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3일 연휴일정이 모두 빠그러졌다.
원래의 제 1안은 백대 명산 60번 째 순례로 지리산 천왕봉 해돋이를 함께 보는 것이었다.
제헌절에 마눌과 중산리로 가서 점심 챙겨먹고 법계사에 들러 천왕봉에 올랐다가 장터목
산장에서 일몰을 감상한다.
그리고 다음날 장터목 산장에서 일출시간에 맞추어 출발하여 마눌과 함께 천왕봉 해맞이
를 하며 제 60명산 주유를 자축하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그럴 듯 했다.
만일 사소한(?) 산장 예약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책상머리에 15일전 예약가능일을 메모해놓고도 예약 오픈 시간에 3분이 늦었는데 그 3분
지각으로 모든 것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주말 지리산 대피소 예약은 1분안에 모든 상황이 끝나 마감되어 버린다.)
제 2안은 두타산 등정
어쨌든 환갑잔치처럼 60회 기념 행사는 뻑쩍지근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안을 모색하던
차 퍼뜩 떠오르던 생각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추억과 설레임
고적대에서 연칠성릉을 거쳐 두타 청옥을 연결하던 고원의 장엄한 산군의 파노라마 속에서
전율처럼 솟아 오르던 그날의 감동.
“그래 이거야 !”
아직 대어가 남아 있었다.
마눌과 무릉계곡에서 1박하고 두타산성 쪽으로 두타산에 올라서 박달재로 하산하거나 아니면
청옥산 까지 연결하는 거다.
근데 또 일이 생겼다.
점쾌에 문서가 나갈 운수가 있었는지 어쩔 수 없이 미루었던 계약이 하필 토요일에 성사가 되게
되었다.
“깨갱 깨갱”
할 수없이 산행은 금요일 하루만 하기로 했다.
“띠옹 ~~~피그르르 ” (현기증나고 바람빠지는 소리)
산 행 일 : 2013년 5월 17(금) 석가 탄신일
산 행 지 : 황장산
산행코스 : 안생달(10:46) → 작은차갓재(11:16) → 묏등바위(12:20)→ 황장산 (12:45)→
감투봉(13:50) →황장재(14:21)) →폭포(15:51 생달리도로(16:24)
날 씨 : 화창하고 바람 좋다
거 리 : 잘 몰라유
소요시간 : 약 5시간 38분 (식사 약 20분)
동 행 : 마눌
교 통 : 마눌카
시간 |
경유지 |
비 고 |
10:46 |
안생달 |
증평IC- 문경 동로 이동 |
10:56 |
와인 까페 CAVE |
|
11:26 |
작은 차갓재 |
|
12:09 |
능선 전망바위 |
|
12:20 |
묏등바위 |
절벽 –로프있음 |
12:45 |
황장산 |
942.1m |
13:00 |
식사 (약 20분) |
|
13:50 |
감투봉 |
|
14:21 |
황장재 |
우측하산 |
14:47 |
전망바위 |
|
15:51 |
폭포 |
탁족 및 알탕 |
16:24 |
생달리 도로 |
산행 끝 |
16:39 |
생달리 삼거리 |
도로이동 |
16:56 |
안생달교 |
도로이동 |
17:06 |
안생달 |
도로이동 |
황장산
하늘재 포함산 대미산을 넘어 유장하게 굽이치던 능선에서 만난 절경의 산
어젠가는 꼭 다시 가서 싶었던 산이었다.
내 흐릿한 기억이 있어 그 옛날 백두대간 산행기를 들쳐 보았더니 아뿔사 이건 웬일이래?
26구간 저수령- 벌재 –대미산- 포함산 – 하늘재 구간의 산행기만 사라진 상태다.
분명히 그 길을 걸었고 기록을 남긴 것도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디스크 파일에도 블로그에서도
그 흔적이 사라졌다.
내 기억엔 어둠 속 치마바위와 황장산의 가슴후련하고 아름다운 새벽 풍경의 잔상이 아직 남아
있다.
하여간 변변히 등로를 챙기지도 못하고 아침에 구간에 대한 정보만 몇 개 챙겨서 황망히 출발
했다.
원래 생각은 안생달에 차를 놓고 버스를 타고 벌재 까지 가서 백두대간 때처럼 치마바위를 지나
황정산에 올랐다가 차갓재를 거쳐 안생달로 회귀하려 했다.
10시 30분쯤 안생달에 도착했는데 벌재가는 버스편은 시간도 맞출 수 없을 뿐더러 그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큰 길 까지 마을 버스를 타고 나가서 다시 시외버스로 갈아 타야 했다.
"그렇게 하다가는 집결지 가지 이동하다가 날 새겠다."
차선으로 문경 콜택시를 문의하니 38,000원
"흐미! 그 돈이면 맛난것 사먹는게 낫지"
우리는 그냥 안생달에서 차갓재를 거쳐 황장산에 올라서 상황을 보아 가면서 등로를 조정 하기로 했다..
황장산에서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감투봉을 거쳐 치마바위 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감투봉 전
계곡 길로 하산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감투봉 오르기 전 안부에서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산태골 계곡 길로 하산
하면 그리 어려울게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 편히 출발했다.
등로는 거칠고 험했지만 묏등바위 를 앞 둔 능선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5월의 황장나라 풍광은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릴 지경이었다..
분명이 내가 지난 백두대간 길인데 처음 가는 길처럼 모든 풍경이 새로웠다.
묏등 바위에는 로프가 달려 있었는데 마눌은 오금이 저려서 올라 가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다른 우회로를 찾아 보았지만 길은 외길이다.
다른 방도가 없어 마눌은 두려움을 무릅쓸 수 밖에 없었고 마눌은 거대한 수직 암릉 외가닥 로프에 의지한 채
매미처럼 파르르 떨면서 어렵게 어렵게 묏등 바위에 올랐다.
절벽 바위길이 장성처럼 황장산으로 연결된다.
황장산 바로 아래 더 높은 곳에서 바라 본 첩첩 산군의 푸를 물결은 장관 이었다.
사위가 녹색의 바닷 물결로 출렁이고 난 마치 일렁이는 초록의 파도에 멀미가 나기라도 하는 듯
초록의 바다 한가운데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신천지에 당도한 모험가의 스릴과 성취감을
맛보았다.
우리는 한 척의 외로운 돛배를 타고 아무도 없는 망망한 초록 바다를 유영했다.
“오늘 인증샷 해줄 사람도 없겠네.”
황장산 정상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고 한 켠에 표석이 외로이 서 있었다.
11년 전 이 표석을 기억한다.
다행히 한 켠에서 산님 세분이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길도 없는 계곡 길로 올라 왔다는데 아마도 산태골로 올라 온 산님들인 모양인데 거의 흔적이
없는 계곡 길을 만들어서 올라 왔단다.
처음에는 그 분들이 길을 잘 못 들었으려니 했는데 나중에 내려와서 생각해보니 등로가 가파른
계곡 비탈길이라 비가 오면 길의 흔적이 휩쓸려 내려가는 데다가 엄한 산행감시로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길이 또렷하지 않은 탓이었던 것 같다..
그 분들한테 자몽을 몇 개 얻어먹고 식사중임에도 인증샷을 부탁드렸다.
한 분이 흔쾌히 숟가락을 거두고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다 이렇게 넉넉해서 좋다.
우린 그분들과 인사를 하고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서서 한적하고 전망 좋은 곳에서 식사를 했다.
열무김치와 상추와 쑥갓이 전부인 소박한 식단이지만 거친 길의 시장기와 어울어진 야외 식사는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만찬이고 성찬이었다..
식사후 후식까지 챙겨먹고 출발했다.
치마바위 까지 갈 요량을 했는데 나중에 스마트폰을 검색해보니 황장산에서 치마바위 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가 되는 것으로 나와 되돌아 오려면 세시간이 걸릴 것 같다.
황장산에서 치마바위 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거칠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몇 달 전 까지도 이 일대는 출입통제 구역으로 관리공단 직원들이 길목마다
지키고 이정표나 표지기를 다 없애 버렸다고 한다.
지도상 산태골 하산로가 있을 만한 위치에 길 표시가 없어서 의아해 했는데 계속 가다 보니
감투봉이 나타났다.
공단직원들이 표지기를 떼어버리고 정규 등로 자체가 워낙 가파를 비탈 길이다 보니 길의 증거와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길이 점점 험해져서 치마바위 까지 갔다가 오는 것은 포기하고 조금만 더 갔다가 되돌아 가려하는
차에 감투봉 아랫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만났다.
그들에게 길을 물어보니 생달리쪽에서 촛대바위를 거쳐 황장재로 올라왔다고 했다.
스마트 폰에서 본 지도에서는 생달리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등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올라 온 생달리 쪽 수리봉 등산로에는 거대한 바위의 대슬랩이 있어서 올라 오는 길도
위험했지만 내려가는 길은 더 위험하다고 했다.
바윗길이 45도가 넘는 경사인데 올라오면서도 잡을 때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우리가 내려가는 길이
가능할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건장한 사내 둘이 오르기 힘들었던 암릉길이었다면 마눌과 함께 내려가기엔 더더욱 불가능한 길이라고
봐야 한다.
가파른 암릉길은 겁 많은 마눌에게는 쥐약이다.
나야 상관이 없지만 심한 경사면이라면 마눌은 100 프로 못 간다.
지도를 보니 내려 가는 길 중간에 갈림길 표시가 하나 되어 있었다.
저 길을 찾으면 슬랩을 우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일 안되면 다시 돌아 오면 되지…
대슬랩을 피해 길을 찾아 잘 내려왔으니 망정이지 걸어보니 다시 되돌아 온다는 건 애초에 말도
안되는 참으로 무모한 발상 이었다.
감투봉을 휘돌아 황장재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게 떨어지는 우회 절벽 길이었다.
그런 거친 길을 내려가서 댜슬랩 까지 두어 시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마눌에게 체력적으로
무리였다.
산님이 가지고 있는 지도에 대슬랩 구간의 표시가 없어서 우회로가 대슬랩을 지나야 만 나는 건지
대슬랩 이전에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설사 대 슬랩을 만나도 어찌어찌 내려 갈 방도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우린 황장재에서 갈라진 능선 우측 길로 접어 들었던 것이다..
초보를 데리고 산행하면서 등로에 대한 조사나 지식을 거의 갖지 않고 출발했으니 수십년 산에서
도닦은 산꾼이란 자찬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아마도 더 합리적인 판단은 황장재에서 되돌아가서 산태골로 내려가는 길이었겠지만 그 거친 길을
되돌아 감투봉 너머 산태골로 내려서는 것도 사실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면 심증이 가는 안부가 있긴 한데 길의 흔적이 전혀 없었던 것도 문제
였다.
다행히 대 슬랩을 앞둔 직진 길에서 우측 갈림 길을 찾았다.
길의 흔적이 희미하긴 했지만 오랜 산꾼의 감각으로 어렵사리 찾아갈 정도는 되는 길이었다.
내리면서 좌측의 대슬랩 능선길을 바라보았다.
머눌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저 정도면 중간에 오도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 다시 돌아
가야 했을 험한 바위 리지길 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등반 중에 실족하여 사망한 사례가 몇 건 있었던 아주 위험한 길이었다..
검색해본 지도도 제각각 이었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한 지도에는 황장재에서 생달리 쪽으로 하산하는 루트 표시가 없었고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한 어느 지도에도 수리봉 암릉 이전에서 갈라지는 등로에 관한 표시가 없었다.
그 두사람을 만나 것은 행운이었다.
그들도 그 우회 루트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나는 그들이 보여준 지도의 기억을 더듬어 수리봉
대슬랩을 우회하는 갈림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신록이 싱그러운 5월에 스릴과 모험이 넘치는 멋진 산행을 했다.
예상대로 길이 나타나 주어 안도했지만 구간 구간이 멋진 풍경과 예측불허의 암릉과 난코스로
이루어져서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쳤고 동행한 마눌에 대한 걱정 때문에 노심초사 하느라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길이었다.
온 산이 황금 빛 초록으로 대지의 기운이 가장 왕성할 때였다.
모든 생명의 기가 가장 왕성한 오월 대지의 생동하는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가슴 가득 청명한
대기를 호흡했다.
마지막 사위가 고립된 폭포에서는 마눌은 탁족하고 나는 알탕 까지 하는 호사를 누렸으니 그 능선길
에서 1년은 젊어지고 1년의 에너지는 비축했다.
20여분 걸어 안생달 갈림 길에 마눌을 기다리게 하고 나 혼자 안생달로 난 길을 따라 올라 차량을
회수했다.
아름다운 오월의 눈부신 날이었다..
백두대간 종주 사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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