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기행
일 자 : 2013년 4월 12일
동 행 : 마눌과 은비 ,태현
날 씨 : 화창하고 바람 불다.
코 스 : 염불사 – 칠불암-봉화대능선-이영재- 금오산 –상사바위 – 삼불사
소요시간 : 6시간 6분
올해들어 처음 갖는 가족여행이다.
봄에 한 번 떠나기로 몇 번인가 일정을 맞추다가 무산되고 경주에 벚꽃이 흐드러지는 4월 둘째
주에 날을 잡았다.
숙소는 조사장이 주선해 주었다.
보문호에 벚 꽃이 만개할 피크 시즌이라 조사장이 콘도 예약에 힘들었다는데 정작 올해는 벚꽃
개화가 일주일 가량 빨라서 지난주가 절정이었다.
시샘이 너무 많아 완벽한 봄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너무 여린 봄날이다.
내도록 괜찮던 주말에 봄비가 추적거리기도 하고 꽃샘추위가 겨울의 칼바람을 몰고 오기도 한다.
황사가 펄펄날리기도 하고 큰 행사가 터지기도 일쑤다
그렇지 않아도 마주하기 어려운 봄날 벚꽃의 개화까지 맞추는 것은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만나는
것 만큼 어렵다.
지난주 토요일엔 회사 행사가 있었고 오전에는 비까지 내렸다.
아쉬운 벚꽃엔딩이지만 화창한 봄날이라 너무 다행이다.
6시 30분에 떠났다.
어디론가 떠남을 아는지 식욕은 눈을 뜨자 마자 준동한다.
나는 새벽밥을 먹고 마눌과 아이들은 칠곡유게소에서 해장국을 한 그릇 씩 비웠다.
이번 주 내내 비오고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오늘은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은 제법 강하다.
10시가 조금 넘어 보문단지 힐튼호텔에 도착했다.
은비와 태현이는 경주 시티투어 코스에 보내고 마눌과 둘이 대한민국 100대명산 남산 산행을 위해
칠불암으로 이동했다.
오늘 코스는 칠불암- 봉화대능선-금오봉-삼불사 코스를 택했다.
더 욕심을 부릴 수는 있지만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여행길이니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하기로 했다.
남산은 경주의 외곽에 있는 산으로 산 전체가 거대한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는 화창한 봄날 마눌과 함께한 남산 여행길은 즐겁고 여유로운 여정이었다.
염불사 앞에다 차를 파킹하고 출발했다.
온통 싱그러운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는 아름다운 봄날이다.
염불사에서 칠불암 까지는 약 2.2km 정도의 거리로 편안하고 부드러운 숲길이다.
천천히 40여분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고 마지막 가파른 산릉을 따라 대 숲을 지나면
사위가 조망되는 칠불암 앞마당에 선다.
좌측편에는 암자가 있고 우측에는 그 유명한 마애석불이 있다.
바위의 정면과 측면에 암각으로 새긴 정교한 석불로 보물제 200호로 지정되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신도들이 절을 올린다.
나도 한 켠에 배낭을 내리고 삼배를 올렸다.
늘 똑 같은 바램 뿐이다.
“부처님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건강하게 싸돌아 댕길 수 있게 해주세요”
내일 칠불암 산신대제가 있어서 신도들도 많이 붐비고 점심까지 절에서 주는 모양이다.
마눌이 암자 툇마루에서 불렀다..
어느결에 암자에 들어가 자리를 만들고 비빔밥을 내왔다.
양도 나물도 그릇 한 가득 푸짐하다.
시장하기도 했지만 절밥은 담백하고 맛깔스러웠다.
어릴적 어머님이 비벼주신 열무된장비빔밥 이래 가장 맛 있게 먹은 비빔밥이 아니었을까?
한 그릇의 비빕밥이 여행 길을 행복하게 한다.
숙연한 분위기와 어우러진 차분한 미각과 소박한 밥상에 머무는 은은한 봄의 향취가 일품이었다.
김밥과 간식을 준비해 왔는데 김밥은 먹을 일이 없겠다.
눈부신 봄의 햇살에 기분이 한층 고조되고 배도 든든해지자 발길이 한층 가벼웠다.
가는 길 산과 산 사이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높지 않은 산들 사이 넓은 평야지대
경주는 통일신라 시대에 도읍이 될 만한 지리적 여건을 갖춘 곳임에 틀림 없는 듯하다.
개인의 재산권이 묶인 사람들은 아쉽겠지만 후손들을 위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는 주변 땅들이
편안하고 넉넉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산을 올라 칠불암 뒤 신선암과 마애보살 반가상을 돌아 보았다.
칠불암이 내려다 보이는 집채 같은 바위절벽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절벽 한 켠 바위를 깎아 만든
보살상 있다.
부처님이 구름 위에 올라 앉아 눈을 지그시 감으신 채 생각에 잠겨 계시다.
한 줌의 흙조차 허락하지 않는 바위 틈에서 청솔은 뿌리를 내리고 진달래는 한 송이 생명의 꽃을
피워 냈다.
흙의 흔적조차 없는 바위 위에서 꽃을 피워낸 진달래나 푸른 새 잎을 드러낸 청솔은 생명의 경이
로움을 일깨운다..
마치 부처님은 여린 나무의 묵묵한 삶을 통해서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나약한 인간들을 위해
묵언의 깨우침을 설법하시는 듯하다.
우린 경건한 마음으로 절벽에 은거한 통일신라의 불심을 돌아보고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금오봉 쪽
길을 잡았다.
가는 길에 용장계지곡 삼층 석탑 이정표가 있다.
무덤을 지나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산 아래에서 길이 끊어진다.
이정표 방향이 잘 못된 것 같아 아래쪽으로 300여 미터를 더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다시 원래
이정표 방향으로 한참을 더 가도 탑이 보이지 않는다.
부끄럽게도 이건 방향이 맞지 않는 이정표이다.
포기할까 하다가 위쪽 묘지 우측에 길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그 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언덕 위에
비로소 고색 창연한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이거야 말로 진짜 보물 찾기 하는 것과 다름없다..
탑의 모습은 천 년의 외로움과 삶의 고행이 아니라 오랜 세월 명상과 수행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구도자의 편안한 얼굴이었다.
오랜 세월의 연륜을 어깨에 걸고 푸른 하늘아래 당당히 서 있는 석탑의 모습에 감동이 일었다..
“그 장구한 세월의 비바람을 거치고도 저렇게 늠름하구나. !”
합장을 한 채 탑을 세바퀴 돌았다.
이후 이영재 까지 봉화대 능선을 따라 가는 등로는 남산 주변이 한 눈에 조망되는 한적한 길이었다.
가는 길에 활짝 웃는 진달래가 반기고 가끔 커다란 바위와 멀리 첩첩의 산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겨울을 견디고 새 생명을 피워낸 초목도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우리도
모두 가득한 봄의 축복 속에 있었다.
우리는 봄이 행복감으로 온몸을 감싸오는 걸 느끼면서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 간식을 먹기도 하면서
태고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산릉을 여유롭게 흘러갔다.
봄 빛은 눈부시게 빛났고 다소 쌀쌀한 기운을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은 최상의 산책길을 만들어 주었다.
이영재에서는 금오봉 쪽으로 넓은 임도가 나 있었다.
임도를 따라 가다 만나는 삼화령에서는 건너편 고위봉을 비롯한 걸출한 봉우리와 능선이 조망돤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보면 연화대좌가 나온다고 했는데 잠시 그 앞에서 잠시 휴식하면서도 그 곳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삼화령을 지나 옆으로 힘차게 뻗어가는 산릉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임도를 걷다 보면 갑자기 용장골
표지판과 이정표가 나온다.
금오봉 가는 길 좌측 편으로 내려서면 550지점에 용장사지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설마 또 잘 못된 이정표는 아니겠지 ?”
조심 조심 내려가야 하는 길이다.
능선 아래 쪽 어딘가에 또 하나의 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조금 가파르게 아래로 떨어지는 그 길을 따라가서 계곡 깊은 곳에 숨겨진
용장사지와 용장사 삼층석탑 그리고 마애여래 좌상을 찾아냈다.
석탑만 남아 있는 용장사지는 참으로 풍광 좋은 절묘한 위치에 은거하고 있다.
앞이 산으로 막혀 있으되 답답하지 않고 날카로운 절벽 위에서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고 후련해짐을
느낀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186호에 속한다..
우측편 잘생긴 소나무 하나 있다.
뒤로 아늑한 분지와 그림 같은 산릉은 마치 불국 수미산 인 듯 이속에서 유리된 세상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으헉 ! 부처님 머리가 없으시다. !
우짜 이런일이....
마눌과 밧줄을 타고 내려가 보물 913호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187호 석조여래 좌상을 만났다.
석조여래 좌상은 32년 일본인들이 복원하였다는데 안타깝게도 머리 부분이 유실되어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너무도 독특한 양식의 탑이다.
잃어버린 부처님의 머리는 찾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석조여래 좌상 앞에서 치성을 드리던 사람들에게 연화대좌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우린 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임도로 돌아왔다.
마눌을 두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서 결국 연화 대좌를 찾아 냈다.
길 옆의 비탈 길을 타고 바위 암릉에 올라야 연화대좌를 만날 수 있다.
고위봉과 먼 산릉들이 한 분에 바라다 보인다.
오랜 옛날에는 사바세상을 굽어보는 부처님이 그 곳에 앉아 계셨던 모양이다.
부처님처럼 연화대좌 위에 앉아서 잠시 내 사는 사바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
세상의 기쁨과 행복은 부처님과 신이 도움 가운데 궁극적으로 내가 찾아내고 만들어 가야 할 것
이었다.
무릇 범인이 찾아야 할 것은 현생의 평안과 기쁨이고 현생의 극락이 아닐까?
내세의 복락은 현세의 덕과 업으로 부처께서 평가하여 마땅한 길로 인도하실 게다.
어쩌면 내가 걸었던 무수한 산 길이 극락정토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금오산의 이름이 꽤 많은데 구미, 하동, 여수에도 금오산이 있다.
경주 금오산은 (鰲)자라오 자를 쓴다.
금거북이가 서라벌 깊숙히 들어와 편안하게 앉아 있는 형상이란다.
부인과 아들을 대동하고 올라온 할아버지께 인증사진 한 장을 부탁드렸다.
하산 길에 상사바위를 거쳐 마애 석가 여래좌상을 찾아 보았다.
오랫동안 보수공사가 진행된 관계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통행금지 팻말을 넘어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유형문화재 제 158호에 속하는데 자연 바위벽에 새긴 석가 여래불로 높이가 6m에 이른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끊임 없이 절하며 치성을 올리는 불자님 한 분 있다.
부처님은 그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모두 알고 계실까?
어쩌면 절대자에게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 하는 믿음 자체게 세상의 고통과 번뇌를 내려 놓는
치유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린 태고로부터 이어져온 믿음과 불심의 정토를 소요하고 다시 사바 세계로 내려왔다.
하늘엔 뭉게구름 뜨고 수미산 언저리 고대불국엔 고요와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마치 유적을 찾아 보물찾기 하듯 남산의 매력에 푹 빠진 하루였다.
돌아 오는 길에 옥룡암에 들러 목련과 동백이 흐드러진 법당을 돌아보고 탑곡 신안사 절터의 마애불상군의
웅장한 조각까지 감상한 후 시티투어가 끝나 호텔에서 기다리는 아이들과 합류했다.
경주 전통 떡갈비와 함께하는 미각여행은 하루의 즐거움을 결산해 주었고 안압지의 야경은 마치 태평성대
신라의 융성을 증거라도 하는 듯 경주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 놓았다.
어둠을 불어가는 바람 결에는 지난 세월의 향기가 실려 왔다.
사라진왕국의 영광과 남아 있는 유물들이 이야기 했다.
도도히 흘러가는 억겁의 세월 속에서 너는 뜬구름이고 찰라를 불어가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리 삶은 더 소중한 것이다.
어디선가 음악소리 들린다.
우린 함께 장단 맞추며 저마다의 신명으로 삶의 소절마다 즐거운 추임새를 넣어야한다.
흥을 돋궈야 하고 춤은 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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