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3일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금요일
토요일 출정계획을 갖고도 회식자리에서 건네지는 대로 술잔을 다 받아 마신 건 마눌과 함께하는 오대산을 깔보는
건지 아닌 내 체력을 과신하는 건지….
말을 많이 하고 행동의 보폭을 늘린 것은 취기가 제법 올랐다는 거
몸이 많이 불어서 더 조심해야 할 요즘 주말에 오히려 예전보다 몸을 덜 사리는 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정신과 신체의
리듬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여간 새벽 4시 30분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3시 50분이다.
머리는 아프지 않지만 무겁고 목은 건조하고 텁텁하다.
아주 많이 마신 술이 아니래도 꽤 마셨을 때 나타나는 징후다.
소주 두병 반 정도
맥이 없고 온 몸이 나른하여 20분쯤 반수 반각의 비몽사몽을 헤메다 여장을 꾸렸다.
이런 날엔 장거리 운전과 거친 산행을 안 하는 게 맞긴 한데 그렇다고 그대로 주저 앉으면 두가지 후회를 하게 될거다.
침대에 누워 잠에 빠지거나 리모콘을 돌리면서 보낼 하루의 후회가 그 하나이고 술을 빙자해 마눌과의 약속을 헌신짝
처럼 팽개치고 준비한 과일과 빵을 집에서 우적거리는 신뢰상실의 후회가 두번째가 될게다.
어쨌든 주말 경계대상 1호인 술에 의해 고스란히 날려버린 소중한 봄날의 주말은 두고두고 나의 속을 쓰리게 할게 틀림
없다.
게다가 정말 일기예보대로 토요일,일요일이 비로 인해 내 발이 묶인다면 난 팽 돌아버려 정말 힘겨운 한 주를 보내야 할
것이다..
벌겋게 날이 샌 5시 10분에 출발이다.
제법 차가운 새벽공기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대로 정신세계가 몽롱하고 나른하더니 증평을 지나고 나서는 졸음이 몰려
온다.
마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호법분기점을 지났는데 이천을 지나자 차량이 점점 많아진다.
나처럼 차량정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겁나게 많은 모양이다.
졸음이 밀려오는 가운데 정체구간이 늘어나면서부터 오대산에 가는 일정에 의문이 제기된다.
“컨디션도 안 좋고 차도 계속 밀리는데 굳이 먼 길을 갈필요 있나?”
부처님 오신 날의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그리고 싱그러운 초록이 새순으로 피어나는 전나무 숲이 보고 싶었지만 사실
그 길은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오늘이 아니라도 마음이 동할 때 언제라도 다시 가면 될 일이다.
잠시 치악산에 생각이 머물렀다.
치악산에도 구룡사란 절이 있다.
산행은 조금 더 힘들긴 하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거고 .치악산이면 왕복 80km정도 이동거리가 줄어 든다.
문막을 지나면서 마눌과 나는 애초 계획을 바꾸어 치악산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나의 무뚝뚝하지만 독똑한 비서 지니는 치악산에 가려면 원주가 아닌 새말 인터체인지로 빠져나 가라고 알려 주었다.
졸음과 실갱이를 하면서 의문과 불안 속에 떠나던 길이 갑작스럽게 바뀐 계획 때문에 다시 힘을 얻어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른 아침이고 계룡산이나 속리산처럼 식당들이 많지는 않다.
당연이 있를거란 생각으로 공용 주차장 까지 올라 갔다가 식사할 만한 데가 없어서 다시 입구 식당으로 내려와 청국장
백반 한 그릇씩 비우고 출발했다.
연휴인데 주차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혼자만의 치악산 종주길은 8년
절골을 올라 상원사와 남대봉에 오르고 하산길에 영원사를 들러 함박골로 내려오던 때가 2005년 3월 이다.
그날 그 길에서 마지막 뒷모습을 보이는 겨울을 보며 아쉽게 떠나 보내는 계절의 감회에 젖었었다.
혼자만의 기차 여행길에서 만났던 치악산 정상으로 가는 이 길에는 8년이란 세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석양에 빗긴 그림자처럼 그 길이가 길어진 빛바랜 추억이 있는 길이다.
일 자 : 2010년 5월 21일 부처님 오신 날
산 행 지 : 치악산
산행코스 : 신흥동주차장 –구룡사 –사다리병창길-비로봉-계곡길 –주차장
날 씨 : 화창하고 무덥다
동 행 : 마눌과 두리
경유지별 시간
08:30 : 신흥동 치악산 공용 주차장
08:50 : 치악산 입구 주차장
09:40 : 구룡사
09:05 : 용소
09:42 : 세림폭포 갈림길
10:13 : 사다리 병창길
10:51 : 처음 시야가 터지는 계단
11:15 : 시야가 터지는 비로봉 아래 계단
11:25 : 마눌도착
11:29 : 정상도착 / 정상체류 (약 40분)
12:08 : 하산
12:50 : 비로봉 1.2km지점 / 세림폭포1.6km,구룡사3.7km
13:24 : 비로봉 2.1km지점 / 세림폭포 0.7km, 구룡사2.8km
13:46 : 폭포
14:20 : 알탕 후 세렴폭포 도착
14:45 : 구룡사
15:04 : 구룡사 출발
15:20 : 입구 주차장
15:40 : 원 주차장
한적한 도로를 따라 오른다.
5월의 초록이 싱그럽다.
약간 서늘한 아침공기를 가르는 조용한 바람
바람에 연 초록의 단풍나무 숲이 일렁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무거운 머리가 맑아지고 무언가 조급하고 불안했던 마음 한구석마저 여유로워 진다.
영화 감독 이규형이 그랬다.
“주중에 한 번씩의 일요일을 만드는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 지는 주말의 기쁨은 주중에도 한번 씩 느껴보란 이야기다.
수요일은 물요일이니 흐르는 물을 보라..
비가 오면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 좋고 아니면 회사 가까운 개천이라도 나가서 흘러가는 시냇물이라도 바라 볼
일이다.
목요일은 나무의 날이니 나무를 바라보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거나 동산에 올라 숲을 거니는 것도 좋다는 말이다.
여백의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공감이 간다.
팩팩한 도심의 삶 속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잠시라도 휴일의 편안함을 느끼면서 긴장을 완화 시키는 버릇을
들이란 것이다.
삶이란 전쟁터에서 비무장지대를 만들고 무방비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짧은 시간을 갖는 것
그 작은 여유와 기쁨이 삶을 부드럽게 하고 새로운 힘을 다시 솟아나게게 할 것이다.
자연과 마눌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더 욕심을 낸 세상살이 지혜다.
주차장을 아래에 두고 도로 한 쪽을 넓혀 보행자를 위한 나무 길을 만든 것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나무 그늘 아래를 걸어 가면서 나무 길을 밟는 촉감이 좋고 차로부터 안전하니 여행자를 위한 배려가 느껴지는 기분
좋은 길이다.
한 걸음 더 나가 위쪽 주차장(30대주차)마저 폐쇄하고 절을 다니는 사람들도 차를 아래 주차장에 세우고 셔틀버스를
이용하도록 하다면 환경보존과 만인을 위한 조용한 산책길조성에 더 할 나위없이 좋을 듯 싶다.
구룡사는 지나쳤다.
점심을 싸가지고 가지 않기에 서둘러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신록의 화사한 치악산 구룡계곡은 수량이 제법 풍부하다.
구룡사 창건 시 용이 살았다는 구룡소는 꽤 웅장해 보이는는 해도 용이 살기에는 좀 비좁아 보인
다.
심산에 계곡의 소에는 이무기나 용이 많이 살았다는데 그 많은 용들은 죄 어디로 갔는지…
환경적응에 실패한 공룡처럼 멸종했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세상이 넓어지면서 그들의 영토에서
쫓겨나 신화와 전설 속에 숨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과음한 표시가 난다.
岳자 붙은 산이 험하다고 정평이 나있고 내 기억에도 가파른 산의 기억이 있어 오늘 컨디션이면 고생좀 해야할 것 같다.
주차장입구의 안내판에는 비로봉 까지가 5.7km로 왕복 11.4km로 6시간 30분 걸린다고 써 있긴한데 5시간 30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구룡사를 거쳐 세렴폭포 까지는 3km 거리로 평탄한 길이다.
그리고 나서 남은 2.7km 길은 시종일관 거칠게 벌떡 일어나 있다.
세렴폭포에서 비로봉을 오르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진다.
능선을 따라 오르는 사다리 병창길과 계곡을 따라 오르는 계곡길이다.
계곡 길이 약 100m 정도 더 길어 세렴폭포에서 2.8km 거리다.
두 길의 차이는 같으면서 극명하다.
거의 조망이 없는 단조로운 숲 길을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걸어 올라야 하고 비오는 날엔 두 길 모두 위험하다는 거
사다리 병창 길은 벼락을 맞기 쉽고 계곡 길은 미끄러지기 쉽다.
다른 것은 사다리 병창 길은 계단 및 등산로가 잘 조성돠어 있고 계곡 길은 물길을 따라 오르는 것은 좋은데 온통
돌 길이라 발이 불편하고 한 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다.
사다리 병창 길을 따라 올랐다가 계곡 길로 내려 오기로 했다.
병창이란 영서 방언으로 절벽 벼랑을 뜻한다.
그래서 사다리 병창이란 사다리꼴 모양의 암릉군이 길게 벼랑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말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르기로 했다.
3km 워밍업을 해서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름 같은 봄 날씨에 평탄한 길이 거의 없이 계속 거칠게 날을 세운 길을
걸어 오르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예전에 계단 없던 시절에 비하면 너무 편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자업자득이다.
내가 오늘 무언가 잃었다면 월요일과 금요일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금과옥조의 원칙을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늘 산에 겸허하지 않으면 혼이 나는 법이다.
난 어제 술자리에서 절제하지 못한 대가로 여유로움 속에 대자연을 주유하는 기쁨을 조금떼어내 치악산신령께
통행세로 지불해야 했다.
어제의 술자리와 오늘의 일정조정처럼 지나온 많은 길들이 모두 나의 선택이었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마치 운명처럼
예정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길을 걸을까 망설이다 선택한 길들
지나고 난 뒤 그 길에서 만난 아픔과 좌절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소중한 길이었고 운명적인 길이었다.
인간이기에 후회가 남긴 해도 내가 걸어서 의미가 부여되고 가치가 만들어진 소중한 길이었다.
그 길엔 고통과 힘겨움도 있었지만 기쁨과 행복도 많이 널려 있었다.
불행의 보따리가 더 컸다면 다 나의 부족함이었다.
상관없다.
내가 누린 기쁨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그리고 아직 걸어갈 길이 남았다.
중간에 산허리가 한 번 갑작스럽게 시야가 터진다.
두 시간 만이라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펴지고 한 30~40분 마지막 힘을 모아 여전히 자존심을 곳추세운 길을 오르면
정상부근 계단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후련하게 펼쳐진 초록의 바다가 가슴으로 뛰어든다.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인생이란 상영시간이 정해진 무대 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연기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주인공이다.
아무리 작은 역할이 주어졌어도 내가 없다면 그 연극은 무대에 올려지지 않는다.
내가 등장하는 장면의 시나리오는 내가 뜯어고친다.
조물주가 쓴 큰 틀의 시나리오
그 운명이란 연극의 시나리오에서 나의 역할은 내가 빛내고 내가 다듬는다.
흥행을 위해 내 의도가 반영되지 않아도 내 작품이고 내가 주인공이다.
이번 배역에 만족하지 않으면 다음 번 윤회에서는 더 멋진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현재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세상이 보여주는 경이로움과 기쁨을 최대한 즐기는 거다.
어짜피 다음 생에 다른 배역이 주어진다 해도 다시 태어난 사실조차 모를 테니까….
결국 우린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사는거다
고작 삼만밤조차 자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짧은 여행길..
오직 한 길로 수렴되는 것이 인생이다.
빈 바람처럼 아무 것도 가지 안은 채 기억의 저편으로 불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 가는 방식은 마음 가는 대로 영혼의 흥겨운 노랫소리를 따라가면 된다.
신명난 춤을 출 수 있다면 여행은은 더욱 즐거울 것이다.
인생에서 전적으로 잃기만 하는 것이란 없다.
내가 걸었던 길에서 만난 고통도 있지만 다른 길에서 만날 수 없는 또 다른 기쁨도 있었다.
후회란 욕심과 집착처럼 부질 없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아픔과 두려움조차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대자연과 교감하며 치악의 추억과 상념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조금 힘겹게 보냈다는 이유로
어제의 무절제를 후회 했지만 소중한 하루를 잃지 않았다.
나는 마눌과 땀으로 치악산을 오르며 조금 앞서서 정상에 오르고 있던 화사한 봄을 만났다.
2월 남도의 들판에 수줍게 내려와 손을 흔들던 그 봄
그리고 정상에서 눈부신 오월의 태양을 만나고 넓은 치악세상을 내려다 보며 고원의 실바람을 목에 걸었다.
만나고 싶은 것을 만나면서 보낸 값진 하루였다.
비로봉에서 우리의 정상 오름을 축하해주는 헬기에게 손을 흔들고 바위틈에서 뿌리를 내린 야생
화를 만났다.
어렵게 정상에 올라 기쁨에 젖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 옛날 은비와 태현이처럼 씩씩하게 정상에
올라온 맑은 아이들의 모습도 보았다.
특별한 모습의 집게 벌레도 1000고지 비로봉에 산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면 훗날 전설이될지도 모르는 세개의 탑에 얽힌 이야기와 멀리 능선의 하늘금
이 그리는 봉우리의 이름도 꿸 수 있었던 것도 어느 봄날에 치악산 정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린 30분쯤 정상에 머물며 과일이며 빵 등을 먹고 하산의 길을 잡았다.
길고 거친 길이라 마눌이 힘들어 했다.
그렇지 않아도 하산 길에는 발길이 밀리는 마눌인데 낙차가 크고 돌이 많아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동행하지만 볼 것 없는 길은 지루하고 발은 무거워 진다.
속도가 차이가 나서 내가 먼저 내려가다가 기다리곤 했는데 긴장을 늦추지 못해 몸이 경직되고
힘까지 빠진 마눌은 두 번이나 넘어졌다고 했다.
무덥고 지루하여 알탕을 한 번 하긴 해야 하는데 길에서 가려진 계곡의 소가 거의 없어 한참을 내려와도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이름은 잘 모르는 큰 계곡의 소를 지나 세렴폭포가 엄만 남지 않은 곳에서 등로가 오른 쪽으로 휘고 물길이 합수되는
지점이 있다.
길에서 능선 너머로 계곡이 숨어서 알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있어서 마눌한테는 먼저 내려 가라고 하고 가파른
길을 내려 갔다.
그 곳은 세렴폭포 앞 다리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으로 천연의 요새처럼 완전히 사계가 은페되고 수량이 많아 발가벗고
목욕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긴 했는데 그 차가움이 얼음장 같다.
연인산 계곡물도 차가웠지만 그 물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잠시 물에 있어도 발과 손이 시리고 머리를 감으면 그 차가움에 머리가 깨어질 듯하다.
5월의 치악 계곡 수에 몸을 담근다는 사실은 마치 치악의 기를 받는 내 나름의 의식과도 같다.
마치 성수를 대하기라도 하듯 나는 경건하게 세 번을 나누어 계곡 물에 몸을 담구었다.
물 속에 머무는 시간은 짧았지만 치악의 열기에 뜨거웠던 몸을 식히고 흐르던 땀을 씻어내었다.
씻어낸 것은 몸에 땀 뿐이 아니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차가움으로 헤롱거리던 정신을 바로 하고 생명으로 피어나는 치악의 기운을 받았다.
한 20분간의 경건한 의식을 마치고 나는 몸과 마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 져서 마눌이 기다리는 龜龍寺로 내려왔다.
구룡사는 원래 의상대사가 창건 당시 9마리 용이 살았다고 해서 九龍寺라 하였는데 그 이후 절이
쇠락하게 되자 한 노인이 쇠락의 원인을 거북바위 때문이라 여겨 그 혈을 끊었다 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절의 운영이 어려워 페사의 지경에 이르자 한 도인이 나타나 혈맥을 끊은 것
이 절의 쇠락의 원인임을 알려주어 절의 이름을 거북 龜로 바꾸어 龜龍寺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龜龍寺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의 승려 의상(義湘)이 668년(문무왕 8)에 세운 절로, 창건 당시의 절 이름은 구룡사(九龍寺)이다. 이름에 얽힌 9마리 용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며, 창건 이후 계속하여 도선(道詵) •자초(自超) •휴정(休靜) 등이 거쳐 가면서 영서(嶺西) 수찰(首刹)로서의 구실을 다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절 입구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 때문에 절이름도 ‘아홉구’자를 ‘거북구’자로 고쳐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있는 ‘황장금표(黃腸禁標)’는 조선시대 이 일대에서의 무단벌목(無斷伐木)을 금한다는 방으로, 전국에서 유일한 역사적 자료이다. 현존 당우는 대웅전 •보광루(普光樓) •삼성각(三聖閣) •심검당(尋劍堂) •설선당(說禪堂) 등이 있는데, 수차례 대웅전을 중수하였음에도 그 안에 있는 닫집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
구룡사에서 부처님께 오랜만에 다시 왔음을 알리는 삼배를 올리고 몸도 마음도 가뿐해진 여행의
끝자락에서 편안 마음으로 구룡사를 돌아 보았다.
혹시나 점심을 기대 했는데 시간이 늦어 절 밥을 얻어먹지는 못했다.
내려오는 길에 길가의 아기단풍들은 작은 손을 흔들며 우리 기쁜 오월의 즐거운 봄나들이를 축하해 주었다.
점심을 먹지 않고도 6시간 50분에 다시 돌아온 먼 길 이었다.
우린 웬지 배가 불러 식사할 생각도 없이 그냥 옥수수 한 자루씩 먹으면서 초록이 물드는 치악의 추억을 뒤로하고
귀로에 올랐다
힘들었지만 마눌과 함께 춘 흥겨운 49번 전원 왈츠였다.
'마눌과 백대명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늘과 추는 춤 - 100대 명산 제 51산 (방장산) (0) | 2011.01.16 |
---|---|
마눌과 추는 춤 - 가야산 (100대 명산 제 50산) (0) | 2010.09.29 |
마눌과 추는 춤 - 황매산 (100대 명산 제 48산) (0) | 2010.05.16 |
마눌과 추는 춤 - 남해 금산 (100대 명산 제 47산) (0) | 2010.04.04 |
마눌과 추는 춤 - 태백산 (100대 명산 제 46산) (0) | 2010.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