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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이슈(펌)

근데 밥값은 누가 내나?

허위에 가득찬 '세금폭탄' 공세
빈손 장미꽃 피우겠다는 정치권
보편적 복지 철회가 유일한 해법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경찰 세무공무원 대학교수 기자, 이렇게 네 명이 밥을 먹으면 밥값은 누가 낼까?’ 하는 오래된 우스개가 있다. 물론 정답은 식당 주인이다. 국회의원들이 유달리 이번 세제개편에 반대하는 것을 보니 밥값 레토릭은 역시 정치인을 능가하기 어렵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세금 올리다가 망한 정부를 연표까지 만들어 보도하는 수법은 익숙한 협박 레퍼토리다. 서민과 중산층만 앞장세우면 어떤 논리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거다.

세금을 떼먹는 데 혈안이 된 스웨덴 국민들을 협잡꾼(swindler)이라고 부른 사람은 스웨덴 복지의 설계자 군나르 뮈르달이었다. 물론 그들을 협잡꾼으로 만든 것은 한때 70%를 넘나들었던 가혹한 소득세였다. 스웨덴은 결국 부가세 체제로 돌아섰다. 이후 여러 차례 세제개편을 거쳐 소득세 평균세율은 17%로 낮추고, 부가세율은 25%까지 올렸다. 상속세나 부유세는 아예 폐지했다. 그렇게해서 미국보다 직접세 비중이 낮은 나라가 됐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에는 보편적 세금이라야 한다는 대원칙을 분명하게 세움으로써 복지국가의 골격은 지켰다. 유럽의 조세부담률이 높은 것은 보편적 세금, 즉 부가세가 높기 때문이지 부자증세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세금도 내는 사람만 많이 낸다. 전체 소득의 63%가 세금을 안 내고 인원수로는 43%가 무임승차다. 법인세도 그렇다. 한국 기업들은 국내총생산(GDP)의 3.5%나 되는 많은 법인세를 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9%보다 한참 높지만 그것도 대기업이 세수의 83%를 부담한다. 기업수로는 상위 1%가 전체 세수의 86%를 부담한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중소기업 세금 폭탄이라는 것은 있어본 적도 없다. 새누리당의 호들갑은 가관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지만 비과세 감면도 증세는 증세다. 그러니 언어가 겉돈다.

민주당의 표정이 모처럼 훤해졌다.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다. 어쨌거나 국회로 복귀할 명분을 잡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우선 축하부터하자. 이 폭염에 명분도 없는 노상행각이 며칠이었던가 말이다. 이제 에어컨도 시원한 국회로 돌아가자!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가 서민과 중산층 지갑을 털었다고 파상공격을 펴고 있지만 70%의 저소득 근로자와 서민계층의 세부담이 줄어든 것에는 입을 닫고 있다. 진실과 다른 말을 하는 데는 이골이 났다. 소득 1억5000만원 이상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하자는 이용섭 민주당 의원의 주장은 차라리 솔직하다. 그러나 이번 세제개편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된 사람은 근로자 중에서도 상위 30%에 불과하다.

국민 모두가 혜택을 보게 하겠다는 소위 보편적 복지론은 일종의 언어의 야바위다. 다만 보편적이라는 단어를 그나마 내세우기 위해서라도 재원대책만큼은 보편적이라야 하는 법이다. 국민의 0.5%인 극소수로부터 복지용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은 깡패의 갈취와 다를 것이 없다.

부자들에게 돈을 걷는 최소한의 조건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인간 본연의 이타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복지는 가난한 자에 대한 자선적, 잔여적, 선택적 복지여야 한다. 그래야 부자들도 자긍심을 지키면서 세금을 낸다. 급식도 무상이요, 교육도 무상이며, 의료도, 노령연금도 모두가 갈라먹자면서 ‘돈은 저놈들 한두 명에게서 받아라’고 한다면 국가는 과연 임꺽정과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인가.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무기력한 새누리당은 이 거짓선동 나흘 만에 원점 재검토를 선언하고 말았다. 진정 원점에서 재검토할일은 보편적 복지라는 허구의 논리지만 이정부에 그런 용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 남은 일은 소수의 부자들에게 진짜 세금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다. 조원동 수석은 거위 털 뽑는다는 표현을 잘못 썼다가 국민이 거위냐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부자 세금 폭탄은 거위 털이 아니라 아예 황금 거위를 잡아먹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노상강도에게 걸려든 국회의원이 “나 국회의원이야”라고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멈칫하던 강도가 칼을 고쳐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내 돈 내놔!” 정치인들은 무엇보다 국민의 돈을 제 호주머니 공기돌처럼 갖고 논다. 선심도 처분도 제 맘대로다. 누가 강도라는 것인지.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한국경제 신문 8월 13일자 사설

보편적 복지 요구하면서 세금은 "나는 못내"…정치권이 무임승차 부추겨

朴정부 실책될 듯…재정혼란 우려
복지선진국 대부분 부가세 20%대

 

 

 

 

한국인들의 빈약한 공동체 정신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증세를 거부하면 복지도 사절해야 당연하지만, 복지는 받고 납세는 다른 7.1%의 소수 국민에게 바가지 씌우는 결과에 이르고 말았다. 공동체의 가치를 발견해내고 유지할 책임이 있는 정치는 오히려 그런 기회주의적 선택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정부를 몰아갔다. 다중의 힘과 여론을 앞세워 세금 없는 복지를 강제로 밀어붙이는 식이라면 나라 살림은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로 기획재정부는 어제 세제 개편 수정안을 새누리당에 보고했다. 세 부담이 늘어나는 봉급생활자의 기준을 종전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OECD 기준 중산층 상한)으로 높이고 5500만~7000만원 근로소득자는 종전 16만원이던 연간 세 부담 증가액을 2만~3만원으로 대폭 낮춘다는 것이다. 연봉 3450만~5500만원 소득자의 세 부담은 변동이 없고 7000만원까진 한 달에 2000~3000원 정도 늘어나는 수준이니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세 부담이 늘어나는 봉급생활자는 종전 434만명(소득 상위 28%)에서 205만명(13.2%)으로 대폭 줄어든다. 이 중 100만명은 연 2만~3만원 늘어나는 데 그치고, 실질적으로 세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사람은 상위 7.1%에 해당하는 110만명이다. 결국 당정의 세제 개편 수정안은 복지 확대로 인한 증세 부담을 상위 7%에게만 떠안기는 비열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세금은 공동체 살림의 기초다. 보편적 복지는 더욱 그렇다. 복지 선진국 그 어느 나라건 복지 비용은 극빈층을 제외한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부담한다. 극빈자에 대한 자비적 복지는 부자들이 부담하지만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급식 노령연금 등 보편적 복지는 중산층 모두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공동 부담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이다. 바로 이것이 북유럽 국가들의 조세부담률이 36%대에 달하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일부 봉급생활자의 반발과 야당의 정치 공세에 우왕좌왕한 끝에 “서민·중산층 지갑을 얇게 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 아예 소수를 볼모로 잡는 정책을 선택하고 말았다. 스스로 ‘증세 없는 복지 확대’의 덫에 걸려 국민을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수정안이 그대로 확정돼 시행된다면 앞으로 복지 재원 확보는 물론 세금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기피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두고두고 선례가 될 가능성도 크다. 이제 그 어떤 정당이 세금을 올리자는 이야기를 꺼내겠는가 말이다. 민주당이 중산층 세금폭탄이라고 목청을 돋운 데 대해 좌파 시민단체조차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비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무책임하고 어리석게도 새누리당은 정부 비난에 앞장섰다.

복지 공약에 5년간 135조원이 더 필요하지만 이 돈을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 감면 축소와 세출 조정으로 메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정부 안에도 거의 없다. 당장 올 상반기 세수가 예산 대비 9조4061억원이나 구멍났다. 여기에다 세제 개편으로 걷을 수 있는 세금이 종전 1조3000억원에서 수정안대로라면 9000억원으로 줄어든다. 이것은 또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새누리당은 수정안으로 무마하자는 식이고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법인세 인하까지 회수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법인세 인하 경쟁이 치열한 데다 한국의 법인세수는 이미 GDP의 3.5%로 OECD 평균(2.9%)보다 훨씬 높다. 법인세 인상은 말 그대로 거위털이 아니라 거위를 잡아먹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지금도 법인세나 소득세는 상위 10%가 세수의 80~90%를 부담하는 정도다. 보편적 복지를 말하려면 세금 부담도 공유해야 마땅하다.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돈은 내가 아닌 네가 내라”는 식이라면 더 이상 공동체는 없다. 원칙의 박근혜 정부가 놀라운 변칙을 만들고 말았다.

 

 

 

세금이란 ?  2013년 8월 13일자 한국경제신문 천자칼럼

 

 

내 입술을 보세요. 더 이상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는 이 한마디로 간단히 상대 후보를 눌렀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때문에 그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고 4년 후 재선에 실패했다. 선거참모들의 달콤한 아이디어에 오히려 발목을 잡힌 것이다. 54년 만에 집권했던 일본 민주당이 자민당에 정권을 금방 빼앗긴 이유 중 하나도 소비세율 인상 추진이었다.

세금은 이렇듯 정치변동과 밀접하다. 미국 독립에 불을 댕긴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의 동인도회사 차 수입독점 사업에서 시작됐고, 프랑스혁명도 증세를 위한 3부회의 소집에서 비롯됐다. 우리 국민은 조선시대 백골징포와 일제의 횡포를 경험한 데다 6·25 때 세금을 더 걷기 위해 벼 낟알을 세는 인민군까지 겪은 탓에 ‘세금=수탈’ 인식이 강하다. 복지를 화두로 내세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증세를 공약한 주요 후보가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분명한 것은 단 두 가지뿐인데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세금”(벤저민 프랭클린),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소득세”(아인슈타인), “오줌에 부과한 세금이라도 돈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베스파시아누스) 등의 명언이 즐비하다.

미국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은 ‘지배권력과 경제번영’에서 세금징수자를 왕과 도적에 비유하면서 이를 정주형(定住型) 조폭과 유랑형(流浪型) 조폭에 빗대 설명했다. 정주형은 장사가 잘 되도록 보살피면서 수익을 오래 가져가지만 유랑형은 재생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약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금도 현명하게 걷어야 한다. 복지에는 증세가 필요한데 돈 문제에 고분고분할 사람은 없다. 노무현 정부 때 국채로 복지를 늘리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더 그렇다. 하지만 나랏빚은 세금으로 갚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다지 좋은 건 아니지만 서비스를 원한다면 누군가가 내야 하는 필요악”(마이클 블룸버그)이 곧 세금이다.

 

문제는 거둘 돈은 적고 쓸 데는 많다는 것이다. 이 딜레마는 숨긴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선거판에서 여야 모두 그렇게 복지를 외쳤던 만큼 이젠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걸 터놓고 의논하라는 것이다. 무조건 연봉 얼마 이상은 이만큼 더 내라는 식으로는 조세저항만 불러올 뿐이다. 생 텍쥐페리는 “배를 짓고 싶으면 북을 울려 사람을 모으고 연장을 나눠주라. 배를 짓도록 강요하지 말고 다만 먼바다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일깨우라”고 했다. 리더의 역할은 이런 것이다. 그것이 돈과 직결되는 문제일 땐 더욱 그렇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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