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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이슈(펌)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각종 의혹에 대한 여론의 불신과 야당의 사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진사퇴했다. 총리 내정 때 의욕을 보였던 김 후보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저의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윤모 기자 yoonmo@hankyung.com

 


 

 

 

미국 영화 ‘뮤직박스(Music Box)’는 거짓말을 무너뜨리는 사진 한 장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라즐로는 나치 전범으로 기소되자 “헝가리 당국의 조작”이라고 항변한다. 변호사 딸은 모든 힘을 다해 아버지를 변호하고 라즐로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비밀경찰 동료가 남긴 뮤직박스 속에서 사진들이 나온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다. 딸은 울부짖었으나 아버지는 계속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딸은 사진들을 검사에게 보낸다.

며칠 전 사진 한 장이 세상에 나왔다. 2006년 2월 김태호 경남지사가 박연차 김해 상공회의소 회장과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었다. 이 사진 하나가 김 후보자의 ‘박연차 거짓말’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었다. ‘진실은 연착(延着)하는 열차’라는 말이 있다. 늦기는 해도 언젠가는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태호의 경우에는 사진이라는 KTX를 타고 진실이 순식간에 도착했다

김 후보는 박 회장으로부터 2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검찰이 무혐의 처리했지만 박연차 사건은 워낙 불투명해 차제에 진실이 증명되기를 많은 이가 바랐다. 도지사가 지역의 유력 기업인과 알고 지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김 후보자는 떳떳해야 했다. “박 회장을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2007년 4월 2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2007년 하반기 전에는 박 회장과 일면식도 없었다”고 했다. ‘2만 달러’의 시점엔 박 회장을 몰랐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2006년 10월 정무·행정부지사와 함께 박 회장과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정무·행정부지사는 도지사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다. 김 후보자가 골프회동 사실을 숨겼을 때 두 사람은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해하고 존경했을까 아니면 씁쓸해 했을까. 골프회동이 드러나자 김 후보자는 이번에는 “2006년 5월 지방선거 이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뮤직박스의 사진’이 나온 것이다.

그가 진실로 결백하다면 박 회장과의 관계를 사실대로 말했으면 됐다. 그리고 도청 직원이 가사도우미로 일한 것이나 부인의 관용차 사용도 처음부터 솔직하게 인정했으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는 공사(公私) 구분을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하면 국민이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박연차, 가사도우미, 부인의 관용차 사용에 대해 모두 거짓말을 했다. 그러니 이제는 사람들이 ‘2만 달러’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지난 수십 년은 단축 공정과 압축 성장의 세월이었다. 커지는 몸을 정신이 채 따라가지 못했다. 흙탕물의 강을 건너오면서 많은 이가 옷을 적셨다. 당장 대통령부터 그러하지 않은가. 흙탕물에 적신 옷을 벗어놓아야 하므로 공직후보자에게 청문회는 위기다. 그러나 동시에 청문회는 기회일 수 있다. 흙탕물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해와 용서를 구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후보자는 청문회라는 협곡을 건널 수가 있다. 그러나 거짓으로는 안 된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한 것은 젊은 여자 르윈스키의 몸을 만진 것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라는 잘못이 있었지만 그래도 솔직했다면 닉슨도 백악관에서 쫓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연차, 가사도우미, 부인의 관용차 사용은 그리 어려운 늪지대가 아니었다. 차분하고 솔직하기만 했으면 충분히 헤쳐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김태호는 국민과 의원들의 시선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우보천리(牛步千里), 느리고 느린 소걸음이 천 리를 간다고 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소장수 아들이 왜 이를 몰랐나. 김태호는 솔직과 각성이라는 소걸음 대신 거짓말과 모면이라는 축지법(縮地法)을 쓰려 했다. 소의 안타까운 울음소리가 거창 마을에서 들려오고 있다.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 중앙일보 10.8.30 /김진의 시시각각

 

 

 

김 후보자는 이날 사퇴회견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는 미묘한 소회를 남겨 주목된다. 마오쩌둥 어록에 나오는 '天要下雨, 娘要嫁人(천요하우,낭요가인)'를 인용한 것이다.

이는 마오쩌둥이 한때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던 린바오가 쿠데타 모의 발각으로 소련으로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고, 홀어머니가 시집을 가겠다고 하면 자식으로서 말릴 수 없다"는 뜻으로,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일반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 한국경제 신문 10.8.30

 

 

지난주 매체를 통해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죄송합니다”이다. 청문회 덕분이다. 일부 후보는 스무 번 넘게 했다고 한다.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것도 아니고, “잘못했다” “죄송하다” “교훈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다”고 반성과 사죄를 하는데 듣는 대다수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진정성이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미안함에는 죄의식과 수치심이 섞여 있다. 죄의식은 외부에서 벌을 받을 수 있다는 외적 통제의 존재 의미가 크고, 수치심은 자아가 세워놓은 내적 기준에 적합하지 않을 때 경험한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쪽이 작동하면 미안해하게 된다. 이때 직접 말을 하거나 말없이 표정만 봐도 그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다.

죄송에는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위에서 얘기한 첫 번째 경우는 대개 반성과 변화가 수반된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에는 사태 모면의 요령만 생긴다. 듣는 사람도 이 아이의 죄송의 가치는 별것 아니라고 여기게 돼 나중에 정말 미안해해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자존심이 센 사람일수록 사과를 쉽게 못한다. 본인이 가장 잘난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 말고 더 센 무엇이 외부에서 잘잘못을 가린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고, 자기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내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한 이들이 사과를 하는 것은 쉽게 보기 어렵고, 그들이 하는 사과의 힘은 상대적으로 큰 것 같다.

지난주 우리가 많이 들은 죄송은 어느 쪽에 속할까. 죄송함의 진정성과 가치는 많이 들을수록 떨어진다. 시장 논리가 적용된다. 죄송하다고 말을 하는 것은 권투에서 코치가 링 안으로 수건을 던지는 것 같은 결심이 전제되었으면 한다. 수건을 던지고 나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싸우는 게 아니라, 패배를 인정하고 이 게임은 끝이 난다. 그 정도 결의가 없으면 아예 처음부터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그래야 죄송의 가치가 올라가고, 한 번 들었을 때 그 사람의 미안함의 진정성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사이에 죄송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졌다. 이제 누가 내게 잘못을 한 후 찾아와 “죄송합니다”라고 해도 마치 “식사는 하셨어요” 정도로 들릴 것 같아 두렵다.

지금껏 죄송하다는 말로 국민을 즐겁게 한 사람은 얼굴이 못생겨 죄송하다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뿐인 것 같다. 그만큼 죄송은 막 쓰면 안 되는 귀한 말이다.

 

                                      중앙일보 10.08.30  삶의 향기 하지현/죄송의 가치

거짓말은 왜 하게 되는 걸까. 거짓말은 밖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커튼을

치는 것이다.그래야 가려진 내 본심 혹은 흑심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불안심리에 기초한 자기합리화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안심리에 의한 자기방어

기제라고 단순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이것을 통해 남을 속여 부당이득을 취하거나

남에게 또는 사회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 지도자들에게

더 날선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것이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풍자되었던 옛 지도자나, 청문회 자리에서 끝까지 ‘기억을 더듬어보겠다’와 ‘죄송’으로 일관한

그들은 아직 도덕성이  왜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소크라테스는 마음속에 다이몬을 섬겼다고 한다. 다이몬(Daimon)이란 옳지 않은 길에

접어들면 보내오는  신호, 즉 내면의 울림이다. 앞으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다이몬 칩을 뇌

속에 장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릇된 행동을 할 때마다 알람이 울려 세상에 탄로 나게 말이다. 그러나 그런 SF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제 도덕적 투명성은 국가지도자뿐 아니라, 미래사회의 모두에게 중요한

원칙이며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한 개인이 하나의 거대 미디어를 가지는 세상에서는 이제 서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트위터를 비롯한 다양한 소셜미디어가 곧 신문과

방송에 버금가는 강력한 파워 미디어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즉 개인이 방송국이나 신문사를

하나씩 갖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4000만이 넘는 미디어의  눈을 누가 무엇으로 가릴 수 있단

말인가. 과거의 잘못된 행위도 문제지만 거짓말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와 적당히 넘겨주려는

야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일요일 아침 총리 후보와 장관 후보 두 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정(政),

당(黨)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이었고, 운 나쁘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야, 그런 마음이 정, 당, 국민 모두에게 느껴져야 비로소

청문회 따위도 필요 없는 내일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기대해보자. 8·15 광복절

축사에서 대통령은 "윤리의 힘을 더욱 키우고 규범화해야 한다”

면서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윤리의 힘을 키운 지도자들이 만드는 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렇다면 이번

내각 구성의 결과도, 불거진 4대 강의 진실 여부도 국민들이 원하는 바 투명하고 공정하게

풀어내질 것이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외친 ‘공정한 사회’가 ‘공허한 사회’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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