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란 넘은 갈수록 성질이 사나워 졌다..
기고만장해진 녀석은 그렇지 않아도 사는 게 힘든 사람들이며 개들이며 모두 혓바닥을 내밀어 헐떡이게
만들었다.
이 녀석은 자신에게 설설기며 맥을 못추는 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더 포악을 떤다는 거다.
제대로 한 번 붙어보면 사실 이 녀석 진짜 별거 아니다.
중요한 건 어디서 한판 뜨느냐는 거.
녀석이 가장 싫어하는 곳은 천고지 넘는 고산의 그늘 숲이고 그 숲아래 계곡으로 흐르는 차가운 물속이다.
올 여름 난 이 녀석과 1000고지 오르는 된비알에서 굵은 땀과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무수히 뒤엉켜 싸웠다.
허구헌날 그렇게 싸우다 보니 오만 정이 붙어서 한 판 붙지 않는 주말에는 오히려 몸이 근질근질할 지경이었다.
찐득거리고 징글징글한 녀석이긴 해도 이제 정들만 한데 떠난다니 웬지 섭섭해진다.
올해 녀석은 정말 강해져서 돌아왔다.
그 서슬과 기세가 너무 등등해서 녀석과의 싸움에서 늘 중반까지는 그로기 상태까지 밀리기 일쑤였다.
비록 방심했던 지난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내가 판정패했지만 그 전 까지는 엎치락 뒤치락하다가도
막판 한방의 뒤집기로 집어던져 버렸던 것이다.
난 오래전부터 녀석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다.
막판 물귀신 작전
숨이 턱턱 막히는 밀고 당기는 치열한 교전의 막바지에 결국 옷 입은 채로 차가운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녀석을 아얘 수장시켜 버리는 거다.
일명 메기탕인데 사람이 많은 여름계곡에서 자주 쓰는 공격기술이다.
물론 인적이 없는 곳에서는 무조건 알탕의 필살기를 쓴다.
그건 빗맞아도 한방이다.
놈은 언제나 차가운 계곡수 속에서는 맥을 못 추고 허우적거리다 항복을 외쳤다.
녀석의 파상적인 이후 반격은 물에 젖은 옷만 뽀송뽀송하게 말려줄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뜨거운 계곡의 그늘아래 앉아 목젖이 다 얼얼한 차가운 맥주를 한 잔씩 마실라 치면
녀석은 꽁지 빠져라하고 어디론가 내빼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난 지겹다는 그녀석이 좋아졌고 그 치열한 격투기에 재미가 붙었다.
실컷 얻어터지고 난 후의 후련함이라고 할까?
아님 신나게 쳐맞다가 한 방으로 보내버리는 짜릿한 역전의 쾌감이라고 할까?
가장 무더운 여름에 느끼는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좋았다. .
한말의 땀을 빼고 1000고지 봉우리에서 투명한 바람을 맞는 것도
온 몸에 땀을 뒤집어 쓴 채로 뜨거운 몸으로 청정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도
그리고 한바탕 격렬한 운동 후에 숨 안 쉬고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는 것도…
큰 산은 뜨거운 태양아래서도 지치지 않는다.
그 산에는한 여름에도 차가운 물이 흐른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넓은 가슴을 내어주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 넉넉함과 감전의 충격과 같이
차갑게 흐르며 그 무수한 땀을 씻어 내고도 변함 없는 맑고 청정함이 좋았다.
해마다 그렇긴 하지만 여름도 이젠 중독이고 삶의 재미였다. .
처서가 지났다.
아침 저녁으로 코에 닿는 공기의 촉감이 달라졌다.
갑자기 녀석의 코가 한자는 빠졌다.
한 낮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도 저녁에는 꽁지를 내리고
뒤를 흘끔거리며 주섬주섬 보따리를 싼다.
“ 야 이눔아 가긴 어딜가 한 판 더 붙자고…!”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녀석이 가고나면 가을 여인이 코맹맹이 소리를 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며 찾아올 거란 걸 알면서도
막상 간다고 하니 괜히 서운함과 아쉬움이 인다.
난 늘 그렇게 얘기한다..
“너 밖에 없어 !”
과거와 미래보다도 지금 내 앞을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에 던지는 추파는 못 말리는 바람기가 아니다.
뜨거운 교전과 교감의 추억은 무수한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 뜨거운 가슴에도….
지금도 심원한 초록바다의 거대한 파도가 내 눈에 일렁이고
시원한 매미소리와 장쾌한 계곡의 폭포수 소리가 환청처럼 내 귓전을 때린다.
여름은 다시 돌아 오겠지만
난 내년에도 여전히 모히칸의 전사처럼 녀석과 격렬한 격투를 벌일 수 있을까?
지금이 아니고 내일에 우린 무엇을 장담할 수 있을까?
세월도 흐르고 계곡수도 흐르고 내 인생도 쉬지 않고 흘러 가는데…..
“쥬라기 공룡 알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허기사 지금까지처럼 별 일이야 있겠어?
매일 동쪽으로 해가 떠서 서쪽으로 넘어가고
어김없이 눈을 떠서 다시 일터로 떠나겠지…
내가 보낸 몇 년의 여름처럼 다시 그런 여름을 보내게 될거야…
“별 일이 없다면…”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변해가는 세상의 모퉁이에서 일년이란 무수한 변화와 별일이 난무하는 시간이다..
내년 여름에는 오존층이 파괴되어서 땡빛에 몇시간 걷고나면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질 지도 몰라.
풀 속에는 유전자 변형된 메뚜기 만한 진드기가 살고 있어서 한번 물리면 삼일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오늘 발을 담근 계곡수는 내년 여름엔 태평양 심층수로 떠돌고 있겠다.
내 도가니는 내년에도 싱싱할까?
삶이란 녀석이 언제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 질지도 모른다.
느닺없이 몸통에 기브스한 그날처럼 건강이란 넘이 “잠깐만요! 하면서 불러 세울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어 가는 거다.
흔들리는 이빨과 허연 머리보다 더 빨리 늙어 가는 마음은 가장 끔찍하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고
동심이 메마르고 열정과 의욕의 물기가 빠져나가면 가슴이 딱딱해지는 거다.
감동과 그리움은 도시에서 살지 않는다.
감동과 그리움은 세상에 딱딱해진 가슴에 머물지 않는다..
가슴에서 감동과 그리움이 사라지고 난 어느날
난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계곡에서 발담구고 있을텡게 한바퀴들 돌고 내려 오리고…..”
“힘든데 뭐더루 산에가…. 경로당 에야콘아래서 쩜오백 고스톱이나 치지”
아마도 세월과 더위에 지친 어느 여름에는 鬪暑와 맞暑 대신 避暑를 하고 싶을지 모른다.
1000고지 능선에서 여름과 뒤엉켜 구슬땀을 흘리고 옷 입은 채 계곡물에 뛰어드는 대신 에어컨 아래서
시아시된 수박이나 쪼개 먹거나 사람들 복짝이는 어느 계곡 그늘아래 돗자리를 깔아놓고 치맥이나 한딱
까리 하면서 돌아오지 않을 왕년을 얘기할지 모른다.
봉우리와 봉우리를 날아다니던 절세고수의 무공과 풍화된 전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월과
강물의 진리에 관하여 ……
그래서 늘 가슴에 새겨야 할 말 하나 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면 지금하고
어짜피 할 일이면 즐겁게 하라
지금 시계와 참새와 꽃에게 물으라
지금은 무슨 시간 이냐고 ?
그러면 시계와 참새와 꽃은 대답하리라 .
지금은 떠나고 노래하고 행복할 시간이라고….
당초 가리왕산 계획을 변경했다.
더위와의 일전을 펼치기에 손색 없는 곳이지만 너무 멀어서 작은 버스조차 채우지 못할 것이다.
무더위는 여전히 기세 등등하고 코 앞에 닥친 추석 명절이라 벌초 가는 산친구들도 많을 때이라…
1000고지를 휘달리는 기백과 금원의 능선이라면 2013 여름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눌만 하지
않을까?
용추계곡에서 도수골로 기백산에 올라 금원산 까지 능선을 걷고 유한청 계곡을 따라 내리는 그 길
막바지 여름을 자축하러 떠나는 기백 여행길은 달랑 18명…
올 들어 가장 적은 성원이다.
청계님 말씀대로 무릉객한테 감정 있는 사람 많은 모양이여
특히 집행부가 더 불만이 많은 모양이네
“ 회장과 총무들은 안면도에서 하계연수 중인감?”
땅파서 하는 자선여행이 아니라 적자나는게 미안시러워서 그렇지 산에 가는데야 사람 수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귀연 재정은 아직 빵빵하지요 ?"
일 자 : 2013년 9월 1일 일요일
산 행 지 : 기백산 - 금원산
산행코스 : 용추사 일주문- 도수골- 기백산-책바위-누룩덤-금원산-유한청폭포 2코스-
숲속의집 주차장- 자운폭포-휴양림관리소-휴양림주차장
날 씨 : 흐리다 맑다.
거 리 : 14.4km
소요시간 : 7시간 25분
동 행 : 귀연산우 18명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8:52 |
용추사 일주문 출발 |
등산로는 일주문을 지나 200m 우측 |
09:40 |
이정표 |
기백산 정상 2.2km |
10:13 |
이정표 |
기백산 정상 1.7km |
11:00 |
기백산 |
|
11:12 |
책바위 |
|
11:30 |
공터 식사 |
20분 |
12:25 |
시흥골갈림길 이정표 |
금원산2.5km, 기백산 1.5km |
12;46 |
임도 |
금원산1.6km, 기백산 2.4km, 수망령 3.2km |
13:26 |
정자 (안부) |
금원산 0.68km, 유한청폭포2코스 2.8km 기백산 4.5km, 유한청폭포 3코스 3km |
13:35 |
동봉 |
금원산 0.25km, 유한청폭포2코스 2.1km 유한청폭포 1코스 4.4km, 휴양림 5.9km, 기백산5km |
13:41 |
기백산(1353m) |
|
13:47 |
다시 동봉 |
10분간 휴식 |
14:19 |
전망바위 |
|
14:58 |
임도 |
|
15:17 |
유한청 1폭포 |
20분 메기탕 |
15:42 |
유한청 2폭포 |
|
15:50 |
숲속의집주차장 |
이후 아스팔트 포장도로 |
16:00 |
자운폭포 |
|
16:12 |
휴양림 관리소 |
|
16:17 |
휴양림 주차장 |
|
기백산 오르는 길
약간 흐린 날씨에 바람도 살랑거리며 숲 속을 지나 다닌다.
오래도록 시원한 물소리가 따라 오더니 중턱 쯤에서 제법 많은 수량의 물이 등산로를 가로질러 흘러
내려간다.
“싱거운 싸움이 되겠어!”
무더위란 녀석은 불쌍할 정도로 풀이 죽었다.
멋진 고별전을 기대하고 왔는데 1000고지도 채 안 되는 능선에서 빌빌거리고 있다.
도수골 계곡 길은 산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너무 부드럽다.
햇빛은 구름밖을 오락가락하고 산 안개는 부는 바람에 이리 저리 휘날리며 큰 산을 휘감아 돈다.
아직 싱그러운 초목의 능선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간다.
큰 산을 오르며 바라보는 첩첩의 산세상은 장엄하다.
기백산 정상을 1.3km 를 앞둔 곳에서 등로는 능선 위로 올라서더니 그리 힘들지 않게 약 두 시간 만에
정상을 허락했다...
능선
산에는 무수한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5월에도 7월에도 무언가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어나서 가는 길을 멈추게 하더니 가을로가는 그 산
길에도 아직 필 꽃들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나 꽃이나 다 비슷하다.
꽃은 광활한 기백과 금원의 자연 속, 한 점으로 세상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향기를 발산한다.
누가 보아주건 보아 주지 않건 전성가의 매력을 뽐내면서 9월의 풍경과 바람을 즐긴다.
우리가 저마다의 삶을 즐기며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듯이….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각자 다르듯이 행복에 대한 기준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감사와 만족이 함께하지 않으면 채워지지 욕망은 늘 행복에 허기질 것이다.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충만한 삶의 기쁨과 행복에
젖는 사람이 있고 수 많은 땅과 재물과 명예에도 채워지지 않는 사나운 욕심도 있다.
길섶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반가운 눈인사를 한다.
유장한 능선을 기운처럼 흘러가고 망망한 수림의 바다는 부드럽게 파도친다.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천고지 능선을 구름처럼 여유롭게 흘러 가는 오늘은 더 바랄게 없다.
아름답다는 말
너무 남용되어 이젠 무감각해진 그 말
성형된 조각미인에도 잘 가꾸어진 정원에도 …..
그래도 또 그 말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기백산 책바위에서 ….
그리고 고원의 능선 길에 다소곳이 고개 숙인 수줍은 야생화에서….
무릉객이여 !
언젠가 다시 떠나고 싶지 않은 여름날이 오면
그때는 세월의 길목에서 목놓아 울어라
사라진 기쁨과 감동을 추모하고
어느 강가
지금 인생의 여울목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흘러간 옛 시인의 구슬픈 노래를 불러라….
하산 길
“앞으로 쏟아 지는 군
조심혀 ! 힘빠진 다리가 꺾이면 유안청 임도까지 떼굴 떼굴 굴러 버릴지도 몰라 !”
가파른 비탈길
임도 까자는 쏟아질 듯 내려가는 길이다.
우리 셋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야생의 질주 본능을 잃어버렸다.
길섶의 야생화 하나 하나하나에 눈길이 가고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느림이 주는 여유가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에 손을 흔든다. .
발길이 밀리는데도 바람 길에는 배낭을 내리고 아얘 털퍼덕 주저앉았다.
늙어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좋다
아직 빛나는 풍경을 바라볼 눈이 있고
내 다리는 후들거리지 않는다
오늘도 기꺼이 새벽의 들창을 열고 가을이 오는 산으로 떠나고 싶다.
유한청 1 폭포는 장관이었다.
야호 !
싱거운 싸움을 치루고 우리는 폭포수로 뛰어들었다.
우리는 폭포를 거슬러 오르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3마리 물고기
지난 삼복대혈전은 여기서 치루었어야 했는데….
물에서 나오니 계곡을 불어가는 바람에 온몸이 으실으실 추워진다.
그냥 젖은 채로 유한청 2폭포와 자운폭포를 지나 휴양림 주차장으로 걸어 내렸다.
그래도 풀죽은 채 알짱거리던 녀석이 골바람을 불러와 젖은 옷을 죄 말려 주었다.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천천히 걸었는데 두개의 걸출한 봉우리와 장엄하게 이어지는
1000고지 능선길을 연결하고 멋진 폭포 길을 따라 내려왔다.
유한청 계곡은 깊고 수량이 풍부했고 사람이 떠나 호젓했다.
계곡을 따라 자동차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데도 울창한 수림과 때묻지 않는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했던 7시간의 여유롭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한마디 질렀다.
“야 이눔아 너 정말 이대로 그냥 갈껴?
제대로 한따까리 하고 가야지 그래야 또 보구 싶기라도 하지.
다음주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예전처럼 힘 한번 제대로 써봐라 !”
가리왕산 대신 기백산과 금원산에서 슬며시 떠나가는 여름과 조용히 다가오는 가을여인의 숨결을
느껴 보았다.
삶은 여행길이다.
시간여행
우린 길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목표를 정하긴 하지만
우린 의외의 길을 걷기도 하고 색다른 풍경들을 만나기도 한다.
여행길이 그렇듯이
지나온 시간과 길에는 일말의 후회가 있지만
미지의 여행길이란 원래 신나고 멋진 것이다.
마음에서 호기심과 감동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세상은 늘 설레임과 예기치 않은 기쁨으로 기득 차 있다.
나와 산 친구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 유명한 사람도 이런 말을 했다.
하루하루 산에 오르는 마음으로 살아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등반하되 지나치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라
그러면 어느 순간 산의 정상에 올라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며 그곳에서 인생여정 중
최대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 헤럴드 v 멘처스 -
가을처럼 무슨 느낌이 오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