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의 14좌 완등 시비

 

 

 

기사입력 2010-08-27

올해 4월 여성 산악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에 모두 오른 오은선 씨의 기록이 국내 산악인들에 의해 부정됐다. 오 씨는 14좌 가운데 칸첸중가(8586m)를 실제론 정복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오 씨에 앞서 칸첸중가를 정복했던 엄홍길 씨 등 산악인 7명은 “오 씨가 정상에서 찍었다는 사진 속 지형을 칸첸중가에서 찾아볼 수 없고, 등반 과정에 대한 설명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남성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와 등반 전문 저널리스트인 엘리자베스 홀리(미국), 오 씨와 경쟁하다 한발 늦게 14좌에 오른 여성 산악인 에두르네 파사반(스페인)은 그의 기록 달성을 축하한 바 있다. ▷오 씨를 제외해도 한국은 스페인과 더불어 가장 많은 14좌 완등자(3명)를 보유한 나라다. 한국 산악계의 성장은 ‘인정사정없는 경쟁’ 덕분이었다. 엄홍길 씨는 후배인 박영석 씨의 거센 추격을 받으며 2000년 한국인 최초로 14좌를 완등했다. 그러나 14좌 가운데 로체와 시샤팡마 등정이 이상하다는 시비가 따라다녀 2001년 두 봉을 다시 올랐다. 그래서 일각에선 엄 씨의 완등은 2001년 이뤄진 것으로 보고, 박 씨를 한국인 첫 14좌 완등자로 꼽기도 한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0년 동생과 함께 처음으로 8000m급 고봉에 올랐다. 그러나 하산 길에 동생이 처지자 그냥 버려두고 내려와 ‘영원한 실종자’로 만들었다. 동생 시신은 35년 만에 냉동 상태로 발견됐다. 메스너는 ‘냉혈한’이라는 악명이 따랐지만 1978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하고 1986년엔 14좌를 완등했다. 그 후 14좌 도전은 무산소로 최단기간에 오르는 싸움이 됐다. 장비 도움 없이 사람 힘만으로 맞서는 비정한 승부다. 자연과의 정면 승부를 위해 대원들은 서로의 연결 로프를 풀고 오르기도 한다. ▷한국 산악계가 14좌 완등에 집중하는 사이 유럽 산악계는 산소가 희박한 8000m대 고산(高山)에서 직벽이나 빙벽으로 정상에 오르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고산 등반이 점점 더 극한투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남을 의식한 기록경쟁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국내 산악계도 숫자 달성 위주의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오은선씨 칸첸중가 등정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그칠 줄 모른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세계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 오은선’이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에게 의심 받기 시작했다. 급기야 대한산악연맹도 오씨의 칸첸중가 등정을 부정하고 나섰다. 조만간 오씨가 자신에 대한 의혹제기와 관련해 반박기자 회견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논란은 점점 확산될 것 같다. 논란이 확산되는 건 좋은데(?) 여기엔 빠져 있는 게 있다. 이른바 ‘오은선 논란’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태도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되기 전, 일부 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은 오은선씨 입장만 ‘줄기차게’ 보도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오은선씨 14좌 완등 논란’이 제기됐지만, 언론은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아니 외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은선 ‘추켜세우던’ 언론, 이제 ‘비판대열’에 앞장서다 ‘그랬던’ 언론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이젠 ‘오은선 비판’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파문이 확산되는 과정을 그냥 중계 보도한다. 당시 제기된 여러 의혹과 문제점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다루는 차원이라면 박수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을 외면할 순 없으니 그냥 ‘대세’를 따르는 식이다.     ▲ 지난 8월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언론의 이런 태도는 ‘언론책임론’을 희석시킨다. 그러다보니 ‘오은선 14좌 완등 논란’이 마치 대한산악연맹과 오은선씨 간에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오은선 씨의 칸첸중가 등정은 KBS가 단독중계 했고, 특별방송까지 내보냈을 정도로 언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KBS가 단독중계 했기 때문에 KBS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엄밀히 말해 이건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은선 씨 칸첸중가 등정 논란은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이 오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으면서’ 비롯됐다. 등정 직후부터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대다수 언론이 모른 척 하면서 문제를 악화시켰다. 언론·산악연맹도 반성해야 제기된 의혹에 대해 오은선 씨의 우선적인 해명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선행돼야 하는 건 언론의 자기반성이다. 지금껏 오은선씨 칸첸중가 등정과 14좌 완등을 비중 있게 보도한 건 언론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칸첸중가 등정 논란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라도 있었다면 이해할 법도 한데, 그런 언론은 없다. 이러니 ‘하이에나 언론’ 소리를 듣는 것이다.     ▲ 지난 8월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산악연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부터 일부 언론과 산악인들이 관련 의혹을 제기했지만 산악연맹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오은선씨 칸첸중가 등정 의혹을 제기했던 박준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는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전문 산악인들이 책임감 있게 모여 논의하면 금방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이번 논란에 대한 산악인들의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시민들의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지자 뒤늦게(?) 오은선 씨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산악연맹도 비판받아야 한다. 오은선 씨를 비판하기 전에 산악연맹의 소극적 움직임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오은선 씨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파문을 오씨 개인책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다. 박준우 PD 지적처럼 “이번 일은 오은선씨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전문산악인과 언론‧자본‧성과주의가 결합한 고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