어둠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래도 하늘엔 쏟아질 것 같은 청명한 별이 반짝이고 흐르는 물소리가 두려운 정적을 깨어 주고 있다. 새벽은 2시간 30분 거리에서 뒤따라 오고 있다는 부담 때문인지 약 30분 정도는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실체 없는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숱한 날의 야간 산행에서 한 번도 의식해보지 못했던 두려움 수많은 날 계룡산 관음봉을 홀로 오르던 칠흑의 등산로에서도 별로 느끼지 못했던 그 알 수 없는 공포가 얼마간 따라 왔다. 이미 멀리 와버려 되돌아 갈 수 없는 어둠 한 가운데서 흔들리는 나. 혼자 노래도 부르고 후랫쉬 불 빛을 여기저기 흔들어 보기도 하지만 길섶의 희미한 바위가 웅크린 사람처럼 다가오면 순간 모골이 송연 해진다. 길을 멈추고 어둠 속에서 후랫쉬 불 빛을 껐다. 나의 존재는 완벽한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물소리만 숲길에 장대하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느날 덕유의 숲으로 날아든 한 마리 반디불이 일 뿐이다. 대 자연 한가운데서 아무 것도 나에게 관심 조차 갖고 있지 않은데 나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혼란스러운가? 공포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나의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덕유의 수림과 어둠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하늘엔 낭만적인 별 빛이 흐르고 계곡엔 어제 비에 불은 물이 탕탕하게 소리 치며 흐른다. 갑자기 청명한 새벽공기와 숲의 향기가 어지럽게 내 코를 자극한다. 나는 오감을 열고 아무런 제약 없이 덕유의 자연과 교감하고 깨달음을 얻은 수도승의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치 어두운 숲 길을 움직여 가는 두 사람인 듯 두개의 불 빛을 따라가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와 무수한 수다스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고립된 어둠이 나를 들뜨게 만드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 이었다. 어제 비가 대단 했는지 군데군데 길은 많이 패이고 물웅덩이에는 많은 물이 고여 있다. 몇 번인가 폭포를 이루는 곳에서 쏟아지는 우뢰와 같이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가 귀를 멍멍하게 한다. “세상에 이렇게 물소리가 클 수 있다니…” 오늘 심산야행의 아쉬움이라면 광천에 표효하는 거대한 물보라의 장관을 어둠 속에 남겨 두어야 하는 것 일주문에서는 불 빛 속에 몇 마리 박쥐가 나른다. 어둠 속에 묵상하고 있는 백련사 얇게 새어 나오는 빛을 따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간다. 은은한 불빛을 담은 채 대웅전은 닫혀 있다. 녹담만설과 서슬 푸른 칼바람이 그리울 때면 혼자 조용히 찾아가던 덕유의 겨울 향적봉 가는 길에 조용히 앉아 있는 백련사는 순례의 길목을 지키는 나의 靈地 였다. “어두운 이 밤에도 부처님은 내가 온 걸 아실까?” 백련사를 지나 향적봉에 오르는 가파른 산길로 접어 들면서 거친 물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어둠 안에는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적막만이 흐른다. 한 방울의 땀 조차 허락 하지 않는 덕유의 새벽 바람은 산 등성이를 불어 내려 부드럽게 내 목을 휘감고 어두운 하늘의 무수한 별들은 금새 쏟아져 내릴 것처럼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5시 30분이 지나면서 희미하게 밀려오는 새벽이 보인다. 새벽이 찾아 올 때 더 강렬해지는 숲의 향기가 너무 좋다. 산에서 마주하는 푸른 새벽은 언제나 청명하고 감동적이다. 동 쪽으로 엷은 여명이 뜨고 남으로는 부드럽게 흐르는 능선의 실루엣이 살아 난다. 거의 쉬지 않고 올라왔어도 힘겨운 줄 몰랐고 정상을 의식하지 않았으니 시간의 흐름에도 무감각 했다.
<기다림>
<덕유의 푸른 새벽>
(향적봉에서) 잘 정돈된 나무계단을 올라 그렇게 어이 없이 덕유의 영봉을 마주했다 하늘이 맞닿아 있는 향적봉엔 세찬 바람이 불어 가고 벌써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10명쯤 될까? 모두들 산장에서 하루 밤을 유한 모양인데 요란한 사진 장비들을 볼 때 사진을 취미로 하는 동호인들인 모양이다. 손이 시리고 너무 추워 장갑을 끼고 자켓을 걸치고 나서 나는 초라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옆에 섰다. 푸른 새벽은 먼 능선을 지나 조용히 향적봉으로 달려오고 동편하늘은 붉게 깨어나고 있다. 태초처럼 신비롭게 깨어나는 아름다운 시간을 다시 만나고 있다. 산마루에서 꿈처럼 깨어오는 새벽을 만나고 싶어 그렇게 긴 어둠의 시간을 지나 왔다. 그 미어지는 그리움을 바라 보며 나는 찬바람 한 가운데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었다. 붉은 태양은 내 가슴 속에서도 뜨겁게 솟구쳐 올랐고 더 이상 바람은 차갑지 않았다. 언제나 장엄한 설국의 감동을 준비해 주시던 덕유의 신령님은 오늘도 쾌청한 하늘을 열어 그 아름다운 빛 한 가운데 서 있게 했고 푸른 새벽의 빗장을 열어 부드러운 천상의 화원 거닐 수 있는 특권을 허락했다. 오랫동안 그리워했습니다. 그 고원의 바람과 말 없이 달려 오던 푸른 새벽 그리고 황금의 햇살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능선들
<일 출> (능선 종주) 발길은 새털처럼 가볍다. 간밤의 어둠이 뜬 구름인 듯 싱그러운 맑은 아침이 찾아와 주었고 하늘은 푸르고 부드러운 능선은 절제된 가을 색으로 물들어 간다. 나는 마치 산책을 하듯 이슬마저 말려버린 그 간지러운 바람을 따라 가을로 간다. 어젯밤 비에 떨어진 낙화의 설움 위에도 황금의 햇살이 쏟아 지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위로 삶의 기쁨이 넘쳐 난다. 넉넉하게 흐르는 덕유 평전을 지나 인적이 없는 고원의 능선을 바람처럼 흘러가는 길 어디를 둘러 보아도 말 없이 흘러가는 산릉과 나 밖에 없다. 어제 비에 젖은 길 위에는 남으로 떠나간 발자국의 흔적이 없다. 축축한 대지 바람결에 실려 오는 풋풋한 초목의 향기에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상쾌한 가을 아침이다 푸른 하늘을 이고 하늘 거리는 억새 숲에는 온통 가을이 드리워 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의 갈기에 취해 있을 때 처음 지나는 사람을 만났다.
<능선의 가을>
몽환의 새벽 안개에 쌓여 깨어나던 백암봉은 그대로이다. 이곳에서 흐름을 바꾸어 지봉을 거쳐 신풍령으로 이어지는 백두 대간은 기세 등등하게 북으로 흘러 간다. 언젠가는 어둠 속에 묻어 둔 그 길을 다시 찾을 날이 있으리라 파죽지세로 남하한다 7시 45분 동엽령을 지났다. 8시쯤에 식사를 하려고 일부러 동엽령을 지나쳤는데 제법 높은 무명봉을 오르자니 허기가 동한다 동엽령을 지나 봉우리를 하나 넘어 우측 산길을 휘돌아 얼마간 내려가면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평평한 큰 바위가 있다. 수려한 전망에 식사하기가 안성 맞춤인 곳으로 내가 무릉반이라 이름 지었다. 삿갓골 산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향적봉으로 출발한 사람들인지 많은 무리들이 길을 지나고 있다. 나보다 좀 어린 듯 한 부부가 바위 쪽으로 건너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육십령에서 올라와서 삿갓골 대피소에서 하룻밤 머물렀는데 어제는 하루종일 세찬 비가 내렸다고 했다. 구천동 계곡에 불어난 물이 예사롭지 않더니 예상 했던 대로 큰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 육십령에서 서봉으로 올라서는 산행이 너무 힘들어 고생을 많이 했다지만 오늘 멋진 해돋이와 싱그러운 덕유의 풍광을 마주했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고 훗날 그마저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식사하는 중에 산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 꽃을 피우다 우리는 헤어졌다. 이 시간 대에 심산을 주유하는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미소를 흘리고 다닌다. 지나는 걸음 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하나 같이 모두 산을 닮아 가는 편안한 얼굴들이다. 삿갓골재에 이르기 까지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해 주었고 모두들 묻지 않아도 내가 지나는 길에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숱한 사람들을 만났고 나는 오랫동안 그들이 만난 첫번째 사람이었다. 서로가 반가워 하는 얼굴이 우리를 더 기분 좋게 만들었고 신행을 더욱 신나게 만들었다. 가을 산의 마력이었다. 무룡산 앞 무명봉에는 외로운 돌탑이 섰다. 누가 무엇을 간절히 원하여 저 돌탑을 쌓았을까? 나는 이 고원에서 오늘 더 바랄게 없는데…. 여기에 설 수 있음이 이 눈이 시린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음이 삶의 축복이고 기쁨이었다 되돌아본 능선은 부드럽게 그리고 힘찬 기세로 향적봉을 향해 뻗어가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의식되지 않는 편안한 길이다.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삼양목장 초지를 걸을 때처럼 콧노래가 절로 나고 발걸음이 가볍다
<무명봉 조망>
<무룡산 조망>
무룡산 조망은 압권 이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유장하게 흘러내리는 능선들 가야 할 길에는 삿갓봉과 서봉이 우뚝하고 돌아 본 능선으로는 육산의 부드러움이 구비치고 있다. 멀리서 흘러가는 능선들은 하늘과 맞닿아 제 색을 잃어 버리고 그림 속의 풍경인 듯 하늘 빛으로 동화되고 있다. 부드러운 산릉의 계단 길을 지나고 길섶에서 수줍은 들꽃 길을 질러 봉우리를 넘어서자 제법 무성한 수림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숲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홀연히 대피소가 나타난다. 10시 25분 벌써 도착해 버린 삿갓골 대피소? 게으름을 핀 몇몇 사람들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대피소에는 제법 뜨거워진 한 낯의 태양이 쏟아지고 나른한 여유와 휴식이 빨래 줄에 걸려 있다 명색이 대피소인데 그냥 지나치자니 예우가 아닌 것 같아 벤치에 걸터앉아 하릴없이 빈둥거리다 다시 행장을 수습한다. 산행에서 시간이란 참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이제 겨우 10시 25분 이라는 사실이 마치 산행을 시작한지 몇 시간 채 되지 않아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든다. 지난 새벽의 기억은 아련하고 생체 타이머가 아침에 리셋되었는지 아님 덕유의 기를 받아서 혈기방장 해졌는지 도대체 나는 지칠 기미가 없다. 삿갓봉 가는 길은 가파르게 일어나 앉아 있으나 울창한 수림이 그늘효과를 만들어 주어 그다지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긴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이끼 낀 고목과 바위들은 잊혀진 시간의 유물 인 듯 울창했을 덕유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향적봉에서 남덕유로 흐르는 그 넉넉한 능선은 잊었던 고향 길을 떠올리는 멋진 가을 산책 길이다.
<능선조망>
어둠을 질러 향적에 서면 푸른 새벽이 달려 오고 그 가득한 축복으로 붉은 하늘이 열린다 신의 정원을 산책하듯 아침 능선 길을 걸어 내리면 그저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들이 우릴 취하게 한다. 고원의 향기 , 바람 , 들꽃 , 멋진 풍광들 그리고 태양이 달아 오를 때쯤 우리는 울창한 수림으로 숨어 남덕유의 관문인 삿갓봉을 통과하여 마지막 걸출하게 일어나 앉아 있는 양봉우리에 내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능선조망>
남덕유 가는 길에서 잠시 비켜나 앉아 있는 삿갓봉은 방랑시인의 고독을 드리우고 있다. 나그네의 발길을 기다리는 외로운 표석만이 쓸쓸하고 그 언저리에는 잊혀진 세월의 미련이 묻어난다. 우리는 잠시 세상을 흐르는 바람일 뿐 무슨 미련과 한탄인들 세상에 남기어 두리…… 잠시 길에서 벗어나 홀로 호젓한 너처럼 구중심처 무릉원이 나 혼자라 외로울까? 바람도 쉬어 가는 월성치 대간종주의 마지막 만찬이 있었던 월성치는 오늘도 천혜의 쉼터였다. 큰 나무는 무성한 가지를 들어 그늘을 만들고 한가로운 가을을 끌어다 놓았으니 누군들 아니 쉬어 갈 수 있으랴? 월성치에서 남덕유와 서봉 갈림길 까지는 8부능선 까지 계속되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내 기억으로 태양 아래 쉴만한 곳이라고는 한군데가 없는 남덕유 봉우리라 장수덕유 갈림길을 지나 숲 속에서 잠시 요기를 했다. (남덕유)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뜨거운 태양 빛이 쏟아지는 돌 산마루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고 내가 걸어온 덕유 주능이 장대하게 향적봉으로 구비 치고 있는 곳 이곳이 덕유 남단의 고봉이다. 남도의 고봉에 다시 서니 감개가 무량하다. 서쪽으로 걸출한 장수덕유가 담대하고 동남 쪽으로 겹겹이 웅장한 산주름을 두른 기백 금원이 그 웅자를 자랑하고 있다. 서봉에서 솟구친 백두대간은 갈기를 휘날리는 거친 야생마처럼 할미봉을 넘어 육십령에서 잠시 휴식한 다음 파죽지세로 지리산으로 달려가고 있다. 백두대간을 종횡하던 시절의 전설이 아직 남아 있을 할미봉 부드러운 바람을 감싸 않으며 푸른 하늘로 담대히 솟구친 고원망루에 기대어 우리 사는 세상을 내려다 본다. 큰 산은 말 없는 교훈으로 언제나 거기 있었다. 훌쩍 떠나는 여행 길에서 불현듯 마주하는 이 빛나는 감동들이 내 삶의 의미이고 기쁨이었다. 그 여행 길에서 돌아 오면 나는 다시 일상을 마주할 의욕이 충만하고 또 얼마가 지나면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다시 여장을 꾸려야 했다. 그것은 내가 변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오랫동안 바꿀 수 없었던 변함 없는 내 삶의 방식이었다.
<남덕유조망>
(하산길) 영각사 하산로는 거칠게 변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발 아래 길은 황폐해지고 수 많은 돌들 사이 흙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제 비는 등산로를 물길로 만들었고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영각사 계곡 아래에서는 계곡물이 고여 소를 만들고 제법 세차게 흘러 내린다. 푸른 계곡물에 머리를 먼저 담그고 소스라 친다. 물을 푸는 손이 시리고 머리가 저려온다. 계곡물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등산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목욕재개 하고 신선이 되어 버릴 텐데…… 11시간 동안의 꿈 같은 가을 여행은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다시 남덕유에 올라 서봉을 거쳐 육십령으로 하산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간과 체력은 남았다. 하지만 더 오랜 시간의 산행은 그 푸른 새벽과 싱그러운 덕유의 여운을 거둬갈 것이다 나는 빈 배낭에 가득한 가을의 추억을 담아 더 현명해진 얼굴을 한 채 여행 길에서 돌아왔다 열심히 넘겨가고 있는 삶이란 책 속에 여백처럼 끼워 있는 여행이란 그림이 내 가슴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 저 아름다움을 돌아보는 경건한 눈으로 , 수 많은 감동을 간직한 추억으로 또 언제든지 훌훌 떠날 수 있는 의욕과 건강함으로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자연과 더불어 언제나 즐거움과 희망이 넘쳐나는 멋진 삶을 살아가고 싶다 참고 : (택시) 영각사 - 무주구천동 (\45,000) 영각사 – 서상(면) (\7,000) (대중교통) 영각사 – 서 상 시내버스(10분소요) 14:15분 16:45분 서 상 – 장 계 (\1,500)약 1시간 간격 약 20분 소요 장 계 – 무 주 (\3,400)약 40분 간격 약 50분 소요 무 주 – 구천동(\3,000)약 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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