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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화암사

 

 

 

 

 

 

 

 

694년(신라 효소왕 3년) 일교국사가 창건하였으며, 부분적인 중건 중수를 거쳐 1425년(세종 7) 해총(海聰)이

중창하였다.

불명산의 원시림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이곳에서 원효, 의상대사가 수도하였고, 설총이 공부하였다고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다.

임진왜란으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축양식인 화암사 극락전(국보 제316호), 한국

고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화암사 우화루(보물 662)를 비롯해 화암사 동종(전북유형문화재 40), 화암사 중창비

(전북유형문화재 94) 등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비에 한 번 흠뻑 젖고 싶다는 거 그것 참 힘드네요

모처럼 잡은 야유회 날에 비가 와서 많은 사람들은 실망하고 또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슬며시

꼬리를 내렸겠지만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대둔산 지능선 바랑산

옆 동네 산이라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는데  오늘 같은 날 서너 시간  우중 산책하면 얼마나

분위기가 살고 속이 다 후련 할까요?

비오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그 옛날 우중산행의  상념에 잠기는데 느닷없이 비가 많이 오니

산을 가지 말자는 의견이 터져 나오더니  절 답사 얘기가 나오고  삽시간에 여론이 비()山行

아니라 非山行으로 흘러 갑니다.

 

두어 번 그냥 강행하자고 소리쳐도 거들떠 보는 사람 없이 묵살됩니다.

회장의 권력(?)이 사라지고 나니 처절합니다.

그렇다고 동조하는 사람 없이 쿠테타가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말 많으면 그나마 운영위원 자격도 박탈될까봐 말없이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화암사라는 절

 

주차장이 나오고 그럴 듯한 산 길이 나옵니다..

사오백 미터 수림이 울창한 번듯한 길을 지나고

갑자기 길이 계곡 길로 바뀝니다.

오지 계곡 트레킹아 나선 것처럼 축축한 계곡과 비에 젖는 침침한 계곡을 거슬러 올라 갑니다.

절을 찾아 가는 길이 범상치는 않습니다.

지금은 빗줄기가 가늘어 졌지만 비가 제법 많이 와서 군데 군데 폭포수가 떨어 집니다.

붉은 나리 꽃도 비에 젖고

비 바람에 상처받은 풀잎은 아얘 옆으로 누었습니다.

비뿌리는 날 속세를 등진 김삿갓이나 마의태자 묘역을 찾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계단을 지나고

단청조차 빛이 바랜  오래 묵은 세월이 길을 막아 섭니다.

늙었거나 낡았다는 느낌보다 고색창연하고 위풍당당한  절의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고개를 젖히고 우러러 보면 문간을 올라 섰습니다.

 

넒은 경내는 아니었지만 무량수전 생각이 났습니다.

무수한 세월의 풍파와  세속의 오염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래의 모습과

마음을 잃지 않은 지혜로움과 다시 마주했습니다.

시인 안도현이 잘 늙은 절 혼자 감추어 두고 몰래 보고 싶은 절이라고 

그 존재를 함축했듯이

세월이 흘러서 더 아름다운 것도 있습니다.

시린 세월을 묵묵히 견디면서 잃지 않은 우아한 기품과 담대한 위엄 입니다. 

 

한 시간의 여정이었습니다.

화암사를 돌아보지 못했더라면 운주계곡에서  개고기 한 접시 먹고 마천대에 댕겨왔을 겁니다.

그 절의 남긴 여운으로 조용한 산사의 평화를 마음에 계속 들이고 싶었습니다.

 

절을 다녀와서  계곡 물가에 앉았습니다.

술은 한 병쯤 마시고 개고기를  엄청 먹었습니다.

운주계곡 안심사 절 모퉁이에서….

 

직지사 모퉁이에서 구워먹은 삼겹살처럼

그렇게 맛 있었습니다.

 

그리고 빗물대신 계곡물에 흠뻑 젖고 나서

다시 안심사에 올랐습니다.

그냥 먹는 것도 시들하고

물 속에서 노는 것도 시들해 져서….

술 먹고 침 튀기며 하는 이야기들은 늘 공허합니다.

말짱 도루묵입니다

요즘 나이가 들어 가면서 침묵이라는 빛나는 언어의 무게를 다시 느낍니다.

 

극락전 문을 빠끔이 열고 안을 들여다 보다가

나를 쳐다 보시는 부처님한테 화들짝 놀랐습니다.

지은 죄가 있어서….

사람들은 늘 그렇게 이기적이고 몽매합니다.

나는 괜찮겠지….

늘 다른 사람들을 탓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부처님이 이해해 주실 거야…”

그렇게 위안하는 얄팍한 날 보며 헛웃음이 납니다.

 

들어가서  절하는 것은 고사하고 절까지 올라 온 것도 죄스러워

그냥 고개 숙이고 돌아 나왔습니다.

 

오후 4시에 출발 하기로 했는데  마천대 까지 3.5km 이정표를 보자

개고기 먹고나서 그냥 마천대 댕겨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참 경망스럽습니다.

어쩌면 바랑산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왕  비에 흠뻑 젖지 못했으니 땀에라도 젖어보고 싶은 마음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부처님한테 죄스러운 마음일자도 모릅니다.

 

2% 아쉽고 2% 부족한 어느 비오는 날의 오늘이었습니다.

화암사 구경 했으면 됐네 이사람아…!”

 

하여간 중국집에 가서 짬뽕 시키면  옆사랑 짜장이 맛있어 보이고

짜장 시키면 짬뽕이 먹고 싶습니다.

 

세상 이치가 또 그렇습니다.

남을 만큼 많은 개고기가 있고 삼계탕도 있고  숯불구이 삼겹살이 넘쳐 납니다.

먹을 것이 지천이니 더 입맛이 없어집니다.

우리의 삶이 실컷 먹는데 있지 않아서 일 겁니다.

노동 없는 무위도식이 별로 즐겁지 않기 때문 입니다.

 

내년부터는 막걸리 사놓고 운동경기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겠습니다.

비가와도 산을 타고 놀아야 술맛도 살고 흥도 더 날 듯 합니다.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불명산(佛明山)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창건자 및 창건연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중창비에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이 절에 머물면서

수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부분적인 중건 중수를 거쳐서 이어 오다가 1425년(세종 7) 관찰사 성달생(成達生)의 뜻을 따라 주지

해총(海聰)이 중창하였다.

이때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임진왜란 때 극락전 등 몇 개의 당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

되었으며, 1611년(광해군 3) 성징(性澄)이 중창하였고, 1629년(인조 7)에도 중창하였다.

1666년(현종 7)에 영혜(靈惠)가 중창하였으며, 1711년(숙종 37)에 극락전 등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산신각, 보물 제662호로 지정된

 우화루(雨花樓)·적묵당(寂默堂)·철영재(鐵英齋)·요사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1425년에 성달생의 시주로 건립했으며, 중국 남조시대(南朝時代)에 유행하던 하앙식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다.

극락전에는 아미타삼존불과 1858년(철종 9)에 그린 후불탱화, 1858년에 그린 신중탱화, 1871년(고종 8)에 그린

 현왕탱화가 있다.

또 명부전에는 1830년(순조 30)에 그린 지장탱화가 지장보살상 뒤에 봉안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같은 시기의

탱화 8폭이 있다.

이 밖의 문화재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높이 140㎝의 동종(銅鍾)이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된 중창비가 있다.

이 동종은 광해군 때 호영(虎英)이 주조한 것으로, 사찰 또는 나라에 불행한 일이 있을 때는 스스로 소리를

내어 그 위급함을 알려 주었다고 하여 자명종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극락전에는 경판 200여 장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 중에는 1469년(예종 1)에 판각된 <보현행원품(普賢

行願品)>을 비롯하여 1618년(광해군 10)에 판각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등이 있었으며, 현재 전북

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또 고승들의 영정 7폭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들 영정은 허주(虛舟)·고경(古鏡)·낭월(朗月)·보경(寶鏡)·인파(仁坡)

낙암(樂巖)·월하(月河)·벽암(碧巖)의 것으로 전통적인 탱화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오래된 작품이다.

이 밖에도 절 주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3기의 부도(浮屠)와 덕운당(德雲堂)의 부도가 있으며, 모두 조선 후기

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극락전은 1425년에 세워진 불전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多包式) 맞배집으로 잡석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 주추를 놓고 그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극락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고, 전통적인 탱화 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고승들의 영정 7폭을

보존하고 있다. 우화루는 사찰 전방에 일반적으로 놓이는 누각 형식의 건물이다.

지층에는 기둥을 세워 외부와 통하게 하고, 뒤쪽에는 축대에 맞추어 2층 마룻바닥이 내정의 지반과 거의

같게 만들어 앞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정에서는 단층으로 보인다.

주변에 위봉사, 위봉산성, 이치전적지, 천호성지, 송광사, 모악산, 대원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출처] 화암사 [花巖寺 ]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