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글(펌)

미래의 인재상 , 글쓰기 능력에 달렸다.

미래 인재상, 글쓰기 능력에 달렸다
고종원 조선일보 기자의 풀어쓴 경영이야기

5월 초 언론학회 미래위원회의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했습니다. 토론 주제는 ‘미디어 산업에서는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였습니다. 저를 포함해 영화제작자 1명과 포털사이트 기획 책임자 1명 등 3명이 외부 패널로 각 분야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3개 부문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재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의적으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능력, 즉 글쓰기 능력이었습니다. 단순하게 기술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글쓰기가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기획을 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고, 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감동적인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능력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런 능력을 갖췄느냐 갖추지 못했느냐에 따라 급여 자체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지나 영상 중심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더 많이 글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에 글을 쓰는 것은 거의 예외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따금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 용돈을 받든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서(戀書)를 보내는 것, 회사원이라면 가끔씩 기획서를 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요. 문서를 하루에 20~30건 작성하는 것은 일도 아닌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메일, 인스턴트메시지, 블로그, 문자메시지 등등 우리가 하루 동안 처리하는 텍스트의 양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이 늘었습니다. 이제야말로 문자로 민주화된 의사소통을 하는 시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보급 이후 거의 600여 년간 문자를 활용한 글쓰기는 여전히 소수의 엘리트 계층에 독점되었다고 봅니다. 글을 활자화할 수 있는 출판사나 신문사 등 거대 조직의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했던, 문서를 통한 대중과의 접합을 새롭게 등장한 통신기술들이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쓴 글을 더욱 설득력 있게 읽히게 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글쓰기 교육을 거의 하지 않았던 공학도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교육이 본격 도입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공대는 공학교육인증 과정에 글쓰기 교육을 추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술만 보유하고 있으면서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공학도는 더 이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글쓰기 능력은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적 고민의 산물
2006년 5월10일자 <뉴스위크>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미국도 취업은 물론 고액연봉을 가르는 기준이 글쓰기라고 합니다. 미국의 전체 일자리 중 3분의 2가 글쓰기 능력이 필요한 자리고, 고임금 직종인 서비스, 금융, 보험, 부동산 부문 등으로 가면 80%가 글쓰기 능력과 직결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각종 보고서 작성법’이니 ‘파워 글쓰기’니 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육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글쓰기 교육이 무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능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글쓰기에 함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올 초 모 회사의 인턴사원 자기소개서 900여 장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소개서 한두 가지를 읽었을 때 느낌은 “아! 요즘 사람들 정말 글을 잘 쓰는구나”는 것이었습니다. 단락단락마다 알기 쉽게 제목을 붙이고, 적절한 고사성어까지 섞어 쓰는 글쓰기 능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계속 읽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쓴 글의 패턴, 표현양식이 너무나 흡사했습니다. 나중에는 왜 이렇게 글이 똑같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몇몇 지원자에게 문의를 해보니 모범답안이 있고 그것을 적절하게 변용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물론 남들과 똑같이 모범답안을 보고 쓴 사람들은 가차 없이 탈락됐습니다.
사실 고도의 글쓰기 능력, 즉 제대로 된 문장과 스토리텔링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개인의 노력 양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해리포터>를 쓴 영국작자 JK롤링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10억달러 작가가 된 그는 스페인에서 영어강사를 하던 어찌 보면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문화산업 전문가인 성신여대 심상민 교수는 JK롤링 같은 탁월한 작가를 만들어 낸 것은 영국의 BBC 같은 방송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심 교수는 <블루컨텐츠 비즈니스>라는 책에서 BBC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고급 지식을 끊임없이 흡수한 영국 사람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적인 지적능력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고급스런 글쓰기 능력의 토양이 된다는 것이지요. 결국 국내에 계신 분들은 이런 부족한 부분을 다른 방법으로 훨씬 더 많은 노력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글쓰기는 고민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정확하면서도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글은 글을 쓰는 필자가 고민을 많이 해야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저의 경우만 보더라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글을 쓸 때 고민의 강도가 덜합니다. 따라서 컴퓨터로 글을 쓸 때라도 머릿속으로 충분히 사고를 한 후에 글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모든 사회인에게 글쓰기 능력은 필수적입니다. 2005년 비즈몬의 조사에 따르면 72.1%가 업무상 문서작성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글쓰기 훈련은 두렵다고, 어렵다고 피할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유비쿼터스시대가 되면 쓰인 글을 바탕으로 이를 설득력 있게 대중에게 전달할 능력까지 요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글쓰기 능력은 성공하는 사회인의 기초 중의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