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1
돌아왔구나, 하고 친구가 말했다.
오래도록 나가서 떠돌며 살더니
이 일 저 일 털어내고 맨손으로
돌아왔구나, 하고 나를 잡아준다.
그런데 나는 정말 돌아온 것일까.
나 살던 동네도 모습 찾기 힘들고
알던 사람들 목소리 들리지 않는다.
2
그날은 저녁부터 밤새 비가 내렸다.
소름 끼치게 혼자 있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체질인 것을 알았다.
어떻게 남보다 많이 젖지도 않고
속내의 나를 모두 보일 수 있으랴.
그날은 떠난 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숨쉬는
신선하고 정결한 단어를 찾으려고
방향도 정하지 못한 채 낚싯줄을 던졌다.
3
알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너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며칠 왠지 밤잠을 설쳤을 뿐이다.
얼굴과 머리는 늙어 낙엽으로 날리지만
한 평 침대에 누운 저 꽃 잠 깨기 전에
재갈 물린 세월아, 모두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이름 부르기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 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내 시를 읽어준 친구들아, 나는 아직도 작고 아름다운것에 애태우고 좋은 시에 온 마음을 주는 자를 으뜸가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 함부로 총 쏴 사람을 죽이는 자,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꽃과 나비에 대한 시를 읽고 눈물 흘리겠는가. 노을이 아름다워 목적지 없는 여행에 나서겠는가. 시인이 모든 사람의 위에 선다는 말이 아니다. 시가 위에 선다는 말도 아니다. 나는 단지 자주 시를 읽어 넋 놓고 꿈꾸는 자가 되어 자연과 인연을 노래하며 즐기는 고결한 영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태껏 성심을 다해 시를 써왔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적 성공과 능률만 계산하는 인간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겨우 한 번 사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꿈꾸는 자만이 自我를 온전히 갖는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시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마종기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것일까' 後記 중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에는 시인의 고독한 영혼이 호명하는 하나의 커다란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은 현재의 세계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는데, 과거에서 미래로 서로 꼬리를 무는 시간과 현세의 사물들과 현재에는 없는 사라진 것들의 낌새와 흔적까지 다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은 시인이 호명하는 순간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시인의 시를 통해 그 세상과 시인의 고독한 목소리를 만난다. 오, 외로움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는 , 그리움을 통해 그리움을 깨우는 목소리여! - 詩集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