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여행지

강진 기행

역사적인 유적지 둘러보고 고려청자 만들기에 도전해요~ 전남 강진

기획·송화선 기자 / 글 & 사진·한은희‘여행작가’

‘남도 답사 1번지’로 불리는 전남 강진은 역사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고,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이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집필한 생가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고려청자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도 한 전남 강진을 찾아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보자.

첫째 날 영랑 생가-금서당-사의재-점심-다산초당-오솔길-백련사-강진고려청자박물관-마량항-저녁식사-숙박
둘째 날 아침-병영성, 병영마을-점심-무위사-강진다원-월남사지-귀가

짙푸른 녹차밭이 펼쳐진 강진다원 풍경.

전남 강진은 강처럼 좁은 강진만이 육지 깊숙이 들어와 탐진강 하구와 맞닿는 지형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강진 어디에서나 쉽게 바다에 닿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강진 동쪽에서 강진 서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강진읍을 거쳐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때문에 강진여행 일정은 강진만 동서로 나뉜 지형을 따라 동선을 잡아야 한다. 강진 중앙에 있는 영랑 유적지와 강진 서쪽의 다산 유적지, 강진 동쪽의 고려청자 발상지, 강진 북쪽의 전라병영성과 월출산 자락을 중심으로 일정을 정리하면 일목요연하게 강진을 둘러볼 수 있다

 

 

첫째날

영랑 김윤식의 시 세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영랑 생가

영랑 김윤식이 어린 시절 글을 배웠던 금서당.(위) 영랑의 시 세계가 살아있는 영랑 생가.(아래)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있는 영랑 생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등의 시로 유명한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의 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93년 지방기념물 제89호로 지정돼 복원된 영랑 생가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영랑의 시에 등장했던 우물과 마당 가득 심어져 있는 모란이 보이고, 살림을 하던 안채 옆으로 장독대와 어우러진 대숲도 한눈에 들어온다.

강진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했던 영랑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갖고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귀국해 1930년 ‘시문학’지를 통해 등단한 영랑은 일제강점기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한 채 이곳에 머물며 60여 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생가 장독대를 지나면 영랑이 주로 작업을 하던 사랑채가 보이는데, 약간 비뚤게 지어진 이 건물은 영랑의 시 ‘사개틀린 古風(고풍)의 퇴마루에’의 배경이 됐다. “사개틀린 古風의 퇴마루에 업는 듯이 안져 아즉 떠오르는 긔척도 업는 달을 기둘린다”라는 시구처럼 사개(사방의 보나 도리가 기둥 위에서 맞춰지도록 기둥머리를 네 갈래로 파낸 것)가 맞지 않는 툇마루에 등을 대고 앉아 영랑이 올려다봤을 하늘을 보니, “아모런 생각업시 아모런 뜻업시” 달을 기다렸을 시인의 마음이 생생히 전해져오는 듯하다. 사랑채 안에는 영랑이 생전에 글 쓰던 모습을 본떠 만든 모형도 있다.

영랑의 생가를 둘러본 뒤엔 담장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금서당’에도 들르자. 영랑이 5세 무렵 한문을 배우며 공부한 장소로, 강진 신교육이 시작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보통학교로 운영되다가 반파된 집을 50년대 중반 고 김영렬 화백이 구입해 보수한 뒤 사용해 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건물 반쪽은 한옥, 나머지 반쪽은 양옥인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지금은 그의 부인 박영숙 여사가 지키고 있는데, 고인의 화실과 작품을 그대로 보존해두어 작은 화랑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이곳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진 풍경도 일품이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강진으로 이어지는 2번 국도를 따라 강진으로 들어간 뒤 강진군청·영랑 생가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강진군청 담장을 끼고 돌아가면 바로 영랑 생가가 나온다.

다산 정약용의 첫 유배지, 사의재

다산 정약용의 첫 유배지를 복원한 사의재.

“북풍이 흩날리는 눈처럼 나를 몰아 남쪽 땅 강진의 한 밥집에 이르게 했네.”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801년에 쓴 시 ‘객중서회(客中書懷)’는 이렇게 시작된다. 약관 22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 뒤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벼슬생활을 하다 당쟁에 휘말려 강진에 유배된 다산이 쓸쓸한 소회를 밝힌 글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밥집’이 바로 사의재. 다산이 강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강진 사람들은 죄인 신분인 그를 받아주었다가 무슨 화를 당할지 몰라 하나같이 그를 피했는데, 동문 밖 주막에서 밥을 팔던 노파 하나만 방을 주며 그를 맞아들였다고 한다. 그 작은 곁방에서 4년을 머문 다산이 그곳에 지어 붙인 이름이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의 ‘사의재(四宜齋)’다. 다산은 후에 이 이름에 대해 “생각은 마땅히 맑게 하고, 용모는 마땅히 엄숙하게 하며, 말은 마땅히 과묵하게 하고, 동작은 반드시 더디게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의재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 사라져 오랫동안 찾을 수 없었는데, 강진군이 각계의 고증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 뒤 최근 복원해 지난 5월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이곳에 가면 당시 주막으로 쓰이던 건물과 다산이 머물던 방, 작은 연못과 우물 등을 볼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영랑 생가에서 좌회전해 강진세무서 방향으로 가면 세무서 옆에 사의재가 있다.

 

 

다산의 발자취를 따라~ 다산초당과 백련사

따뜻한 물을 부으면 피어나는 백련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백련사 찻집의 백련차.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만덕산 기슭 다산초당은 다산이 강진 유배생활 18년 가운데 10여 년을 보내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백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집필한 곳이다. 다산초당 양쪽으로 다산이 머물던 ‘동암’과 제자들이 거처했던 ‘서암’이 남아 있으며, 산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다산이 직접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연지석가산’이라는 이름의 인공 연못도 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다산은 차(茶)에 깊게 매료됐다고 하는데, 다산초당 앞에는 찻잎을 덖어 차로 만든 뒤 솔방울로 불을 지펴 차를 끓여내는 데 쓰던 평평한 돌 ‘다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차에 대한 다산의 사랑을 엿보게 한다.

다산초당에서 또 하나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할 곳은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간 형 손암 정약전을 그리며 시름을 달래던 정자인 천일각. 다산은 날마다 바다를 향해 있는 이 정자에 올라 흑산도 쪽을 바라보며 형을 떠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간척사업 때문에 천일각 아래로 황금 들판이 펼쳐지지만, 한 번쯤 그 자리에 서서 다산의 외로움과 남다른 형제애를 느껴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하다.

천일각 뒤편으로 돌아들면 다산이 유배시절 친교를 맺은 승려 혜장선사와 교류하기 위해 그가 주지로 있던 백련사에 들를 때 거닐던 오솔길이 방문객을 맞는다. 약 800m쯤 이어지는 이 길은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산책해볼 만한 정취가 있다.

천일각에서 60m쯤 걷다 보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하나 나오는데, 최근 강진군이 관광객을 위해 새로 지은 곳으로 이름은 ‘바다 위에 뜬 달’이라는 뜻의 ‘해월루(海月樓)’다. 이 정자를 지나치면 동백숲 너머로 백련사에 닿는다. 신라 말 창건된 이 절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각각 8명의 국사와 대사를 배출했을 만큼 유서 깊은 절이다. 백련사에 들르면 경내에 있는 찻집도 그냥 지나치지 말자. 이곳에서는 1년 내내 향긋한 백련차를 마실 수 있는데, 따뜻한 찻물 안에서 곱게 피어나는 백련의 아름다움이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초여름 백련꽃이 한창 피어날 때 꽃을 따 냉동건조시켰다가 연중 사용한다고.

찾아가는 길 사의재 앞에서 우회전한 뒤 강진군청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강진 읍내도로를 만나면 다시 우회전해서 18번 국도를 따라간다. 호산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다산초당 이정표를 따라가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차는 다산초당 입구 주차장에 세우고 다산초당~오솔길~백련사~오솔길~다산초당의 순서로 걸어야 한다.

청자의 아름다움 만날 수 있는 강진고려청자박물관

고려청자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강진고려청자박물관.

비취빛 고려청자를 감상할 수 있는 강진고려청자박물관.

강진은 고려청자의 발상지로 국보 및 보물급 청자의 8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됐다. 전국에서 발견된 옛 가마터 4백여 기 가운데 1백88기가 있는 곳도 바로 강진. 이 때문에 강진에는 아름다운 비취빛 고려청자를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과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먼저 들를 곳은 지난 97년 설립된 강진고려청자박물관. 이곳에서는 청자와 관련된 다양한 기획 전시가 연중 계속되고, 청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시대별 청자의 변화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박물관을 나와 왼쪽으로 가면 발굴된 고려청자 도요지 2기가 보호각 안에 전시돼 있는데, 고려시대 가마 형태를 직접 볼 수 있는 귀한 공간이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직접 청자를 빚어볼 수 있는 청자 체험장으로 가자. 이곳에서는 전문 도예가들의 지도 아래 다양한 청자를 만들 수 있다. 단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모양 성형 및 그림 조각까지로, 일단 그 단계까지 도자기를 만든 뒤 배송을 신청하면 전문가가 유약을 입혀 가마에 구운 뒤 약 70일 후 집으로 보내준다고 한다. 유약을 바르는 작업은 청자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일반에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청자 체험료는 흙 1kg이 제공되는 물레성형 체험료 3천원, 코일링 체험료(점토로 흙타래를 만들어 밑판으로부터 점차 원하는 형태로 쌓아올리는 기법) 2천원이다. 청자 파편으로 모자이크를 만드는 체험료 3천원, 매병(梅甁)·주병(酒甁)·필기구·호리병 등에 조각을 넣는 체험료 1만5천원이다. 박물관 관람 및 체험장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년 1월1일엔 휴관한다. 박물관 입장료는 어른 1천원, 어린이 4백원이며 주차는 무료다. 문의 및 예약 061-430-3524

찾아가는 길 강진읍으로 나와 마량 방면 23번 국도를 따라 18km쯤 달리면 미산마을 사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좌회전해 정수사 방면 군도 12호선을 따라 200m 직진하면 왼쪽으로 강진고려청자박물관이 나온다.

 

 

둘째날

2m 높이의 네덜란드 건축 양식 돌담 볼 수 있는 병영마을

네덜란드 출신 하멜의 흔적이 남아있는 병영마을 돌담.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일원은 사적 제397호 전라병영성과 병영마을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5백여 년 동안 전라도 육군의 총 지휘부가 있던 전라병영성은 1417년(태종 17년) 건립된 총 길이 1060m 규모의 성(城). 초대 병마절도사 마천목 장군이 꿈속에서 계시를 받고 눈의 자국을 따라 지었다 하여 설성(雪城)이라고도 부른다. 17세기 우리나라 바다에서 표류하다 잡힌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압송돼 약 8년간 억류돼 있던 곳으로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에 함락된 뒤 막대한 피해를 입고 이듬해 폐영됐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방치돼오다 지난 9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며 관리가 시작됐고, 97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뒤부터 복원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병영성 인근을 둘러싸고 있는 병영마을에서는 하멜이 남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주민들이 ‘하멜식 담쌓기’라고 부르는 빗살무늬 형식에 따라 지어진 돌담인데, 맨 아래층에 납작한 돌을 15도 정도 눕혀 촘촘하게 쌓고 흙으로 고정시킨 뒤 다음 층은 반대 방향으로 역시 15도 정도를 눕혀 쌓는 방식으로 촘촘히 쌓아올린 돌담을 말한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이 독특한 모양의 돌담은 하멜이 네덜란드의 돌담 건축 방식을 일러줘 쌓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 돌담의 또 다른 특징은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높다는 점. 병사들이 말을 타고 순시를 돌 때 집 안이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어느 집이나 평균 2m 정도로 돌담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내 골목들도 말이 달릴 수 있도록 6~7m 너비로 반듯하게 뻗어 있어 이곳이 처음부터 군인과 민간인이 함께 살 수 있게 만들어진 ‘계획도시’라는 걸 짐작케 한다. 돌담길에서 성 앞을 지나 마을 외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저수지가 나오는데, 그 앞으로 병영의 관문이었던 홍교(虹橋·돌로 만든 무지개 모양의 다리)가 있다.

찾아가는 길 강진읍에서 장흥 방향으로 이어지는 2번 국도를 따라가다 군동에서 좌회전한 뒤 병영성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병영성으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병영마을이 먼저 보인다. 마을을 둘러보고 성에 들렀다 홍교로 가면 된다.

예술성 뛰어난 보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 구경~ 무위사·강진다원·월남사지

비취빛 고려청자를 감상할 수 있는 강진고려청자박물관.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월출산 자락에 있는 무위사는 617년(신라 진평왕 39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로, 불교 벽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 눈여겨볼 것은 보물 제1313호인 아미타삼존불 벽화와 보물 제1314호 백의관음도(수월관음도). 특히 아미타삼존불 벽화는 온화한 색채와 신체 표현 등에서 고려시대의 특징적 요소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본존불과 기타 인물을 같은 크기로 표현하는 등 조선 초기 불화의 새로운 특징도 보여주고 있어 조선 초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무위사 극락보전 옆에 있는 보물 제507호 선각대사편광영탑비도 살펴보자. 신라 효공왕 때 무위사에 머물며 사찰을 중건한 형미스님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진 이 비석은 1035년(고려 정종 1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무위사를 나와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양옆으로 녹차밭이 넓게 펼쳐진다. 월출산 바위와 어우러지는 차밭의 정경이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곳은 강진 태평양다원. 방문객들이 시원한 차밭 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망대도 마련돼 있다.

다원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월남사지에 닿는다.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월남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뒤 복원되지 않았지만, 그 터에 보물 제298호 3층 석탑과 보물 제 313호 진각국사비가 남아 있어 한 번쯤 들를 만하다. 무위사에서 월남사지까지 거리는 약 1.5km다.

찾아가는 길 홍교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작천까지 간 뒤 814번 지방도를 타고 성전으로 간다. 성전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영암 방향으로 가면 무위사~강진다원~월남사지로 길이 이어진다.

알아두면 좋아요
먹을 것


강진은 맛 기행지로도 손색없을 만큼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바다와 산, 들판이 모두 있어 다양한 재료가 나기 때문. 강진군청 앞 ‘흥진식당’은 한정식을 잘하고(061-434-3031, 식단은 1인 5천~2만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음), 마량의 ‘남도1번지 횟집’에서는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061-432-2617, 회 가격은 시가). 병영마을의 ‘설성식당’은 돼지불고기 백반으로 유명하다(061-433-1282, 4인용 한 상 2만원).

잠잘 곳

강진고려청자박물관에서 가까운 마량항에 테마모텔(061-432-2626)을 비롯한 숙박업소가 많다. 지난 7월 문을 연 주작산자연휴양림(061-430-3306)에 묵거나 백련사(061-432-0837)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것도 좋다.

강진 청자 문화제

오는 9월8일부터 16일까지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에서는 ‘제12회 강진 청자문화제’가 열린다. 최근 6년 동안 연속 최우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됐을 만큼 다채롭고 풍성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특히 청자파편 모자이크 체험, 전통옹기제작 체험 등 어린이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이 함께하기에 좋다. 문의 061-430-3191 www.gangjinfe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