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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금정산 (백대명산 제 57산)

 

세월은 묵묵히 흐르기만 하는 건가?

지나간 기억들이 그리 아득하지도 않고 내가 그린 삶의 궤적은 인생 길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도 않았는데

우린 벌써 결혼 25주년이란다.

 

어느날 비로소 나는 실감한다.

굉음을 울리는 시간전차의 소리….

그러나 나는 듣는다 .

시간의 전차가 등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를…”

 

마눌이 결혼 선물 해달라고 조를 때도 그냥 또 한 해의 결혼 기념일이 다가왔구나 했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하는 돌아오는 기념일

내가 늘어뜨린 거미줄 같은 삶의 인연 속에 무수히 쏟아지는 애경사

마치 내가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임을 망각이라도 할까 봐 리듬을 타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들 아니던가?

딱히 새로울 것도 없이 또 하나 올게 왔구나 !   그런 정도였다.

그러면 조건반사처럼 또 하나의 생각이 뒤따른다.

 이번 상황은 오떻게 슬기롭게 넘어가지?”

 

근데 25주년 이란다.

아뿔사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그 많은 세월이 찰라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살아온 날들이 한 바탕 꿈처럼 몽롱하고  구태여 내 삶의 나이테를 헤아릴 겨를도 없었는데

우리가 벌써 그렇게 되었어? “

 

올해는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새삼  내 삶의 나이테와 다 커버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25년의 연륜과 세월의

흔적을 실감해 본다.

 

그래도 즐거운 일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행복한  25년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후회없이 놀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잘 놀며 즐겁게  쏘다닌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혼자 산 열쓈히 다니다가 마눌델구 백대명산 순례하구 설악산 몇 번 가구

짧은 휴가를 이용해서 해외에도 몇 번 함께  갔다.

장가계, 일본, 앙코르와트

“20주년에는 뭐 했더라?”

 

산행과 여행이 일상화되다 보니 장부를 들쳐보지 않는 한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건 일상적인 여행 수준을 크게 벋어나지 않았다는 거다.

 

강산이 두번 반 변한 은혼식이라는데 뭔가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연말 ! 대책없이 바쁜 시기라  통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19일 선거휴일에 하루 휴가를 내서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아쉬운 대로 구색이나 좀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어디로?”

사실 돈을 물쓰듯(?)하는 여행은 봄과 가을에 떠나야 한다.

계절에 따라 같은 돈을 써도 누리는 기대 효과가 다른 법이다.

행동반경과 느낌의 감도가 달라진다.

 

연말의 바쁜 회사일정으로 갈수 있을지 반신반의 하면서 부산을 가기로 했다.

내 삶의 오지 부산

여행과 낭만의 계절엔 늘 도심을 벗어나는 버릇이 들어서

자연이 잠드는 계절엔 인간이 쌓은 도시의 바벨탑과 화려한 불빛을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100대 명산 금정산은 아직 미답으로 남아 있다.

망설이는 사이 마눌은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을 예약했고 금반지 세돈 씩으로 반지까지 맞췄다.

으헉…”

그래 금은 투자니까…”

그리고 25주년 이니까

 

멍석이 깔았던 어찌하다 멍석이 깔렸던 기회가 주어지면 제대로 한바탕 춤을 추는 것이

무릉객의 근성(?)아닌가?

 

 

 

 

 

차가운 날

5 30분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투표소에 들러 새벽 같이 투표를 했다.

마눌카를 몰고 시청으로 가서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전천을 타고 대전역으로 갔다.

대전발 7 30분 부산행 KTX

거리와 시간의 문제로 놀러 갈 때는 절대 KTX를 타지 않는다는 스스로 정한 룰을 무너뜨리면서

우린 부산으로 떠났다.

 

 

 

 

 

 

 

 

 

 

 

 

 

 

부산에 도착해서 스마트폰을 검색해서 영주 복국으로 갔다.

까치복해장국  \12,000 

맛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늘 입맛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 나의 평가의 신빙성이 없다고 말하던 마눌도 맛이 괜찮다고 했다.

 

 

 

 

 

 

 

 

 

 

 

 

 

 

다시 부산역으로 걸어와서 전철을 타고 범어사 역까지 갔다.

범어사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범어사 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조금 걸어가는데 범어사 까지 인당 2000원 달라고 택시가 호객을 한다.

탈까 하다가 좀더 걸어 올라가니 그곳에는 범어사로 가는 버스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잔머리의 대가

진화의 결정체 만물의 영장들이 만든 참 편리한 세상이다

신용카드 한 장으로 전철을 이용하고 다시 그 카드로 버스에 환승한다.

환승비용은 달랑 200

 

 

 

창구에 줄지어 매표를 하던 그 때가 언제였나?

나의 비장의 메모리에는 콩나물 시루 버스에 친구들을 엉덩이로 밀어 올리며 버스문을 치던

안내양의 추억도 얌전히 간직되어 있다.

요즘은 부쩍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경의를 표할 새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들이 많은 세상

사는 게 편해질수록  일자리는 사라져가고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점점 메말라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에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문명은 점점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킨다.

점점 더 양상이 심각해지는 경쟁에서 밀리는 사람들의 삶은 자꾸 팩팩해 간다.

정권을 잡으려는 무수한 정치인들이 목청 높여 외치던 분배의 정의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넘어서지 못하고 번번히 좌절된다.

정치가 타락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이 깊어지면서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신분과 부는

지속적으로 대물림 될 수 밖에 없다.

어젠 씁쓸한 통계를 보았다.

부모의 소득이 10% 떨어질 때 마다 자녀의 수능 등급도 0.06% 하락하는 바면 월평균 사교육비가

10만원 상승하면 수능등급은 0.04 % 오른다.

현행 입시제도는 한국판 카스트제도 라고

 

?  정말 중요하다.

엄청 많으면 얼마나 좋은지 많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없으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세상에 휘둘리며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궁색하지 않은 만큼 있으면 절약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마음으로 채우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삶은 고행이 될 것이다.

 

늘 오랜 기억들을 되짚어 보면 수 많은 사람들로 분주하며 생동감 넘치던 은행이며 시장이며

 터미날 이었다.

 

이젠 은행과 시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거기에 앉아 있어야 할 수 많은 사람들은 집으로 갔다.

한 때 식당주인이 되고 편의점 주인 혹은 호프집 주인이 되었다가  대다수는 폐업의 통계만 늘린 채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 갔다.

 

정치와 국가의 명징한 한계.!

학습효과를 통해서 개인의 삶은 돌볼 수 있는 정치와 국가의 뼈저린 한계를 경험하고 그 기대치는

점점 낮추어 갈 수 밖에 없음을  실감한 사람들도 오늘은 다시 한 번 새로운 기대에 부푸는 날이다.

혹시나 …”

 

정치인들의 포풀리즘이 경제를 망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그런 대통령

많은 서민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줄 백마를 타고 올 초인 대통령을 다시 기대해  본다.

 

 

 

 

 

 

 

 

 

 

범어사 에서는 오랜 세월의 연륜과 포스가 느껴졌다.

 

범어사(梵魚寺)는 신라 문무왕(678) 의상대사가 화엄십찰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

화엄경의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고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

하고자 설립된 사찰로서,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도인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기득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金井)이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梵魚)황금우물 그리고 신 이름을 따서 '금정산 범어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웅장한 일주문과 오랜 수령의 은행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 중 첫번째 문인데,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에 통한다'

불교 사상이 담겨있다.

처음 세워진 때는 알 수 없으나 조선 광해군 6(1614)에 묘전화상이 절의 여러 건물들을

고쳐 지으면서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숙종 44(1718) 명흡대사가 나무기둥을 돌기둥으로 바꾸고, 정조 5(1871) 백암선사가

현재의 모습으로 고쳐지었다.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일렬로 된 4개의 초석위에 짧은 배흘림기둥을 세워 틀을 짜고 다포계 겹처마의 지붕을 올려

놓아 자체의 무게로 몸을 지탱하는 구조이다.

 

중도리와 마구리에도 백토를 넣어 미감하고 단청을 칠해 화려해 보인다.

안정된 조형성이 돋보이며 전통건축의 공법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라 하는데.

부산 범어사 조계문(釜山 梵魚寺 曺溪門) 2006 2 7일 보물 제 1461호로 지정되었다.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

 

앞면 옆면 3칸 크기를 가진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 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

이다.

 

건물 안쪽에 불상을 올려놓는 자리인 불단과 불상을 장식하는 지붕 모형의 달집에서 보이는 조각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주선 중기 불교 건축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범어사에는 부산시 유형문화재 15호 당간지주, 16호 석등, 22호 명부전, 63호 팔상.독성. 나한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가 있다.

 

 

 

 

 

 

 

 

 

 

 

 

 

 

 

 

 

 

 

 

 

 

 

 

 

아침에 나올 때 무척 추운 날씨라 걱정했는데 부산이라서 그런지 날씨는 그다지 춥지 않았다.

움직이는 동안에는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맑은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져서 춥지 않은 날 보다도 쾌적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등산을 할 수 있었다.

 

 

 

 

 

 

 

 

 

 

 

 

 

 

 

 

 

 

 

 

 

 

서울처럼 대도시의  빌딩숲이  흉물스럽게 내려다 보일 거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금정산은 전체 면적이 상당히 넓었고  능선에서 눈에 들어오는  산과 녹지 그리고 강 주위의

넓은 분지 등의 여백이 많았다.

그래서 인지 띠를 형성하며 조용히 따라오던 도시의 모습과 멀리 보이는 빌딩 숲은 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나 낭만적인 항도 부산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았다..

 

 

 

  

 

 

 

 

 

 

 

  

 

 

 

 

 

801m 고당봉에 섰다.

일대에 걸출하게 군림하는 바위봉이다.

차갑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무심히 흐르고 동쪽으로는 오륜대 호수와 온천천 수영강이 바다와 만난다.

금정산성은 고당봉에서 산성마을을 에워싸며 양쪽 능선을 따라 17.737km의 길이를 이어가는

가운데 동문,서문,남문,북문의 4대문이 그 길목을 지키고 1,2,3,4 망루가 부산 전역을 조망한다.

고담봉 아래는 산식각과 전망대가 있다.

아래 금샘에는 금빛 물고기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금정산군은 주봉인 고담봉(801m)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봉이 위치하고 북서쪽에 계명봉이

위치한다.

능선은 북문을 지나 남으로 진군하면서 원효봉과 의상봉 대륙봉을 융기 시키고 제 2망루와 남문을

지나 동진하면서 상계봉과 파리봉을 솟아 올렸다 

전체적인 모양새로 보면 고당봉의 대징군은 동쪽 뒤로 낙동강의 배수진을 치고 장군봉과 계명봉,

원효봉 의상봉의  4 장수의  호위를 받는 모양새다.

 

 

 

 

 

 

 

 

 

 

 

 

 

 

 

 

 

 

 

 

 

 

 

 

 

 

 

 

 

 

 

 

우리는 당초 범어사에서 북문을 거쳐 고당봉에 오르고 고당봉 우측 등로를 따라 내려서서 미륵암을

경유하여 다시 북문으로 되돌아와 산성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려 했다.

처음 그 능선을 다 걸어 볼 욕심을 부렸다.

고당봉을 거쳐 가고자 했던 능선은 원효봉과 의상봉을 거쳐 제4망루와 제 3망루에 올라 일대를 조망해

보고 다시 산성고개와 동문을 지나 대륙봉을 넘는다.

그리고 남진하여 2망루에 올라 다시 숨을 고른 후 남문과 제 1망루를 거쳐 상계봉과 파리봉 까지

오른 다음 화명동으로 내려선다.

 

꿈도 야무지다.

늦은 출발과 먼 이동 거리

부산에 도착해서 아침까지 제대로 챙겨먹고 느긋하게 범어사 까지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돌아보고 나서

12시 다되어 시작한 산행인데 파리봉까지 마무리 하는 계획을 잡았으니 해도 너무했다.

게다가 고당봉에서 미륵암 쪽 하산로를 지나치는 바람에 계곡 아랫 쪽으로 내려서서 북문 까지 경사 길을

올라 오는데 시간 소요가 많았다.

 

야경을 내려다 보며 후랫쉬를 밝히고 산행하면 또 모를까 25주년 기념일에 마눌과 함께와서 기념으로 유격

훈련 받을 일이 있나?

혼자라면 어두워지건 어쩌건 상관할 일도 없겠지만 오늘은 날이 날인 만큼 좀 품위를 지켜야 한다..

 

 

 

 

 

 

 

 

 

 

 

 

 

 

 

 

 

 

 

 

 

 

 

 

동문까지 오니 4시가 다 되었다.

지금쯤 내려가야 여유 있게 광안리로 가서 회 한사라 앞에 놓고 소주 한 잔 치고 해운대 호텔로

넘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산행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소 아쉽긴 해도 부산은 언젠가 또 다시 오게 될 것이다.

 

 

 

 

 

나름 의미 있는 백대명산 순례길 이었다.

대도시 인근이고 또 거리상 멀리 떨어진 관계로 쉽사리 계획을 잡지 못해 오랫동안 미답으로 남았던

금정산은 의미 있는 25번째 결혼 기념일을 맞이하여 비로소 오르게 되었으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동문을 통과해서 바로 뒤쪽으로 넘어가자 마자 산성고개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온천역 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대도시 인근 산은 이렇게 교통편이 편리해서 좋다.

산성고개에서 온천역 까지 운행되는 버스는 얼마 기다리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버스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는데  산성고개 도시로 나가는 도로는  급경사의 커브 길을 그리며 오랫동안

산 속을 헤메다 빠져 나간다.

자못 웅장한 산세의 금정산 인데 속세와 연결되는 도로가 너무 깊숙히 까지 관통한 탓에

금정산의 자연과 생태계가 너무 훼손되고 황페화된 것 같아 아쉽기 짝이 없다

 

 

 

어쨌든 우린 버스를 환승하고 택시 까지 타고서야 광안리 횟집에 도착했고 광안대교와

광안리 주변의 화려한 야경을 내려다 보면 한 잔의 소주로 아무 사고 없이 25년을 이어온 결혼생활을

자축하며 낭만적인 축배를 들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다보니 25년 세월이 꿈처럼 빨리

흘러 갔다.

결혼생활의 금과 옥조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되 그런 속에서 서로가 함께 조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일 것이다.

이젠 서로가 닮아가고 있으니 앞으로 25년도 거뜬하지 않을까?

어쩌면 자유로운 세월은 지금보다 더 즐겁고 더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투표가 한참 진행 중이었고 인상 좋은 횟집아줌마와 서빙 총각과

오늘의 선거의 판세와 후보들에 대해 분석하고 정치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나는 조금

씩 기분 좋게 취기가 올랐다..

 

 

 

 

 

 

 

 

 

 

 

 

  

 

적당한 운동 그리고 이향의 낭만과 모처럼 호젓한 일탈로 한껏 고무된 채 우리는 해운데 파라다이스

호텔에 체크인 했고 일본 뱃부온천 분위기가 나는  호텔의 노천 온천욕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

부산의 첫날 일정을 우아하게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