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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한가위 기념 산행

 

 

 

내가 벌써 몇 번째 한가위를 보내고 있는 건가?

나이가 들수록 가는 세월이 빨라진다고 했나?

시작이 반이라더니 엊그제 시작해서 폭설과 폭염이 난무하던 2013년은 벌써 누렇게 익어가는 중이다.

 

어쨌든 올해 마주하는 가장 긴 황금연휴

제사로 더 바빠진 마눌에게 모든걸 떠맡기고 속세를 벗어나려는데 거북이 동행을 자처했다.

교통대란에 신음하는 명절연휴에  갈 수 있는 산이란 계룡산, 속리산, 덕유산 정도나 될까?

하지만 계룡산은 세월을 관조하는 여유와 함께 여행의 설레임을 느끼기에는 너무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그 길은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늘 선택은 덕유산 아니면 속리산이 된다.

 

지난 설날엔 덕유 설국을 종주했으니 이번에는 속세에서 가까우면서도 속세에서 유리된 고요와 은둔의

땅으로 떠나기로 했다.

속리의 깊은 곳

 

새벽산은 새벽바다처럼 신선하다.

푸른 새벽이 달려오고 붉은 여명이 뜬다.

그 멋진 풍경이 여행의 목적이 될 수도 있지만 그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는 불면의 밤과힘겨운 산행을

통행세로 지불해야 한다.

 

 

새벽 세시에 거북이를 픽업해서 속리산 화북분소로 향했다.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경부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한산하다.

하행길은 귀경차량이 많기는 해도 어느 정도 속도를 내고 있었다.

올빼미처럼 지금 이동하는 사람들은  잠 못 자는 것보다 교통체증을 더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화서 휴게소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씩 비우고 예정대로 화북분소 주차장에 5 40분에 도착했다.

해뜨는 시간 까지 한 시간 30분이 남아 있는 시간.

 

문장대 가는 길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긴 해도 새벽이라 바람막이까지 입은 터라  땀이 난다.

오르는 길에 불빛이 보이고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따라가보니 아가씨 둘이 열심히 칠흑의 산길을

오르는 중이다.

우리처럼 절친 둘이 만나 문장대 해돋이를 보러 왔단다.

둘이 오르는 길이 불안했는지 우리를 보고 반색을 한다.

직장 다닌다는데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대담한 아가씨들이다.

담력도 그렇거니와 해돋이 시간 맞춰 새벽산길을 오를 정도면  상당한 산행 공력의 소유자들일 테니

밤길 심심치 않는 동행을 만나 잘 되었다 싶었다.

 

어둠 속에 얼핏 느껴지는  고수의 포스.

배낭없이 빵한 개 물한 병  그리고 운동화 그리고 스마트폰 전등

해돋이를 위해 가볍게 문장대에 올랐다가 내려가 아침을 먹을 거라면 그 정도 행장이라도 충분하겠거니

그런데 우리가 그리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불빛에 보니 땀을 비오 듯 흘리고 자꾸 걸음이

밀린다.

이게 아닌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무대포에 초짜들이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정상까지 1시간 30분 거리라고 해서 왔다는데 산행경험도 그렇고  등로에 대한 정보도

하나 없이 자신들의 체력도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3분의 1도 못 가서 한 친구가 주저 앉았다.

용기와 모험심은 가상하지만 그런식이라면  세상의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왜그랬어 ?

 잠이나 충분히 자고 나오지….”

 

안되긴 했지만  우리가 불면의 밤을 지나온 같은 이유 때문에 문장대에서 보자는 말로 그들을 어둠 속에

남기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문장대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결이 그리 차지 않으면서 폐부까지 청명해지는 맑은 바람이다.

막바지 게단길에서 날이 밝았고 회색의 구름층위로 엷은 여명이 뜨는 문장대에는 68분에 도착했다.

먼저 올라 온 젊은 부부가 철제 난간에 기대어 거침없는 바람을  맞고 있다.

좋다.

 

여유로운 날 예정대로 어둠을 가르고 새벽의 빗장을 열어 젖히며 문장대에 올랐다.

깨어오는 신새벽 암릉난간에 기대어 속리의 멋진 풍경에 취한다.

푸른 새벽 빛 아래 청명한 대기를 호흡하며 풍경사진을 찍고 거북이와 인증샷을 한다고 부산을 떤다.

아래에 구름층이 있어서 해돋이 시간이 좀 늦어지긴 했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지리산, 덕유산 설악산 무수한 산의 일출은 만났지만 속리산 문장대의 일출은 처음이다.

그렇게 자주 올랐던 문장대에서 다시 만난 가슴을 흔드는 풍경이었다.

해가 중천으로 올라갈 동안 30분이상을 정상에서 머물렀는데 아가씨들은 결국 올라오지 못했다.

 

시원한 바람과 황금빛 아침햇살을 맞으며 신선의 땅을 배회했다.

속리

가깝지만 세속에서 먼 그 길 위에는 아무도 없다.

거리와 시간의 의미가 무의미 한 그 길에서 춤추는 청솔과  멋진 암릉과 다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다시 걸어보고 싶은 길이 있고

불면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과 체력이 아직 남아 있고

함께할 친구가 있으니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세상의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소요하는 무릉객이 된다..

 

작년 추석에는 거북이와 계룡산 종주를 했고

올 설날에는 눈 덮힌 덕유산 종주를 했다.

이번 추석에도 변함없이 거북이와  함께 바람을 따라 충북알프스 암릉길을 주유 한다.

 

인생의 의외성이 우습기도 하다.

숱한 산 친구들을 제쳐두고 명절에는 늘 거북이와 함께 하는 거

물건너 갈 수 없었던 오랜 우정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이겠거니

사실 새벽 세시에 잠 안자고 따라 나서는 넘은 거북이 말고 아무도 없다. “  

 

눈도 자주 깜박이지 마라

인생길도 우리가 금새 지나 왔던 저 길처럼 그리 빠를 터이니

 

어쨌든 크게 생각을 두지 않았던 것들

여전히 늙지 않는 마음과 튼튼한 두 다리 그리고 친구가 더욱 소중해지는 우리 인생의 가을이다.

"건강 잘 챙겨라 거북아 !. 앞으로 10년은 더 거친 명절의 기쁨을 누려야지. "

 

 

 

 

 

 

 

 

 

 

 

 

 

 

 

 

 

 

 

 

 

 

 

 

 

 

 

 

 

 

길도 아닌 집채 같은 바위 사잇길과 암릉의 등을 타고 반대 쪽에서 관음봉에 올랐다.

얼마 걷지 않고서도 거리와  시간  속도를 중계하던  거북이도 난이도 높은 그 길에서 말이 없다.

500m를 걷는데 한 시간도 더 걸린다.

때로는 거친 길이 때로는 시원한 바람과 멋진 풍경이 가던 발 길을 자주 멈추게 하니 여기에서는

하릴없고 속절없어지는 속세의 시간이다.   

신선의 땅에서는 그냥 바람 따라 흘러 가는 거다.

 

그 길에서 그냥 산과 바람이 침묵으로 웅변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변함없이 누려야 할 기쁨에 관하여…..

 

관음봉에서 바라본 속리의 아침풍경은 장관이다 .

세차면서도 그리 차갑지 않은 바람 길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북가치 까지 단 두사람을 만났을 뿐이었다..

2년 전에 바람 따라 흘러 갔던 그 길인데 그 길이 또 새로운 느낌이다.

묘봉은 오르고 내리는데 용이하도록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오르기 편하긴 한데 뭐가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밧줄과 돌부리를 잡고 힘들게 오르고 나서 만나던 후련한 풍경의 감동은 사라졌다.

좀더 오래도록 원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랬던 그 길이 불과 2년 사이에 그렇게 바뀌어 버렸다.

성형으로 얼굴이 변하듯 묘봉의 얼굴도 변했다.

바뀐 얼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어 외로웠던 묘봉의 팔자도 바뀌겠지만 그 때뭇지 않은 순수한

얼굴을 기억하는 나는 이제 그리움을 하나 잃어 버렸다.

늘 변함없으라 생각했던  산의 모습도 변해간다.

묘봉에 올라 옛날의 그 느낌을 되새기며 추억에 잠기는 나 또한 산의 눈에는 세월에 헤어지고 닳아버린

지친 모습이 아닐까?.

너무 변하는 것이 많은 세상에서 무언가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욕심인게다.

 

 

 

 

 

 

 

 

 

 

 

 

 

 

 

 

 

 

묘봉 지나고 나서는 여름처럼 더워졌다.

부드럽게 불어주던 바람도 떠나고 우린 더 뜨거워지는 태양이래 더 거칠어지는 길을 따라 상학봉을

돌아 신정리로 내려왔다.

원래 활목재까지 가려했는데  누군가 부서진 이정표 방향을 잘 못 돌려 놓았다.

그 길이 활목재 우회길인 줄 알고 따라 갔다가 우린 신정리로 연결된 임도로 내려섰다.

인생 길에서 지금의 나로 인도한 보이지 않는 힘이 오늘도 우리를 이 길로 인도했으려니

왕왕 우리가 인생의 목적지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조금 길이 어긋났다고 무슨 차이 있으랴  

그 길에도 이 길에도 무수한 기쁨이 바람에 날리고 행복이 뒹굴어 다닌다.

정작 중요한 건 그걸 찾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 아닐까?

 

 

내림 길에  2년전 계곡 알탕소에 들렀다.

거북이는 감기 때문에 구경만하고 나는 예정대로 산행의 마무리 의식까지 마쳤다.

신정리에서 화북분소까지 콜택시(\35,000)로 이동하여 차량을 회수하고 오는 길에 용소마을에 들러

버섯찌게로 식사를 하고 국도를 거쳐 집으로 돌아 왔다.

아침 430분에 시작하여 신정리 계곡 알탕소 까지 9시간의 긴 여정이었지만 아직 늙지 않은 마음과

친구와 함께 만들었던 2013년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이었다.

 

                                                                                                                                                                                                             2013 .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