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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망국의 한 명성산 (100대 명산 제 83산)

 

 

 

 

 

 

 

 

산 행 지 :  명성산

    :  무덥다

    :  11.41km

산행코스 :  강선교 궁예봉 명성산 팔각정 자인사

소요시간 :  6시간 30  

    :  만인 산악회

         

 

시간

경유지

비 고

11:45

신안고개

 

12:22

궁예능선 들머리 이정표

 

12:29

이정표

약물계곡 1시간10, 궁예능선 1시간 40

14:26

궁예봉 (823m)

 

15:16

이정표

궁예봉0.6km, 명성산 0.4km/신안고개 하산

15:34

명성산 923m

삼각봉0.45km, 저수지3.1km

15:50

삼각봉(906m)

 

16:19

이정표

신안고개2km, 팔각정 1.2km, 삼각봉 0.7km

16:59

나무쉼터

 

17:05

팔각정

삼각봉 2.7km, 비선폭포 3.9km, 자인사 2.5km

17:51

자인사

 

18:15

주차장

 

 

 

 

역사의 한이 서린산

철원을 도읍으로 정해 태봉국을 세웠던 궁예가 패주하여 통곡하며 울었다는 명성산

 

역사는 순회하는가?

그 산에서 무릉객부부의 원성과 신음소리 드높았다.

 

사건 뒤에는 거북이가 있었다.

어느날 느닺없이 거북이가 족보도 없는 만인산악회의 깃발을 흔들었다.

만인산악회에서 명성산 출정이 있다고?

 

만인산악회?”

내가 모르니 변방의 작은 산악회 일터

점잖게 거북이를 타일렀다.

야 이늠아 명성산은 가을에 억새보러 가는 산이여

요즘 같이 35도를 오르내리는 혹서에 명성산에 올랐다가는 머리 다 익어서 뚜껑 열린다.”

 

그렇게 거북이를 면박을 주고서도 우린 그 산을 탔다.

아들녀석 까지 대동해가지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당초 마눌과 덕유산 능선의 무룡산으로 원추리 야생화를 보러 가기로 했었다.

지난번 성환이랑 덕유산 향적봉-안성 구간을 다녀 왔는데 중봉에서 동엽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푸른 초원과

그 능선 위에 마구 피어나던 원추리의 풍경이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다.

게다가 그 깨끗한 옥바람과 맑고 시원한 계곡 물이라니….

한여름의 제대로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돌아와서 마눌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는데 덕유로 가는

소월마차 기별이 온 것이다.

지난번 내가 내려왔던 안성계곡으로 올라가서 능선을 타고 삿갓재 대피소 까지 갔다가 황점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따라 원추리 산행 간다고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 인가?

마눌은 보고 싶은 고원의 풍경을 만나고 나는 한여름에 덕유산 능선 길을 이어가며 덕유의 여름이야기와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무룡산 인근은 아얘 원추리 밭이니  날짜만 잘 맞으면 다시 한 번 천상의 화원을 배회하게 될 터 우린 만패불청

하고 신청을 넣었다.

그런데 성원부족으로 출정 하루를 앞두고 산행이 무산된 것이다.

일헐수가?”

 

그래도 산꾼에겐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은 법인데 마눌이 갑자기 거북이 얘기한 명성산을 가면 어떠냐고

했다.

태풍 나크리가 원군을 끌고 올라오고 있다고

비 예보는 없는데 흐리고 바람이 시원할거라고….

사실 나크리는 아직 남해 먼바다에 있는데 대전도 벌써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바람이 점차 세지고 있는 중이었다.

오케이…”

태풍이 올라올 때 고원의 여름산행은 환상 그 자체다.

끈적끈적한 한 여름에 만나는 가을의 청명함과 상쾌함은  몸과 정신의 구석구석에 쌓인 불쾌한 여름의 찌꺼기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린다,.

그 추억이 있어서 나는 백두대간 시작을 앞두고 아들의 체력점검과 정신무장을 겸해 출정을 감행하면서 그동안

철저히 고수 해 왔던 계절에 맞는 100대 명산 출정의 룰을 기꺼이 허물어 뜨렸던 것이다.

 

거기 까지는 좋았다.

명성의 울음을 피해갈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었으므로 …..

설상가상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오고 잘 못 내린 판단에 심리가 흔들리면 다시 잘못된 판단을 내릴 확률이 더 커지는 법이라

했던가?

 

정작 떠나고 나서야 아차! 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던 바보 같은  생각들

(망각1 – 휴가철에는 밥 제대로 챙겨먹고 수도권이이나 강원도로 움직일 생각을 마라)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길에다 뿌리는 시간이다.

나는 여행을 갈라치면 늘 새벽 같이 움직인다.

사색이 깃든 새벽길의 조용함과  그 방해 받지 않는 평화로움은 오랜세월 내 여행길의 동반자 였다.

 

피곤한 차에 얼마간 차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차가 거의 기어가고 있다.

아뿔사 시방 내가 뭔일을 벌인거여?”

지금은 피크 휴가철이고 나는 대한 민국 경기 공화국을 지나고 있다.

연인산,명지산 화악산 유명산 청평 등 한여름의 수려한 모든 계곡으로 통하는 단 하나의 붐비는 길을 따라……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거지?”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우린 1시간은 지체해서 11 30분에 출발점에 도착했다.

 

 

(망각2 산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를 확실히 챙겨라)

 

공부하는 걸 싫어하면 인생이 힘들어 진다.

인터넷을 검색하긴 했는데 궁예능선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강선교 쪽에서 오르는 산행루트에 대해 사진이나 글을 올린 사람이 거의 없었고 더 알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작점에 내리고 나서 길은 두개로 갈린다.

당초의 강선교에서 시작하는 궁예능선 방향, 그리고 신안고개에서 오르는 길

어느 길을 따를 것인가?

산행대장은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두 길다 거리는 비슷한데 궁예능선은 암릉길이라고….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강선교 방향으로 움직인다.

사람 많이 가는 길이 좋은 길이여

신안고개 쪽으로 오르자는 마눌의 제안을 뿌리치고 우리도 강선교 쪽으로 가자고 했다.

 

(망각3 – 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라 )

결국 욕심이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법이다..

2가지 이유로 합리화의 명분을 내세웠다.

같은 값이면 암릉 길이 더 산타는 재미가 좋을 것 같다.

어짜피 아들녀석 훈련목적이니 비슷비슷하다면 좀더 산행 강도가 강한 쪽이 유리하다.

 

 

처음엔 그랬다.

설마?”

산정호수와 가을 억새의 낭만이 넘치는 산인데 날씨가 힘들어도 뭐 그리 힘들겠나?…

그늘이 없다손 치더라도 잠깐 땡빛에 서둘러 댕겨와서 게곡에 발담그면 되지….

게다가 만인산악회 산행대장은 여름철 땡빛을 감안해서 널널하게 6시간을 준다고 했다….

 

어쨌든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흐린 날씨는 고사하고 태양은  땅 위에 모든 삼라만상을 녹여버릴 기세로 불을 뿜고 있었다.

한 번 당해볼쳐?”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태양은 시작부터 이죽거렸다..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서둘러 오지 않아야 할 가을 산을 여름에 왔고

휴가 차량에 묶여 피 같은 시간을 1시간 씩이나 길에다 쏟아 부었고

에어컨 냉방은 미지근 했다.

게다가 강선교 산행 들머리 까지 가기 위해 그늘 하나 없는 사막 같은 임도길은 2.5km 나 걸어 올라야 했다.

난이도에 상관없이 같은 거리라도  2.5km는 순전 여름날 몸보신용 보너스다.

우린 오르기 전에 더위부터 왕창 먹고 본격적인 산행로에 진입하기 전에 밀납인형처럼 흐믈흐믈 녹아 내렸다.

 

 

궁예능선 길은 거의 수직으로 발딱 일어나 앉아 있다.

패주하던 궁예가 망국의 서룸에 눈물을 흘린 게 아니라  벽처럼 솟은 산을 기어 도망해야 하는 참담함에 그 길이

더 힘들어 흘린 눈물은 아니었을까?

 

거의 수직으로 서 있거나 엄청난 낙차로 내려 앉았다가 다시 솟구치기를 반복하는 암릉길에서 같은 거리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숨막히는 대지의 뜨거운 열기를 다시 거친 숨으로 들이쉬며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빤히 보이는 주릉을 앞에

두고도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계속 다람쥐 챗바퀴를 돌아야 했다.

 

서말의 땀을 흘리면서도 물을 아껴야 하는 악전고투는 궁예봉과 명성산을 지나 하산할 때 까지 계속되었다.

배낭이 다소 무겁다 하더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그렇게 힘들었으니 마눌은 명성산에서 제대로 임자를 만난

셈이다.

오죽했으면 거북씨는 왜 만인산악회를 알려주어 이 고생을 시키냐는 푸념이 다 나왔을까?

 

내가 느낀 힘겨움은 순전히 심리의 부정요인 때문이었다.

심사가 이미 틀어져 있었다.

오지 않은 곳으로 왔다는 생각

심각한 버스정체와 예상을 벗어난 날씨

그리고 또 내려 놓지 못한 내 스스로의 욕심에 짜증과 혈압이 올랐고 그런 부정적인 기분들이 즐거움의 기혈을

막았다.

내 스스로의 힘겨움보다 쓸데없는 욕심과 판단미스로 마눌과 아들을 힘들게 했다는 자책이 산행을 더 맥빠지게

한 탓이다.

 

누굴 탓하랴?

온 산을 헤집은 지 어언 몇 년인데도 아직 부족한 수양이려니….

 

인생길이 그렇지 않은가?

어디 예상대로 풀리는 법이 있던가?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다가 순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절망의 바닥에서 홀연히 한 줄기 빛을 만난다.

 

그리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눈으로 흘러 드는 땀에 앞이 잘 안보이고

허벅지와 엉덩이 까지 땀에 다 젖은 날이 한 두 번 이었나?

그날들도 그리 재미 있지 않았나?

잠시 어려움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 힘겨운 순간은 더 선명한 추억으로 남는

법이다,

 

나약한 자여!

오늘도 고작 뜨거운 태양아래서 산이 하는 말 바람이 전하는 말을 잊었다.

험한 길, 편안한 길 모두 나의 길이고 비록 그 길을 바꿀 수는 없지만 걸어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나의 몫이란 걸

세상의 길흉화복과 희로애락은 모두 작은 가슴 하나에 들어 있는 거란 걸

 

 

물이 흘러가는 곳에서  마눌이 얼려온 황도 통조림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다시 오르는 길

굴참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온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몰아 쳤다.

정자 좋고 물 좋은 곳은 없다더니 바람도 좋고 전망도 좋은 데를 찾으려 했더니 마땅한 데가 없고 바람마저 끊어

졌다.

이 정도 올라 왔으면 이젠 능선에 올라 설 만도 한데 길은 가도 가도 계속 위로만 솟구친다.

아들 녀석은 먼저 앞에서 저만큼 사라지고 마눌은 힘들고 배 고프다 하고

달려드는 벌레가 귀로 들어 간다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음악을 들으며 가느라 소리도 못 듣는 녀석을 찾아 나섰

는데 녀석은 여유롭게 그늘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

녀석을 보니 나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이 실감이 난다.

뜨는 해와 지는 해의 차이

그늘은 좋은데 바람길도 아니고 전망도 좋지 않아 다시 좋은 곳을 찾아 올라가는데 눈을 씻고 보아도 아까 지나 온

녀석이 기다리던 곳 만한 데가 없다.

 

함 해보자는 마음으로 내쳐 올라 가다가 다시 앞에 큰 봉우리를 만났다.

이 봉우리를 올라서 밥을 먹는다면 마눌은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우린 그냥 길 옆 좁은 나무 그늘에서 식사를 했다.

올해 통산 가장 열악하고 초라한 레스또랑 이었지만 가만 앉아 있으니 그 속으로도 바람은 지나 다녀 몸의 열기가 

많이 가라 앉았다.

날이 얼마나 더웠던지 마눌이 3일이나 얼린 수입맥주는 미지근해 졌다.

그래도  식사시간은 에너지 보충 시간이고 재충전의 원기 회복 시간이었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우리 후미의 6명이 모두 우리 곁을 지나 갔다.

우리가 꼴찌로 밀려나는 순간이었지만 우린 다시 원기를 회복했으니 최소한 그들 후미팀과의 동행은 가능할 것이다.

 

큰 봉우리를 올라서자 그 곳이 궁예 봉이었다..

그 곳에서 푸른 산하를 내려다 보며 궁예는 한 순간 일장춘몽처럼 사라진 제국의 영광과 덧없는 부귀영화를 한탄하며 

무상한 세월의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이젠 다 왔겠지한 그 곳에서 등로는 다시 몇 번을 수직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거침없는 암봉으로 솟아 오른다.

빤이 보이는 주 능선에 오르기 위해 그렇게 거칠게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능선도 드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인고의 마지막 능성이를 올라  명성산에 올랐다.

야호!”

우리가 궁예능선을 넘었다.

그렇게 딴지 걸며 이죽거리던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에도 굴하지 않고

사방이 트인 정상에서 이젠 바람도 마음껏 불어 주고 시야도 욕심껏 넓은 세상을 내어 주었다.

 

우린 정상에서 의미 있는 사진을 남겼다.

통산 83번째 명성산에서 마눌과 추었던 열정의 삼바춤은 뜨거운 태양과 거친 궁예능선이 있어서 더 돋보이고  

가리산에 이어 두 번째 함께하는 아들녀석이 있어서 더 빛이 났다.

 

후미 산행대장이  삼각봉을 지나 헬기장에서 신안고개로 하산 하는 길이 있다고 했는데 바람도 마음껏 불어주고

등로도 편안 해져서 굳이 중간으로 하산할 필요까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안고개 하산 길은 명성산 정상 앞뒤로 두 개가 있었다.

표지기로 보아 당초 신안고개로 올라 온 몇몇은 정상 너머 길로 올라와서 역으로 정상에 올랐다가 되돌아 능선을

진행했던 모양이다.

 

후미 산행대장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후미팀을 신안고개로 하산 하자고 따라 오란다.

후미대장 말로는 삼각봉 근처에 신안고개 하산 길이 하나 더 있다고 했는데 아침에 건네 받은 지도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어쨌든 우리는 그의 뒤를 쫄랑거리며 따라 삼각봉에 올랐는데 그 근처에는 헬기장도 없고 하산로도 없다.

후미 산행대장은 더 이상의 설명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또 하나의 신안고개 하산로는 삼각봉을 지나 능선 700미터 지점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하산로로 접어드는 팔각

정이 1.2km 밖에 남지 않은 지점이다.

이정표상 신안고개로 하산하면 2km나 되고 너무 경사가 급해서 위험한데다가  신안고개로 내려 가서도 그 곳에서

다시 비포장 도로와 포장도로를 따라 집결지 까지 이동해야 한다.

그 하산 길은 더 먼 길을 돌아 풍경도 바람도 없는 길을 걸어야 하기에 굳이 선택할 의미와 타당성이 없는 길이다.

 

고생 끝에 낙이려니….

길은 이제 너무 부드럽고 편안해졌다.

바람 시원하고, 조망과 풍경 좋은데다 초원 길 따라 길이 이리 평화로운데 굳이 그 길을선택했으면 후회 막심일 뻔

했다.

아름다운 고원을 산책하는 호젓하고 낭만적인 산길은 빨간 느림보 우체통이 있는 곳 까지 계속되었다.

길에 대한 충분한 정보도 없었지만 단순히 예정된 시간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우린 지도상 최단거리 하산 길을 택했다.

우리는 고작 30여분 때문에 대한 민국 최악의 산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자인사 너덜 계곡 하산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한동안 유지되었던 명성산의 부드러운 능선 길 평화는 여지 없이 깨어졌다.

표변한 산길은 마치 명성산의 낭만과 추억을 잊어달라는 듯 경기를 이르킬 만큼 가파르고 위험한 수직 계곡으로 지친

몸을 몰아 댔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미끄러 지거나 쌓인 낙석들이 굴러 떨어져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황당한 길이었다.

그 길은 제대로 정비하기 전까지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해야만 할 것 같이 위태롭고 험악했다.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이 길로 내려왔다가는 죽음일 듯….

 

끝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우린 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고 길이 다시 평화를 되찾기 까지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짜내며 인내를 시험해야 했다.

자인사는 길이 편안해진 아래 길목에서 홀연히 나타나는데 우리는 그곳에 들러서야 비로소  오랫동안 쌓아 둔 갈증을

해갈할 수 있었다.

시간상 계곡에 들러 알탕을 하지 못할 터라 염치 불구하고 우물가에 웃통을 벗고 상의를 빨아 입었다.

혹여 스님이 뭐라 하면 부처님 집에서 목마르고 지친 자가 물보시도 못받냐고 한마디 하려 했는데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6명의 꼴지조는 예정시간에서 50여분을 더 지체 했다.

지난 조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뒤풀이가 방금 끝났으니 그리 민폐도 아니긴 하지만  모두들 그리 빨리 들어 온

것을 보면 만인산악회 사람들 참으로 대단한 준족 들이다..

 

옆자리에 앉은 동행은 선두로 내려와서 1시간도 넘게 기다렸단다.

아침에 오면서 백두대간 산행에 대해 일장 강의를 해주었는데 속으로 꼴찌가 괜히 티네고 행세 했다고 했을 법도 하다.

근데 이사람아 산은 빨리 탄다고 좋은 게 아녀

풍경을 즐기면서 즐겁게 타야지

 

그럼 나는 오늘 뭐야?

빨리도 못 타고 상황이 좀 안 좋다고 속으로 툴툴거리느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10년 공부 나무아미 타불….

산의 기를 받으며 도를 닦은 지 어언 몇 년 이란 말이 무색하고 부끄러운 하루였다.

살아 가면서 밥도 먹고 누룽지도 먹고 고기도 먹지만 욕심부리면 체한다.

먹고 싶을 때 먹어야 맛있게 먹는 법이다. 

결정했으면 후회하지 말고 어짜피 할 일이면  웃으면서  즐겁게 하자.

 

궁예의 눈물과 뜨거운 명성산이  다시 일러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