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들과 계족산 산책 길에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어 던지고 주임도 한 바퀴를 고스란히 돌았다.
지난 겨울 스산한 바람과 함께 황량하던 그 길은 사람들은 북새통을 이루고 꽃 잎을 훨훨 날려버린 벚나무는
이젠 무성해진 푸른 잎 사이 붉은 버찌를 흔들며 뜨거운 태양이 마지막 단 맛을 완성해 주기를 기다린다.
계절의 여왕이라던 5월은 이젠 하야하여 기꺼이 여름에 복속되었다.
맨발의 청춘?
세월은 흘렀고 그 낭만적인 어휘는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이래도?” 하면서 아즉 청춘을 강변한다.
그 길을 맨발로 걸었다는 거다.
그것도 올 겨울 백곰처럼 칩거하느라 체중이 4kg 불고 체지방 수치가 또 늘어난 악조건을 개무시하고 말이다.
겨우내 늘어난 내 체중은 중력의 법칙이 만고 불변의 진리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며 만년살에 돼지고기 일곱근
의 파워를 보태 세월 따라 조금씩 낡아가는(? 아즉은 짱짱하다) 교각에 잔뜩 프레스를 가하고 잔돌과 모래알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버찌 씨들은 세월에 약해진 내발바닥과 고르지 못한 황토길 사이에 알박기를 하며 끊임
없이 신경을 자극하는 데도 말이다.
게다가 나는 오늘 또 6시간 30분 예상의 황정산 암릉을 한 마리 수리처럼 날아 오른단 말이다.
이만하면 여전히 시푸르둥둥 한데 아즉 청춘이란 내 말에 왜 아무도 동의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올해의 귀연에서 내가 올린 쾌거는 주작산과 황정산을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운영자 회의에서 2/4분기 산행지에 관해 무수한 말들이 오가다가 결국 까페에서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하면서 “산꼭대기 회장 마음대로 하세요”로 결론이 났다.
근데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말이 많던 사람들도 정작 까페에 산행지 추천에 관한 공지가 뜨자 나와 청계님
외에 모두 침묵 했다.
그 침묵에 부아가 난 산꼭대기 회장이 추천에 올라 온 산행지로 모두 편성해 버렸다.
그래서 2/4분기 추천 산행지에는 무릉객이 가고 싶었던 산행지가 4곳이나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덕룡 주작과 마찬가지로 수리봉-황정산 능선도 젊은 시절에 탄식과 한숨 속에 넘었던 추억의 길이다.
그 멋진 암릉과 소나무들….
추억이 손을 흔드는 풍경 속을 다시 걸으면 지나간 시절의 상념이 떠 오른다.
그 길 위에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릴 작은 단서라도 발견하면 마치 소풍날 보물찾기라도하나 건진 듯 적잖은
흥분 마저 느끼는 것이다..
그건 너무 쉽게 낡아가는 우리의 신체와 너무 쉽게 휘발되는 우리의 소프트웨어가 변함없이 거기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표하는 경의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내가 사랑한 자연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걸…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어준 산과 바람이 고맙다,
한철 매미가 영겁을 이어가는 대 자연의 잔등을 타고 넘으며 짧아서 더 아름답고 소중한 인생을 돌아 본다.
난 가끔 희미해지는 기억력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뇨자 분명 내가 오래 전에 어디선가 만났던 여잔데…”
어느 길모퉁이를 돌아가며 누군가의 반가운 미소에 고개를 갸우뚱 한다.
추억이 안개처럼 희미하게 피어나는 오래된 옛길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세상과 삶의 경이를 만난다.
세월은 아련하고 희미한 기억의 화폭을 더 아름답게 채색하고 거기에 무수한 자연의 변수가 보태지면 그 길은
더 낭만적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사진과 내가 남긴 짧은 글들
궁형에 처해지면서도 사기를 저술했던 사마천은 후손들에게 역사의 교훈과 삶의 지혜를 전해 주었지만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글을 남긴다.
그 또한 세월이 전해준 삶의 지혜일 것이다.
아픔과 상심을 잊기 위해 우리가 망각이란 안전장치를 진화 시켰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 또한 세월 따라
우리의 기억에서 쉽사리 사라져 간다.
내게 있어서 내가 남긴 글이란 기억의 텃밭에 묻혀 있는 나의 작은 깨달음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파헤치는
한 자루의 호미일 것이다..
내 글의 의미는 단지 그것으로 족하다.
흘러간 즐거운 시간을 다시 들추어 내고 내 기쁜 젊은 날에 대한 추억과 상념을 일깨워 그 시절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그 길에서 내가 품었던 생각의 편린들이 작은 실마리에도 한 가닥씩 끌려 올라오면 나는 흰머리 성성한 채 다시
그날로 되돌아 가는 흥분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서해와 경기북부에서 시작한 바가 오후 세시 경부터 비를 뿌리는 것으로 예보되어 오늘 날씨는 전반적으로 흐릴
거라 했다.
5월초 신록이 물결치는 날에 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첫 주 3일 연휴와 2째주 지리산 둘레길이 확정되어 있는 터라
결국 날짜는 5월 후반부로 밀리고 말았다.
차띠고 포띠고 마,상으로 치루는 무더위와의 접전은 안식주인 셋째 주를 뛰어넘어서 이젠 확실히 여름으로 절기가
넘어가버린 5월의 마지막 일요일 날에 수리봉과 황정산을 이어가는 거친 능선에서 이루어 졌다.
길은 윗점에서 대슬랩을 따라 수리봉에 이르고 공룡의 잔등 같은 암릉을 타고 가다보면
신선봉에 이른다.
신선봉에서 석화봉으로 분기되는 석화봉 삼거리를 지나면 다시 거친 오름 길을 따라 남봉이 서고 남봉을
넘어서 조망이 훌륭한 암릉지대를 지나면 황정산이 홀연히 나타난다.
..
황정산(黃庭山, 해발 959.4m)은 원래 황색의 정원이란 의미로 바람에 일렁이는 황정리 일대의 풍요로운 황금
들판에서 유래된 지명인데 수리봉에서 황정산에 이르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릉과 소나무가 멋진 조화를
이루는 산이다.
누군가는 옥황상제가 근무하는 광한루 앞마당'이란 뜻으로 하늘의 정원같이 아름다운 산이라 붙인 이름이라고도
했다..
날이 왜 이리 좋다냐?
전국적으로 흐린 날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예보 되어 날씨가 흐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맑은 날 햇님도 구름
속을 들락날락 하면서 산행하기 가장 좋은 날을 만들어 주었다.
시원한 바람이 자주 불어주어서 뜨거운 태양에 노출되는 암릉 위에서도 그다지 무더운 줄 모르고 가경 속을
주유하니 오늘은 축복 받은 날이다.
태양은 공교롭게 우리가 점심식사를 하는 황정산 정상에서 구름을 밀어내고 본격적으로 뜨거운 열기를 쏟아
내는가 싶더니 다시 조금씩 꽁지를 내려갔다.
배고픈 차에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 모처럼 함께한 큰놈이 끓여낸 라면 까지 너무 많이 먹어서 체했는지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불편했다.
속도 좋지 않고, 둘러보는 사위가 멋진 절경이라 카메라 셔터를 자주 누르다 보니 우리팀들은 다 떠나고 홀로
산길을 걷는다.
명색이 오늘 산행대장인데 함께 데리고 갈 산우도 남아 있지 않아서 후미대장이란 말도 궁색하다.
그냥 오늘은 산행대장이 낙오했다.
풍경도 좋고 기력도 빠져서….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서 어제와 같은 날씨라면 오늘은 초죽음이 되었을 터이다.
지난번 둘레길 꼭대기 회장이 빠져서 땜통 산행대장 했는데 이번에 양반곰이 집안일로 불참해서 다시 땜통.
이라다 전문 땜통 산행대장 되는 거 아녀?
근데 허구 헌 날 뒤에서 개기면서 하는 일도 없이 건들거리는데 자꾸 산행대장 시키는 이유는 또 머여?
영인봉 가는 벼랑 길에서 아래로 스틱을 던졌는데 스틱하나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벼랑길이라 내려 갈 수가 없다.
내거 고장이 나서 마눌거 가지고 나왔는데 그냥 가자니 너무 억울해서 회수 방안에 골몰했다.
궁하면 통하는 모양이다.
나처럼 그 누군가도 벼랑으로 내려갔는지 끊어진 낡고 가느다란 줄이 나무둥치에 매어져 있다
너무 짧았는데 주변에서 낡은 끈을 한 가닥 찾아서 어렵게 연결한 후에 조심조심 내려가서 무사히 스틱을 구출했다.
영인산은 등로를 내려섰다가 다시 바위 절벽을 가파르게 기어 올라야 한다.
황정산과 마찬가지로 영인봉도 멀리서 보던 때와는 다르게 주변의 울창한 수림으로 정상 조망을 열어 주지 않았다.
영인산을 지나 서늘한 바람 아래 능선 삼거리 이정표가 선다.
원통암은 우측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데 능선을 따라가는 황정리 하산길보다 오히려 더 길다.
선두의 표지기도 원통암 계곡 쪽으로 놓여져 있다.
하산길이 아쉬워 절벽 위에 올라 능선 건너편 까지 가서 일대를 조망하고 돌아왔다.
가는 길 빗방울이 한 방울 씩 떨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오는가?”
인적 없는 원통암에 들러 홀로 목을 축인다.
여기도 명당이다.
산속 깊은 곳이긴 해도 북사면은 암벽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앞은 훤히 트여 멀리 첩첩이흘러가는 능선이 바라다
보인다.
낡은 암자의 오른 쪽에는 큰 바위가 일주문 나한상처럼 버티고 서서 잡귀의 범접을 차단한다.
계곡의 시와 풍경을 감상하며 느릿느릿 내려 가는데 계곡 날머리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곳에서 큰놈 전화가 왔다.
“모두들 다 내려 왔는데 도대체 어디쯤 내려오고 있냐고?”
난 분명 6시간 30분 산행시간을 주었고 그 시간에 맞추어 내려 가고 있는데….
어쨌든 오늘은 산행대장이 꼴찌다.
다른 때 같지 않게 오늘은 갓바위 전회장님이 대전에서 한턱 쏘기로 해서 뒤풀이도 간단히 한 터라 모두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한 모양이다.
“ 아 그러게 누가 산행대장 시켜 달라고 했냐고? “
꼴찌로 내려온 산행대장은 기다리던 산우들에게 눈인사만 건네고 시퍼런 계곡물로 뛰어들었다.
시원한 계곡에서 알탕까지 다 끝내고 먹을 것도 마땅치 않아서 지루하게 내가 내려올 때만 기다리던 산우들에게
왜 미안함이 없었겠나 만은 그렇다고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나?
몇 년 지기인데 설마 알탕하는 몇 분을 기다려 주지 않을까?
좀 늦게 내려와서 알탕을 포기했던 해성님도 같이 계곡에 들었다.
그 시원함이라니 …
해성님한테 소화제 한 알 얻어먹고 푸른 계곡물의 세례를 받으니 메스껍고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해 졌다.
그래 이 맛이야 …
바야흐로 즐거운 여름이 다시 돌아 왔다.
6월 1일 오늘이 2014년 첫 알탕의 날이다.
멋진 여름이 기대된다.
올 여름 어느 맑은 계곡에서 알탕을 하면서 몸과 마음에 쌓인 진폐를 말끔히 씻어낼 것인가?
한줄기 산바람과 한줄기 물줄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삶의 깊은 내공이다.
대자연 속을 떠돌면서 어디 하루라도 기분 꿀꿀하고 답답한 날이 있다더냐?
모두 알고 보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단순한 내 삶의 방식 탓이다.
틈나는 대로 대자연의 한 점으로 돌아가 살 맛과 산 맛을 느껴본 탓이다.
대자연의 올라 후련한 산바람을 많이 맞아 본 탓이다.
사실 살아가다 보면 안달하고 댕댕거리는게 하는 것들이 지나고 나면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괴로워하고 집착하는 많은 것들은 궁극엔 다 부질없는 것이다.
훨훨 날아 오를 일이다.
세상 시름을 바람에 훨훨 날리고 싶다면…
난 광활한 대자연 속에 홀연히 날아든 한 마리 나비
나비는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모두 짊어지려 날아온 게 아니라 짧고 아름다운 세상을 가슴으로 누리기 위해
세상에 날아든 것이다.
카르페디엠 !
내 앞에 놓인 그 풍경과 그 시원한 한 줄기 바람 그리고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그 시간만이 살아 있는 자의
축복을 노래할 뿐이다.
오늘 한철 나비가 영겁의 세월을 이어 온 대자연의 깊은 곳으로 날아들어 그 호젓한 신의 정원을 나빌레며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노래했다.
우리 산하의 비경이 아름답지 않은가?
영속하는 어느 세월의 길목 오래 남아 있는 것과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만나는 모습이
감동적이지 않은가?
빠른 세월과 짧은 여행 그리고 나비의 경쾌한 비상이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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