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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경제

네덜라드 병과 한국병

2010. 9.6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1959년 네덜란드는 들떴다. 북해에서 가스유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바로 임금이 올라갔다.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면서 나랏돈도 펑펑 썼다. 국민은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착각에 빠져 자만했다고 깨닫는 데는 10년이면 충분했다. 자원 개발로 흥청망청하다가 제조업 등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70년대 들어 위기가 찾아왔다. 노사 간 극한 대립과 실업 급증, 재정적자 확대 등이다. 경제는 활력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게 ‘네덜란드 병’이다.

한국의 앞바다에서 유전이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한국이 네덜란드 병에 걸릴 리도 없다. 하지만 요즘 비슷한 걱정이 생긴다. 한국에선 수출이 가스유전 같은 역할을 해서다. 수출이 잘 되다 보니 벌써 위기를 잊고 긴장의 끈을 놓고 있다.

한국은 요즘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한 나라로 여기저기서 떠받들어진다. 수출이 큰 효자 역할을 한 덕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모두 뿌듯한가 보다. 자화자찬 일색이다.

정말 한국 경제가 일취월장했을까. 올 2분기에 경제는 1분기보다 1.4%(지난해 2분기보다 7.2%)나 성장했다. 수치로는 활황세인데, 실제 이를 체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2분기 성장률도 뜯어보면 수출 기여도가 3.7%포인트나 된다.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기여도는 각각 0.5%포인트, 0.9%포인트에 불과하다. 내수는 여전히 미지근하다는 얘기다. 수출이라는 외바퀴로 버텨왔는데 이게 얼마나 갈까. 미국과 중국 등의 경기하락이 우려돼 하반기 전망은 밝지 않다.

이러니 가장 중요한 일자리는 여전히 부진하다. 7월의 20대 실업률은 8.2%다. 금융위기 여진이 이어졌던 지난해 7월보다 0.2%포인트 더 높다. 지난해는 일자리가 7만 개나 줄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3만 개 늘어나는 데 그칠 전망이다. 늘어난 일자리도 상당수는 임시·계약직이다.

겉으로 드러난 지표는 번듯하지만 현미경을 대보면 실업 문제는 심각하고, 재정적자는 심해진다. 노사 대립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그런데 벌써 경고음이 사라지고 팡파르만 울린다. 이걸 후일 누가 ‘한국 병’이라고 부를지 모를 일이다.

이런 소리 듣지 않으려면 일자리를 만드는 게 답이다. 그래야 국민의 소득이 늘어 내수를 키울 수 있다. 일자리는 어디서 많이 생기나. 의료나 교육 같은 서비스업이다. 그런데 임기 반환점을 돈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 내세웠던 의료법인 영리화나 교육시장 개방은 아예 잊어버린 것 같다. 대신 요즘 ‘친서민’을 내세우지만 방향이 모호하다. 서민들의 대출금리를 낮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일 확실한 친서민 정책은 일자리 만들기다.

정신 차린 네덜란드의 노조·기업·정부는 바세나르 협약(82년), 뉴코스 협약(93년) 등을 맺어 임금 인상 자제,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 재정 긴축에 합의해 위기를 돌파했다. 이게 ‘네덜란드의 기적’이다. 우리라고 이걸 못할쏘냐. 위기를 망각하면 더 큰 위기가 온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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