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2010년 9월 11일
마지노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그 날엔 전국적으로 큰 비가 예정되어 있다.
가끔 신체 리듬이 깨어진 것처럼 지구의 생태리듬에 무너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서울이 한 달 동안 24일 간 비가 왔다는데 추석을 목전에 둔 소중한 휴일에도 이틀간 비가 내린단다.
새벽 5시 알람
일어나니 어김없이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기상대 이럴 땐 또 기막히게 맞아요…”
동생들은 어머님 집에서 어제 와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여장을 꾸려 빗속으로 떠나는 아직 컴컴한 청승맞은 새벽
어머님과 동생들은 벌써 일어나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아침을 먹고 우리 넷은 영수 차로 빗속을 가른다.
형님은 서울 전시회 때문에 불참
쏟아져도 너무 쏟아진다.
이건 아니잖아
조상님 묘를 돌본 다는데….
영수가 비가 많이 오면 예초기에 물먹은 풀이 감겨서 힘들어 진단다.
예전에 비오는데 벌초하다 벼락맞아 죽었다는 말도 들었다.
아무래도 덕계리 묘소만 돌아보고 동네 친척들께 돈 주고 맑은 날 벌초를 부탁드려야 겠다.
기호가 전화가 왔다
우린 속리산 휴게소에서 모닝커피 한잔 때리고 막 상주로 접어 들적에…
“행님요 여긴 용궁입니다.
용궁 터미날에서 고모님 모시고 산소로 갑니다.”
산소로 간다는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용궁에서 기다리려니 생각했다.
오잉! 벌써 도착?
그리고 몸이 불편하신 고모님 까지?
우린 6시 전에 떠난다구 하고서 6시 20분에 출발했는데 삼촌과 기호는 대구에서 출발하여 정확히 시간을 맞춘 것이다.
“정말 부지런 한 놈”
9시가 넘어 도착했다.
용궁은 비가 그다지 많이 내리지 않고 있다.
“이만하면 할만 하겠는데…”
터미날에 없어서 산소로 가보았더니 고모는 차 속에 계시고 삼촌과 기호는 벌써 벌초를 반도 더 해 놓았다.
인사를 나누고 벌초를 시작하려니 폭우가 겁나게 쏟아진다.
여기도 드뎌 올 것이 오는 모양이구나
어머님과 고모는 차 안으로 모시고 우비를 입고 텐트를 치고 벌초를 시작하려는데 이 번에는 가져간 예초기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예초기가 비를 먹어서 그런 모양이다.
기호가 예초기 한 대 가져오지 않았으면 낭패를 볼 뻔 했다.
삼촌과 기호가 서둘러 벌초를 해준 덕에 별로 힘들지 않게 벌초를 마무리를했다.
벌초를 마무리 할 때 쯤엔 비가 잦아 지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우린 서둘러 제사상을 차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묘에 제사를 올리고 증조부모 묘에도
잔을 올렸다.
비가 멎은건 조상님이 보살핀 탓인 모양이다.
묘소 앞에 둘러 앉아 음복하고 제사음식을 나누었다.
어제 얼려온 대전 막걸리는 아직도 시원하다.
“ 대전 냉 막걸리 맛이 짱 ! “
모든 걸 순조롭게 마무리 하고 장비를 차에 싣고 나자 또 비가 겁나게 쏟아진다.
참으로 신기하고 조상의 무게가 느껴지는 경건한 날 이다.
이것 저것 제사음식을 먹어 배가 부른데 기호와 삼촌이 일찍 간다고 하기에 용궁 순대집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순대국밥 한 그릇 씩 그리고 순대 두 사라에 문경막걸리 한잔 씩 더 먹고 나서 헤어졌다.
영태가 삼촌용돈을 드리고 형제회비에서 교통비 5만원 드렸다.
돈을 벌지 않으시니 용돈이 쪼달리실 게다.
다시 어머님과 고모님 모시고 덕계에 가서 친척집과 마을회관에 포도 한 상자 씩 들여 놓고
두 분이 친척과 회포를 풀 수 있도록 해드렸다.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 선고를 받으신 불쌍한 고모님은 그 내용도 모르신 채 갑자기 속이 많이 아프셔서 예전처럼
일을 잘 못하는 것을 걱정하신다.
참으로 인생이란 이렇게 허망하다.
불운이란 늘 겹치는 것이고
고생하는 놈 따로 먹고 노는 팔자 따로라고 고모님만 보면 참으로 기구하단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어머님도 언제까지 정정하실까?
선천적으로 강하고 낙천적이신 해도 허리도 예전 같지 않고 홀로계신 외로움도 크실 것이다.
지난번 벌초 때에도 아들들 데리고 고향 친지를 찾아보는 걸 무척 즐거워 하셔서 올해도 포도
5 상자를 준비했다.
고모님은 이젠 고향길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어머님과 고모님 그리고 사는게 바쁜 형제들을 생각하면
1년에 한 번하는 벌초는 우리가 직접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택이 아재네와 성하형네도 들여다 보고 할아버지 옛집도 찾아 보았다.
작년에 처음 들렀지만 내가 마음 속에 오래 간직했던 고향의 모습은 사라졌다.
소박한 초가집도 넉넉한 뒷동산도
그리고 난초 꽃피고 물방개 헤엄치던 저수지도….
할아버님 댁은 한 켠에 소 20마리를 키우는 우사가 들어섰고 그 넓었던 마당은 참 좁아 보인다.
우리 어머님이 늙으신 것처럼 흐르는 세월에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오후에는 비가 그쳤다.
우린 다시 1년만의 고향 외출을 마무리하고 개포 고모댁에 들러 사장어른께 절을 올리고 고모님 때문에 내려와 있는
사촌 수호도 만났다.
수호는 세상에서 그가 진 짐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사업도 잘 안되고 한 평생 고생만하신 어머님이 암 까지 걸리셨으니 오죽할까?
영수가 고모 용돈 드리고 형제회비에서 10만원 드렸다.
우린 폭우 속에 벌초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6시쯤 대전에 돌아와 사우나를 하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걱정했지만 모든
게 무리 없이 마무리 된 가슴 따뜻한 하루였다.
지출금
포도 5상자 : 11만원
차량 유류대 : 5만
고모,삼촌교통비지원 : 15만
중식대 : 3만 8천
목욕비 : 1만 2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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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만
시골 친척들게 벌초를 의뢰하면 12만원이면 족할 것이다.
4명의 하루를 모두 투자하고 36만원
하지만 이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님과 고모님께는 옛날의 친구와 친지들을 만나 지난 시간을 돌아 보는 훈훈한
시간이고 우리에겐 소중한 혈육과 형제애를 느끼면서 어릴적 시골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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