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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주말일기 - 2월 둘째주

내가 환자라는 건 보호대만이 증명한다.

동네 병원에서 뼈는 이상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믿었더라면 나는 통증이 사라진 어느 날 다시 배낭을 둘러맸을 것이다.

나는 부러진 것도 의식하지 못한 뼈는 시간과 함께 아물어 갔을 것이다.

아는 게 병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 알쏭달쏭하다.

 

2월 5일 월요일 광석네에서 식사를 했다.

오래된 모임이다.

임대 아파트 시절에 만나 지금 까지 만남을 유지하고 있으니

집에서 봇쌈 수육과 만두를 만들었는데 너무 맛이 좋아서 과식을 했다.

수육을 잔뜩 먹고도 큰 만두를 네 개나 먹었다.

광석엄니 음식솜씨는 짱이다.

서우 모임날은 이젠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를 복원하는 날이기도 하다.

100원 짜리 고스톱

이제는 상가집에서도 사라져 가고  집들이 돌잔치도 모두 부페에서 하니 부자되라고 방바닥을 눌러줄 기회도 드믈다.

그래도 두달에 한번 하는 서우모임이나 명절 때 형제들 만나면 한판씩 벌인다.

명절 때는 아버님이 좋아하셔서 한 판 어울리는데 그래도 판돈이 제법 된다.

고리를 떼어서  참가가족들 영화비와 맥주한잔 할 돈만 걷히면  판을 접는다.

보통 영화관람료는 막내가 자주 부담하는 편이다.

 

시간이 더 지나고 세월이 좀 더 경제적이고 실용적이 된 어느날 어쩌면 우리는 머지 않아 지나간 시대의 진한 향기를 그리워 할지 모른다.

그래서 따뜻한 이웃의 정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서우모임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부부동반 모임이라 늦게까지 흐느적거려도 마눌들과 함께하니 원성을 살 일도 없고 술먹고 칭얼대는 사람도 없으니 편안한 모임이다.

아쉬움이라면 모두들 사는 게 바빠 예전처럼  훌훌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들이 없다는 것일 게다.

 

2월 8일 목요일

회사로 이종완 과장이 왔다.

회사를 사표 내고 친구와 김치공장을 하는데 내가 S/W하나 데모를 요청해서 공급업체와 함께 들어왔다.

데모와 면담을 통해 SW 성능을 파악했는데

입력된 문자를 인식해서 음성으로 내용을 보내는 괜찮은 솔루션이다.

 

시작의 발단은 이랬다.

어느날 이종완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핸드폰에는 이종완 과장이라고 떴는데 아릿따운 아가씨가 모임안내를 하는 게 아닌가?

비서도 아니고 투표 설문조사처럼 녹음된 여자의 목소리가 난다.

일방적으로 할 이야기 죄다 하더니 참석하시려면 1번을 누르고 불참하시려면 2번을 선택해 달라고 한다.

참 맹랑하다 싶었는데 모임안내나 기타 공지사항 활용에 몹시 편리하겠다 싶었다.

가령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애경사가 발생하면 연락 받은 총무부에서 내용을 입력하여 음성안내 해주면 좋지 않겠는가?

 

이과장한테 전화해서 S/W 깔아 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산 거구 구매해야 된단다.

필요하시면 업체에 연락해서 설명회를 해주겠다고 해서 약속이 된 것이었다

 

기능은 상당히 좋았다.

DB나 엑셀 파일과 연동하면 수만 거래선의 잔액과 매출,입금 내역도 한번에 음성공지를 할 수가 있다.

당사자가 통화중이거나 받지 않을 경우 지정된 횟수만큼 반복 전화를 하고 전화번호가 맞지 않는 거래선은 에러 메시지까지 뿌려 주니 참 편리한 기능의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FAX솔루션 기능도 좋았다.

외부에 발송하는 FAX문서의 통제도 가능하고 P/C에서 작성한 문서상태로 상대방 팩스에 발송할 수 있다.

외부에서 온 FAX를 찾으러 공용 FAX기 까지 갈 필요도 없이 자신이나 부서의 ID로 FAX가 직접 들어 온다.

즉 팩스기계 없이 팩스 수발신이 가능하고 FAX발송료도 없다.

승인절차가 필요한 FAX는 결제 및 관리기능을 부여하고 접수된 FAX는 일자별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괸리된다.  필요 시 출력도 가능하다..

 

각 부서의 적용여부를 담당자들을 불러 검토하고 각 공장별 FAX사용 실태와 소요비용 파악을 지시했다.

비용을 절감하고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다면 도입 타당성은 충분한 셈이다.

 

 

9일 금요일 전인회 모임 갑성이 모친상 문상

목요일 갑성이 장모님이 돌아 가셨다.

83세에 8남매의 어머니

우리어머니처럼 고생 많이 하셨겠다.

목요일에 일이 좀 있어서 성수와 금요일날 문상하기로 약속을 했던 터였다.

금요일 7시는 전인회 모임이라 회원들과 식사하면서 담소를 나누다 9시 30분에 성심 장례식장으로 넘어갔다.

장례식장이 요란하다.

모두 출가한 8남매가 세상에 늘여 놓은 인연들이니 걸리는 사람들이 오죽 많을까?

갑성이는 벌서 얼마나 술을 받아 마셨는지 효가 꼬이고 발걸음이 흔들린다.

사위라고 손님들 술 시중만 들다 보니 한 잔 두 잔 받아 마신 잔이 꽤나 쌓인 모양이다.

 

허기사 나는 장모님 돌아가셨을 때 장인어른의 명령으로 상주들과 똑 같이 빈소에 서서 손님들을 받았었다.

6남매의 막내 외동딸을 데리고 간 유일한 사위라서 대접(?)을 받은 건가?

 

갑성이하고 성수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니 뗄래야 뗄 수 없는 가까운 친구들 이다.

그래서 함잽이도 갑성이와 성수가 했다.

갑성이는 공무원이고 성수는 장사를 한다.

같은 대전에 있어도 서로 다른 길을 가다 보니 선뜻 만남의 기회를 마련하기가 쉽지는 않다.

늘 우리는 노후를 함께 보낼 친구들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아껴두고 이런 애경사가 잇을 때나 꺼내 쓰곤 했다.

술김에 갑성이가 앵무새처럼 자꾸 서운하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오래 전 한 번 모인 자리에서 우린 이렇게 친구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의기투합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산에 가자고 약속하고 두 번 쯤인가 갔었을 거다.

홀연히 내가 2년간 백두대간을 해야하기 때문에  산행을 함께하기가 어렵다고 했었다.

사실 격주 출정이지만  출정을 안 하는 주에도 장거리 산을 타서 컨디션 유지를 해야 했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이러저러한 약속도 그렇고 친구들과 또 한 주를 예약해 버리면  주말시간이 너무 없어서 어려움이 많은 터라 친구들의 양해를 구했던 것이다.

 

백두대간을 마무리 하고도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더 깊이 산에 빠져서 정맥길과 돌아보지 않은 산하의 비경에 안달이 나 있었다.

느끼지 못한 사이에 몇 년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술 먹은 김이라 갑성이는 서운한 심정을 주절주절 엮어댄다.

사실 주중에라도 한 번씩 만나 술이라도 치고 살아야 하는데 시간보다는 마음이 다른 곳으로 멀리가 있었다

그랴 임마 다 내죄다.

그치만 우리 두어 번 통화하 때 네놈도 진즉 그런 야그 좀 하지 그랬냐?

 

사실 그렇다.

대학 친구들도 그렇고 군대 친구들도 그렇구 일년에 두어 번이나 만날까?

어릴적 친구들 몇몇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전화번호도 다 알고 있지만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는다.

한 번쯤 술 한잔 먹고 옛날 얘기 떠들고 하다 보면 그 다음 만남이 별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 또 서로의 세계나 관심사가 다르니 예전 어릴적처럼 조건 없는 흔쾌함을 느끼

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난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데 누굴 그렇게 만나고 살았는가?

산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또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니 세월은 그렇게 휑하니 가버렸다.

1년 남짓 된 것 같은데 몇 년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로 했다.

일단 몸이 이모양이니 4월에 첫 모임을 하기로 했고 내가 몇 달 이리저리 산속을 끌고 다녀서 정예군을 만들기로 했다.

하루 7시간 정도는 무리 없이 소화하는 체력쯤 되어야 오지의 비경을 욕심 낼 수 있지 않겠는가?

아까운 휴일을 녀석들 가이드만 할 수만은 없는 일이고 보면 내가 가지 않는 길을 잡을 때 힘들어 하지 않고 따라와야 될 터이다.

 

새벽 한 시쯤 되어 그 많던 사람들도 대부분 떠나고 보호대를 차고 장시간 앉았더니 허리가 아파서 더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큰일 잘 치루고 만나자고 이야기 하고서 성수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다.

 

아침에 늦잠 좀 잤다.

막내 놈이 포경수술 중이라 사우나도 포기하고 신문 좀 보다가 걸어서 세계속으로 프로를  마물과 함께 시청했다.

여행에 대한 열망이 강한 마눌이 꼭 보는 TV프로다.

 

예멘은 이슬람교가 가장 번성한 곳으로 분단국가였다가 1990년에 통일되었다.

예멘의 수도는 올드사나로 4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곳곳에 이슬람 사원 모스크가 있다.

예멘 사람들이 하루 한 번씩 알라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행복을 기원하는 곳으로 회교도만 들어갈 수 있다.

예멘 사람들도 목욕을 좋아하여 함말이란 대중목욕탕이 많이 있다.

특색이 잇는 건 여자와 남자의 목욕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남자들은 호신용 칼인 잠비아를 차고 다니고 여자들은 두건을 쓰고 여자들은 남편에게만 보여주기 위한 천연염료인 헤나로 문신을 즐겨 한다.

빵을 소고기와 양고기로 요리한 쌀타에 찍어 먹는 것을 즐긴다.

 

결혼식의 풍경이 웃긴다.

남자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고는 열심히 까트를 씹어대는 것이다.

까트란 마약류로 분류되는 풀인데 하객들은 모여서 조용히 이 까트만 열심히 씹어댄다.

이 풀을 씹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말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비 중독성이고 부작용은 없는데 많이 먹으면 변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단다.

예멘사람들의 까트 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극진하다.

척박한 사막지대에서도 바람을 막아주는 돌무더기 탑을 쌓아 그 안에서 까트를 키운다.

하객들은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신랑도 결혼식날 처음으로 신부의 얼굴을 본다.

아마 예전의 우리나라처럼 부모들이 상대를 결정해버리는 모양이다.

축의금을 낸 사람은 사회자자 즉석에서 이름과 금액을 소개한다.

 

 

해발 2200에 위치한 마나카는 오스만터어키에 끝까지 저항한 천혜의 요새이고 모카항은 커피가 많이 유통되었던 항구로 그 항구이름으로 인해 이곳에서 생산된 커피에 모카 커피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후다항은 예멘의 어업전진 기지 인데 해산물이 넘쳐난다.

상어잡이가 허용되어서 부두에는 잡아 올린 무시무시한 상어가 즐비하다.

마리브는 시바왕국의 수도로 전설 속의 시바왕국의 2500년전 유적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곳인데 그곳의 바란 신전은 시바여왕의 신전으로 달의 신전이라 한다.

그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사막의 모래에 묻혀 있는 태양의 신전은 미국 조사팀이 발굴 중이다.

예멘을 여행하는 시점은 태양의 신전이 웅장한 모습으로 발굴되어 복원되는 시점이어야 겠다..

쉬밤은 흑으로 지은 마을 건물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이다.

 

성장과 사랑이 멈춘 땅이 예멘이라고 한다.

옛날의 건물과 생활방식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여행에 관한 기록은 책을 보는 거와 영상물로 보는 것 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바보상자로 보는 것하고  내가 직접 가서 돌아보는 것 하고는 또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예멘이여 내가 가는 그 날 까지..

라면 한 개를 끓여먹고 도서관에 갔다.

 

인생을 움직이는 천년의 철학

중국 철학자 허샨이 지은 것이다.

천년 이라는 시간을 초월한 인생철학

 

사실 뒤적이다 만난 한 구절 때문에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다.

 

모든 사람은 우수하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이 다른 삶을 사는 이유는 자신을 믿고 인정하고 아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해 내려오는  고전 속에 담겨진  삶의 지혜와 인생의 철학을 찾아내고 있다.

평범한 이야기들이라 밋밋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짧은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인생의 교훈이 가끔 가슴에 파문을 놓는다.

 

오늘도 선택해야 한다.

기분 좋은 하루와 기분 나쁜 하루

가분 나쁜 하루를 보내면  아직 젊은 나이 속에 남겨진 내 일생에 몇 되지 않은  소중한 주말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긍정적인 삶이 기쁨을 준다.

살아 숨쉴 수 있는 행복

숲 속을 거닐며 상쾌한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 볼 수 있는 행복

한 권의 먼지 묻은 책 속에서 선인의 삶의 지혜를 엿보는 행운

 

 

조조로 마눌과  황후화를 보았다.

그 많은 돈을 들이고 그 정도 밖에 영화를 만들 수 없나?

 

영상미학의 대가 장예모

영웅과 연인의 화려하고 비장한 영상미는 충격이었다.

만패불청으로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쏟아 부은 돈에 비해

드러난 장예모의 천재성은 미흡하다.

 

하지만 중국 영화의 스케일과  웅장한 스펙타클에는 할말을 잃었다.

제조업을 넘어 문화사업 까지 물밀듯이 진군하는 그들의 위세에 간담이 서늘하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이국적인 호기심을 자극할 중국 황궁과 궁녀들의 화려함은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리라.

궁녀들의 가슴을 깊게 드러내는 파격적인 의상으로 흥행을 고려하는 감독의 유연성 까지

마치 현대 영화의 본질은 고증에 충실하기 보다 도발적이고 자극으로 관객몰이를 해야 한다는 상업적 마인드가 충실하다.

상상해보라 .

스필버그처럼 천재성을 지닌 누군가가 나타난다.

모방할 수 없는 중국문화에 기반한 흥미진진한 영상문화에 엄청난 자본을 퍼부어 댄다면.

우린 또 얼마나 호주머니를 털어야 할지..

스토리가 약하고 감동이 약하지만 그래도 볼만한 영화가 황후화 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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