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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낙동제 16구간 (한무당재- 관산-만불산-숲재)

 

단체 사진 : 청산

 

 

 

1. 산 행 일 : 201136(일요일)

2. 산 행 지 :  낙동정맥 제 16구간 

3. 산행코스 : 한무당재 ~ 만불산 ~ 사룡산 ~ 숲재

5. 산행소요시간 : 7시간30

6. 날씨 : 맑고 따뜻한 봄날

 

7. 경유지별 소요 시간

한무당재 출발

08:45

관산이 바라보이는 묘지

09:54

관산

10:33

양계장

11:22

목장아래  만불산 들머리 도로

11:35

만불산 (식사 약 20)

11:42

국도

12;33

송전탑

12:52

경부고속도

13:06

형제목장

13:24

사룡산 들머리

13:48

비슬지맥 분기점

15:38

생식촌

15:49

하산

16:15

 

 

 

 

 

언제부터인지 역설이 통하는 낙동 길이다.

회를 거듭하면서 고행이 아닌 즐거움이 떠오르고

마주하는 피로와 고통은 궁극의 기쁨을 불러낸다.

정맥 길은 더 이상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치뤄야만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안식을

찾아 가는 순례의 길이다.

 

탁월한 수면능력과 나이와 더불어 꺾이지 않는 에피타이트야 말로 든든한 후원군이다.

아침식사를 위한 정차가 늦어졌다.

목적지에 가까운 휴게소에 까지 도로여행 길어진 덕에 나의 수면은 연장되었다.

 

낙동 길에 오르는 여정은 늘 똑같다

언제나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움직이는 시간의 기억

몽롱함 속에 여전히 잠이 덜 깬 졸리는 눈으로 버스를 내리면 아직  차가운 바람이

목을 휘감는다.

그래도 라면에 공기밥 하난 말아 먹을 수 있다.

아무데서나 잘 자고 무엇이나 잘 먹는 것

어쩌면 그게 행복한 여행의 비결일지 모른다.

 

관산 가는 길

지난 구간의 눈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흐린 날

3월의 남녘에도 아직 봄은 느껴지지 않는다.

봄이 와도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수북한 낙엽은 흡사 늦가을의 길목을 걸어가는 착각을

만든다.

 

수북한 낙엽

아직 깨어나지 않은 갈색의 산하

한 편의 수묵화처럼 조용히 가라앉은 산과 하늘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정맥 길에는 유난히 묘지가 많다.

정맥마루금은 쉬지 않고 묘지들을 관통하는데 어쩌면 정맥의 기와 명당의 기운이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정맥의 기운은 산 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 틀림없다.

 

 

 

 

 

 

 

 

 

 

 

 

 

푸른 소나무의 구릉지대를 너머 관산이 바라다보이는 넓은 묘지에 도착했다.

그 옛날 부석사와 청량사에서 느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이런 곳이 명당일 게다.

느껴지는 지세의 아늑함과 마음의 편안함

 

관산은 성산일출봉과 닮았다.

평범한 구릉지대에서 큰 산을 일으켰으니 그 산기가 범상치 않으리라

 

 

 

 

 

백두대간 길의 훼손에 대한 우스개 소리로 대간 길이 경운기가 다닐 만큼 넓다고 했다.

관산 가는 낙동 길에  정말 길 가운데  버티고 선 경운기를 보았다.

낙동 길엔 정말 경운기가 다닌다.

 

 

 

 

 

 

 

 

앞선 대원을 머리 위에 올려보며 오르는 가파른 길에서 잠시 뒤돌아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구릉지대의 풍광을 내려다 본다.

그 드넓은 후련함이 주는 산상의 평화에 백화산 주행봉의 위용이 생각났다.

 

관산의 수평능선에 올라 그 멋진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리라 했는데 아뿔사 정작 능선에

오르자 빽빽한 나무숲은 한치의 풍경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가끔 뒤돌아 보며 경치를 감상할 걸 그랬다.

비탈진 등로 어느 난간에에라도 걸터앉아 잠시 우리 걸어온 길을 내려다 보고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세상의 평화와 소박한 아름다움에 취해볼 걸 그랬다.

 

우리 사는 인생이 그렇다.

늘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가고

우린 정작 소중한 것들을 위한 시간 배분에 너무 인색하다.

항상 바쁘다고 소리치던 우리는 많은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서 이루거나 남긴 것

없이 세월이 흘러 갔음에 허탈해 한다.

 

그래서 바람 길에서는 쉬어야 하고

풍경 좋은 곳에서는 잠시 다리쉼하며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취해야 한다.

지금은 다시 돌아 오지 않고 내일은 오늘이 지나서 마주할 또 다른 오늘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삶의 기쁨과 아름다운 시간의 기억들이다.

짧은 인생 길

얼마 남지 않은 길에는 더 이상 삶의 아쉬움과 후회가 없어야 한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청산님이 그랬다.

우리는 너무 빨리 걷는다.

이젠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즐기고 느끼는 산행길이고 여행길이어야 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그건 궁극적으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해내기 위한 낙동정맥이 아니라 즐기고 누리기 위한 낙동길이기 때문이다.

산길을 걷다 보면 자신에 맞는 속도가 있다.

명상에 잠기며 때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걸어가는 속도가

자신에게 적합한 속도이다.

그 속도를 가지고 필요한 곳에서 여유를 즐기는 산행이 바람직한 산행의 모습이 아닐까?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짧은 여행길에 더 많은 것을 돌아보려는 욕심이 고통을 키웠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우린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지 않는 愚를 범한 것이다. 

 

 

 

 

 

어제부터인가 나만의 원칙이 생겼다.

가끔 뒤 돌아 보고 아래를 내려다 보아야 한다.

오름 길은 빨리 지난다.

바람 길과 풍경 좋은 곳에는 꼭 쉬어 간다.

정상에서 느끼는 감동과 인상을 꼭 기억한다.

내 길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긴다.

 

인물사진을 찍지 않았었다.

자연은 변함없이 푸르고 형형색색 아름다운데 사람은 세월에 쉬 늙어 간다.

해가 거듭할수록 사진발이 받지 않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세월은 삶을 원숙하게 만들기도 한다.

젊은이 보다 더 열정적인 늙은이들 또한 많고

젊음의 활기를 대신하는 세월의 위엄과 평화가 사진을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다.

 

아직은 나의 젊은 날을 보내지 않았다.

오늘은 내 살아갈 날의 가장 젊은 날이다.

그래서 다시 변함없는 풍경 속에서 세월의 연륜이 쌓아가는 나의 모습을 즐겁게 바라

보기로 했다.

 

 

카메라는 내게 변화를 주었다.

아니 나를 바꾼 건 세월일지도 모른다.

선두에 선 우쭐함과 기록 갱신의 욕심을 버렸다

산은 넘어야 할 벽이 아니라 즐기고 교감하여야 할 내 삶의 동반자였다.

미지의 땅

아직 무수히 남은 아름다움과 미답의 세상 이기에 나는 어쩌면 내 생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을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걷는 오늘은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기약 없는 침묵의 위해 또 다시 작별의

손을 흔들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카메라의 눈으로 바람처럼 스쳐 지나는 풍경을 기록하고자 함은 사라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아쉬움이고 내 진실로 사랑한 시간과 감정에 충실함이다.

자연의 섭리로 더 이상 떠날 수 없는 어느 날 난 추억의 사진첩을 들추며 희미하게나마

그 시간의 감상과 감동을 반추할 수 있으리라

그 날 그 곳에 내가 있었네

 

그래서 요즘은 꼴찌가 좋다.

중간에서 걸어가는 답답함보다 여유롭게 사색과 명상을 즐기고

때론 유한한 기억을 대신해서 사라질 아름다운 시간을 표구하는 예술가의 기쁨을 누리

기도 한다.

 

풍광이 단조로운 오름 길이나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쏜살같이 내달아 순식간에 후미에

따라붙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 정맥팀 꼴지그룹이라고 마냥 느릴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산 길에 한없이 퍼져 느리적 거리지 않는 한 그 차이는 1시간을 넘기기 어렵다

 

 

 

 

 

 

 

 

관산

관산에는 쓸쓸한 무덤과 삼각점이 있고 표지기가 바람에 태극기처럼 나부끼고 있다.

조금은 허탈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대한 여행객 앞을 막아선 허망한 사망의 모래바람처럼 우리가

힘겹게 올라 왔던 관산은 장쾌한 평야와 구릉지의 멋진 조망 대신 어느 사자의 빈무덤과

쓸쓸한 바람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정상을 따로 말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상실한 느낌이 드는 그런 관산 이었다

 

 

 

 

만불산 가는 길

 

관산 내려가는 길에 갈색의 평온함이 온 몸을 휘감아 왔다.

흡사 그 옛날 뒷동산처럼 나무가 없는 민둥산의 정겨운 모습과 방해 받지 않는 시야에

들어오는 인근 야산의 편안한 풍경들이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길은 역시 숱한 묘지와 동네 뒷산 길을 지나 이어진다.

어느 산길에는 벌목꾼들이 버리고 간 잔해들인지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어 거슬리기도

했지만 거칠지 않은 완만한 길을 느긋하게 걸어가노라니 정맥 길 주유의 기쁨이 조용히

가슴에 차 오른다.

 

 

 

 

 

 

 

 

 

 

 

 

한 오름 길 언덕을 넘어서자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양계장이 나타났다.

닭똥 같은 눈물로 묘사되는 감상이 편린이 풍기는 냄새가 그렇게 강력할 줄이야

멀리 관산은 말이 없고 언젠부터인지 떠오른 태양 아래 닭똥의 냄새는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

제법 높은 곳인데 이런 곳에 양계장 허가를 내준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제역인데 농장 가운데 길을 가로지른다고 쥔 아저씨가 화를 낸다.

근데 닭은 조류독감이지 구제역이 아니다.

그 맘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정맥길 을 우회길 표지를 만들어 놓으시는 노력도 안 한 채

두 눈 부릅뜨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난 산꼭대기에 버티고 앉아 정맥 길을 막아서서 냄새를 풍기는 이 농장에 화가 나는데

더 아름답게 보존 할 수 있을 이 땅을 이렇게 유린하는 그 무분별한 사람들에게 분노가

치미는데….

 

 

 

 

 

 

 

 

 

 

 

 

 

 

바닥 돌로 까지 내려서서 다시 10여분 산 길을 오르면 만불산이다.

넓게 조성한 산 위 평지에서 부처님이 혼자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부처님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산상의 넓은 공터

만불사 주지님은 이 산 위에 만불을 모실 생각인 모양이다.

벌써 점심 때가 되었다.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선두팀에 합류하여 식사를 했다.

우리가 식사를 한 마당의 끝에서 금빛 찬란한 석가여래 입상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식사를 하고 힘차게 출발하는 길에 나무가 브이 사인을 보낸다.

 

 

 

 

 

형제목장 가는 길

우린 이화고개를 향해 길을 떠났다.

탱자나무 덤불을 지나고

아직 가을의 모습이 남아 있는 억새 숲과 낙엽길을 지나고

몇 개의 묘지를 지났다.

 

 

 

여기저기 산릉이 훼손되고 폐철물이 흉물스럽게 쌓여 있는 공장을 지난다.

공장 앞 초지를 가로질러 뛰어가는 고라니가 있어 사진을 찍었는데 카메라가 눈길보다

더 멀리 잡아 사진 속의 숨은그림 찾기가 되어 버렸다.

 

 

 

 

 

 

 

한 굽이 능선 길을 넘어서자 시계가 훤히 트이고  파란지붕 너머로 금부처님이 보이는

능선을 지난다.

낙남 길처럼 정맥길 가까이에 들어와 있는 삶의 모습들에 이질감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만불사에서 부처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정에 오르고 우린 벌써 먼 곳의 중생들을

바라보고 계시는 부처님의 옆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송전탑을 지나고 오색의 표지기가 나부끼는 능선 길을 내려서자 도로가 가로 막는다.

대구,영천 방향이 표시된 하후교차로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들이 씽씽거리는 도로의 분리대를 넘어야 하기에 위험하다.

낙동 길이 처음 넓은 국도에 관통되는 아쉬운 구간인 셈이다.

 

 

 

 

 

 

철길에서 사진 한 장을 찍으며 아련한 추억이 생각났다.

레일 위에 못을 올려 놓고 침을 뱉어 놓고 그 옆에 돌무더기를 쌓아 위치를 확인한 다음

숨어서 기차가 지나기를 기다리던 시절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철도는 수 십 년의 빛 바랜 기억과 함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했다.

정맥 길을 걸으며 가끔 고향의 뒷동산 같은 푸근함을 만났다.

동심을 떠 올리는 그 가슴시린 시간들은 세월 속에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게

했고 가끔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채 하지도 못하고 세월의 풍랑에 휩쓸려 보낸 시간과 사람들이

견디게 그리워 진다.

철길이 내게 던지는 상념에 젖어 지나는 마을 길에서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졌다.

정맥 길은 어쩌면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추억여행 일 수 있기 때문

에 마음의 문이 더 활짝 열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마을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며 여전히 멀리서 우릴 지켜주시는 부처님을 보았다.

 

 

 

 

 

 

 

 

 

송전탑을 지나고 말라 있는 옥수수 밭을 지나고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 지나면 넓은

야산 개간하여 과수원을 조성한 곳에 도착한다.

눈부신 햇빛이 쏟아지고 산들거리는 바람이 목을 휘감는다.

이랑에서는 황토색 흙덩이가 뒤채여 있고 밭둑 여기저기에서는 봄의 새싹이 피어난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멀리 오봉산이 보이고 넘어야 할 사룡산이 아득히 바라보인다.

훼손되어 있긴 했지만 자연에 동화된 갈색의 푸근함과 어느 부지런한 농부의 봄 맞이가

가슴에 따뜻함을 전해주는 길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문득 이상화님의 시가 생각났다.

내가 세상에 시간과 들판을 빼앗기고 있을 때도 봄은 이렇게 오고 있었다

 

 

과수원 길을 벗어나서 정맥 길은 경부고속도로에 관통상을 입었다.

우리는 고속도로의 철망 길을 따라 내려 눈물이 차 있는 지하통로를 지나 형제목장으로 간다.

 

 

 

 

 

 

 

사진 : 청산

 

 

 

 

형제목장 길

나는 나른한  봄과 함께 걷고 있다.

시야의 자유를 확보해 주는 길 위에서 나비 날고 새싹이 피어 나고 있다.

아 불어오는 바람마저 시원하니 오늘 봄을 가슴으로 느끼는 낙동길이 비단 길이다.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헨리 데이빗 소로가 그랬다.

아침과  봄에 얼마나 공명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깨어나는 봄을 보고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아침과 봄날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우린 모두 나이든 젊은이 들이다.

 

누군가 그랬지

늘 가슴에 출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라

오늘은 가슴에 눈부신 봄 들판과 살랑이는 봄 바람 한줄기 들이고 싶다.

 

봄을 가슴 가득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좋다.

기꺼이 봄을 만나러 새벽의 들창을 열어젖힐 수 있는 내가 너무 좋다.

 

사룡산 가는 길

어느 묘지에서 다리쉼을 했다.

좌측의 오봉산이 멀리 우뚝하고

아직 넘어야 할 시룡산이 아득한 곳에서….

 

들판에 쏟아지는 봄을 바라보며 세상의 독기가 빠져나가고 마음이  순화되었다.

가슴에서는 쓸데없는 것들이 비워지고 다시 소중한 것들이 들어왔다.

봄은 벌써 이렇게 가까이 오고 있었다.

봄에 대한 지난 추억과 짙은 그리움이 떠올랐다.

 

혼자 남도로 떠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봄

너무 빨리 지나버릴 아쉬움에 이해인 수녀님의 절박한 봄이 느껴졌다.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지병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사룡산 오름 길

사룡산 오름 길은 거칠었다.

하지만 그 길이 있어 또한 빛나는 길이었다.

반가운 봄바람은 산릉 위에서도 불어 주었다.

아직 황량한 봄이지만 일대에 걸출한 산릉에서 내려다 보는 임박한 비밀스런 봄의

습과 가득한 대지의 봄빛은 감동이었다.

 

동행에 여자 산님들이 없으니 편한 것도 있다.

난 봄바람 스치는 암릉 난간에서 웃통을 모두 벗어 제치고 알몸으로 봄과 만났다.

바람이 먼저 전해주는 봄의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푸른 하늘과 다소 흐릿한 연무로 동화되는 눈부신 봄날이다.

절벽 난간에 기대어 땀을 식히며 내려다본 일대에는 유난히 저수지가 많다.

우리 삶은 아직 저렇게 여유로울 수가 있는데

우린 잿빛 도시에서 너무 세월의 역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분기점에 서서

몇 번인가 봉우리를 넘어 다시 봉우리가 기운차게 솟아 오르더니

비로서 656M 낙동정맥,비슬지맥 이정표가 선다.

봄바람의 교태에 시간가는 줄 모르다 맨 꼴찌로 올라선 마지막 봉우리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멀리서 바라보이던 까마득한 그 길을 바람처럼 걸어 왔다.

사룡산 중턱 까지 따라오시며 배웅하시는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눈부신 봄의 기운과 햇살을 가득 받으며 시간을 의식하지 않았던 희희낙낙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우리 삶의 비극은 떠날 수 없음보다도 떠나고자 하는 열정의 상실에 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봄을 그리워 하지 않는 날 우리 삶의 기쁨은 사라지리라.

 

 

 

 

 

 

 

 

 

 

 

 

생식촌

600고지 아래 마을이 있다.

낙동정맥 8부능선을 끼고 형성된 오지마을이다.

정맥길은 이 생식마을을 관통하고 있다.

속세를 떠나 자연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닮은 삶을 살아 가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기쁨과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만든 부락이다.

인근에 자생하는 무공해 나물과 곡식으로 생식을 하고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강원도에서

경상도 산간을 돌며 약초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일명 시루미기 마을이라 한다.

스스로 믿는 바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 산속의 은둔과 칩거를 통해 소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느님의 믿음과 연결된 스스로의 소신으로 세운 특별한 사람들의 영지를 지나며  경건함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한들 난 생쌀을 씹고 생 시금치를 먹으며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을까?

 

 

 

 

 

 

 

 

 

 

 

 

 

 

 

 

그들의 세상을 뒤로하고 거대한 두 그루의 노송이 환영해 마지 않는 산 길을 내려서 숲재에 내려섰다.

7시간 30분의 길었지만 짧고 감미로웠던 여유롭고 푸근했던 봄의 여행길의 마무리였다.

 

A팀이 준비한 칼국수와 딸기는 꿀맛이었다.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고

세상을 밝히는 것은 나의 마음이고

가장 멋진 동행이 나 자신이었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친구들과  부드러운 바람과 가슴 가득 기쁨을 몰아 주었던 봄의 향기에 감사한다.

 

2주가 지나서 17구간 여행길이 우천으로 취소되고 지난 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가  우연히

UFC타이틀전을 보게되었다.

헤비급의 최강자 마우리시오 쇼군은 무명의 신예 존 존스에게 처절하게 무너지며 화려한 그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대타로 출전한 존 존스가 세계 라이트헤비급 최강 타이틀을 거머쥐었듯이 어제의 태양은 지고 다시

태양은 떠 오른다.

 

사람의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표도르도 패하고 쇼군의 시대도 지나간다.

세월의 힘이다.

 

그 옛날 어느 거친 산길을 바람처럼 종횡하던 날들을 떠 올리며 어느 낙차 큰 산길에서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할지 모른다.

진정한 삶의 아름다운 모습은 묵묵한 수용과 감사에 있는 건 아닐까?

 

거칠게 뛰어 오르며 바라 본 풍경이나 자주 다리쉼 하며  자연 속에 머무르며 교감하는

풍경이나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걸 받아들이고 간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 빛나는 것이다.

 

 

누가 삶의 성공을 규정하고 정의하는가?

 

차라리 지나는 바람에게 물으라 !

아님 스스로에게 물으라

지금 행복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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