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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1월의 미륵산

 

 

 

 

 

 

 

 

 

마음이 답답하고 허전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주고

내가 세상을 몰랐을 때

 

갑자기 눈이 보고 싶어집니다.

고원에서 표효하며 춤추는 칼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흘러가는 유장한 능선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세상의 부질없는 미망에서 잠시 놓여나고 싶습니다.

 

흰 눈을 이고 푸른하늘 아래 당당한 나무들

눈 닿는 어디라도 머무는 순백의 순수와 

그 설원의 장엄함이 가슴을 흔들고

우리의 영혼을 다시 춤추게 합니다.

고독한 설산 너머에서 잃어버린 희망을 찾는다면

우린 세상을 향해 다시 소리칠 수 있을 겁니다.

 

 

 

 

 

 

난 탈색된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바보처럼 세월을 고뇌했습니다.

오랜만에 내린 눈조차 잠시 담아둘 여유가 없이 뒤엉키고 소란해야하는

그 도심 속에서 누군가는 조금씩 지쳐갑니다.

어느 산상에는 하늘 가득 춤추며 눈이 내리고

누군가는 그 길 위에 내린 기쁨을 밟으며 감동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겨울과 눈이 불러내는 주술과 마법으로부터 깨어 나야 한다는 슬픔과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 도시의 벽을 넘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슴에

쾡한 바람구멍이 듭니다.

 

 

아름다운 계절의 길목에서

감동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은 삶의 배반입니다.

눈밭의 황홀한 고독을 뒤덮는 삶의 고뇌는 자학입니다.

 

눈 소식을 들은 어느 날 쯤엔

불현듯 잃어 버린 많은 것들이 생각 납니다.

살아가는 날의 기쁨

낭만

 

 

 

 

 

 

 

회색도시를 떠났습니다.

덕유의 장쾌한 설국에 섰습니다.

후련한 바람을 맞으며 그 눈밭을 걸어가면

목마른 서러움과 그리움의 앙금이 조용히 가라앉고

고요한 고원의 평화가 찾아 옵니다.

답답한 마음도 눈처럼 정갈하고 순수해 집니다.

대자연과 합일된 나를 만나고

눈부신 고원의 기쁨이 가슴에 아름다운 감동의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간 눈을 잊었습니다.

잿빛 도시에는 다시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가는 어느 날

다시 떠나고 싶어 집니다.

그 황홀한 눈밭의 기억이 망령처럼 떠돌았습니다.

 

 

 

 

 

 

 

                                          산 행 일 : 1 10

                                          산 행 지 : 통영미륵산

                                          산행코스 : 산양읍사무소-현금산-미륵산-미래사-미래고개

                                          날    : 흐림

                                              : 귀연산우회  41

                                          산행시간 : 4시간 45

                                          경유지별 시간

                                                    10: 44 : 신양읍 출발

                                                    11: 06 : 현금산

                                                    12:00~12:30 : 식사

                                                    12:40 : 돌탑 봉우리

                                                    12:50 : 여우치

                                                    13:15 : 돌탑 암봉

                                                    13:21 : 소나무 봉

                                                    13:30 : 미륵산

                                                    14:09 : 미래사

                                                    14:16 : 편백나무 오솔길

                                                    14:46 : 띠밭등

                                                    15:00 : 영인 군부대 전 보망바위

                                                    15:28 : 미래고개

 

 

 

 

 

 

 

1월의 미륵산은 좀 생뚱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원과 서해안에 그래도 제법 큰눈이 내렸으니

이미 겨울다운 겨울을 바라본 가슴은 다시 지난  감동을 충동하고 추억을 되새김합니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다시 무릎까지 빠지는 큰 눈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구태여 어디라는 장소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름다운 설원이던

통통배가 그리운 그림을 그리는 쓸쓸한 겨울이던 포구이던

우리가 서 있던 그 곳은 회색도시의 황량한 숲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 남도로 떠나는 어정쩡한 여행도 괜찮았습니다.

통영가는 길

나처럼 겨울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서

단골손님이 빠진  귀연마차이지만 어디에도 입추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나뒹구는 도시의 눈길을 차창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요람처럼 흔들리는 버스의 편안함이 불러내는 나른한 평화에 혼미해지다 깨어보니

오래도록 따라오던 들판의 눈은 남도의 들녘에서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어디에도 비장한 겨울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늦가을, 아니 어쩌면 다가올 봄의 길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통영

안개가 자욱합니다.

통탄스러운 그림자(慟影)

그 이름처럼 통영에 오는 날엔 한번도 푸른하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10번 쯤은 흐린 통영에 있었습니다.

잠시 머무르거나  지나치거나….


 

 

 

 

 

 

 

하늘 맑은 날 잠시 머물다 지나친 어느 항구에 다시 돌아가 추억에 젖기엔 이젠 세월이 너무

빠르고 가야 할 길은 너무 멀어 보입니다.

 

힘께하는 즐거움이란 동류의 의식에서 발현되는 듯 합니다.

산이 좋고

어울림이 좋고 더불어 사는 정이 좋은 사람들

먼 이향의 설레임과  비릿한 포구에 남아 있을 어느 기꺼운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우린 함께 떠났습니다.

 

거기 바다가 있습니다.

어느 다다를 수 없는 언덕 너머에 남아 있는 피안의 꿈처럼

어느 고원의 설국에 남겨진 잃어버린 소중한 진실처럼

우린 늘 바다의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합니다.

장쾌한 설국의 풍경에 취하면서 그 잃어버렸던 감동에 흔들리던 가슴을 애써 진정한 것이

엊그제 인데 오늘은 눈 없는 남도의 조용한 산 길을 걸어 내리며 그 길에 내려설 봄을 그리워 합니다.

가득한 눈과 심설이 바람에 솟구치는 모습으로 후련했던 가슴이 작은 산 길에서 다시 평화와

기쁨을 느낍니다.

 

편안하고 고요한 길 입니다.

겨울

우린 그 길 위에서 깊어가는 계절의 상념을 잊었습니다.

엊그제 가득한 설원에서 황홀하게 피어나던 그 계절의 감동이 마치 꿈인 듯 몽롱해지는

남도의 산길이었습니다.  .

 

함께 추던 홀로 추던 대자연 속에서 추는 춤이야 다 신명나는 한마당이지만

오늘은 함께하는 기쁨과 웃음으로 채웠습니다.

동색()과 동향()의 사람들

그 화음의 감미로운 어울림의 음악을 만드는 통영의 따뜻한 겨울 이야기였습니다.

 

 

 

 

 

 

원통형으로 휘어지는 산 길에서

갈색의 아름다운 계단식 들판과 마을이 내려다 보입니다.

마음은 벌써 그 갈색의 들판에 푸른 봄을 채색하고

들길에 진달래와 산 벚꽃을 피워 냅니다.

 

이 길이 남도로 가는 길입니다.

남도로 가는 그 길 위에서 흰 눈과 설원의 낭만은 사라졌지만.

봄의 기대와 등을 맞댄 어울림의 기쁨은 남았습니다.

 

 

 

 

 

 

 

 

 

 

 

 

 

 

 

 

 

케이블카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자연훼손과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인이 공유해야 한다는 명분은

재정에 허덕이는 지방자치의 논리를 넘어설 순 없지만 자연은 보존되어야 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은 땀흘린 자들의 혜택이어야 한다는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개발과 훼손은 쉽지만 복원과 보존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自然) 그 말처럼 그냥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의미가 있는 게 아닐지

다른 생명들처럼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이 개발과 변화의 명분아래 자행하는 대자연의

파괴와 유린이 점점 더 걱정스러워 집니다.

달라진 미륵산 정상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미래사

 

 

 

 

 

 

 

 

 

 

대구 산악회가 시산제를 지내는데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셨습니다.

마치 우리산악회 시산제를 지낸 것처럼 거리낌 없이 음식과 떡과 과일을 함께 나누며 즐거

웠습니다.

산 사람들의 정과 더불어 살아가는 맛 입니다.

그 정과 통영 부두의 취흥에 겨워서 좋아서 휴게소에서 다시 만난 그들과  잠시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공공장소 아무데서나 음주와 가무를 하는 사람들을 늘 못마땅해오던 내가 취했던 모양입니다.

남도의 겨울 낭만에 ….

사람에

  ....

그리고 한잔 술에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통행세들

도시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에 쌓인 것들을 하나씩 내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편안한  길을 걷고 절에서 부처님께 다시 응석을 부렸습니다.

해탈교를 건너 산 비탈 편백나무 숲의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코를 간지르던 차가운 공기와

숲의 향기가 좋았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가슴을 조용히 채우던 느낌과 그 길의 끝에서 만난 미륵불상과  함께 바라본

바다가 좋았습니다.

 

그림으로 그리고 붓으로 쓴 특이한 미래사 안내판의 글귀가 가슴에 들어 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슬픔없이 티끌없이 안온한 것이야 말로

더 없는 행복이네

마치 내게 부처님이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한 세상 살아가다 보면 이러저러한 많은 것들이 심기를 어지럽힙니다.

모두 사람과 뒤엉키는 도시가 주는 상처입니다.

필요한 건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일 것입니다.

세상의 행불행이 작은 가슴에 모두 들어 있지요

어느 산길을 걸으면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채워야 할 지가 명징해 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과 도시의 상처는 산과 자연이 치유할 수 있음은 오래 전에 알아버린 삶의 비밀입니다.

 

내가 세상과 뒤섞이면서도

내가 가진 소박한 즐거움에 만족하며,

하찮은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멀리하며 살아왔다면,

그것은 그대 덕분이다.............. ,

그대 바람과 요란한 폭포 ..... 그대 덕이다.

그대 산이여, 그대 덕이다, , 자연이여!

 

-  워즈워스 시 중

 

 

 

 

 

세상 뭐 별거있수?”

오늘 여행 길이 즐거웠으면 족한 거지

내일 혹시 힘들거나 아님 더 즐겁고 싶을 때라도 산이나 가자구요…”

 

 

 

 

                            이게 무슨나무인지 모르겠고 대구 산악회 사람들 열심히 캐가더구요

 

 

 

 

 

 

 

원래 어느 곳을 가든 빼 놓지 않고 돌아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미래사와 편백나무 숲길 까지

돌아 보느라 또 후미로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이야기한 하산 시간을 의식하며 속도 조절을 했고 많은 사람과 함께 움직였는데 공력

이 출중한 고수들이 많아서 일찍 내려와 많이 기다렸던 모양이라 조금은 미안해 집니다.

한 번 지각을 하면 습관이 된다더니 이젠 느림보 산행이 몸에 배는 듯 싶습니다.

그래도 5명 이상이 떼로 늦어야 벌을 안서니 분위기 파악을 잘 해야 합니다.

오늘은 모르는 분들의 얼굴이 많이 보입니다..

산길을 걷다 보면 아님 내려와 술잔 한번 부딪히다보면  자주 보았던 반가운 사람 같으니 이 또한

산의 마술 아닌가 싶습니다.

 

 

 

 

 

 

 

 

통영의 저녁

  

 

세상 살아감이 이러합니다.

누군가는 오늘도 도시에 머물고

또 누군가는 산길을 걸어와 한잔의 술을 앞에 놓고 살아가는 이야길 풀어냅니다..

한 잔 순배를 따라 사람 사는 정이 돌고

조용히 저물어 가는 통영항에는 도시를 떠난 사람들의 풍류와 낭만이 가득합니다. 

사람 살아가는 향기가 좋습니다.

제각기 부르는 그들이 노래와 어울린 화음이 좋습니다.

 

 

 

 

 

 

 

 

 


 

제가 귀연과 함께하고 난 후 처음으로 흥에 겨워 들썩이던 버스를 처음 보았습니다.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과 술이 함께 어우러지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천재지변으로 너그러이

이해하소서

해일과 풍랑도 모든 타이밍이 맞을 때 자연스레 일어나듯이 그 날 우리의 선잠을 방해한

포구의 낭만에 취흥에 흔들린 인간다운 가슴들이었습니다.

그날의 열기를 담았던 영상들은 봇물 터질 프라이버시와 초상권 침해 소송을 우려해서 제가

바람 길에 훨훨 날렸습니다.

한바탕 즐거웠던 특별한 여행길 그리고 흥겨웠던 하루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소서

 

 

PS

요즘은 술을 많이 마시게 됩니다.

송별회에 동창회에

즐거운 자리 아니면 술을 하지 않는다는  신조도 허물었습니다.

환경의 변화로 인한 바쁜 일상과 내가 늘어뜨린 숱한 인연으로 인한 구속이

산으로 가는 발길을 매정하게 붙잡아 댑니다.

이번엔 산행기를 쓰지 않으렸더니 마치 밀린 숙제를 안 한 것 같습니다.

이것도 내 스스로 만든 구속입니다.

1년에 한 번 모이는 반가운 친구들과의 자리라 산으로 떠나지 못한 채 또 과음을 하고

아직 깨어나지 못한 몽롱함으로 글을 쓰니 나도 뭔 소린지 통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허해서 미륵산의 즐거운 여행길을 기록하는 글의 표정이 좀 우울해 보이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지요

우울할 때도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하고

괜히 멜랑꼬리 해져서 감상적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근본이냐 변하겠습니까?

자신다움을 유지하며 변화의 물결을 탈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거운 여행 길 이겠지요.

글발이 어떠해도 즐겁고 통영 길은 행복한 여행길 이었습니다.

모두들 늘 행복하시고

다음 산길에서 다시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산이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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