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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내장산 (100대 명산 제 70산)

 

 

 

 

산 행 일 : 2013  11 19

산 행 지 : 내장산

산행코스 : 추령 유군치 장군봉- 연자봉 신선봉 내장사 주차장

    : 마눌 & 한밭산사랑

소요시간 : 5시간

     : 맑다 (비온 후 제법 쌀쌀해지다)

 

 

 

비가 온데서 주말에 떠나지 못했고 비가 오고 나서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나 없이 지나갈 13년 가을 단풍이 아쉬워 월요일 남은 하루의  정기휴가를 내어 마눌과 내장산으로 갔다.

 

내장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산삼해 고문님을 만났다.

혼자 호젓하게 단풍여행 중 이시다.

 

혼자 여행에 심취했던 때가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혼자만이 누리는 온전한 자유와 황홀한 고독이 너무 좋아 무턱대고 떠나던 시절

여러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떠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내 젊은 날들은 그렇게 흘러 갔다.

돌아보면 늘 무언가 부족했기에 더 애틋하고 아쉬운 시절이었다.

시간도 돈도 …. 

 

열정은 넘쳐났지만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할애 되어야 했기에

스스로를 기꺼이 구속하며 갈증을 견디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 조화와 균형으로 나의 젊은 날은 후회없는 아쉬움과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채 흘러 갔고 이제늙은 새는

푸른 창공을 날아 스스럼없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아침 잠이 없는 늙은 새

힘찬 날개짓으로 새벽을 깨우는 늙은 새    

 

그 가을의 목마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11월 셋째주라 믿기지 않을 만큼 내장산은 한산했다.

 

아 가을이 떠났구나 !

가을은 아직 먼 발치에서  어디쯤 가고 있을 텐데 빛 바랜 수묵화처럼 우울한 산색에 성급한 비탄에 젖는다..

능선에는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무수한 나무들은 가지를 털고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

 

내가 등산 파카를 벗지 않고 산길을 간다는 건 꽤 쌀쌀한 날씨란 거다.

이런 날이 산행하기엔 가장 좋은 날이다.

등로엔 인적이 뜸하고 산을 흐르는 차가운 냉기가 코끝을 상쾌하게 한다.

산삼해 고문님과 같이 가려 했더니 마눌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횡하니 떠나버리셨다.

 

71번째 100대 명산 내장산 길이지만 이미 헤아릴 수 없이 그 길을 걸었다.

가히 한국 최고의 단풍 길이란 수사가 결코 지나치지 않는 그 화려한 단풍 길  

가을 단풍이 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인생의 가을이 청춘의 봄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런 길이다.

호남정맥이 지나는 길이라 추령에서 감상굴재 까지 내장산군과 백암산을 거침없이 종횡했고 단풍이

한창인 때어 맞추어 환형으로 굽이치는 붉은 능선을 따라 걸출한 봉우리들을 아우르며 백양사로 흘러

들기도 했다.

벌써 오래 전 은비와 태현이 어릴적에도 붉은 단풍이 한창인 내장산에 올랐었다.

마눌과도 몇 번인가 다녀갔고 마눌도 평일에 친구들과 단풍선을 타기도 했다.

늘 바쁜 젊은 시절

도시의 가로수들이 바람 길에 낙엽을 날릴 때면 괜스레 떠나는 가을이 아쉬워지고 불타는 단풍이 그리워서

캄캄한 새벽에 길을 열고 내장산으로 떠났다.

내장산이 불타는 때면 아침에 인근교통이 마비되고 저녁 귀가 길에는 호남 고속도로 정체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길에다 쏟는 시간만큼 아까운 것이 없다.

대중교통으로 가면 책을 보던지 잠을 자던지 하면 되는데 자가운전 중 심각한 교통정체에 빠지면 그것처럼

답답하고 무료한 시간이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새벽여행과 새벽산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주말 새벽 내장산에 가서 일찍 산을 타고 내려와 단풍길을 걸어서 차량과 인파가 한창인오후 세시쯤 슬그머니

 공원을 빠져 나오는 것이다.

 

가을엔 늘 병을 앓는다.

역마살이 도지고 엉덩이가 들썩거려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다.

허리를 다친 때 말고는 설악에 들지 않은 가을이 없었다.

귀떼기청봉이나 공룡능선 아니면 화채능선 단풍에라도 젖고 나야 가을병이 치유되곤 했다.

언제나 버리지 못하는 생각 하나 있다.

가을엔 가슴으로 무언가를 느껴야 하고 가슴에 쌓인 무언가를 비워야 한다는 오래된 생각

 

 

올해는 강원도로 떠나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일이…..

황당하기 그지없게도 직원들과 족구하다 티눈이 덧나서 설악으로 떠나는 산 친구들을 멍하니 바라보아야

했고 올해 꼭 가고 싶었던 용아장성 비등도 떠나지 못했다.

 

마눌과의 비렁길과 담양 여행길에서 목마른 가을이 조금은 해갈되었지만 그래도 제대로된 단풍 숲을 걸어

보지 못하고 보내는 가을의 아쉬움은 내내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내장산은 언제나 가고 싶은 때 새벽 일찍 일어나 차를 몰고 횡하니 길을 나서면 산책하듯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란 생각에 몸도 마음도 바쁜 가을에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라 마눌과 70개 산을 섭렵하고서야

오늘 비로소 공식적인 100대명산 출정의 이름을 걸었다.

 

길은 계룡산처럼 훤하다.

우리는 추령에서 유군치를 거쳐 장군봉에 올랐고 둥글게 휘돌아 가는 능선을 따라  연자봉과 신선봉에 올랐다.

산행시간이 다섯 시간 정도 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까치봉 까지는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신선봉에서 되돌아

내려 금선계곡을 거쳐 내장사로 하산했다.

가을이 떠나간 내장산 능선 길에서 산의 침묵이 다시 고요함과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다 내리고 털어버린 산을 보면서 마음이 허허로워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그런 것이다.

멀리 내다보거나 그 이면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황량한 풍경의 쓸쓸함 속에서 우수에 깃들고 붉게 타는 단풍 숲에서 행복에 젖는다.

불평하고 슬퍼하는 자들 속에서 우울해 지고 웃음 웃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고 늘 쾌활하고 밝게 웃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건강도 좋아지고 마음도 밝아

진다.

늙을수록 자연을 사랑하는 친구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그렇게 오래 살아가다 보면 삶의 내공이 쌓인다.

 

삶의 내공이란 침울한 분위기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주도적으로 밝은 반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쓸쓸한

풍경 아래 감추어진  희망과 감동을 들추어 내는 것이다.

 

가파르게 내려치는 길에서 가끔 가을이 붉은 옷자락을  펄럭 거린다.

쏟아지는 등로의  불균형과 돌길을 불편함을 지나서 우리는 평지가 주는 안정과 평화에내려섰다.

바람이 들어서지 않는 계곡 길을 따라 인적은 뜸하고 그 길 저만치 앞에서 가을이 춤을 추며 걸어가고 있었다.

 

불이 난 대웅전은 아직 재건되지 않았다.

스님은 비닐하우스 임시 대웅전에서 불공을 드리고 경내에는 이제 막 가을이 한창인 단풍 숲을 걸어 온 사람

들로 붐비고 있었다.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길

내장산의 가을은 이제 바닥에 내려와 형형색색이 단풍을 물들이며 절정을 노래하고 있다..

무수한 사람들은 내장사에서 주차장 까지 연결된 불타는 단풍 숲 길에서 이미 가을에 흠뻑 취해 몽롱해 졌고

황량한 바람만 불어가는 쓸쓸한 산등성이에는 굳이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춤추는 단풍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싶었는데 예정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그 길을

내려 갔다.

 

누가 내장산 단풍은 끝물이라고 했나?

해발 제로에서 보면 오늘이 내장산 단풍은 절정의 날이다.

그러고 보면 꼭대기에서 물들어 내려가는 내장산의 가을도 그다지 짧지는 않은 것이다.

 

내 사십대의 가을날은 화려하고 아주 길었다.

그 짧은 가을의 노래를 얼마나 오래 불렀는지 모른다.

그것도 있는 목청을 다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10월초 설악에서 시작하여  단풍이 걸어가는 속도에 맞추어 매주 단풍의 꼬리를 잡고 남도 까지 따라가다

보면 불타는 가을은 꼬박 두 달 반을 나와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봄도 가을도 길었고 행복도 길게 목을 빼고 따라왔다

 

단풍이 흘러가는 바람 길목에서 술 한잔 친다.

내 백두대간 동행 산삼해 고문님과  돼지고기 김치찌개 앞에 두고 진한 탁배기 한잔 걸치며 우리가 지나 온

삶과 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린 그 탁배기 잔에 깊어가는 가을과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타서 마셨다.

마눌과 함께 추는 제 71번 째 100대명산 춤

가을은 아직 한창이었고 그 날 내 얼굴도 내 마음도 단풍처럼  붉게 물들었다.

내장산에서….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김광균 시집「겨울날」(창작과비평사.1975) / {월간 중앙}, 1969.11

 

돌아오는 길

땅거미가 조용히 깔리고 평화와 안식의 어둠이 내렸다.

하늘엔 별이 하나 둘 반짝인다.

아름다운 여행 길

오래도록 마눌과 이런 따뜻한 여행길을 나누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