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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트랜드

沙上樓閣 컴퓨터 교육

얼마 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비교할 때 가장 경쟁력이 약한 곳 중 하나가 상위 10%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하위 10%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미국계 기업의 임원도 종종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본사 임원이 일하는 걸 보면 기가 질립니다. 거기다 또 얼마나 똑똑한지. 이들이 정력적으로 일하는 걸 보면 상위 10%가 미국을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걸 자주 느낍니다.”

차세대 먹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소프트웨어(SW)도 마찬가지다. 전반적으로 우리의 SW경쟁력은 미국·인도 같은 SW선진국보다 열악한데 특히 아키텍트라 불리는 최상위층 경쟁력이 심각하다. 그뿐만 아니라 수도 태부족하다. 최근 만난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만오천명이나 되는 SW엔지니어가 있지만 고급 SW인력을 찾기는 쉽지 않다”면서 “대학과 협력해 고급 인력 확보에 적극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작년부터 아키텍트 양성을 위해 1년 단위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 올해 2년째 운영하고 있다. 정부도 내년부터는 고급 SW인력 양성을 위해 연간 30억원을 대학원에 지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급 인력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다.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초·중·고 컴퓨터 교육은 겉돌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A교수는 최근 자녀의 컴퓨터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중·고교 교과서가 대학 교재의 축소판이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에 맞는 교과서가 아닌 대학 교재를 축소해 옮겨놓은 것에 그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컴퓨터 교육을 자동차에 비유한 A교수는 “우리 아이들은 운전하는 법만 배우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자동차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또 어떻게 생겼는지는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고 개탄했다. A교수의 지적처럼 그동안 우리의 초·중·고 컴퓨터 교육은 엑셀·워드 사용 같은 활용에 치중하는 우를 범했다. 작년에 발표된 OECD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은 e메일·웹서핑·게임 같은 활용 면에서만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았다. 창의적 문제 해결과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 주는 컴퓨터 교육 대신 활용만 강조한 데 따른 결과다. 미국 등 선진국은 우리와 다르다. 일찍부터 컴퓨터 교육으로 논리와 스스로 문제 푸는 법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논리와 창의성을 위주로 하는 새로운 컴퓨터 교과를 마련, 올 2월 고시한 바 있다. 하지만 새 교과과정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 우선 일러야 2011년부터 적용된다. 새로운 교과과정을 가르칠 전문 선생님도 부족하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육 시간이다. 컴퓨터 교육이 선택과목으로 돼 있어 자칫 초·중등학교에서 한 시간도 컴퓨터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교과 내용은 제대로 수정했지만 정작 일선 현장에서는 선생님 부족 등으로 컴퓨터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는 학생 거의가 초·중·고에서 제대로 된 컴퓨터 교육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고급 SW인력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논리력과 문제 푸는 능력이 인도 등에 뒤질 수밖에 없다. 초·중·고 컴퓨터 교육이 정상화하지 않는 한 고급 SW인력 운운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다. 다행히 정보과학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 오는 10월 말까지 개선안을 내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교육이다 보니 해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손놓을 수는 없다. 범부처 차원의 대책위를 만들든지 일본과 영국처럼 IT를 수능과목으로 하든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방은주 논설위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