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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코리아닷컴"을 읽고

코리아닷컴을  읽고

                                                                       무릉객

 

 

김진명은 다소 과장된 듯 하지만 있을법한 사실처럼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그의 소설 코리아 닷컴에서는 그 동안 그가 보여준 예리한 통찰과 흥미를 느끼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구성의 문제점과 사건 전개의 작위성의 한계속에서도 신비주의적 가설에 근거해서 그가 열어 보이는 또 다른 세상의 모습과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려는 그의 노력은 우리 사는 세상의 반성과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점을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세상에는 많은 시비와 불가사이가 존재한다.

피라미드, 앙코르와트, 사라진 잉카와 마야의 문명 등등 

원시시대나 고대시대에 이루어진 입증할 수 없는 문화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외계인이나 사라져간 인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작가는 바닷속에 침몰된 고도화된 인류문명의 종말로부터 새롭게 진화한 인류라는 가설을 토대로

인류의 윤회를 설명하고 5번 째 인류쯤 되는 우리현생인류가 다시 직면하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위험을 고발하고자 한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저 단순한 경각심과 경고일 뿐이다.

 

그가 차용한 아틀란티스의 사라진 문명의 가설에 따르면 레무리아 대륙에 살았던 한 우수한 종족이 우성실험을 통해 종족을 진화시켜 당시 고대 인류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고도의 문명을 꽃피우고 각 대륙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대규모 지진으로 레무리아 대륙은 가라 앉고 일부 레무리아 인들만 살아 남았는데 그들은 우수한 문명과 지구의 재앙을 몰고 오는 물리적인 변화의 주기를 건축물이나 설화 등에 숨겨 후손에게 전승을 하고자 했으며 그 지혜가 담긴 경전이 바로 카밀라 이다.

그들의 예언에 따르면 카밀라의 지혜를 얻은 부족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 했는데 그 민족이 바

로 유대인의 조상인 수메르 인이었다.

레무리아 인들은 한 편으로 세계를 장악한 종족이 인간을 버릴까 봐 우려했다.

경전에는 인간을 껴안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카빌라를 극복하고 하늘과 땅을 모두 껴안는 또 하나의 지혜를 동쪽에 사는 영특한 민족에게 전승시켰는데 그것이 천부경이고 그 부족이 한민족의 조상이다.

그래서 반쪽의 경전은 합쳐져야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고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민족은 결국 유태인과 한민족이라는 선민 사상이 소설의 기저에 깔린다.

 

소설 속의 프리메이슨은 세상을 이끄는 빌게이츠를 위시한 유태인을 대표하고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물질문명을 상징한다.

전시안,진도자,리홍즈,지관스님, 아시아의 한민족을 대표하고 물질문명을 지배하는 정신문명을 상징한다.

천부경의 진리에서 보듯이 소설이지만 그의 의도는 명백하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인중천지인

(하나가 시작되었지만 시작된 하나는 없고 하나가 끝났지만 끝난 하나도 없다.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있다.)

마치 큰 틀의 윤회처럼 지구와 인류도 생성 소멸을 반복한다.

인간이 그 주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물질문명의 모순이 극에 달한 현대를 위기로 보고 있다.

인간이 배제된 서구문명의 무분별한 확산과 인터넷을 통한 물리적인 세계의 통합과 지배는 또 다

른 위기를 불렀고 그것은 또 다른 인류소멸의 위기일지 모른다는 암시한다.

그 물질만능의 위기는 인본주의의 정신적인 노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으며 그 운명이 선인의 지

혜로 예언되어 있어 우리 민족이 그 길을 따르고 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서란 주인공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초인들이 세상의 붕괴를 막는 정신적인 해결사들이다.

 

그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천부경에 근거한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자부심이다.

세계경제 이면에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재편해 간다.

우리가 그 힘을 견제하거나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의 잠재력과 창의력은 발휘 될 수 없으며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과 능력은 무력화될 것이란 것이 작가의 일

관된 사상이다.

 

그는 다만 흥미로운 주제로 우리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화두를 던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결론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고개가 끄덕여 질만큼의 공감이 아쉬운 감은 있다..

 

물론 세계 경제를 흔들고 이끌어 가는 힘은 분명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빌게이츠, 로츠차일드와 같은 경제 거물

들의 개별 이익을 위한 담합의 논리를 넘어선 더 큰 개념에 기반할 것이다..

그 주체는 특정국가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세계 경제를 흔드는 유태인의 결속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제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바꾸어버렸던 IMF를 예에서 보듯 국가초유의 그 사태는 

떤 특정세력에 의해 조직이고 체계적으로 조장된 것은 아닐 것 같기는 하지만 의구심 또한 떨칠

수 없다..

개방경제의 물살을 타고 거침없이 들어온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와 국가의 리스크에 직면하자 이

익의 훼손이 두려워 앞다투어 이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황이란 우리의 해석은 맞는가?.

아님 경제적인 이익과 헤게모니를 위한 특정집단의 힘과 이해가 개입한 결과일까?

속설처럼 프리메이슨이란 유태인계 미국 경제거물 단체는 존재하는 것일까?

논리적 비약에 아쉬움이 있어도 의미심장한 메시지 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부산닷컴, 코리아닷컴의 잠재력의 시대와 함께 퇴색해 왔다.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의 가치였지만 세월은 그의 통찰력과는 큰 간극을 보이며 흘러

갔다.

우리나라 IT의 버블은 환호작약 속에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마치 세상을 바꾸어 버릴 기세로 상

승하다가 한 순간 물거품처럼 꺼져버렸다.

사람들은 최면에 걸린 듯 IT와 닷컴 기업이 보여주는 미래의 청사진과 변화의 꿈에 취했다가 어

느날 갑자기 차가운 현실로 되돌아 왔다.

IT의 환상과 거품을 경험한 우리 세대들은 이젠 그 비현실성의 비전과 공허한 꿈의 허상을 안다.

이 작품이 출간될 당시에는 상상 가능한 상황이었겠지만 소설속의 부산 닷컴과 코리아닷컴의

이름의 가치와 잠재력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세력들인 프리메이슨의 조직적인 견제와 탄압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은 비전문가의 어쩔 수 없는 상상력의 한계였다.

사이버 강자로 부상하는 것은 허울이 아니라 철저히 수익창출을 주도하는 콘텐츠에 기반 하는 것

이다.

구글이 이름이 좋아서 사이버 세상의 강자가 되었을까?

어떤 내용의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할 것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사이버 도시를 구현한다는 보편적

인 아이디어 하나를 두고 세계의 경제 거물들이 긴장할 수 있다는 것은 IT 세상을 피상적으로 바

라 본 작자의 한계와 과도한 비약일 뿐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상승 하락의 궤적은 미국을 그것과 닮았다.

그들이 우리의 거대한 소비시장이고 그들의 엄청난 자본이 우리나라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돈은 수익을 쫓아 언제든지 일시에 들어오거나 일시에 나갈 수 있으며 우리의 경제는 그 때마

다 광란의 춤을 출 것이다.

아니 이젠 서브프라임으로 헤게머니를 상실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미국의 영향력 보다 우리의

가장 큰 수출입 시장인 중국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환율과 개방으로 미묘한 감정싸움을 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 사이에서 아슬아슬

한 곡예와 줄타기를 잘해야 우린 또 다른 위기의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논피션이 아닌 흥미를 주는 소설이라는 측면에서라는 항변이 있겠지만 큰틀의 구성이 경

제논리를 반영하여 좀더 현실성 있고 치밀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어쨌든 수많은 비기를 둘러싼 신비주의적 이야기와 여러 가지 확인되고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의

혼란스런 나열의 한계와 구성의 헛점 그리고 다른 전작 소설들보다 떨어지는 흥미들에도 불구하

고 물질적 가치보다 정치적 가치가 우선한다는 그의 소설은 일독의 가치가 있었다.

돈을 궁극적으로 자유와 편익을 사는데 필요할 뿐이다.

세상에는 더 소중한 것들이 많은데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달라지고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들을 보

면 착잡해진다.

살아가는 지혜와 사람의 도리를 교육하지 못하고 생존과 생활을 가르쳐야하는 우리의 교육현실

먹고 살기 위한 죽어라고 공부해도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아이들

사는게 팩팩해서 아이 낳기를 포기한 이 땅의 젊은이들

아이들을 위해 모든걸 희생하고도 자신의 노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과거의 우성실험처럼 의도되지 않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계층간 빈부차이와 지식과 부의 편중

인터넷과 통신을 통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자신이 소유한 부의 크기에

의해 대접받고 평가 받는 물질 세대

모두 세기말적인 현상은 아닌가?

마야인들이 2012년 지구의 종말을 예언했는데 요즘의 경제 정치적 혼란과 지구의 이상기온 현

상과 잦은 지진을 보면 정말 종말이 가까워 졌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