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2012년 2월 1일 (수)
행복한 은퇴 준비 ABCD
은퇴가 제3 인생 되려면 재무적 준비뿐 아니라 구체적 목표를 세워야
은퇴가 제3 인생 되려면 재무적 준비뿐 아니라 구체적 목표를 세워야
조사 결과 ‘은퇴생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다’(53%), ‘일하지 않고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39%), ‘은퇴하고 나서 가족들에게 잘할 수 있어 만족한다’(33%) 등 자신의 은퇴생활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행복한 100세 시대를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은퇴생활을 잘 보내야 한다. 이를 위한 실천 전략을 살펴보자.
○감사하는(Appreciate) 마음 가져야
한국 중장년층에게 은퇴에 대해 물어보면 경제적 어려움이나 두려움, 지루함을 떠올린다고 한다. 은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는 것’이라고 돼 있다. 한창 일할 수 있는데 그저 은퇴할 나이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일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노후 생활비는 물론 자녀 교육비나 결혼비용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월급과 일자리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평균 수명 100세가 만족스러운 삶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기존 은퇴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즉 이 시간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선진국에서는 최근 은퇴(Retire)를 재해석하는 추세다. 다시(re) 타이어(tire)를 갈아 끼우고 20~30년을 힘차게 살아가는 나이라는 것이다.
또 은퇴기를 황금시기(gold age), 제3의 인생(third Age)으로 인식하면서 최근에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징(creative aging), 다시 말해 ‘창조적으로 나이들기’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은퇴를 사회생활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꼭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은퇴의 개념을 바꿔 생각하면 은퇴는 더 이상 걱정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한 행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페가 쓴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라는 책에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그림이 등장한다. 다음 장, 또 그 다음 장을 넘겨도 자전거를 타는 그림뿐이다. 상페는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바로 ‘인생의 행복은 균형에 있다’는 메시지다.
100세 시대를 살기 위한 준비도 마찬가지다. 재무적인 준비가 전부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비(非)재무적인 준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아무리 경제력이 탄탄해도 균형을 잡지 못한 자전거처럼 중심을 잃고 무너진다. 가족과 사회활동, 취미나 여가, 건강 등으로 균형 있고 종합적인 ‘행복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을 골고루 갖췄을 때 비로소 행복한 100세 시대 설계가 완성된다.
○부부(Couple)가 함께 준비해야
100세 시대 생애 재무설계는 부부(couple)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하기 어려운 첫 번째 세대다. ‘자식농사’가 가장 믿을 만한 노후대책이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들 한다. 나이 들어 의지할 곳은 자식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배우자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엄밀하게 예측하고 싶다면 부부 중심의 재무설계를 해야 한다.
특히 은퇴생활에도 단계가 있다는 점을 유념하는 게 중요하다. 은퇴 후 노후생활은 △은퇴 시점에서 70대까지 이르는 활동기 △80대 초반의 회고기 △80대 중반에서 사망까지의 간병기 △부인 홀로 생존기 등 4단계를 거치게 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놓치는 부분이 마지막 단계인 부인 혼자 살아가는 기간이다. 일반적으로 부인은 남편을 보내고 10년 정도를 홀로 살아간다.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7년 정도 긴 데다, 대개 2~3살 차이로 결혼하기 때문이다. 고령자일수록 여성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얼마 남지 않은 노후자금마저 남편을 간병하는 데 다 써버리고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하는 부인의 10년이란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 있다.
○구체적(Detail)으로 설계하라
많은 사람들이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거나, 반대로 막연한 꿈을 갖는 경향이 있다. 은퇴 후에 시골에 내려가서 한적한 전원생활을 한다거나 창업을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면 세계 여행을 다니는 꿈 같은 삶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100세 시대는 냉철한 현실이다.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은퇴한 뒤 얼마 안 가 금세 식상해지고 만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도, 딱히 갈 곳도 없어지면서 “오늘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고,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허비할 수도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쇼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휴일이란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려면 자신만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은퇴생활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은퇴 후 목표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상세한 계획을 그려야 한다. 예를 들어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을 돕는다’는 삶의 목표를 세웠다고 하자. 단지 관련된 아동후원단체에 돈만 내면 될까?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더 큰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직접 그 현장에 나가보는 것이 좋다. 현장에 직접 나가 아이들에게 교육시킬 것인지, 아니면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조직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재무적인 준비 역시 빠질 수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생활비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지금까지 마련한 자금과 비교해봐야 한다. 부족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 일찌감치 은퇴 준비를 해서 노후를 멋지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은퇴 후에 귀농해 농사만 짓는 것으로 끝났다면 요즘에는 귀농해 책을 내거나 정보기술(IT) 노하우를 어려운 농가에 접목해 그들을 도우며 살 수 있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식이다.
이들과 같은 은퇴자들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런 분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는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jaeryong.woo@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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