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구간 : 성삼재-노고단-장터목산장-백무동 일 시 : 2002년 6월 12일 ~13일 날 씨 : 12일 맑았다 오후부터 흐리고 13일 맑다 소요시간 : 16시간 10분 (장터목산장 1박)
(12일) 01: 53 : 서대전역 출발(열차) 04: 50 : 성삼재 출발 05: 25 : 노고단 05: 35 : 노고단 일출 05: 45 : 노고단 출발 06: 37 : 임걸령 샘터 07: 15 : 반야봉 갈림 길 07: 50 : 뱀사골 갈림길 08: 20 : 토끼봉 09: 40 : 연하천 산장 10: 50 : 전망바위 <-벽소령1.5km <-노고단12.6km -> 세석 7.8km 11: 25 : 벽소령 산장 흐드러진 찔레 꽃 12: 00 : 음정(마천) 갈림길 -> 세석 5.2km 13: 20 : 선비샘 (중식) 13: 40 : 중식후 출발 14: 10 : 조망처 14: 20 : 칠선봉 ->세석 2.1km ->장터목 5.5km -> 천왕봉 7.2km 15: 00 : 영신봉(1651m) <- 벽소령 5.7km ->세석 0.6km 15: 15 : 거림/백무동 갈림 길 15: 30 : 촛대봉 운무와 바람 그리고 새소리 16: 35 : 연화봉(1730m) <- 세석 2.6km -> 장터목 0.8km 16: 45 : 장터목 산장 (13일) 04: 10 : 산장 출발 05: 08 : 천왕봉 일출 06: 10 : 일출 감상 후 산장도착 06: 40 : 백무동으로 하산 출발 07: 25 : 망바위 <- 장터목1.5km <- 천왕봉 3.2km -> 백무동 4.3km 07: 50 : 소지봉(1312m) <-장터목2.8km ->백무동3.0km 08: 30 : 참샘 (1125m) 아침식사 <-장터목3.2km <-천왕봉4.9km -> 백무동 2.6km 09: 05 : 출발 간발의 차로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 만나다. 참샘에서 취사하는 것 걸렸으면 벌금형 09: 30 : 하동바위(900m) <- 장터목 4.0km -> 백무동1.8km 10 :05 : 하산완료
<능선에서1>
꿈 같은 여행길에서 돌아왔습니다. 열병에 걸린 듯 웅혼한 지리산의 잔상은 눈 앞에 선하고 모두 비워낸 것 같았던 빈 가슴은 자꾸만 저려 옵니다 장대한 태양은 내 눈 앞에서 끊임 없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무성한 녹음이 구름처럼 막아서는 곳. 벌써 그곳이 다시 그리워 집니다 카메라의 눈에 남겨진 잔상을 확인하면서 또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노고단에서 처음 마주한 일출 굽이 치며 흘러내리던 첩첩의 산 주름을 두르고 변함 없이 바람 한 가운 데 서 있던 묵묵한 촛대봉 그 아래 누워 혼자 흘러가는 산안개를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등이 떠 밀리는 그 세찬 천왕봉 바람을 맞으며 다시 새벽 앞에 섰고 나는 올해도 그렇게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의 축복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방금 여행 길에서 돌아오구선 바보 같이 다시 가고싶다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마누라는 기가 막힙니다. 들개처럼 산야를 떠돌아야 행복해지는 그 못 말리는 방랑기가….
< 지리산의 아침)> (출발 지리산 종주) 기다리던 날이 밝아 왔습니다. 이날을 위해 많은 직원들이 고생했습니다. 열차표 예매를 책임져 준 명선 15일전 한꺼번에 폭주하는 인터넷 예약 때문에 산장예약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했을 선오와 창훈 지리산에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가 있어야 했습니다. 올 봄 천왕봉 등정 길에서 알아버린 황금능선은 언제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어디가 좋다고 하면 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도 일종의 병인 듯 싶습니다. 지리산은 언제나 갈증과 중독 같습니다. 나를 포함한 8인의 용병은 시간에 맞춰 서대전 대합실에 모이고 열차는 점액질의 밤을 질러 구례구로 갑니다. 열차 안에는 우리처럼 지리산 열병을 앓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행에서 동 떨어져 핸드폰 알람을 맞추고 잠들었는데 선잠을 자다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눈이 떠졌습니다. 열차는 남원을 지나갑니다. 열차가 토해내는 사람들은 많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지리산이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들을 그 넉넉한 품으로 받아들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거친 호흡과 땀으로 가슴에 쌓인 것들을 하나씩 비워 내고 숱한 날들을 잃어버리며 살아 온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품에서 하루를 묵고 나면 새로운 용기와 활력에 충만하여 모두들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집으로 되돌아 갈 겁니다. 택시 아저씨가 노고단 일출을 확신합니다. l 어둠에 쌓인 구례구는 흐린 것 같은데 오랫동안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온 아저씨는 바람의 방향과 냄새 만으로도 날씨를 아는 모양입니다. (노고단 해돋이) 지금시간 4시 40분 5시 20분에 해가 뜬 다는데 태양을 만나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백두대간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삼양목장 초지를 가로질러 달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25분에 노고단에 도착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노고단에는 반야봉에 가리운 태양이 그저 붉게 동편하늘을 물들인 채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 노고단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한무리 대학생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노고단 돌탑에 올라 있습니다. 이 아침엔 어이 없는 그들의 행동마저 자연을 향한 순수한 열정처럼 느껴집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붉은 빛의 경계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한 지점이 더욱 붉어지는가 싶더니 불 빛의 작은 끝점이 나타나고 이내 붉은 불덩이가 반야봉 능선위로 올라섭니다. 4시 35분 아 ! 우리는 아침마저 두둑이 챙겨 먹고 그렇게 쉽게 노고단 일출을 만났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노고단 일출을 가슴에 안았습니다
<사진2 : 노고단 일출>
이 새벽의 시간대야 말로 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입니다. 푸른 새벽이 슬며시 어둠의 베일을 들추고 나면 태양은 새벽 창가로 소리 없이 다가와 온 산에 붉은 햇살을 쏟아내고 바람은 숲은 싱그러운 향기를 허공에 날립니다. 바람은 언제 까지나 우리를 따라오고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상쾌한 숲속 길을 걸어 갑니다.
< 지리산의 아침>
(지리산 주릉-바람처럼 구름처럼 ) 임걸령에는 시원한 약수가 쏟아져 나옵니다. 수 많은 세월 동안 지친 산 객들을 갈증을 해갈해 주었을 그 소중한 샘물 덕에 목을 축이고 잠시 휴식할 여유를 가져봅니다. 일행들을 위해 커다란 코펠과 버너 그리고 연료통을 넣고 왔더니 다른 때 보다 배낭무게가 많이 나가 어깨를 뻐근하게 합니다. 하지만 택시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으니 여유가 많은 산행길 입니다. 연하천 까지는 파죽지세로 진군합니다. 반야봉 갈림길을 스쳐 지나고 뱀사골 나무계단 위에서 골짜기로 피어 오르는 조화로운 산안개를 바라보다 토끼봉을 거쳐 연하천 산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맥주 한 잔을 들이킵니다. 바람 골 길목에서 전망바위에 올랐습니다. 집채 만한 바위에 가리워 있던 계곡의 풍광은 눈이 시릴 지경입니다. 청솔은 디딜 곳 없는 바위 위에 섰고 바람은 부드럽게 목덜미를 휘감아 불어 가는데 무릉을 넘나드는 경개에 취해 주저 앉고 싶어집니다. 고여사님의 감미로운 노래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또 일어서야 합니다. 청산가경과 흐르는 바람을 남기어 둔 채…..
< 바람바위>
벽소령 산장 그늘에서 모두 휴식합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신 분들이야 체력적으로 무리가 없겠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날씨와 긴 시간의 체력소모가 두 명의 신참에겐 커다란 고통을 안겨줄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체력과 산행에 자신이 있었겠지만 …. 산은 교감하고 즐기기 위함입니다. 무리한 체력소모로 산행자체가 고통스러워서야 우리는 산의 아름다움과 심오함에 다가가고 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마라톤 맨은 이미 연하천에서 커다란 물집이 잡히는 바람에 발에 보수공사가 필요했습니다. 극한의 인내를 요하는 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보다 잘하고 있습니다. 겁 없이 나선 종주길에 고통의 대가를 지불긴 하겠지만 훗날 그 고통의 기억은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겁니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또 한 사람 늘어난 셈입니다. 산행 길에 마라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생각보다 정교하고 과학적인 마라톤은 체계적인 몸 관리와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마라톤도 산처럼 사람을 홀리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마라톤맨이 종주길 외도를 한 것처럼 나도 마라톤 외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벽소령 가는 길에는 하얀 찔레 꽃이 한창입니다. 여름이 가기 전 까지 산길에는 무슨 꽃이든 피어나고 있습니다. 선비샘에는 조금 먼저 서둘렀습니다. 누군가 빨리 라면을 끓이고 미리 준비를 해야 지체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에… 벽소령전에서 바람도 많이 자즈러지고 태양이 한층 강렬했었는데 식사를 준비할 때쯤 태양은 구름 속으로 숨었습니다. 선비샘은 제법 많은 수량의 물을 분출하고 있는데 커다란 코펠에 물을 받으려 하자 돌연 물줄기가 거세집니다. 참으로 신기한 샘이란 생각이 듭니다. 속속 대원들이 합류하고 그늘 쪽으로 자리를 옮겨 라면을 끊입니다 황제의 찬과 걸인의 입맛 한 그릇의 라면이 진수성찬이 되는 것은 격렬한 운동과 산의 조화가 가져다 주는 멋진 선물입니다. 칠선봉 전 조망터 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됩니다. 어려운 난코스를 지나자 푸른 하늘아래 다시 녹음이 터집니다. 지리산의 광활한 가슴이 드러난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하고 있습니다. 이제 흐린 날씨와 서늘한 바람의 기운은 조용히 가라 앉는 지리산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긴 해도 이렇게 날씨마저 도와 주니 이미 반이 넘어버린 오늘 여정은 성공적인 마무리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혼자 흐르는 길은 조용한 묵상 속에 남겨 질 수 있고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발걸음으로 움직이게 되니 별다른 힘겨움 없이 속도가 따라 옵니다. 칠선봉을 지나고 둥그런 헬기장의 모습으로 남은 영신봉도 뒤로하고 가파른 철계단 구간을 거쳐 평화로운 세석고원에 도착합니다. (세석 감회) 마음의 편안해지는 고산의 부드러운 구릉 지대 산장은 언덕 아래 조용히 앉아 있고 희미한 산안개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철쭉 꽃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고 철쭉의 무성한 잎과 키 작은 관목들은 초록의 잎새들만 무성하게 피워 놓았습니다. 지리산은 그 많은 상처와 상심을 보듬고도 언제나 이렇게 푸르고 푸근한 모습입니다 역사의 한을 간직한 지리산 곳곳에 오랜 세월 동안 제가 심어 놓았던 추억이란 이름의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세월이 가져오는 수 많은 상실과 변화 속에서도 그렇게 변함없이 거기 있어 주는 지리산이 고맙습니다. 그 풀섶에 남아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지난 세월 속에 내가 지리산에 그려 놓았던 추억의 그림을 사랑합니다. 산장에 들릴 일이 없어 나무 잎을 번들 거리게 하는 재주를 가진 산안개를 바라보며 잠시 길가 언덕에 앉아 인적이 없는 고원의 평화로움에 젖어 봅니다. 거림, 백무동 하산길을 스쳐 지나 갑니다. 촛대봉은 작년 가을처럼 둥그러니 혼자 남아 있습니다. 청아한 새소리만 바람 길에 날리고 바위 위엔 누가 무엇을 빌며 쌓아 올린 돌 탑인지…. 어깨를 짓 누르던 무거운 배낭을 내려 놓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바위에 거꾸로 누었습니다. 바람이 땀에 젖은 옷을 감싸고 지난 상념은 촛대봉으로 샘물처럼 솟아 오릅니다. 누군가 여행은 어디로 가는 것이라고 해도 좋지만 사실은 어디로 되돌아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립된 것 같은 이 여행 길은 사색과 명상 속에 자신을 찾아 가는 길 일지도 모릅니다 이 촛대봉에도 오랜 추억이 매달려 있습니다. 긴 여행 길에서 옛 추억에 미소지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여행은 그저 행복한 상념입니다. 바위 위에서 거꾸로 누운 상태로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아직 꿈 속인 듯 몽롱합니다. 바위 위에서 거꾸로 바라보니 연인 인 듯 한 쌍의 남녀가 바람 길을 지나 갑니다.
<사진7:촛대봉> (장터목 가는 길) “초원의 향기”는 벌써 바람에 날리어 가고 일행을 뒤에 두고도 혼자 가려니 쓸쓸하긴 합니다. 어짜피 여유로운 산행 길이긴 해도 평소 움직이는 속도가 있으니 그 페이스를 벗어 난 걸음걸이가 오히려 피곤합니다.
<사진8: 장터목 가는 길1>
가파른 경사와 굴곡 또 많은 반대편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바람처럼 능선을 흐르다 보니 벌써 바람의 바위에 섰습니다. 능선 안부를 지나 연화봉을 지나면 한 굽이 능선 길을 돌아 장터목이 나타나는데 이 바위에 서면 마치 종주가 다 마무리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예사롭지 않은 풍광을 간직한 곳이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늘 따라 젊은 커플들이 많이 보이는데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대학생인 듯 두 연인은 장터목 산장을 예약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 예약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내가 젊었던 날에는 이런 산과 산장에서 하룻밤 자는 것에 대해 생각도 못했었는데 그들은 젊은 나이로선 요즘 보기 드물게 산의 의미와 즐거움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흘러 버린 젊은 시절이 아쉽습니다. 젊은 청춘이 지리산처럼 푸를 때 나는 왜 대자연 한가운데서 사랑 만들기를 꿈꾸지 못했을까? 가슴 두근거리는 연애의 감정과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 같이 웅혼하게 흘러 내리는 지리산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처럼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일찍부터 세상의 아름다운 가치에 눈뜨고 그 아름다운 것들을 한꺼번에 움키는 버리는 그들의 노인 같은 현명함과 그 젊음이 부러워 집니다.
<사진9 : 장터목가는 길 2>
야호! 드디어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성삼재를 출발한지 11시간 만입니다. 작년 혼자 종주길에 9시간 30분 소요된 걸 감안하면 함께하는 산행이라 좀 늦어진 셈입니다. 아직 소진되지 않은 체력이 남아 있고 시간은 겨우 네시 사십분을 가르키고 있으니 너무 이른 시간의 갑작스런 목표상실이 어정쩡합니다. 언제나처럼 산장엔 거센 바람이 불어 가고 있고 목적지에 도착한 지금 웬지 모를 허탈감과 쓸쓸함이 엄습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할 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움직임이 정지되자 쓸쓸한 기분에 추위 까지 더합니다. 산장에 들어가 예약확인을 하고 추후 일정을 확인한 다음 추워서 안으로 들어가 침상에 누웠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잠깐인 것 같은데 깨어보니 한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오늘 다른 할 일이 없어 초저녁부터 자야 하는데 어딘가 등을 붙이면 잠이 드니 오늘 밤은 코고는 소리가 난무할 산장에서 잠을 설칠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시간 쯤 자다가 밖을 나가 보니 일행은 도착해 있었습니다. 윈드자켓이 필요 없을 것 같이 긴 팔 옷 만 하나 더 넣고 왔는데 추위가 장난이 아닙니다. 최선생님이 끓인 김치&참치 찌게와 햇반으로 바람부는 고원의 정원에서 식사를 합니다. 모두들 이것 저것 조금씩 챙겨온 덕분에 식단은 너무 화려 합니다. 전어 젓갈 참치캔 고추장 & 풋고추 마늘 쫑 마늘 배추김치, 열무김치 정선배님이 챙겨온 젓갈과 술은 압권이었습니다. 음식의 맛과 미각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1500 고원의 가든입니다. 백두대간 후 내 가슴에서 너무도 가까워진 노고단과 천왕봉의 거리 입니다. 그렇게 멀리 느껴졌던 지리산 종주길이 비단길인 듯 그저 구례구행 밤차를 타면 당일로 하산하여 돌아 올 수 있는 그런 길로 바뀌었습니다. 새벽밥 챙겨먹고 훌쩍 길을 떠나면 해지기 전에 마지막 산장에 도착할 수 있는 그런 길… 천왕봉 해돋이만 아니라면 그 길로 내려서서 대전 까지 돌아올 수 있는 가까운 길…….. 언제나 훌훌 털고 떠나면 그저 묵묵히 반겨주는 산 지리산은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 같은 푸근함으로 제 마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릅니다. 9시가 채 안되어 잠들고 시체처럼 자다가 새벽 3시에 웅성거리는 소리에 깨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분주합니다. 해돋이는 5시 20분 경에 볼 수 있으니 4시 20분쯤 올라 가면 충분한데 너무들 요란하게 법석을 떱니다. 3시 15분 경엔 누군가 아얘 불까지 켜버렸습니다. 아랫층에 잠들어 있는 일행들 가운데 최선생님을 깨워 4시 20분에 출발하자고 말씀 드리고 다시 누웠습니다. 충분히 잠을 잔데다가 한번 달아나 버린 잠은 다시 돌아 오려 하지 않습니다.
(천왕봉 가는 길) 쇳소리를 내며 바람이 불어가는 길을 따라 천왕봉에 오릅니다. 소리는 요란해도 지난 가을처럼 바람 끝이 그렇게 차갑지는 않습니다. 이 새벽에 몸이 떠밀릴 듯한 바람을 안고 작은 초생달과 무수한 별들이 걸려 있는 칠흑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천왕봉으로 오릅니다. 이 청명한 공기 조금씩 희미하게 밝아 오는 제석봉 실루엣 몸이 저려 옵니다. 오늘은 100%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천왕봉 가는 길 1>
< 천왕봉 가는 길 2>
먼 하늘은 이미 붉은 여명이 뜨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하고 천왕봉에서 마주한 장엄한 일출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살아 옵니다. 내가 받았던 숱한 감동들의 대부분이 대자연과 함께 였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보다 좀더 감상적임을 인정한다고 해도 정말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감동은 무한합니다 심산의 어느 산기슭서 문득 만난 눈부신 아름다움 그리고 빛나는 감동이 제게 삶의 의미와 의욕을 일깨워 줍니다 제석봉 고사목과 듬성이 진 나무울타리 실루엣 그리고 바위와 나무 사이에 걸린 달은 한편 의 서정시였습니다.
<천왕봉 여명>
<천왕봉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천왕봉 일출) 산안개가 흐르지 않고 구름한 점 없는 천왕봉은 처음 보았습니다 매일 뜨는 태양인데 천왕봉에서 뜨는 태양이 별다르냐고 하는 건 내려올 산을 왜 오르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그 산상에 있었고 그 때 눈부신 태양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광경들 중의 하나이며 그것은 제게 있어서 신이 내린 축복과 행운이고 감사와 기쁨 입니다. 장한 바람이 불어 가는 천왕봉에는 벌써 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붉은 여명이 아름다운 동편하늘에서 불어오는 장대한 바람으로 눈을 뜨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반도의 남단 최고봉에서 격정에 휩싸인 뜨거운 가슴을 안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봅니다. 그 찬란함 그 엄숙함 그 성스러운 광경에 한 없이 숙연해집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자연 속에서 살며 늘 사량하며 배우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게 하소서 언제나 충만한 건강과 기쁨 속에 있게 하시고 삶과 자연에 대한 열정을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당신의 무한한 기를 제게 주소서 “
<천왕봉 일출 1>
<천왕봉 일출 2>
< 천왕봉 일출 3>
작년 백두대간을 마무리하며 장엄하게 솟구치는 태양 빛을 한 몸에 받았고 또 오늘 즐겁고 행복한 산행을하며 반도의 맥점 노고단과 천왕봉 두 곳에서 그렇게 멋진 일출의 장관을 만날 수 있었으니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푸른 지리산의 정기와 붉은 태양의 기맥이 자연과 더불어 언제나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 가고자 하는 제 소망을 늘 보살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백무동 하산 길) 황금능선은 단속이 심해서 거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밖에 없다는 정보로 응석봉의 태극종주 하산 길로 잠정결정 했었지만 두명의 대원의 어려움 때문에 백무동으로 하산이 결정된 터였습니다. 아쉬움이 스멀거려도 지리산은 훌쩍 배낭을 메고 일방적인 약속을 통보하기만 하면 언제나 만날 수 있기에 다시 훗날을 기약합니다 지리산은 항상 거기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날을 산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황금능선이던 응석봉이던 내가 원할 때 다시 찾을 수 있으니 여유로운 백무동 하산길이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참으로 오래간 만의 백무동 길입니다. 세월은 참으로 빠릅니다. 젊은 시절 홀로 차를 몰고 지리산을 넘나들던 때에 자주 올랐던 백무동 길은 감회가 새롭습니다. 나무 잎들은 그 때보다 더 무성해졌건만 30대의 젊은 친구 대신 불혹을 훌쩍 넘긴 중년의 아저씨가 백무동을 내려 갑니다. 세월은 그렇게 빠르고 사람들은 쉬 늙어 갑니다. 우리가 그렇게 집착하는 많은 것들이 부질 없는 미망일 뿐 입니다. 세월은 우리가 힘들고 괴로워 하는 것들은 쉽게 잊게 해주고 저 푸른 산과 맑은 물은 우리더러 좀더 너그러워 지라 하고 즐겁고 기쁘게 살라 합니다. 오늘 이 푸른 산과 맑은 물을 볼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지리산의 아침3>
<지리산의 아침4>
붉은 기가 채 가시지 않는 햇살이 초록의 나뭇잎 위에 쏟아지는 모습은 눈이 부십니다. 황홀한 녹색의 화원을 걸어 물길 따라 하산하는 길은 여유롭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가 살고… 살아 가는 이야기 산에서 즐거웠던 기억들…. �기는 듯 걸어가는데 익숙한 모두들에게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등산로 길목에 솟아 있는 하동바위에 올랐습니다. 아침 9시 30분 아름드리 청솔이 바위에 기대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빛나는 초록 나뭇잎들 새로 천왕봉이 코 앞에 보입니다. 괜한 사진을 또 찍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은 잠시 지난 기억을 더듬게 할 뿐 그 황홀하고 멋진 풍경과 푸른 산 내음을 흉내조차 낼 수 없습니다. 참샘에서 아침식사를 합니다. 시장한 터에 코펠에서 부글부글 끌어 대는 라면과 누룽지 냄새가 허기를 자극합니다. 산에서 그렇게 격렬한 운동을 해도 체중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산에서 먹는 양과 입맛이 문제 입니다. 소화불량과 변비는 왜 생기는지? 같은 누룽지가 다 같질 않은 걸 보면 여기에도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적용됩니다. 너무 허무하게 백무동에 내려서 버렸습니다. 10시 5분 해는 아직 중천에 오려면 멀었는데 다시 노고단으로 되돌아 가도 충분할 것 같이 내 몸엔 지리산의 정기가 뻗치는데 어이 없이 일찍 마무리 되어 버린 지리산 종주 큰 나무 아래 주저 앉아 잠시 백수의 맥빠진 모습을 보이다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 이젠 웰빙입니다. 함양으로 가는 교통편이 더 편리하지만 함양은 경상도고 남원은 전라도라 미각의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남원으로 가길 결정합니다. 어제 같지 않게 태양은 저렇게 뜨거우니 어제는 정말 지리 산신령의 전폭적인 배려가 함께 한 날 이었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눈부신 들판의 풍경을 감상하며 가끔 졸기도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인월을 거쳐 남원으로 갑니다. 차 안에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땀에 찌든 옷은 태양아래 말라버리고 소금기는 몸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식사전 사우나야 말로 가장 기분 좋고 상쾌한 의식입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여독을 풀고 나니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 집니다. 땡볕이 쏟아지는 길을 걸어 최선생님이 추천한 백반집으로 갑니다. 진짜 맛깔스런 진수성찬이 즐비합니다. 젓가락이 갈 데가 너무 많아 무엇부터 먹어야 할 지 모를 지경이었지만 그 많던 반찬은 결국 모두 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벼메뚜기들의 급습에 식당 아주머니도 아연합니다. 그리고 뱃속을 찌르르 떨리게 하던 차가운 맥주의 맛 남은 산행의 피로는 그 건배 잔으로 모두 날아갔습니다. 귀향길은 여유로움에 넘치고 우리는 아직 해가 중천에 머무는 시간에 충만한 느낌에 쌓여 당당히 대전으로 입성하였던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한 즉흥적인 지리산 종주와 황금능선 연결종주 제안에 흔쾌히 합류해주신 프리랜서들 나만큼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멋진 여행길을 함께한 7명의 길동무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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