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만우절이다.
근데 대학친구들과 이슬봉 가기로 한 건 진짜다.
다만 갑자기 일정이 생긴 항식과 덕하가 불참하기로 했고
정말 무성의하고 싱거운 놈 양표가 완전히 침묵으로 쌩까다가 당일아침에야 겨우 전화를 걸어
만우절 죠크였음을 알린 거 말고는…
카톡볼 줄도 모르고 전화할 줄도 모르고 진화를 거부하는 21세기 네안델트아린 같은 놈
동윤이 우정을 네다바이하는 양표스러운 놈
친구들아! 대통령도 탄핵하는 판국인데 우린 개기자 양표시키 탄핵시키자자!
3주 연속 화창한 봄 날씨를 열어주더니 이번 주말은 흐리다.
동료들과 술 한잔 치고 돌아오는 흐린 금요일에도 별로 날씨 걱정은 되지 않았다.
“우산 쓰고 봄비 한번 맞아도 좋은 거지 뭐”
마눌이 대짜배기 막걸리 한 통을 사놓았는데 오늘 소주 두 병이나 마시고 낼은 항식이도 안 오는데
막걸리 큰 통을 다 비울 수나 있을까?
아침에 친구들과 합류해서 식사들을 하고 다소 늦게 장계교로 이동 하는데 옥천으로 다가갈수록
맑던 날씨가 흐려지더니 급기야 여름비처럼 장대비가 내린다.
출발도 늦었고 일기도 안 좋을 것 같아 아쉽지만 마성산 구간은 유보하고 능선 중간 며느리재에
서 국원리로 하산하기로 했다.
산행일 : 2017년 4월 1일
산행지 : 대청호 이슬봉
코 스 : 장게교-이슬봉-며느리재-국원리
소 요 : 3시간 30분
동 행 : 동윤,성환,전환,종경,
날 씨 : 흐리고 맑고 비 우박 싸래기
친구들과는 1월 1일 대천 회동을 했으니 정확히 3개월 만이다.
순식간에 올 한해도 1/4 이 지나가 버렸다.
두루마리 화장지 풀리는 것 같이 더 빨라진 세월은 이젠 감동 없이 흘려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소중한
봄을 일깨워준다.
인생의 봄날은 지나갔지만 인생의 가을날에 잃어버리는 짧은 봄날은 추억으로 살아가야 하는 날이 되면
아쉬움과 후회로 되돌아 올 것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대자보에 걸리듯 종합영어 간판페이지에서 나부끼던 글귀
안보면 멀어진다고…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면서 살아야 한다고…
조금씩 물기가 마르는 인생의 가을날에는 서서히 결핍이 드러날 것이다.
건강,일,돈,삶의 기쁨
나머지 부족한 것은 그 동안 살아온 내공과 마음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이 황홀한 자연과 젊은 시절의 추억을 함께한 좋은 친구들이 이런 결핍을 채워주고 살아감을 좀더
가볍게 해 줄 것이다.
넘칠 때는 모른다.
그것이 사랑이고 행복인줄은..
무성한 잎새를 모두 떨어드린 인생의 가을날이 되어야 비로소 사람도 인생도 다 보인다.
세상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고 내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좋은 친구란 어떤 친구인지
사소하고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 알게 된다.
물기를 머금은 능선은 조금씩 푸른 빛이 번져가고 있다.
3주전 남도에서 피기 시작한 매화는 이제 한창이고 2주전 접도에서 만났던 진달래는 비로소 이곳
갈색의 능선에서 수줍게 피어나고 있다.
소음도 없고 내리는 비에 씻기어 미세 먼지도 없이 코가 뻥뚤리는 쾌적한 봄날이다.
우리는 바리바리 준비에 온 음식으로 산상만찬을 즐겼다.
드래싱까지 얹어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후르쓰 칵테일을 준비해 온 동윤은 달랑 포크를 하나만
준비해가지고 와서는 친구들이 웃고 떠들며 막걸리 치는 사이 바닥에 고인 드레싱까지 다 핥아먹어
버렸다….
“헐~~~~~ 난 몇 개 먹지도 못했는데…”
18년산 산삼주는 귀한 거지만 몸에 별루니 그건 친구들한테 던져주고…..
못 말리는 먹성의 불가사리 동윤…
맛 없는 술은 빼고 쓸데 없는 대화는 생략하고 맛있는 것만 집중 공략하여 단기간에 끝장을 보고
나서야 서서히 밀린 대화에 끼어들고 두 번째 음식으로 옮겨간다.
“체면은 건강을 헤친다.”
만패불청하고 먼 거리를 득달같이 달려와서 끼니 거르지 않고 제대로 맛있는 거 골라먹는 동윤이
네가 낡아가는 노구를 아주 잘 챙기는 실속있는 넘이다…
노후에 건강 별거 있냐?
잘먹구 잘싸고 잘자믄 그만이지.
금강산도 식후경
하여간 우린 산행 초반전에 막걸리에 떡에 약밥에 한라봉에 사과와 갖은 과일에 포식부터 하고 본격
산행에 돌입하다.
들날날락 거리는 날씨가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슬봉의 비경을 더욱 신비롭게하고 이름처럼 능선을
맑은 이슬로 반짝거리게 만들었다.
맑게 개인 투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
초록이 움트고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날..
우린 아무도 없는 호젓한 능선과 아름다운 풍경을 통째로 전세 내고 그간의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km를 생략한 건 다행이었다.
너무 늦게 하산 하면 동윤이 차 시간 때문에 술 한잔 칠 시간도 빡빡할 뻔 했다.
전환이의 발이 무거워지고 피로가 누적될 때쯤 우린 며느래재를 만났고 매화꽃 흐드러진 국원리로
내려와서 새강변 가든에서 보신 메기탕으로 와인한잔 하면서 봄날의 회동을 축하했다.
보신 메기탕은 바닥을 드러냈지만 항식이가 없어서 아쉽게도 막걸리도 남고 와인도 남았다.
오늘도 행복한 날이다..
내 사는 가까이에 남아 있는 이렇게 멋진 풍경 속을 친구들과 함께 거닐 수 있었던 오늘….
반가웠다 친구들…
함께해서 즐거웠네
PS
친구들!
우리에게 오늘 같이 건강하게 걸으며 맞을 수 있는 봄은 몇 번이나 남았을까?
지난 시간이 그리 빨리 흐른 것처럼 우리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지 않을 걸세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이 함께 자유로운 시간 말일세
인생의 가을날에도 세상이 강요하는 삶의 그릇된 가치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지 않으면 우린 또 다시
세월 속에 소중한 많은 것을 잃어야 하겠지
점점 더 아까워지는 우리의 남은 시간들
더 이상 우리의 추억과 우정을 방기하지 말아야 할 때가 된 것이고 그게 내가 무수한 유혹의 봄날에도
친구들에게 통발을 잊지 않는 이유가 되겠네
산을 좋아하는 내가 산처럼 거기 서서 한 번씩 친구들을 부르겠네
대답이 오면 좋고 메아리만 돌아와도 괜찮네…
이 번에는 못 오더라도 다음에는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들으며 돌아오지 않겠나
그래야 우리 젊은 날의 소중한 추억과 좋은 친구들은 가끔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네
누군가 꾸준히 만난다면 이빨 빠지고 힘 빠져 갈데 없는 친구들이 언젠가는 연어처럼 다시 추억의
강을 거슬러 돌아 올 고향이 있지 않겠나?
삶의 변함없는 진리는
좋은 친구를 만들려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거.
남은 멋진 세상을 누리기 위해서
뜨거운 가슴과 튼튼한 다리는 꼭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거.
건강하게나 ! 아프지 말고 !
우리의 모임은 계간이고 우리의 테마는 추억과 자연일세..
각자 다른 강물에서 열심히 살아가다가 계절이 바뀌는 세월의 여울목에서 잠시 만나 자연과 풍류를
즐기면서 술 한잔 치세나.!
이제 그런 재미로 살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이야
다만 의무와 부담은 전적으로 사절이고 사양일세
나오기 싫거나 바쁘면 안 나와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모임
쳇바퀴 도는 세상이 답답할 때
불현듯 친구가 보고 싶을 때
추억이 담긴 한잔의 술이 생각날 때
만나고 싶고 오고 싶은 사람만 함께하는 그런 모임 말일세
인생의 가을날에는 삶도 단순화해야 하듯
친구도 옥석을 가려야 할 것이네.
가슴이 따뜻해지고 늘 만나고 싶은 친구
우린 지금 서로에게 그런 친구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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