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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100대 명산 제 85~86산 (가지산,운문산)

 

 

 

 

 

 

 

 

산 행 지 :  가지산, 운문산

    :  햇빛은 강하나 바람 시원

    :  13 .3km

소요시간 :  6시간 35

    :  마눌,민수산악회

 

 

석남터널  -  가지산   : 3.4km  (2시간 5분 소요)

가지산    -  아랫재   : 3.9km  (1시간 23분 소요)

아랫재    -  운문산   : 1.5km  (55분 소요)

운문산    -  석골사   : 4.5km  (1시간 40) 

 

 

 

지난 번 화왕산 산행 후 2번 째 억새 산행이다.

가지산,운문산

영남 알프스에 위치하지만 억새풍경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산세의 낙차가 커서 100대 명산 산객이나

영남알프스 주유객  말고는 대놓고 억새를 찾는 외지 산객의 발길은 좀 뜸한 곳이다.

대전 100대 명산 산행 선두주자 격인 민수산악회가 야심 차게 두 개 산 연결산행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하지만 참여인원은 저조하여 달랑 28

한밭산사랑은 대형 보스 두 대를 모객하여 신불산으로 가는데….

 

어쨌든 좀 부담스러운 민수산악회와 함께 간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민수산악회는 번번히 산행시간을 너무 인색하게 배정한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쉬는 꼴은 못 보겠으니 계속 돌격앞으로!” 를 외치라는 거다.

말로는 안산이고 즐산이지만 핵심만 요약하면 산 길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뿔나게 움직여 빨리 빨리 내려

오라뭐 그런 얘기다.

꼬우면 산악회 하나 만들던지 아니면 계속 준족 하던지….

나원참 100대 명산 길이 산과의 전투도 아니고….

 

다음날이 태현과 백두대간 출정일 이긴 하지만 나보다는 마눌이 걱정이다.

추석 때 체력소모가 많았고 지난 8월 명성산 이후 산다운 산을 타지 않은 마눌은 지난주 화왕산 오름길

에도  힘들어 했다.

 

만수는 가지운문 종주에 달랑 6 시간을 부여한다고 했다.

대략 계산해봐도 휴식시간 까지 6시간 30분 이상은 걸릴 듯 하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도 그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늦어질 하산과 초과 시간 줄이기가 부담스럽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놓고 볼 때 이번 출정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가지산과 운문산.

대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동도 문제이고 온 길을 되짚어 오지 않으면 원점회귀도 되지 않는다.

차를 몰고 갈 경우 돈과, 시간 뿐만 아니라 피곤한 몸으로 차를 모는 위험까지 모두 수반된다.

한 번 출정으로 한꺼번에 두 산을 아우른다?

미안하긴 해도 산우들의 원성과 산행대장의  투덜거림 쯤은 감수할 만한 가치와 매력이 충분한 산행

길이다.

어쨌든 몇 일을 두고 옆에서 슬슬 바람 잡으며 마눌의 결심을 기다리는데  결국 마눌은 걱정 속에서도

출정의 결심을 굳혔다.

이럴 때 거북이 녀석이 동행해 주어도 좋으련만 녀석은 늘 말로만 함께 가자고 외치기만

할 뿐, 자신이 가보지 않은 100대 명산 산행일정이 뜨기라도 하면 산악회 불문하고 따라 나서기 바쁘다.

아얘 산이 도망갈까봐 안달이 났다.

지난번 천안 어느 산악회선가 영남 알프스 1박 종주 산행이 공지되자 마자 신청을 넣어 버렸다.

1 4피에 눈이 어두워서…..

그래 낙장불입이다.

 

먼 거리인데 예전보다 시간은 엄청 빨라졌다.

가지산이 보이는 곳에서 주변 산세를 설명하던 민수대장이 겁을 팍팍 준다.

가지산이나 운문산은 별개의 산이나 마찬가지 라고

바닥 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 가야 한다고

시방 산을 타라는 거여 마라는 거여?”

그렇지 않아도 산세에 기가 죽어 쫄밋 거리는 마누라에게 대놓고 협박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꼴이다.

마지막에는 쐐기 까지 박는다.

아랫재 까지 3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운문산을 타지 말아 달라고….

산은 늘 거기 있으니까 고생 사서 하지 말라고….

 

이해는 간다.

모객도 되지 않아 돈도 안되니 산행을 일찍 마무리하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

하지만 애초에  선두 준족들에 맞춘 타임 테이블을 부여하고 짧은 코스 하산을 부추키는 모습은 우리처럼

꼭 두 산을 가야만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서운하게 들릴수 밖에 없다.

좀 여유를 가지고 즐기자는 산이데….

“30분만 더 주어도 좋을 텐데…”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꼬이지 않지만 귀연이 좋다는 거다.

늦게 오면 늦게 오는대로 반갑게 맞이하며 술 한잔 따라 주고 스산한 바람길에서도 불평없이 두,세 시간

술 한잔 치며 기다려 주는 오랜 산 친구들이 있는…..

 

문제는 운문 가지 능선 길이야 영남알프스 종주 때 걸어 본 길이라 대략 예측이 되지만 가지산 오름길과

운문산 하산길은 초행 길이니 시간 안배가 잘 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어쨌든 초읽기에 몰린 우리는 10 50분 씩씩하게 가지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가지산 가는 길

영남 알프스를 종주할 때는 가지산에서 급격히 고개는 떨구는 능동산 능선을 따라 가다가 방향을 잘못

잡아 밀양방향 석남터널을 따라 잘 못 내려 가는 바람에  길도 없는 능선을 치고 오르느라고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울산방향 석남터널 쪽으로 가야 하는데 ….

 

석남터널 등로 입구에서 가지산 가는 길은 참으로 편안하고 멋진 길이다.

흙으로 조성된 오솔길에 울창한 수림이 드리워 숲 밖에는 뜨거운 태양이 아직 한여름의 열기를 누그러

뜨리지 않고 있지만  숲 길에는 시원한 바람이 수시로 드나들어 걷기가 너무 좋았다.

한여름의 서슬푸른 청록의 잎새들은 어느새 편안한 갈색의 빛깔로 바뀌어 간다.

오랜 세월 산을 다니며 느끼는 것이지만 계절의 변화로 가늠하는 세월은 참으로 빠르기 그지 없다.

붉은 진달래의 멋진 암릉 길을 걸으며 시원한 해풍을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무수한 대한민국 대표

계곡의 무수한 알탕의 즐거움도 한바탕 꿈처럼 지났고 벌써 지리산 천왕봉과 제석봉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을 만난다

다시 돌아 오는데 7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이젠 내 남은 생애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고 새삼 빠른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정말 어디론가 떠날 수 있고 또 어느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보다 더 뚜렷이 존재를 일깨우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호젓한 숲길을 지나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서 한 굽이 능선에 서니 12시가 다 되어가 배가 출출하다.

능선 위에 이정표와 공터가 있어서 식사를 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석남터널 2.7km  그리고 가지산 0.7km  누군가 이정표를 긁어 내고 다시 0을 써 놓았다.

일행들의 중간쯤 출발을 했는데 점심을 먹는 사이에 후미 일행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 갔다.

식사를 마치고 가파른 돌길을 올라 힘겹게 푸른 하늘을 마주했는데 오잉!

여기가 아닌 개벼 !”

 가지산은 저만치에서 허리를 바짝 치켜 세우고 앉아 있다.

7년 전 영남 알프스 주유 때 내려 온 길이긴 해도 당근 가지산으로 알았는데 아뿔사 여긴 가지산 전위봉이다.

 

가지산 까지는 50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우린 전위봉에서 멋진 영남알프스 산군의 파노라마를 조망하고 산비탈을 내려와서 가파르게 우뚝 선

가지산으로   올라갔다.

전위봉을 치고 내려온 안부에는 가지산 정상까지 거리가 350미터 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가지산 정상

2시간 5분 걸렸다.

되살아나는 7년전의 기억을 일깨우며 장엄하게 파도치는 영남 알프스 능선들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다.

고사리 분교에서 새우잠 1박으로 영남 알프스 9 11봉을 아우르던 그날은 이틀간 18시간이나 걸었었다.

그것도 군대시절 완전군장보다 더 무거운 배낭을 진 채로

석골사에서 최초 봉우리 억산으로 올라 가는 가파른 길에서는 배낭이 너무 무거워 토할 것 같이 속이

메스꺼웠다.

2번째 봉우리 운문산 정상에서 지쳐 버렸는데 일행들이 내놓을 간식을 닥치는 대로 먹고 뫼오름님이

가져온 양주 한잔을 받아먹고 정신을 수습했었다.

컨디션 난조를 보인 산바람님과 닐리리아님이 떠나서 마음마저 황량해진 채 다시 거친 길을 걸어 힘겹게

올랐던 바로 그 가지산 이었다.

 

그 때 완전히 기진맥진한 나를 살린 것은 거칠 것 없이 불어온 고원의 바람이었고 눈이 시린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고산풍경 이었다.

그리고 산장에 들어가 연거푸 마셨던 차간운 막걸리, 물 탄 막걸리 석잔 이었다.

그 때 내가 새삼 막걸리의 위력을 알았다.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거다.”

 

갈 길이 바쁘긴 해도 우린 표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고원 망루에 앉아 가을 빛에 젖어 드는 100고지

영남 알프스 산군 들을 말없이 바라 보았다.

정상의 후련한 조망과  뿌듯한 땀의 보람

이 맛에 산에 오른다.

 

7년 전 그대로 인 작은 정상표석 옆에는 거대한 표석이 다시 세워졌다.

지난 번 간월산과 신불산,재약산에 세워진 것과 같은 ……

7년 전 불었던 시원한 바람이 다시 불어와 변함없는 위로와 기쁨의 인사를 전한다.

안녕 무릉객.”

7년 동안 나는 많이 변했고 가지산과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올라오는데 힘들었던 마눌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정상에서 탁 트인 조망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다시 힘이 살아나고 있다.

우린 정상에서 10분정도 휴식했다.

오래 쉬면서 후련하고 상쾌한 고원의 대기를 한껏 호흡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다시 마눌을 채근

하여 아랫재로 길을 잡았다.

가는 길 우측에 운문산이 담대히 서있고 걸어온 방향 쪽 우측으로 멀리 능동산을 지나 재약산을 향해

치닫는 능선과 뾰족한 천황산이 보인다.

 

아랫재 가는 길

산장 입구에  아랫재 까지 1시간 20분 걸리고 운문산 까지 2시간 20분 걸린다는 팻말이 서있다.

이정표 속도대로라면 아랫재까지 도착하면 민수대장이 통보한 사간에서 35분이 늦어진다.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일대를 굽어 보는 멋진 조망길이 계속되고 비탈 사면으로 간간히 억새 군락이 나타 났다.

가지 산신령님께서는 한 다발 용담꽃으로 우리의 85번 째 장도를 축하해 주었다.

중간에 백운산 능선으로 내려가는 산악회를 만났고 후미에서 움직이던 2명의 일행을 만났다.

그들은 아랫재에서 하산할 거라고 하면서 우리를 추월해  앞서 갔다.

 

아랫재

능선이 급격히 아래로 쏠리기 시작하면서 등로가 가파르게 내려 가는데 아랫재 까지 얼마 안될 줄

알았던 그 길이 엄청나게 길다.

7년 전 기진맥진한 채 널부러 졌다가 귀인을 만나 차갑게 얼린 물 한 병을 통째로 건네 받았던 곳이다.

그날 가지산장에서 식수를 보충할 생각을 했지만 날이 얼마나 무덥고 힘들었던지 걸어야 할 길을 반도

채 걷지 못한 상태에서 모두들 물이 달랑거렸다.

목젖이 얼얼한 얼음물 한통의 위력이라니

엉겁결에 식수를 확보한 나는 일행들이 물보충하러 아랫재로 내려간 동안에 아랫재에 대자로 누워

노래진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휴식을 취했던 것이다.

 

애랫재에는 가지산 3.0km 운문산 1.5 km 이정표가 서 있다.

우린 3km 길을 1시간 23분에 걸었다.

민수대장이 경고한 아랫재 시간에서 38분이 초과 되었다.

민수대장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내려가야 하겠지만 우린 그럴 생각이 없다.

오늘 조금 힘들고 미안하더라도 1시간 거리에 서 있는 운문산을 남겨두고 갈 수는 없어서 잠시 숨을

돌리고 운문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늦은 사람은 전화를 하라는 민수대장의 이야기도 무시한 채

 

운문산 가는 길

내림길에 우리가 추월했던 건장한 남자 산님 둘은 아랫재에서 하산을 했다.

아마도 그 길로 내려가면 아래서 우리가 내려올 때 까지 1시간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이다.

가지산 능선에서 바라 본 것처럼 운문산 오름길은 가파른 길이다.

거칠고 힘든 길인데도 마눌은 평상시 속도 이상을 유지하며  잘도 걸어 올랐다.

속도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고 앞서서 진행하는 걸 보면 체력소모가 그리 크지는 않은 듯하다.

길은 나선형으로 서서히 감아 오르는데 정상에 다가갈수록 경사가 심해진다.

예전에 못 보던 계단 길.

그 길 위에서 분지처럼 산릉으로 둘러 쌓인 채 녹색의 평화로움 한가운데서 호젓한 상양마을과

일대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계단 길을 오르고 나서 혹시 또 봉우리 넘어 봉우리가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암봉을 지나자 운문산은

푸른 하늘과 하얀 구절초의 웃음으로 그렇게 홀연히 나타났다.

 

운문산

드디어 우리는 운문산 정상에 올랐다.

우후의 햇살이 붉은 빛은 머금고 눈부시게 쏟아지는 또 하나의 고봉에

그 옛날 나의 땀과 전설이 남아 있는 그 곳….

산 아래 내려다 보이는 풍경들은 다소 쓸쓸한 심상을 반영하기라도 하는 듯 조금씩 깊어가는 가을의

수심을 드리우고 있다.

운문산의 옛 표석은 아래로 옯겨지고 새로운 표석이 능선 위에 서 있었다.

오르는 길에 사람의 자취가 없어서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정상에는 울산에서 온

산님 두 분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사진을 부탁하면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었다.

석골사 까지는 4.5km

정상에서 막걸리는 따라주면서 이 산님들도 하산길이 험하다고 겁을 팍팍 준다.

 

민수대장에게 이제 정상에 도착했으니 좀 늦을 것 갔다고 전화를 했다.

좀 난감한지 너무 늦었다는 말만하고 민수 대장은 전화를 끊었다.

아랫재에서 전화를 하면 분명히 오르지 말라고 했을 터니이 어쩔 수 없다.

막걸리 한잔씩 받아 먹고 우리는 하산 길을 재촉 했다.

딱밭재 까지 능선을 따라 가다가 내려가는 코스가 있고 400미터 쯤에서 상운암을 거쳐

급하게 내려치는 코스가 있다.

딱밭재 가는 길에 절벽지대가 하나 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딱밭재에서 내려서는 길이나 가지산을 지나 바로 떨어지는 길이나 다 미답의 길이니 원근과 난이도를

비교를 할 수가 없어서 우린 먼저 나타난 길로 내려섰다.

나중에 보니 바로 내려오는 길과 딱밭재로 거쳐내려 오는 길은 약 400미터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상운암을 지나서 800미터쯤 내려오자 길이 계곡을 건너 간다.

우리는 잠시 얼굴과 손을 씻고 휴식도 하지 않은 채 갈 길을 재촉했다.

너덜길이 많았다.

점점 난코스가 나타나고 비탈은 더 심해졌다.

 

별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내려가기 바빠 길을 재촉했는데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시계가 없다.

웬일이래?”

아까 세수할 때 분명히 있었는데…..

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이제 조금씩 정들어 가는 시계인데 불현듯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속도를 제법 내었으니 사 오백 미터는 족히 내려오지 않았을까?

마눌은 그냥 가자 하는데 아직 그리 많이 내려오지는 않은 터라 마눌 보고 속도를 늦추지 말고 내려

가라고 해놓고 다시 길을 되짚어 올라간다.

오름 길을 빠르게 치고 올라가려니 숨이 턱에 찬다.

산길이나 인생길이나 다 똑 같다.

잘못된 일을 다시 원상으로 회복 시키려면 두 배로 힘이 더 드는 법이다.

얼마 내려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길은 꽤나 멀었다.

다행히 시계는 우리가 세수를 했던 계곡 물가 입구에 떨어진 채 그대로 있었다.

세수하느라 시계줄이 느슨해 지면서 풀어진 모양이다.

 

거칠고 험한 길에서 최대한 속도를 낸다.

해는 아직 넘어가지 않았을 텐데 깊은 계곡이라 내려 갈수록 어둑해지고 수량은 많아졌다.

외길이긴 하지만 길의 흔적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아 겁 많은 마눌이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 한껏 속도를

내는데 가파른 너덜과 돌길의 계곡이라 그리 쉽게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어떤 길을 뒤돌아 보지 않고 꾸준히 간다는 것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작고 미약한 발걸음이 멈추지 않고 꾸준히 계속될 때 그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래서 우리의 지혜로운 조상들께서는 거북이와 토끼의 우화로 느리지만 긴 호흡을 이어가는 은근과

끈기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한참 아래 쪽으로 내려와 1.7 정도 내려 온 곳에서 마눌을 따라 잡았다.

계곡은 아래로 내려 갈수록 풍부한 수량의 폭포와 소를 자랑하며 소리치고 있는데 갈길이 바뻐 알탕도

못하고 내려서는 심정

올해 알탕의 맥은 정녕 운문 가지에서 끊어지는가?

 

인적 없는 길은 어둑하고 아직 갈 길은 멀다.

구비치는 산 길을 여전사처럼 씩씩하게 걸어 가는 마눌

마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 상념에 잠긴다.

이 길이 정녕 인생길을 닮았다.

형제도 많고 친구도 많고 자식도 있지만

인생의 황혼 길도 결국 마눌과 나 둘이 남는 것 아닌가?

황혼이 지는 어둑한 길을 같이 걸어갈 사람은 마눌 뿐 아닌가?

새삼 느끼는 짧은 인생과 인생 후반부에 더 선명해지는 부부란 의미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석골사 1Km 쯤 남겨둔 곳에서 민수대장이 어디쯤 오느냐고 전화를 했다.

석골사 1km쯤인데 열심히 내려가고 있다고 했다.

더욱 서둘러 발에 모타를 달고 열씸히 내려가는데 그대로 두어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민수대장이

다시 전화를 해서 불만과 화를 퍼부어 댄다.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도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자기 욕심만 차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3시간 넘어가면 아랫재로 내려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어디 까지 내려왔습니까?  빨리 서둘러 주세요볼멘 목소리로 쏘아 붙이고 전화를 끊는다.

그가 이야기 하던 안전산행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고 그렇지 않아도 해가 들지 않아 스산한

계곡 길에 찬바람이 씽씽난다.

다른 사람들을 달래기 위한 쇼맨쉽인지 아니면 자신이 정말 화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바뻐진 마음이 더 바빠진다.

내가 무슨 할말이 있나?

그냥 죄송합니다. 빨리 내려가겠습니다.” 하고 열씸히 내려 가는 수 밖에

얼마되지 않아 석골사가 나타났다.

석골사에서 버스 있는 곳까지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지나는 차가 있으면

염치불구하고 편승을 할까 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인지 내려가는 차도 없었다.

우리는 할 수없이 포장도로를 뛰다시피 하면서 내려 갔다.

붉은 사과과 주렁주렁 익은 과수원 길을 지나고 개천 다리에 올라서자 차가 보였다.

민수대장은 다리건너 공터에서 차에 시동을 건 채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민수대장에게 늦어서 미안합니다.”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는데 민수 대장은 인사도 받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 자리까지 이동하면서 우린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연신 미안합니다를 연호했지만 답해

주는 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늦었다고 대 놓고 퉁을 주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쨋든민수대장의 경고 때문에 두 산을 함께 오르려던 많은 사람들은 그냥 내려왔을 터이고 정말 오래

기다렸을 것이다.

 

예상대로 깔끔한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우린 어쨌든 예정했던 대로 영남의 걸출한 두 산에 성공적인

발도장을 찍었다.

우린 정말 별로 쉬지도 않고 거친 산을 발바닥에 고무탄내 나도록 빠르게 걸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5 25

출발시간이 10 50분이었으니 전체 6시간 35분 걸렸다.

굳이 변명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산행은 우리의 문제라기보다는 민수산악회의 운영의 묘가 부족한

탓이었다.

어짜피 2개산을 묶어서 공지했으면 산행력이 되는 사람들이 탈 수 있게  해 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중간에 아랫재 시간을 굳이 정하지 않고 6시간 30분만 주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내려왔을

터이고 조금 늦었다고 화가 나거나 불만을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공지대로 산행시간을 6시간 준다고 쳐도 4 50분 까지 내려오면 되는 건데  4 30분 까지 하산을 해

달라고 했던 것도 문제이다.

민수대장은 하산까지 5시간 40분의 산행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우린 정해 놓은 하산시간에서 55분 늦었지만  원래 예정된 6시간을 주었다면 우린 정확하게 35분 늦은

것이다.

35분이면 후미가 뒤풀이 먹고 치우는 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린 늦은 죄로 뒤풀이 안 먹으면 되니까

하지만 민수대장이 정해준 아랫재 도착 시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운문산을 오르지 않고 아랫재로 일찍

내려와서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일찍 내려와서 규정시간 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루했을 터인데 그 시간에서더 늦어지니 너무

오래 기다린다는 생각에 불만이 고조되었을 것이다.

자기들은 산행대장의 말을 잘 듣고 일찍 내려 왔는데 말 안 듣고 운문산 까지 욕심낸 두사람 때문에 오래

기다렸다고

 

마눌은 다시는 민수산악회 안 간다고 한다.

그래도 굳이 그럴 필요 까지 있을까 만은 다른 산악회처럼  30분이나 1시간 정도만 늦춰주어도 좀더 여유

로운 산행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산이 멀리 달아날 일이 없다.

하지만 한 시간 더 오르면 되는 거리에  또 하나의 산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우리는 쉬이 늙어간다.

아직 돌아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을 두고 돌아 갔다가 다시 6시간

이동하면서  다섯 시간 산을 타고 돌아오는 것이 더 잘하는 일일까?

산과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시간이었고 마눌과 함께 춘 85,86번째의 격정의 가지.운문

파워풀 댄싱 이였다.

 

어쨌든 마눌은 그간의 슬럼프를 깨끗이 씻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고원의 시원한 바람이 많이 도와 주었지만 걸출한 영남 알프스의 명산에서 보여준 마눌의 투지와 파이팅은

대단했다.

오늘의 성공적인 산행으로 마루어 짐작컨대 앞으로 남은 14100대 명산 중에서 마눌의 발목을 잡을

만한 산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무릉객 파이팅!  마눌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