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덧씌워 기업 옥죄는 대신
산업현장의 애로 신속히 해결
창의·투자 실현되게 새판 짜야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작년 한 해 주목받은 경제 현상 중 하나는 주식시장 활황이었다. 2020년 1월 2일 2175.17로 시작한 코스피지수는 12월 30일 2873.47로 마쳤다. 연초 대비 32.1%, 연중 최저였던 3월 19일 대비 97.1% 상승이다. 지금의 랠리가 기업들의 본질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만은 아닌, 풀린 돈의 힘이라는 점은 시장 참가자 대부분이 알고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되는 지금 기업의 내실이 다져지지 않으면 활황이 폭탄 돌리기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기업의 가치에 정부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기업과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판을 짜는 것이 첫째다. 우리 법규제가 이것을 잘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 한 가지로, 세계경제포럼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보고서 결과를 보자. 국가경쟁력 보고서는 기업 경영자들로부터 수집한 설문조사를 비중 있게 사용하기 때문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판단할 당사자들로부터의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원래 9~10월에 그해 결과가 나오는데 작년에는 특수 상황 때문에 12월에 국가 순위가 빠진 특별 보고서 형태로 공개됐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2019년 결과를 보자면, 우리나라는 세계 141개 국가 중 13위였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2위, 국가신용도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기준 16위인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순위다. 게다가 2010년대 중반 25~26위 수준이었는데 2018년부터 크게 순위가 개선됐다. 전반적으로 기업하기 좋아졌다는 신호다.
하지만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작년 기업 관련 법안 통과에 왜 재계의 불만이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가경쟁력은 총 103개 항목을 12개 분야로 나눠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가장 많은 평가 항목이 포함된 ‘제도’ 분야 순위가 26위, 제도 분야 하위 항목 중 ‘정부 규제의 부담’은 87위, ‘정책 안정성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76위다. 원래 기업 경영자들은 정부에 불만을 갖게 마련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순위의 객관성이 무겁다. 게다가 ‘노동시장’ 분야에는 ‘시장의 유연성’과 관련해서 100위권 항목이 4개나 된다. 그럼 도대체 전체 순위 13위는 어떻게 나왔나 싶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의 채택’ 분야와 ‘거시정책 안정성’ 분야에서 1위다. ‘인프라’와 ‘혁신 역량’ 분야도 6위나 된다. 그나마 다행이다.
법들이 바뀌어 기업의 정부 규제 부담이 늘 것이 확실해도 원칙에 맞고 이점이 뚜렷하다면 해야 한다. 하지만 법 통과 후에도 논란이 계속되는 상법의 감사 분리선출 방안을 예로 보자. 대주주가 원하는 대로 구성된 이사회 안에서 감사를 뽑아서는 감독·감시가 제대로 될 수 없는 ‘셀프 감사’의 문제가 있으니, 아예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면서 대주주 의결권은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이 논리라면 예컨대 감사원장은 대통령이 뽑으면 안 된다.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감사원의 장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뽑는 것은 ‘셀프 감사’를 자초하는 일이다.
감사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의 기업 감사 제도에 ‘셀프 감사’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감사 선출에 대주주 의사를 제한하면 소수주주권이 강화되는 이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국제 비교 지표인 세계은행의 2020년 기업환경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수주주 보호 수준은 213개국 중 25위다. 규제 부담을 늘리지 않는 것과 소수주주 보호 가운데 무엇이 더 급한 일인지는 87위와 25위, 이 수치들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정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지금 기업 걱정이 순위에서 한참 밀리는 주제인 것 같아 더 걱정이다. 기업하기 좋은 대한민국에 대한 공론 없이 이번 랠리의 끝을 맞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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