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가고보 싶은 산이 있다.
가야산은 만물상코스가 38년 만에 개방되고서 3개월만에 마눌과 둘이 100대명산 50번 째로 다녀온
산이다.
그날 하루종일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가을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산이었다.
그 이후로 난 더 열정적으로 산을 다녔지만 오랫동안 가야산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은 10년이 흘렀다.
엊그제 같은 그날이 벌써 10년이라니…
가끔은 생각한다.
지금부터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여전히 산과 대자연의 언저리를 떠나지 않겠지만 그 때쯤이면 먼산과 큰 산이 조금은 힘에 부치지 않을까?
세월이 오랫동안 보여주고 가르쳐준 것처럼…
산과 더불어 늙어간 나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당연히 남아 있는 나의 전성기는 다가 올 10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은비 결혼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은 또 참석할 결혼식이 있고 난 특별한 스케쥴이 없다.
대한민국의 아버지란 다 그렇다.
딸래미 목에 걸고 그렇게 이뻐 하다 보면 그냥 세월이 그렇게 훌쩍 흘러가고 정작 결혼하고 떠나는데도
할 일없이 멀뚱거리며 먼 산을 보고 빈둥거릴 뿐이다..
그 날 가면 오래 잡았던 그 손을 놓고 조용히 돌아와야 하는데…
자식은 평생 A/S라 하지만 이제 남은 인생은 저와 생면부지의 그에게로 귀속될 것이다.
요즘은 마눌 콧속에 통 바람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같이 떠나면 좋겠지만 딸을 보내는 마눌은 여전히
몸도 마음도 바쁘다.
어제 비가 내리고 차가운 한파가 온다고 했다.
우린 삶의 길목에서 수많은 망설임을 만난다.
떠날까 말까?
살까 말까?
먹을까 말까?
줄까 말까?
할까 말까?
맥두대간의 원대한 목표가 달성되고도 나의 망설임은 떠나느냐 떠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삶은 더욱 깊고 즐겁게 만든 나의 잠언은 “떠날까 말까 할 는 떠나라 “
떠나지 못해서 답답하고 짜증난 날은 많았지만 떠나서 불만족스런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깊어가는 가을이다.
내 생애 가장 바쁜 가을이 벌써 뒷꼭지를 보이고 있다.
가고 싶은 그 많은 곳 중에서 난 단지 어디로 갈 것인가?
내장산 종주를 하고 싶기도 했지만 비온 후 한파가 밀려오는 투명한 날의 가야산의 조망은 얼마나
멋질 것인가?
추억으로 가는 마차
일단 버스에 오르고 기분 좋게 한 잠을 때리고 나면 나는 옛 추억의 길 위 다시 서서 지난 상념에 젖는다.
500미터쯤 가다가 화들짝 놀랐다.
물을 한 병도 챙겨오지 않았다.
아무리 무심한 가을이라도 난 너무 했다.
다시 내려가 사올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거친 산길이지만 찬바람과 가을이 도와 주겠지.
정 목이 마르면 한 모금 얻어 마셔도 되고
그래도 포도쥬스 2개는 내 배낭 안에 얌전히 박혀 있다.
역시 나만의 가을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많은 산길에 충일이 2대의 버스를 풀었으니…
오늘은 텅 비워야지 ..
삶의 찌거기를 날리는 곱게 물드는 저 낙엽처럼….
날씨는 흐렸고
골짜기를 지나 능선에만 올라서면 차가운 바람이 불어 주었다.
난 밝은 채양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가야나라 대신 우수에 찬 제국의 가을을 만났다.
물드는 나무와 바람에 날려간 빈가지 사이로 만물상의 골격미는 더 두드러 졌다.
나도 인생의 겨을을 준비하는 거겠지
바람결에 나뭇잎을 모두 떨구어낸 저 나무처럼….
은비를 보내고
언젠가 태현이를 보내고 나면 어머님도 떠나실 게다.
겨울 벌판에는 나와 마눌과 이젠 텅비워야 할 가슴만이 남는 거다
처음 대하던 만물상
엊그제 같은 그날의 절절한 감동과 풍경은 아직 가슴에 생생한데 벌써 10년이 흘렀다.
내 남은 생애의 10년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아깝고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항상 그래왔지만 이젠 절대 잃어서 안 되는 것은 건강한 날의 자유와 짧은 가을이 아닐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는데 사무치는 그리움과 여전히 춤추고 싶은 가을은
이제 내게 몇 번이나 남아 있을까?
38년 만에 개방된 환상의 가야산 만물상
2006년 9월의 가야산 - 마눌과 100대명산 50번째
http://blog.daum.net/goslow/1793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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