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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설악산 (100대 명산 제 29산)

 

 

 

 

 

 

 

바다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차 소리에 파도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어둠이 몰고 온 시각의 단절은 잊었던 여행의 지루함을 몰고 왔다.

속초에 다가갈수록 낯익은 바다의 느낌이 더욱 진해지고 우리는 긴 여정의 끝에 있음이

뚜렷해졌다.

콘도를 지나 시내를 가로질러 동명항으로 갔다.

동명정의 오색 불빛이 어둠속에 빛나고 있는 한적한 항구

우리는 여행객이 피로와 가벼운 흥분을 내려 놓고  

갯내음 가득한 해물탕으로 침묵의 바다를 먼저 만났다.

지난 날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유물처럼 남아 있는 동해바다.

여행길의 종착지

어둠에 침묵하는 바다를 뒤로하고 돌아와

콘도에서 우리는 통나무처럼 쓰러져서 잤다.

 

 

 

 

 

 

 

 

 

 

 

 

대청봉 가는 길

동해의 아침은 밝았다.

오늘이 D-DAY

마눌과 대청봉을 밟기로 한 야심찬 날이다.

7시간이 넘어 설 긴 여정에 마눌도 걱정이지만  내 허리도 걱정스럽다

하지만 문제될 건 없을 것이다.

설악의 기운을 받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지리란 걸 안다.

 

여섯시에 일어나 마눌을 재촉해서 설악동으로 갔다.

평일인데도 벌써 설악동은 들썩이고 있다.

이넘들  마티즈를 몰라 보다니…

개인들이 전세를 내서 운영하는 주차장이라 경차주차료를 깎을 수 없단다.

어제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알아 놓긴 했는데 부르면 오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들어오는 택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공단직원에게 택시가 자주 들어오느냐고 물어 보니 잘 들어온다면서 설악동의 개인택시

운전사 전화번호를 하나 넘겨준다.

전화를 하고 요금은 물어보니 4만원 달란다.

바가지 요금에 화들짝 놀라 내가 아쉬워 전화를 걸고는 짜증스런 목소리로 “됐다고” 말하

고 다짜고짜 전화를 끊었다..

어제 콜택시 운전사는 분명 2만원 좀 넘게 나올거라고 했다.

 

마침 들어오는 택시가 있어 잡아타고 오색까지 간다.

금액을 물어보니 이곳에서는 모두 시외 미터 요금을 적용하는데 오색까지 4만원이 넘게

온단다.

어디서나 같은 협정요금이란다.

빈차로 나오는 것을 감안 속초시에서 할증하여 책정한 미터기에 의한 표준금액 이라고 했다.

택시 아저씨 왈 어제 콜택시회사 안내원은 자기회사로 손님을 유도하기 위해 금액을 낮게

불렀을 거란다.

괜히 엉뚱한 아저씨를 바가지 운전사로 몰아 부친 셈이다.

하여간 우린 비싼 통행료를 물고 오색에서 대청봉을 경유 설악동으로 내려서는 장도의

 여행길에 올랐다.

 

 

설악산 산행일 :2008 10 17일 금요일 (휴가중)

산 행 로 : 오색 – 대청봉 –설악동

    : 마 눌

소요시간 : 9시간 

    : 맑고 화창함 / 가물어서 먼산에는 뿌연 안개

 

경유지별 시간

 

07:50 : 오색 매표소   대청봉 5km

09:15 : 설악 폭포

11:00 : 대청봉

11:30 : 중청 대피소

11:30~12:00:  중식

12:00 : 중청대피소 출발

12:18 : 소총봉

13:50 : 희운각  대청봉-2.3km ,마등령:4.7km

               양폭대피소-2.0km, 소공원-8.5km

14:20 : 양폭 대피소  비선대 3.5km, 소공원 6.5km

16:00 : 비선대   대청봉- 8km, 중청-7.4km, 희운각-5.3km

16:50 : 소공원

 

 

 

 

 

 

 

 

 

 

 

밝은 날 오색의 등로를 올라가기는 처음이다.

늘 비몽사몽의 밤길을 달려와 깨어나지 않은 어둠 속으로 대청봉에 올랐었다.

설악폭포를 훌쩍 넘어서야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마중할 수 있었다.

 

대청봉 까지는 5km

휴일날 오면 늘 막히는 통에 3시간 30분 씩 걸려 올랐던 길인데 오늘도 쉬엄쉬엄 가면 그

시간엔 도착하리라

 

대청에 오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언제부턴가 마눌과 함께 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인적이 없는 산길을 갈 때 마음이 더 홀가분해지고 스스로에 대해 허심탄회 해진다.

벌써 많은 사람들은 새벽에 대청을 향해 떠난 모양이다.

상념에 쌓인 채 어둠 속에서 채 후각과 청각으로만 느꼈던 오색의 가을은 이제사 내 눈 앞

에서 구체화되었다.

숱한 날 설악을 헤집고 다녔어도 밝은 날에 오색을 올라보지 못했다니 우습기도 하다.

 

그 옛날 어둠에 잠긴 길을 걸어갈 때의 추억을 더듬어 가며 오르는 길에 단풍이 한창이다.

천불동의 단풍을 보지도 않은 채 벌써 마눌은 설악의 가을에 탄성을 지르고 있다.

가을의 휴일이면 무막지한 인파에 밀려 바람 길에 하염없이 기다리던지 아니면 산세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재미 없는 오름 길을 묵묵히 올라야 했는데 오늘은 가을이 깊어가는 오색의

수림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등로를 오른다.

뜨거운 온천에 잠자리는 준비되어 있고 시간에 쫓길 일 없는 여정이다.

가을 바람을 맞으며 마눌과 여유롭게  오르는 길이라 마음이 편안하고 힘도 별로 들지 않는다.

 

설악폭포 위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과일을 깎아 먹는데 계곡을 불어가는 시원한 바람이 제법

한기를 몰고 다닌다.

다시 만난 설악의 가을이었다.

 

 

 

 

 

 

 

 

 

 

 

 

 

 

 

 

 

 

 

 

 

 

 

 

 

 

 

 

 

 

단풍은 사라지고 주목과 키작은 관목들이 대청이 멀지 않음을 알리고 나서 한굽이 산모퉁이를

돌면 드넓은 시야가 터진다.

2시간 30분이 좀 넘었을게다.

먼 산들은 발아래 서고 웅장한 설악세상이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어느 가을 새벽에 만난 설악은 서슬 푸른 푸른빛이었는데  요즘은 계속 날이 가문 탓에 흐릿한

연무에 쌓인 먼산은 흐려져 있다.

 

 

 

 

 

 

 

 

 

 

 

 

 

 

대청봉에서

아직 정상을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홀연히 대청봉을 만났다.

내 땀이 아직 마르지 않은 그 곳

지금도 동해 바다를 떠오르는 붉은 태양에 부풀어 오는 가슴과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는 그 곳

허리가 꺾이고 2년 만에 다시 여기에 섰다.

내가 2년이나 설악의 대청을 오르지 않았다니 ….

내가 여기 다시 설 수 있다니…

만감이 가슴에 밀려온다

태어나 처음 대청을 밟은 마눌의 감회도 남달랐을 터이다.

29번 째 명산 주유길에서 만난 감동의 대청봉이었다.

 

대청에서 바라 본 설악세상은 이제 긴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다.

그 여름의 무한한 욕망과 불타던 가을의 영광은 심산의 가슴에 말없이 담았다.

설악 고원의 가을은 낙엽 빛으로 가고 성급한 나무들은 벌써 가지를 털어내고 있다.

발 아래가 설악세상이다.

눈에 익은 강인한 골격미를 드러낸 황색의 산릉 위로 드문드문 구름이 걸려 있다.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설악의 모습에 가슴이 찡해온다.

앞으로는 푸른 동해바다

우측으로는 둔중한 용트림으로 흘러가는 화채능선이 있고

좌측 아래에는 날카로운 암릉미를 드러내고 있는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있다.

세월이 가도 변함없이 남아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는 것들이었다.

 

살아간 날이 20년이 넘어서냐 함께 여기에 섰다.

오랜 세월을 별 탈없이 살아온 것처럼 남은 세월도 그렇게 살아 가리라

혼자 오르던 그 산에 마눌과 함께 섰으니 앞으로의 세월도 함께 명산에 오르며 늙어갈 수

있으리라.

 

 

 

 

 

 

 

 

 

 

 

 

 

 

 

희운각 하산 길

대청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중청 산장의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식사를 했다.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는 시골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올라와 식사를 하는데 포기 채

가지고 올라와서 먹는 시골김치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염치불구하고 얻어 먹었다.

 

희운각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길이다.

휴일이면 단풍객들의 인파로 내려가는 길이 늘 정체되던 그런 길인데 오늘은 소청봉을 거쳐

여유롭게 희운각에 내려섰다.

 

 

 

 

 

 

 

 

 

 

 

 

 

 

 

 

 

 

 

 

 

 

 

 

 

 

 

 

 

 

 

천불동

천불동 계곡에 내려서기 전 더 이상 붉으면 검어질 것 같이 붉디붉은 단풍나무를 만났다. 

건강한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멋진 가을의 축제

그 단풍나무 숲에서 휴식을 하며 깊어가는 설악의 가을에 흠뻑 젖어본다.

 

여름날 장마가 지나간 천불동의 탕류는 오간데 없고 고은 빛깔 드리운 명정으로 남았다.

명불허전

천불동 단풍을 보지 않고 누가 계곡의 가을을 논할 수 있으랴?

가을은 대청봉으로 올라와서 이제 천불동 중간쯤 내려서고 있는 중이다.

대청봉에 올라선 다음 물길 따라 흘러내리면서 바라보아야 그 계절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있는 천불동의 가을이다.

화사한 여인의 고운 자태로 속절없이 깊어가는 가을 .

바쁘게 세상을 살아오면서 늘 휴일 날 가득한 인파 속에 밀리며 돌아보고 서둘러 떠나던 설악의

가을을 오늘은 여유롭게 바라본다.

늘 목마르고 무언가에 쫓기 듯이 돌아보던 가을 날의 주마간산이 아니다.

자연을 향했던 사나운 욕심과 수 많은 인파에서 놓여나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 온 마눌과 함께

하는 한적한 천불동 길이다.

농익어 가는 천불동의 가을…

서서히 우리 산하의 아름다운 가을에 빠져야 할 마눌은 몇 단계의 적응훈련도 없이 한국대표

절경과 마주했다.

현란한 가을에 넋이 나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지만 설악에서 한껏 사치스러워진 눈길이 다른

가을의 감동을 불러낼 수 있을까?

 

 

 

 

 

 

 

 

 

 

 

 

 

 

 

 

 

 

 

 

 

 

 

 

 

 

 

때론 가는 길을 뒤돌아 보아야 한다.

그 곳에는 또 다른 멋진 그림이 걸려 있다.

가끔은 파란 하늘로 솟은 암봉들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가끔은 계곡아래 탕탕히 쏟아지는 폭포와

물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내려다 보아야 한다.

아직 돌아보지 못한 산들이 너무 많아 마눌과 다시 호젓한 설악의 가을 속에 남기는 쉽지 않으니

많은 감동과 풍경들을 가슴에 담아야 했다.

 

천불동을 따라 무쌍한 변화로 이어지는 비단길을 걸어 내리면서 허리에 다소 무리가 무리가 느껴

진다.

다리는 아프지 않은데 허리에 느껴지는 뻐근함이라니….

설악의 모습은 변함이 없는데 나는 무상한 세월에 불의의 사고로 인해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더

빨리 느껴야 한다.

양폭산장을 내려가면서 마눌도 다리가 아픈 모양이다.

한국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설악의 단풍놀이가 그렇게 만만할 수가 있을까?

 

우리는 먼 길을 걸어 내렸다.

그리고 함께하는 길의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둘에겐 힘든 길이었지만 천불동의 가을에 감동 먹고 웅장한 설악에 가슴 부풀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힘겨운 가운데서도 자연이 주는 무한한 기쁨과 축복을 받았다.

힘들었던 시간은 좋은 추억으로 정제되어 가슴에 오래 간직될 것이다.

오늘의 이 의미와 감동이 살아가는 날의 작은 빛이 되어 주리라

 

밀린 숙제를 모두 마치고 난 것 같은 후련함과 뻐근한 상쾌감 그리고 따뜻한 기운에 쌓여 우리는

편안한 휴식이 남겨진 동해바다로 갔다.

더 화려해진 대포항.

휴일의 인산인해는 아니지만 여전히 흥청거리는 대포항은 벌써 화려한 불빛을 걸고 바다는 조용히

어둠 속에 잠들었다. 

우리는 하얀 거품이 이는 한잔의 술과 펄떡거리는 회로 오늘의 감동을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