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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지리산 한신계곡- 삼신봉-청학동

 

 

2009년 9월 13일 일요일

날씨맑음

모처럼 귀연과

늘 가고 싶은 지리산

7시간 거리라고 해서 따라 나섰다가 9시간 30분 만에 돌아 오다.

 

 

 

 

 

지리산은 대지의 가슴이다.

세상의 고뇌와 아픔을 모두 끌어안고도 흔들리지 않는 깊고 푸른 힘

 

숨돌릴 틈 없는 파란의 역사를 그 숱한 능선과 골짜기에 말없이 묻고.

백두대간 등줄기를 이르켜 북으로 복바쳐 오른다.

 

이 땅 위의 생명들에게 살아감이란 어때야 하는 것임을 묵묵히 웅변하는 산.

오늘도 삶에 지친 사람들은 그 넉넉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는 울음을 운다.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디 쉬우랴.

변하는 세상에 한결같이 남아 있는 것들을 만나는 일이 어디 쉬우랴?

다시 지리산으로 가라

변하는 세상에 변함없는 것들을 만나고 나면 세상과 더 담대히 마주할 수 있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명징해진다.

 

지리산은 명상과 치유의 산이다.

생각 만으로도 느껴지는 큰 산의 기운.

오랜 교감으로 그 수림의 바다를 유영하는 것 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짐을 안다.

지리산에서는 비우고 채움이 늘 자연스럽다.

지리의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바람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

가슴에서 무언가 비워지고 더 가벼운 것들이 빈 가슴을 채운다.

 

지리산의 그리움은 살아가는 어느날 불현듯 찾아든다.

메마른 삶이 입안에서 서걱일 때

어느날 문득 살아감이 시들해 질 때

 

 

지리산을 가기로 했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아직 기다리는 무엇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

아니 지리산에는 늘 기대와 희망이 살아 있다.

어느 산 모퉁이를 돌면 문득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고 그 옛날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만날 것 같은

 

 

 

 

 

 

 

한신계곡 오름 길에

 

오래 전 한신계곡 어느 그루터기에 걸어 놓았던 추억은 아직 남아 있을까?

  

계곡의 돌들이 둥글다.

애초 모난 것들이 흐르는 물에 벼리어 그렇게 둥글어 졌다.

세상은 그런거다.

서로 부딪히며 아파하며 둥글어 가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에 좀더 둥글어 가는 것

 

 

 

 

 

연어처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폭포에서 떨어져 푸른 소에 모이고

우리는 잠시 발길을 멈추고 지리의 물과 계곡과 만드는 풍경에 취한다.

아까운 세상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

무언가에 취하라 !

술과 덕과 시  혹은  아름다운 풍경

아님 그 무엇에라도….

무언가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 우리의 영혼은 노래한다..

 

 

 

 

 

눈부신 아침햇살이 계곡에 부서진다.

우리가 부대끼는 속세는 멀어져 있다.

계곡의 물소리

푸른 나뭇잎의 흔들림으로 느끼는 부드러운 바람

조용한 계곡의 평화가 가슴에 밀려든다.

 

 

 

 

 

 

인간 기억의 유한함이여

구조물의 흔적이 거의 없었던 시절

어느 여름 물길에 등로가 씻기워 길의 흔적이 희미한 날 올랐던 길인데

기억엔 아무 것도 없다.

그날의 풍경도

무언가 오르며 느꼈을 지리의 감상도…..

참으로 오랫동안 오르지 못했던 길이다.

 

 

 

 

한신 폭포를 놓치고 오르는 길이 가파라 지면서 힘들어졌다.

오름길 낙차가 커지면서 혼란스러워 진다.

인간의 몸이란 얼마나 정직한 것인가?

몸은 이미 산행 거리는 줄이면서 산행시간을 늘려 온 지난 시간들에 셋팅되어져 있다.

세상에 순응하다 보니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임계점은 현저히 낮아졌다.

산행의 힘겨움이야 몇 번 출정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겠지만

시큰해지는 허리의 두려움은 모처럼 마주한 지리와의  허허로운 대면을 막아선다.

 

산우들은 훨훨 날아가고 그 길 이에서 나만 힘들어 하고 있다.

아무런 걱정 없이 지리의 풍경과 하나되는 그들이 부럽다.

다시 그런 날을 만들 수 있을까?

 

 

 

 

 

 

 

인생의 멋과 맛이란

불혹을 훌쩍 넘어서야 아는 것이다.

가슴이 울리는 대로 살아라.

그냥 흘러 보내기엔 너무 아깝고 짧은 인생이다.

그림이 좋으면 그림을 그리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로 가는 거다.

 

소년은 서둘러 꿈을 버리고

눈물과 감동은 우리 곁을 너무 빨리 떠난다.

세월이 그렇게 빠른 거란 걸

더 많이 나이 먹고 더 많이 잃어보기 전에 도저히 알 수 없음이다.

 

항상 내 곁에 머룰 것 같았던

우리 기쁜 젊은 날은 쉬이도 떠났고

사십 고개는 오래 전에 넘어 버렸다.

여기에 남긴  지난 내 발자국 위로 순식간에 4년의 세월이 퇴적되었듯이

나의 세월은 생각보다 더 빨리 늙어갈지 모른다.

 

어느날 갑자기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행길을 끝내야 할지 모른다.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거나

삶에 지친 가엾은 영혼이 열정과 의욕의 날개를 접거나

종삼이 형 죽음처럼

저기 아름다운 풍경은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르고

또 몇 년이 흐른 뒤에나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짧을지 모른다.

 

행복은 살아있는 자만의 특권이고

영속하지 않는 삶의 유한함이라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소중한 우리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춤은 출 수 있을 때 추어야 한다.

수많은 평범한 날들을 기쁨과 감동이 가득한 축제로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2006 9월 사촌형의 갑작스럽 죽음을 대하고 나서 귀연과 함께 큰옥수골을 거쳐 황철봉을 지나가면서 4년 만에 다시밟는 백두대간의 감회를 적은 글이다.

 

산우들과 감동의 백두대간 종주한  이후 4년이 세월이 지났고  글을 쓰고 나서 다시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또 아버님의 죽음을 대하고 마주한 세월을 저만큼 가 있고

산은 세월의 길목에서 내게 또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한다..

 

 

 

 영신봉 조망 - 멀리 천왕봉                                                              

 

 

세월의 폭력은 참으로 무자비 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흐르면서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꾼다.

묵묵히 흘러 가는 길에는 고뇌와 슬픔 기쁨과 행복이 뒤엉켜 흘러가고 우리의 승선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 짧은 여행길에서 슬픔을 건져 올리건 행복을 낚아 올리건 그건 온전히 나의 운명과

노력에 달려있다.

 

 

 

 

어느날 갑자기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행길을 끝내야 할지 모른다.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거나

삶에 지친 가엾은 영혼이 열정과 의욕의 날개를 접거나

종삼이 형 죽음처럼

저기 아름다운 풍경은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르고

또 몇 년이 흐른 뒤에나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짧을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나의 쓸데 없었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마치 내가 글에서 썼던 내용이 불운한 예언이라도 되는 듯 난 1년을 산에서 멀어 있었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삶은 스쳐 지나는 한 줄기 바람이다.

새털처럼 가벼운 삶의 비밀을 알고 나서 그렇게 살려도 노력했음에도 

막상 떠날 수 없는 날이 오자 그 아쉬움과 후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누구나 자기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겠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유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영신봉에서 잊었던 지리의 감동이 되살아 났다.

첩첩히 포개져 어디론가 말없이 흐르는 산릉들

주 능선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이르키고 거침없이 질주하다가 세석에 드넓은 평원을 열었다.

능선은 그곳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나서 다시 촛대봉에서 기운차게 장대한 근골을 세운 채 깃발을 펄럭이며 달려와 천왕봉에서 기운차게 솟구쳐 오른다.

장쾌한 주 능선 한 점에서 눈길 닿는 먼 곳 까지 온통 푸르른 지리세상

오래 잊어버렸던 감동이 전류처럼 온몸을 타고 오르는 짜릿함을 느껴본다..

평탄한 능선 길을 거닐며 통증이 완화됨을 느끼면서  아직 남아 있는 가능성과 기대에 또 미련이

부질없이 스멀거린다..

세월과 함께 산에서 늙어온 지긋한 산 친구들이 아이들로 되돌아 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삼신봉 가는 능선 길에서 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속도를 내는 최선생님을 따라 가면서 허리의 통증이 심해졌다.

운동량이 줄어들었으니 몸이 힘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언제라도 극복가능하고 전혀 문제

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확연히 나타나는 허리의 기분 나쁜 통증에 마음이 혼란해 진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사라지고 다시 어쩔 수 없는 부담스런 동거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길은 처음 가는 길이다..

태양 빛을 가슴에 안고 가는 길

바람마저 없고

길이 어디서 끝날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데

불현듯 무심한 세월이 야속해 진다.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무자비한 린치를 가하고

그 상처와 고통에 아랑곳 없이 냉정히 갈 길을 걸어간다.

마치 함께 한 오랜 시간과

함께 나눈 기쁨과 즐거움의 순간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세상과 운명에 맞서지 말라고 하지만

세월은 더 어려운 상대임에 틀림 없다.

그가 내미는 조건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다.

거부하고 부정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더 많은 것들을 잃게 될 것 이기 때문이다.

강회장 말처럼 2년을 울궈먹고 또 허리 통증을 입에 올리기도 부담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아무런 걱정 없는 편안한 날인 체 하는 내숭도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다.

글을 쓰기가 힘들어 지는 걸 보면 안다.

내가 밟고 지나간 시간의 기쁨을 일깨우려면 단기간에 망령처럼 따라붙었던 고통과 불안이 스

스로 사그라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흙탕물의 앙금이 가라앉고 맑은 물이 고일 때쯤 산의 기쁨과 교훈이 살아난다.

그 감동의 잔상이 잊혀질세라 서둘러 책상머리에 앉아 기억을 구체화 하던 즐거움은 사라지고

좀 더 느긋한 기다림이 남았다.

 

 

 

 

그래 이젠 이골이 날 만도 하다.

옛날 조흔파 선생님의 명랑 소설이 있었다.

아파도 웃는다.”

견딜만 하다.

늘 하나님은 견뎌낼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 했다.

더 많은 땀과 더  큰 고생의 대가로 지리의 풍경과 큰 산의 깨달음을 요구하시니

같은 높이와 깊이를 가진 그 아름다움과 깨달음이 얼마나 더 애틋하고 심오할까?

 

 

 

 

잃어버릴 줄 알았던 풍경을 다시 만나서 가슴이 벅찼다..

촛대봉은 먼 발치에서 푸른 하늘을 이고 서 있고 가야 할 능선은 유장하게 굽이친다.

설령 예전에 지난 길이라도 기억에서 가물거려 새 길이나 진배없겠지만

새로운 풍경 속을 처음 걸어가는 길의 기쁨은 남다르기도 하다.

 

 

 

삼신봉에 다가가면서  고사목들이 많아진다.

가끔 능선 수림이 걷히고 나면 멀리 낯익은 능선과 넓은 지리 세상이 가슴에 뛰어들어와

먼 길 가는 나그네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더 젊은 날 쌓아둔 추억들을 들추게 한다.

  

 

 

 

 

 

 

처음 본 삼신봉의 풍경은 장관이다.

첩첩 산중에 외로운 고봉

멀리 북쪽에는 남으로 진군하는 주 능선이 바라다 보이고

섬에는 외로이 표석이 하나 떠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

난 흘러가는 능선들에 둘러 쌓인 채

앞 뒤로 심대히 흐르는 황홀한 골짜기위로 솟구친 푸른 섬에 고립되었다.

또 하나의 멋진 풍경을 햇빛이 붉은 사선을 그리는 긴 여정의 끝에서

바라본다.

 

 

 

 

 

 

 

 

 

 

숱한 세월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나서

다시 새로운 풍경은 구름처럼 일어나고

비에 젖은 깃털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더 높이 날아야 할 세상과

더 멀리 걸어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혹여 석양이 속절없이 기울까 마음만 졸여진다.

조금씩 날다 오르다  산들바람 좋은 어느 날

다시 훨훨 날아 가고 싶다.

 

 

 

 

계곡을 흐느적 거리면서 내려간다.

가다보니 동행도 사라지고 혼자 남았다.

돌이 많은 불편한 길

청학동 가는 길

봉우리에 아직 남아 있을 태양 빛은

골짜기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조용한 침울이 등로를 서성인다.

 

 

계곡 아랫쪽에서 어슴푸레한 땅거미가 기어오고 물소리가 목청을 높인다.

9 시간쯤 걸었나 보다 .

선두는 벌써 술에 얼근해 있을 텐데….

난 물소리를 듣고 슬며시 알탕 생각이 난다.

내 뒤에 몇 명이 더 있었어…”

그들의 기다림에 대한 변명이 나름대로 준비되고 나서

나는 날카로운 직관으로 등로의 한 지점을 뚫고 커다란 물웅덩이를 찾아냈다.

마치 족집게처럼 수맥을 찾아내는 비범한 능력이 있기라도 한 듯 

길을 잡아 내려간 계곡에는 늘 호젓한 푸른 소가 있었다.

 

산과 계곡과 내가 하나가 되는 의식이다.

그 의식은 소스라치는 차가움에 몸을 앉히고 나서

뼈골을 후비는 냉기가 몸 속을 휘돌아 미세한 모세혈관까지 섬뜩하게 자극하고 나면

몸 안에서 무언가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것들이 충돌하여 오히려 열기에 훈훈해진다.

그 의식은 몸이 차가움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방해없이 주변의 물상에 편안한 시선이

머물 때 까지 계속된다.

그러면 산의 기가 몸속에서 한 번 소용돌이 쳐서 원기가 치솟고 그 계곡의 물은

바람이 날려 주지 못한 마지막 지꺼기를 깨끗이 씻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산행과  계곡의 씻김은 한 재의 보약과 같다.

육체와 영혼이 조화로워 진다.

마음이 느끼는 채우고 비워짐이 뚜렷해지고 몸과 마음은 같이 춤을 춘다.

그 고단함은 순식간에 기분 좋은 뿌듯한 상쾌함으로 바뀌고 무거웠던 몸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 진다.

풍경과 평온처럼 그것 또한 헤어날 수 없는 산의 마력이다.

지리산신령의 마술인지 계곡물의 정화인지 아님 차가운 마비인지 내림 길에 허리 통증이

많이 완화되고 가벼운 발길은 날아갈 것 같다. 

예상대로 늦은 산 벗들을 기다리다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은 취흥이 도도하고 몇몇은 새들이

돌아가는 시간이 되자 해 저무는 지리산 마을 청학동으로  밀려오는 땅거미가 괜시리 을씨년

스러워 늦어지는 후미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다.

세상 살아감이 이러하다.

누군 2시간 전에 내려와 탁배기 한잔 걸치고 여유롭게 건들거리고

누군 산과 취흥에 기대어 버스 모퉁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길 풀어낸다.

또 누군가는  열씸히 동료의 시장을 덜어 줄 도토리묵을 재인다.

막걸리 순배를 따라 사람 사는 정이 돌고

조용히 저물어 가는 지리산에는 나그네의 풍류가 가득하다 

사람 살아가는 향기가 좋다

제각기 부르는 그들이 노래와 어울린 화음이 좋다

 

어둠과 함께 밀려든 남은 친구들이 반가워 내미는 탁배기 한잔과 푸짐한 도토리 묵에는

산사람의 정과 기쁨이 넘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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