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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7월 넷째 주

 

 

 

 

 

7 21 ()

영숙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주은요양병원에서 아버님 복막염으로 수술 안 하면 위급하시다고

이쪽으로 온다고 뭐가 되나?”

영숙에겐 네가 그 쪽에 잘 아는 삶들이 많으니 천안에 있는 병원으로 모셔라고 했다.

어머님께는 말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모두 연락했다.

 

나중에 다시 영숙에게 연락이 왔는데 대전 건양대 병원으로 내려 가는 중이라고 했다.

천안 쪽 종합병원들은 응급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단다.

 

도착하니 아버님은 가쁜 숨을 몰아 쉬고 통증을 호소하고 계신다.

가래가 많이 끓어서  간호원이 정기적으로 가래를 제거하고 있었다.

지난번 면회 가서 뵈었을 때와는 상황이 180도 달라지고 상황이 위중하다.

여러가지 검사를 했는데 상황이 좀 심각한 듯하다.

대장이 터졌고 장의 내용물이 내부에 퍼져서 엉겨붙어 있다고 한다.

 

3주전 영숙과 모시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을 때는 대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연로하신데다가 당뇨에 폐까지 좋지 않아 수술을 해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사 후 곧 수술할 것처럼 이야기 하더니 정작 수술실이 없어 새벽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지금 수술대기 중인 환자도 위급한 환자인데 수술 끝나는 시간을 장담할 수 없다고 영숙이 분노가 폭발했다.

응급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이쪽으로 급히 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딴소릴 하냐면서 난리를

피웠다.

전화 담당자와 응급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영숙이 소란을 피워서 인지 아니면 상태의 심각성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12시가 좀 넘어서 다른

수술실이 마련되고 아버님을 수술에 들어가셨다.

나중에 서울에서 영수도 도착했다.

 

수술은 두 시간 쯤 걸렸고 의사가 나와서 수술은 마무리했지만 워낙 연로하시고 상태가 심해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대장이 터졌는데 대장을 절제하여 소장에 연결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한다.

아버님이 마취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진 것을 확인한 후

어머님께는 알리지 말라 하고 영숙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7 21 ()

집사람을 일찍 보냈다.

아버님은 아침에 깨어 나셨다는데 기력이 없으셔서 눈을 잘 뜨지 못하신다.

경과는 지켜보아야 한다

영숙이더러 아버님이 어떻게 될지 모르시니 어머님께 알리고 내일 저녁에 영희가 오면

모시고 오라고 했다.

어제 한숨을 못 자서 피곤한 터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7 22 ()

저녁에 중환자 실로 면회를 갔다.

옷을 갈아 입고 가느라 좀 늦었는데 모두들 벌써 도착해서 아버님을 보고 있었다.

한바탕 울었는지 어머님과 영희 얼굴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영희 친구 도영이도 와 있었다.

어머님은 그냥 조용히 길 떠나게 하시지 어짜피 힘든 것 왜 몸에 칼을 대서 더 힘들게 하냐고 하신다.

그래도 수술을 안 하면 금방 돌아가신다는데 어찌 자식된 마음에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아버님도 말귀를 알아들으시는지 영숙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7 23 ()

한마음 교육 2

영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사 전화가 왔었는데 호흡이 곤란해서 목에 구멍을 뚫어야 한단다.

그리고 당뇨로 잇몸이 모두 망가져서 들떠 있는 이를 빼야 한단다.

안 그러면 이가 식도로 넘어가 기도를 막을 수 있다고 ….

영희는 목을 뚫고 자기 시어머님 고생하시는 걸 본 터라 안 하는게 낫겠다고 했다.

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데 어찌 안 할 수 있으랴?

 

 

7 24 ()

밤에 남덕유로 떠났다.

내일 동료들과 칠연계곡 산행이 예정되어 있지만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진 않았다.

오래 전부터 게획했던 일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억이 하양게 날아가고 나서 그 삶은 흔적없이 바람에 날려 갔는데

마지막 남은 짧은 시간마저 병마에 신음하다 가신다면 당신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안스럽고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생과 사는 하느님이 주관 하실 게다.

세상의 시름은 다 내려놓고 훨훨 가볍게 떠나기로 했다.

그 길을 걸으면 마음이 한결 후련해지고 잊혀진 시간의 기억들이 되살아 날 게다 .

모든 행사가 끝나고 차를 되가져 갈 안과장을 데리고 영각사에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 간다.

 

 

 

 

어둠을 가르고

떠나고 싶은 길이었다.

굳이 떠나야 할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덕유산 종주는 몇 년 째 하지 못하고 있다.

종주는 아니지만 지난 번 칠연 계곡에서 향적봉을 다녀 왔으니 남덕유에서 동엽령을 거쳐

칠연계곡으로 내려서면 덕유종주의 그리움이 사그러 질 것이다.

만나고 싶은 풍경들이 있다.

남덕유산의 해돋이 그리고 삿갓봉의 외로움

유장하게 흘러가는 능선에서 굽어보는 세상의 그림들

근원 없는 서글픔  그리고 조금은 칙칙해진 삶의 찌거기를 내려놓고 싶다.

또 하나 내 허리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해진다.

잃어버릴 수 없는 나의 꿈은 아직 유효할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

몸따라 마음마저 늙어감을 인정할 수 없다.

 

 

영각사에 혼자 남겨졌다.

바람에 큰 나무가 흔들리고 어둠 속에 풍경이 운다.

불 빛이 새어 나오는 방 한 켠에서는 인기척이 나고 위 법당에서 가끔 기침소리 난다.

스님에게 말하고 방에서 잠을 청할까 하다가 2시간 30분 정도 밖에 잘 시간이 없어서

그냥 법당처마 아래 침낭을 깔고 누웠다.

비 온 후라 공기는 맑고 바람은 청랑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눈을 부쳐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잠을 몰아 낸다.

잠깐 잠들었다가 다시 깨고는 정신이 아얘 맑아진다.

혹시나 칠흑의 밤하늘에서 초롱거릴 별을 찾았으나 어둠만 무심하고

나를 벗어난 곳의 가로등은 경내의 평화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남덕유산 가는 길

2 20분에 일어나 여장을 꾸린다.

나뭇잎은 바람을 불러 작별을 고한다.

부처님은 내가 다녀감을 아시겠지

잠을 자지 않았어도

이 여행 길의 의미가 어떤 것이라도 좋다.

다만 오래 잊었던 그 추억의 길을 다시 걷고 싶다,

해돋이를 보면 더 좋겠지만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가슴에서 무언가를 비워지고

잊었던 별이 다시 반짝이는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접혀있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다면.

다시 무언가가 가슴을 채울 것이다.

 

 

처음 길에서 산으로 난 칠흑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가끔 희끄무레한 돌과 불빛에 흔들리는 나무그림자가 날 선 긴장과 서늘한 간담을

불러 냈지만 그 전 보다 더 빨리 평화와 고요가 찾아 왔다.

중턱으로 오를수록 자욱한 산 안개가 등산로를 채우고

칠흙의 어둠속으로 만드는 흰 불기둥 속으로 나방들이 춤을 춘다.

가끔 팔뚝이며 목으로 부딪혀 오지만 그래도 외로움을 달래주는 반가운 동행이다.

 

언제부턴지 빗방울이 떨어진다.

안개와 이슬이 모여 떨어지는 물방울인지 가랑비인지

등산로는 축축히 젖어 있지만 등로의 나무들 때문에 옷은 그다지 젖지 않는다.

 

 

가파른 계곡 길을 치고 올라 능선에 서자 세찬 바람이 온 몸을 떠민다.

알지 못할 어둠 속에서 흰 산 안개를 몰고 숨 가쁘게 불어오는 바람은 장관이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에 진한 초목의 향기가 살아 있고

여전히 어둠은 깨어날 생각이 없다.

가파른 철 계단을 오르고 나서 절벽 모퉁이를 돌아 나가다가 바람 없는 곳에서

잠시 휴식하는데 그예 졸음이 쏟아진다.

불을 끄고 잠시 졸았다.

남 덕유산에 도열한 어둠 속의 바위 봉들은 안개에 묻혀 형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어둠과 안개를 헤치고 다가서야 비로소 그 형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돌아 보면  지나온 봉우리와 능선은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바람은 거세도 차갑지 않다.

하지만 오래 바람 길에 서 있으면 싸늘한 한기에 추위를 느끼게 된다.

 

남덕유 아래 쪽 계단 길에 잠시 앉았는데 그곳은 바람의 사각지대였다.

거센 바람소리 사라지고 어둠과 고요와 평화만 남아 있다.

옛 봉에 올라도 아직 바람과 어둠은 길 떠날 생각이 없을 것 같아 잠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잠 안자고 두 시간 넘게 올랐으니 피곤하기도 하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축축한 계단에서 30분 달게 자고 나니 날이 훤히 새 있었다.

 

 

 

 

 

남덕유산

안개에 쌓인 남덕유산의 익숙한 표석이다.

젊음이 한창인 시절 덕유산 종주를 통해 처음 만났고 그 후 백두대간 종주 때나

혼자만의 여행길에서 조용히 만나던 그 반가움이다..

화창한 날 희망차게 떠오르는 해돋이를 바라보면서 반가운 해후를 했으면 더 좋으련만

오늘 남덕유에는  잠자리도 그 옛날의 무수한 개미들도 날지 않는다.

남덕유에는 적막과 안개만 흐른다.

무수한 사람들이 올라 기쁨에 부풀었을 그 봉우리에는 아쉬운 세월의 그리움과 추억만이

걸려 있다.

몇 년이란 세월이 그리 훌쩍 지나갔고 그 세월의 뒤안길에서 희망과 기쁨과 절망과

슬픔이 그렇게 뒤엉켜 나의 삶을 만들어 왔다.

멀리 떨어진 별의 아름다움 보다도 발아래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에 취하던 시간

그 희망과 기쁨의 시간도 얼마나 서둘러 과거의 강으로 흘러 들었던가?

황혼이 여울지는 강가에서 바라보는 붉은 빛의 노을은 무슨 느낌일까?

그리움과 아쉬움의 긴 그림자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다다르지 못한 별은 아직 먼 발치에서 반짝이고 있는데 마음보다 몸이 먼저 늙으려 한다.

다친 허리는 습기가 가득한 오늘 여전히 부담을 느끼게 한다.

 

아무도 없는 남덕유 정상

바람부는 표석 옆에 나 대신 배낭과 지팡이를 세워두고 기념촬영을 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길에 너무도 많은 인연들이 늘어져 있다.

이 바람처럼

이 안개처럼 한 번 불어 가는 인생인 것을….

늘 끈적이는 이카루스의 욕망과 혓바늘 선 삶의 허기에 허덕이는 사람들

아무도 없는 산 위에서 허허롭게 바람 한 번 맞을 일이다.

인생은 오늘의 물가에 잔영이 남고 내일의 하늘로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라   

바람 길에서 오늘이란 소중한 의미가 더 통절해 진다.

 

표석은 기억할까?

어느 여름날 숨가쁘게 산정에 올라 가쁨 숨을 몰아 쉬던 한 사람

 

 

 

 

 

월성치

여기가 그 곳이다.

백두대간 종주 길 마지막 만찬이 있었던 곳 

큰 나무가 그늘을 끌어 여행자의 여독을 다독이던 곳

비 오는 나무 아래 잠시 고개 숙여 지난 추억을 회상해 본다.

그 시간 위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가 벌써 여섯 해구나..

 

 

 

 

 

 

 

삿갓봉

가파르게 내리는 길에 가랑비가 추실거린다.

비감한 원추리는 고개를 숙이고 빗물을 긋는다.

지난 비에 등산로는 훼손되어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길에서 잠시 비켜나 앉아 있는 삿갓봉에 올랐다.

방랑시인의 쓸쓸한 고독은 자욱한 안개에 쌓여 있다.

나그네를 기다리는 외로운 표석 하나

한 줄의 싯귀에 담긴 허무한 세월처럼

그 언저리에서  잊혀진 세월의 미련도 침묵하고 있다.

삶은 잠시 세상을 흐르는 바람인 걸

살아가는 세상의 미련과 한숨을 구태여 가슴에 담고 .

무슨 넋두리를 부질없이 바람 길에 풀어 헤치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떠나가면 될 일

혼자 않아 찾아 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혼자 길을 떠나거나

혼자임이 궁상스럽거나 남루하지 않고 그렇게 낭만적이기도 하다,.

삿갓봉 과 무릉객

그리고 이슬비와 안개와 바람이 정갈한 한 수 시를 짓는

고요한 덕유의 아침이다.

  

 

 

삿갓봉 대피소

물이 좀 모자랄 것 같아 한 병을 사렸더니 대피소 지기는 잠에 곯아 떨어져 있다.

창문을 몇 번인가 두두려도 깨어날 기미가 없다.

비오는 날이라 대피소 600m 아래 샘터에서 물을 받아 먹기는 좀 부담스러워 그냥

출발하기로 했다.

어제 산장에서 숙박한 여행자들은 행장을 꾸리고 있다.

산장에서 눈을 좀 부치고 가렸더니 아무래도 시간이 넉넉치 않다.

 

 

 

      

 

   

 

 

 

    

 

 

무룡산

무룡산 표석을 끓어 안았다.

마치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기다리던 친구의 반가움에….

비와 자욱한 안개에 쌓여 고원에서 바라볼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가리어도

초목은 신이 나서 바람에 몸을 흔든다.

누군가 중독이라 했다.

걷기란 내게 원초적인 욕구 신성한 의식과 같은 것이다

내가 세상을 아우르고 우주와 교감하는 방법이다.

슬픔은 바람 길에 날리고 흩어진 기쁨은 배낭에 주어 담아

싸늘한 세상에 더 따뜻하게 다가가게 한다.

숲은 날 선 신경을 마취시켜 무디게 하고

숲으로 난 길은 식어가는 심장에서 다시 뜨거운 피를 솟게 한다.

  

 

 

 

동엽령 가는 

능성이는 서러움을 쏟아낸다.

이슬비 내리는 잿빛 하늘 아래 북으로 난 산줄기

조용한 안개 숲의 흐느낌 속에 관목들은 왈칵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덕유의 눈물에 흠뻑 젖었다.

등산화는 개구리 소릴 내고

먹장구름에 울던 새소리는 멎은 지 오래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측은한 모습으로 짧은 삶을 고뇌하고

난 인적없는 산길을 혼자 걷는다.

 

동엽령에서 일단의 사람들을 만났다.

바람이 더 세차게 불고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나를 돌아보는 혼자의 긴 여행은 여기서 끝이 났다.

비 내리는 동엽령에서 잠시 기다려  동료들과 조우하였고

비가 잠시 그친 틈을 타서 함께 식사를 했다.

하산 길에 비가 그치고 계곡 물은 목청을 높여 여름을 찬양하고 있었다.

물보다 더 빨리 내려섰다.

허리에 무리가 없으리란 생각은 안했지만

어김없는 반응이 실망스러우면서도 그래도 그만그만함에 안도하는 마음도 든다.

세상이 보여주는 의외성에 우린 화들짝 놀라 소스라치기도 하고

감동과 기쁨에 환호하기도 한다.

그런 변화가 우리 인생을 단조롭지 않게 한다.

그 변화를 힘들어하거나 즐기거나 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어느 날 막막한 그리움이 다시 내 가슴을 흔들면 난 다시 떠날 것이다.

허리가 아프건 아님 세상의 고뇌가 내 발길을 막아서 건

내가 걷는 길이 더 짧은 길이라도 나는 여전히 길 위에서 많은 기쁨과 의미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길에서 만난 풍경과 추억들이 있어 나는 늙지 않고 더 큰 세상을 향해

호기심 가득한 발길을 다시 힘차게 내 디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