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하는 그날
칼바람이 우는 천왕봉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았습니다.
1년 5개월이 바람처럼 흘러갔고
새로운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이 가득했던 백두대간 종주는 그렇게 코끝이
찡한 감동과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뿌듯함과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보다는
겨우 서른 다섯번의 출정과 그 작은 걸음으로 내려서야하는 우리국토의
빈약한 등줄기가 안타까웠습니다.
백두대간의 사계
그 내밀한 아름다움을 온건히 염탐할 수는 없었지만 심산의 마루금을 따라
깊은 자연의 변방을 기웃거린 추억으로도 언제나 즐거웠고 행복했었습니다.
때론 대간의 아름다운 풍광 위에 드리워진 어둠의 베일을 걷어내지 못해
청각과 후각으로 대간의 자연을 느껴야 했고 흩날리는 운무가 아름다운
풍광을 가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 듯 갈팡거리는 발걸음으로 잠시 스쳐 지났어도
우리의 산하는 아름다웠습니다.
어둠의 빗장을 풀고 산 안개에 가리워 꿈처럼 다가오던 첩첩 심산의 새벽
과 눈부신 아침을 열어주던 백두대간의 장엄한 해돋이.
신생이 움트는 초록의 능선에서 바라본 것은 살아 있는 기쁨과 희망이었습니다.
유난히 비가 많은 날들이었습니다.
밤부터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뼈속까지 흠뻑 젖었던 어느 힘겨웠던 우중산행
새 옷을 갈아 입고 훈훈한 차 안에서 졸리던 눈으로 비가 긋는 차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편안하고 나른한 휴식이 그리워 질겁니다..
무더운 여름날 고원과 준령에서 거친 호흡과 땀을 쏟으며 바라보던 장쾌한 능선과 그 눈부신
풍광 가운데 아직 내가 서 있습니다.
산등성이를 불어 달아오른 얼굴과 목을 부드럽게 휘감던 고원의 바람 타는 갈증을 해갈해 주던
하늘 빛 샘물의 가슴 저리던 물 맛과 한 잔의 막걸리에 머물던 그 시원한 여름을 잊지 못합니다..
기억합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고랭지 채소 밭을 휘영청 밝히던 그 창백한 달 .
은실 같은 달 빛을 걸고 고요한 밤길을 걸어 새벽으로 갈 때
먼 실루엣과 달 그림자에 일렁이던 낭만을
눈이 많았던 지난 겨울.
새벽과 함께 열리던 웅혼한 설경은 잊을 수 없습니다.
온통 흰 눈을 머리에 이고 가지 마다 가득 눈꽃을 피워 내던 나무들
하늘 가득 춤추며 내리던 눈을 바라보며 동화의 나라로 들어설 때
메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듯 잊었던 동심을 느끼고
가슴마저 그렇게 두근거렸습니다.
백두대간을 통해 더욱 산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애틋해 집니다.
길지만 정말 짧았던 시간 속에 우리가 마주한 숱한 의미와 무한의 영감들…
큰 산은 위안과 교훈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세상의 고통과 상심을 모두 다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은 그런
담대함과 넉넉함이었습니다.
그 온건한 아름다움의 진수에 가까이 가려 했던 시간 속에서 받은 수 많은
깨우침과 감동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떠날 수 있는 시간과 산이 거기 있어 우리의 삶은 풍요롭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오늘도 꿈을 꿉니다.
갈기를 흩날리며 설원을 질주하는 야생마 꿈
병들지 않는 육신으로 일망무제의 산하를 굽어보며 푸른 대간을 달려 내리는 원시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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