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 듯
그 이름만으로 추억이 던지는 설레임과 그리움의 향기가 묻어온다.
지난 해 가을에는 지리산에 들지 못했다.
세월의 강물이 아름다운 계절의 여울목을 지나 갈 동안 지리산을 떠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삶이 그리 아프진 않았던 모양이다.
견딜만 했거나 많이 아팠거나…
그래도 가을에 지리산에 들지 않은 것은 참 신통한 일이다.
지리산은 고향이다.
그리움에 얼굴을 묻게 하고
그 이름만으로 한 켠 가슴이 시리고 저려오는…
지리산은 한 편의 시다.
수림의 바다와 푸른 하늘의 화폭에
깨끗한 물과 맑은 바람으로 쓰는 시
세월에 지친 탕아는 어느 날 문득 지리산을 찾는다.
그가 거기서 만나는 건 빛 바랜 추억만이 아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영혼의 낯은 노래 소리를 듣고
상처를 치유하고 삶과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눈 쌓인 길은 구도와 묵상의 길이다.
아니 순례의 길인지도 모르겠다.
지리산 길을 걸으면 가슴에서 무엇인가 비워지고 또 채워진다.
그 시간엔 용인되는 수 많은 역설이 조용히 발자국을 따라 나선다.
그곳에서는 추운날이 오히려 더 따뜻하고
눈 덮힌 황량한 세상이 더 아름답고
정적에 쌓인 孤山의 침묵은 무한한 웅변을 토한다.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자연 속에 한 점으로 동화된다
같은 길을 걸어간다.
누군 먼 길을 한탄하고
누구는 남은 길을 아쉬워 한다.
우리가 한탄할 건 흘러가는 세월이 아니라
감동없이 흘러 보내는 시간들이다.
아! 세월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흘러갔다.
세월을 지나 온 바람은 아직도 차고 매섭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곳에서
다시 넘어야 할 큰 산이 바라보이는 작은 언덕에서
돌아 온 길을 바라본다.
내가 걸어가며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내가 고통과 아픔에 힘겹게 넘었던 수많은 산들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난 드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 이었다..
무수한 아름다움에 다가가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려 노력 했음에도
감동할 수 없었던 시간들
고뇌 속에 흘려 보낸 아까운 시간들은
나의 어리석은 가슴 탓이었다.
가장 소중한 것이란 믿음 속에
내가 쫓았던 것들
내가 꾸었던 꿈들
세월이 더 흐르고 나서야
그 부질없는 삶의 욕심이
정작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많이 잃게 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가슴이 따뜻해 온다.
산 길을 걸으면
지나간 길의 아름다운 잔상과 감미로운 음악의 여운이 몸을 휘감고
문득 어느 산모퉁이에서 만날지 모르는
아름다운 것과 어느 잃어버린 기쁨에 대한 기대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님이여
시간이 바람처럼 지난 그 길 위에
아름다운 향기 남아
나비 날게 하소서
다시 배낭을 멜 수 있음에 안도한다..
지나온 길과 흘려 보낸 시간의 아쉬움이 기꺼이
새벽의 들창을 밀치게 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전히 가슴을 뜨겁게 한다. .
이젠 정말 추고 싶은 춤을 추어야 겠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러야 겠다.
2011.1.9 지리산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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