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간다. 누릇누릇 풍요롭던 들판은 어느새 추수도 끝나고 참새떼가 날아드는 빈 들녘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즈음의 시골은 어느 때보다 넉넉한 여유가 넘쳐난다. 회색 도시에서의 빠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쯤 한적하게 머물며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산골과 바닷가 마을 10곳을 소개한다.
◆ 양평 양수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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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 양수리 마을 |
두물머리는 두 강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한 물길은 강원도 북녘 땅 금강산 기슭에서 시작해 휴전선 넘어 북한강으로, 다른 물길은 태백 금대봉 자락의 검룡소에서 발원해 남한강으로 흐르다 잠시 숨을 고르며 비로소 하나가 된다.
한반도의 중심을 적시며 흐르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만나는 양평 두물머리 풍광은 한 폭의 수채화다. 직선의 삭막한 구도에만 익숙해진 도시인은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는 강변 풍광의 자연스러움에 금방 빠져든다.
두물머리에 자리잡은 양수리 마을은 당연히 강변 경치가 돋보인다. 오염 없는 청정한 들판에서 농촌 체험도 할 수 있고,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수세미 만들기, 인절미·개떡 만들기, 손두부 만들기, 말린 꽃을 눌러 만드는 압화공예, 향비누 만들기, 자전거 타기가 있다.
이 중에서 세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요즘 한창 수확 중인 배는 1인당 2개까지 딸 수 있다. 점심 식사를 포함해 1인당 2만3000원. 1박2일 코스는 모든 체험과 세 끼 식사, 숙박비를 합쳐 1인당 5만5000원. (031)774-4929, www.yangsuri.or.kr,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 원주 매화마을
원주시 북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매화마을은 봄날 매화가 필 무렵에 찾아가면 좋은 마을이다. 그러나 산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흩날리는 늦가을의 경치도 봄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섬강 푸른 물줄기가 휘돌아가는 매화마을을 뒤에서 감싸고 있는 소군산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늦가을 정취를 맘껏 누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심도 좋고 시골 먹거리도 많아 이런저런 체험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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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매화마을의 두부 만들기 체험. |
늦가을엔 단무지 만들기, 무시래기 만들기, 무말랭이 만들기 체험(3000원)을 주로 진행한다. 두부 만들기(4000원)도 재미있다. 이 외에 짚풀공예, 한지공예도 있다. 숙박은 황토방 4인 가족 기준 8만원. (033)731-8281, www.maewha.net,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매호리.
◆ 삼척 신리 너와마을
삼척은 첩첩 산줄기와 파란 바다를 양쪽에 끼고 있는 고을이다. 백두대간 깊숙한 곳에 터를 잡은 도계읍 신리는 화전민의 후예들이 사는 마을로 강원도 산골의 전통 가옥인 너와집으로 유명하다. 너와집이란 지붕에 기와나 이엉 대신 소나무를 쪼갠 얇은 나무판을 올린 집을 말한다. 신리의 너와집은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전통 가옥이라곤 기와집이나 초가 정도만 봐오던 사람들은 너와집의 여기저기 물이 샐 것 같은 지붕과 바람 드나드는 허술한 판자 벽을 보곤 의아해한다. 그러나 맑은 날 조금씩 틈이 벌어져 있던 지붕은 습기를 머금게 되면 부풀어서 물샐 틈 없는 완벽한 지붕이 되고, 겨울엔 눈이 덮이면서 그 무게에 눌려 틈이 없어진다. 허술한 판자 벽도 겨울철엔 땔감으로 쓰는 장작을 빙 돌아가며 쌓아 놓으니 걱정할 게 없다.
너와집 숙식 체험(4인 기준 평일 6만원, 주말 7만원)이 단연 기억에 남는다. 방아찧기, 솟대 만들기도 체험할 수 있다. 사람의 왕래가 드문 오지라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도 느낄 수 있는데, 무엇보다 깊은 산골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오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033)552-5967, 011-377-6748, neowa.invil.org,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
◆ 당진 태신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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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 태신목장을 찾은 어린이가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
충남 예산군 고덕면과 당진군 면천면 사이에 펼쳐진 태신목장은 30만평의 넓은 초지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목장 체험을 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보자. 부드러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바라보는 맛이 쏠쏠하다. 이곳의 우유 생산량은 하루 200㎏ 정도.
소 젖을 짜서 우유를 받거나 치즈를 만들어보자. 송아지에게 우유를 주거나 소들에게 건초나 사료 등 먹이를 주는 체험도 해볼 수 있다.
태신목장의 명물 중 하나는 트랙터를 개조해 만든 관광용 차량이다. 일명 ‘트랙터 트래킹’. 털털거리는 트랙터에 올라 타 목장을 한 바퀴 도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1일 체험비는 1인당 1만8000원. (041)356-3154, www.taeshinfarm.com,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
◆ 아산 외암마을
400년 전통의 민속마을로 마을 안엔 민가가 밀집해 있다. 그 주변 산야에는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넓은 마당과 정원, 여러 채의 목조 기와집을 갖춘 큰 규모의 고가(古家)들이 20여채에 이른다. 그 사이에 작은 규모의 주택이 섞여 모두 60채에 이르는 민가가 모여 있다.
마을의 반가(양반집)엔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교수댁, 참봉댁, 국사댁 등 주인의 관직명을 따서 부르는 택호와 재직하던 고을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영암댁, 신창댁, 양성댁 등의 택호가 붙어 있다.
무엇보다 우리 전통 가옥에서 머물며 다양한 체험을 하고픈 가족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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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 외암마을의 떡메치기 체험. |
마을에선 사물놀이, 판소리 등 국악 공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민속놀이, 전통 혼례, 한지 공예, 솟대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민박집의 외견은 전통 초가지만 내부는 샤워, 취사시설과 화장실이 현대식으로 완비돼 있다.
요금은 4인 가족 1실 기본 4만원, 매끼 식사식(한끼 5000원)도 가능하다. (041)541-0848, oem.farmstay.co.kr,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 태안 볏가리마을
서해 태안반도의 이원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달리면 폭이 1㎞ 내외인 ‘이원곶’이 8㎞ 정도 이어진다. 해안선을 따라 아담하게 자리한 염전과 굴, 바지락 등 온갖 갯것이 나는 갯벌과 작은 돌섬들, 그리고 말 붙이면 순박한 미소로 대답해주는 주민들을 만나보자.
볏가리 마을은 농촌과 어촌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볏가리대 세우기는 정월 대보름 무렵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행하던 풍년 기원 민속행사. 이것을 체험 행사로 기획해 방문하는 이들에게 마을을 상징하는 행사로 널리 알리고 있다.
전통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에서 천일염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해 볼 수도 있다. 염전에 물을 퍼 올리는 수차와 용두레 등을 돌려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이 외에도 동물농장에 들러 먹이주기, 솟대 만들기, 고구마 캐기 등도 요즘의 체험거리. 쏙 잡기, 굴 따기 등 갯벌 체험도 가능하다. 숙박은 4인 기준 1실에 4만원, 단체는 1인당 8000원. (041)672-7913, 011-9635-9356, byutgari.go2vil.org, 충남 태안군 이원면 관리.
◆ 안동 하회마을
낙동강변에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 오른다. 안개에 덮인 텃밭 너머에 옹기종기 모인 기와집과 초가가 정겹다. 흙돌담 비뚤비뚤 돌아가는 고샅길엔 두루마기 걸친 양반이 헛기침을 하며 지나갈 것만 같다.
하회마을을 찾으면 이렇게 전통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가을 풍경을 만나는 것 외에도 장승 깎기, 전통 춤사위 배우기 등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어 좋다. 장승 깎기(1인당 2만원)는 ‘장승을 닮은 장승쟁이’로 불리는 김종흥 장인에게 직접 지도를 받는다. 장승 홈페이지(www.jangsung.pe.kr)에 접속해 신청하거나 전화(054-854-5331)로 문의.
하회체험마을(www.hahoe.or.kr)에서 하는 늦가을 체험 행사로는 배따기 체험(1만원)이 있다. 한 가족이 기본으로 1상자(7㎏)를 딸 수 있다. 이외에도 한지공장에서 한지공예체험(2000원), 하회탈 만들기(3000원)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하회마을에서의 숙박은 3~4인 가족 기준 3만원. 한끼 식비 5000원. 하회마을 입장료 성인 2000원, 학생 1000원.
◆ 남해 다랭이마을
남해대교를 건너 앵강만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달리면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이 나온다. 바닷가 가파른 언덕을 계단식으로 다듬어 아주 조그마한 논을 만들었는데 이 모습이 마을의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다랭이’라는 별칭을 비롯해 삿갓으로 덮어도 감출 수 있다는 ‘삿갓배미’부터 300평이 넘는 ‘큰배미’까지 생김새와 크기가 각각인 500여개의 논밭이 독특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배미’는 논을 세는 단위고 ‘다랭이’는 좁고 작은 논배미를 의미하는 ‘다랑이’의 사투리.
마을엔 잘생긴 암수바위 같은 볼거리도 있고, 밥무덤 등의 민속도 살펴볼 수 있어 좋다. 갯바위에서 일출ㆍ일몰 감상, 몽돌해변 산책도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시금치·냉이·고구마 캐기(3000원) 등이 준비되어 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어부가 미리 쳐 놓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잡아 회를 떠 먹는 프로그램이 특히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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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다랭이 마을. |
배 한 척에 10만원, 승선 인원 10명 이상은 1인당 1만원. 숙박은 4인 가족 기준 4만원, 식사 어른 5000원, 어린이 4000원. 직접 취사를 할 수도 있다. (055)862-0002, darangyi.go2vil.org,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 울주 대곡리 반구대마을 울산의 젖줄이기도 한 태화강 상류인 대곡천엔 세계적인 선사유적인 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과 그물에 걸린 고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가 남아 있다. 이 부근 계곡 암반엔 1억년 전 이 지구를 지배했다가 갑자기 사라진 공룡들이 어슬렁거렸던 흔적인 공룡 발자국 화석이 200개가 넘게 찍혀 있다.
대곡리는 이렇듯 지구와 인간의 역사를 꿰뚫는 ‘시간 여행의 패스워드’를 즐길 수 있는 마을이다. 체험 행사로는 자신이 깎은 곶감을 가져갈 수 있는 곶감 깎기(3000원), 공짜로 즐기는 감자·고구마 구워 먹기, 군밤 체험, 별자리 관찰, 다도예절교육(어른 1만원, 어린이 5000원), 떡메치기(한 되 3만5000원) 등 다양하다.
마을에서 반구대암각화까지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암각화 답사도 수월하다. 왕복 40분 소요. (052)263-6425, daigok. 052i.com,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 고창 하전마을 고창의 심원면 하전리는 건강한 갯벌이 끝도 없이 펼쳐진 어촌으로 몇 년 전 갯벌체험장으로 개발되었다. 경운기와 트랙터를 타고 나가서 즐기는 갯벌 체험이 인기다. 바지락도 캐고, 갯벌 축구도 즐길 수 있다. 또 곰소만 너머로 변산의 근육미 넘치는 산줄기를 바라봐도 좋다.
하전마을의 갯벌 체험 프로그램은 일반형(대인 1만2000원, 소인 7000원), 가족형(대인 1만8000원, 소인 1만2000원), 단체형(일반 1만원, 청소년 6000원, 유치원 5000원), 숙박형(대인 5만8000원, 소인 5만2000원)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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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전마을의 갯벌 체험. |
일반형 참가자는 양식장 체험, 갯벌 체험 및 바지락 캐기 체험 등 기본 체험이 가능하다. 가족형은 기본 체험에 바지락 칼국수도 맛볼 수 있다. 단체형은 갯벌 축구를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숙박형은 가족형 행사에 장어구이백반, 숭어구이백반, 바지락국백반이 나오는 세 끼 식사가 기본이다.
저녁엔 굴구이·조개구이·군고구마 등의 별미도 즐길 수 있다. (063)563-0117,
www.hajeon.com, 전북 고창군 심원면 하전리.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