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17년 6월 17일(토) ~14일(일)
산 행 지 : 지리산 종주
코 스 : 노고단-반야봉-삼도봉-명선봉-영신봉-칠선봉-연하봉-천왕봉-백무동
날 씨 : 맑고 부드러운 바람
거 리 : 약 31km
소요시간 : 약 19시간 20분(첫날:약 12시간 30분 / 둘째날 약 6시간47분)
동 행 : 홀로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4:35 |
노고단산장(6/17) |
출발 |
05:00 |
노고단(1440m) |
도착 |
05:25 |
노고단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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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 |
돼지령(1390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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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
임걸령(1320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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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7 |
노루목(1498m) |
반야봉:1.0km, 삼도봉:1.0km, 천왕봉:21km, 노고단고개:4.5km |
07:08 |
천왕봉 갈림길 |
반야봉:0.8km, 천왕봉:20.5km, 노고단고개:4.7km |
07:32 |
반야봉(1732m) |
약 20분 휴식 |
07:57 |
다시 갈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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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5 |
삼도봉(1499m) |
천왕봉:20.0km, 노고단고개:5.5km |
08:58 |
화개재(1316m) |
연하천4.2km, 뱀사골:9.2km, 노고단고개:6.35km |
09;30 |
토끼봉(1534m) |
연하천:3km, 천왕봉:18km, 노고단고개:7.5km |
10:29 |
명선봉(1586m) |
연하천:0.4km, 천왕봉:15.4km, 화개재:3.8km, 노고단고개:10.1km |
10:35 |
연하천대피소 |
벽소령:3.6km, 천왕봉:15.0km, 화개재:4.2km, 노고단고개:10.5km |
12:07 |
형제봉(1453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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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 |
벽소령 대피소 |
중식 섀석:6.3km, 천왕봉:11.4km, 연하천:3.6km, 노고단:14.1km |
14:29 |
선비샘 |
세석대피소:3.9km, ,벽소령: 2.4km |
15:46 |
칠선봉(1558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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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 |
이정표 |
세석대피소:1.4km, 천왕봉:6.5km,벽소령:4.9km |
16:42 |
영신봉(1652m) |
세석대피소:0.6km, 벽소령:5.7km, 연하천:9.3km |
17:00 |
세석대피소 |
장터목:3km, 벽소령:6.3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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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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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
세석대피소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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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0 |
촛대봉(1703m) |
장터목대피소:2.7km, 세석:0.7km, 천왕봉:4.4km |
05:30 |
촛대봉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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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
연하봉(1721m) |
장터목대피소:0.8km, 세석:2.6km |
06:22 |
일출봉 |
장터목대피소;0.4km, 천왕봉;2.1km, 세석:3.0km |
06:32 |
장터목산장 |
천왕봉:1.7km, 세석:3.4km, 백무동:5.8km |
06:40 |
대피소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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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2 |
제석봉(1808m) |
천왕봉:1.1km, 장터목:0.6km |
07:20 |
천왕봉(1915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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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7 |
천왕봉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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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 |
다시 장터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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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6 |
장터목출발 |
백무동하산 |
09:52 |
참샘 |
백무동:2.6km, 장터목:3.2km, 천왕봉:4.9km |
10:16 |
하동바위(900m) |
백부동;1.8km, 장터목:4.0km, 천왕봉: 5.7km |
11:17 |
하산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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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과 오월은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깊어가는 봄이 대지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게 하는 것처럼 저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또 하나의 우주에도
봄의 향기가 펄펄 날렸습니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는 봄날을 아랑곳 않고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어디론가 떠나느라 늘
분주했던 날들…
좋은 관계와 함께 누리는 즐거운 시간 속에서 가끔 가슴 한구석 쏴아 바람이 불어 갑니다.
채워지지 않고 해갈되지 않는 갈증이 더 깊어 집니다.
답답함을 울부짖는 늑대처럼 야생의 본능이 내 안에서 다시 꿈틀거립니다.
또 혼자 떠나고 싶어집니다.
지리산. 그 심원한 수림의 바다.
6월 3일에 지리산으로 떠나려 했는데 산장 예약에 실패했습니다.
달포를 기다려 출근 때문에 아들에게 부탁했는데 신통하게 한자리를 만들었습니다.
2주전 마눌 따라 백화점에 갔다가 30곡 미숫가루1봉과 교반물통 1개, 간식용 소시지 1통을 샀습니다.
엊그제는 퇴근 길에 1000원 짜리 조미료 통을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금요일(D-1일) 뚜레쥬릉 들려 빵을 네 개 샀습니다.
저녁을 먹고 배낭을 꾸렸습니다.
(의류)
비라도 만나 혹시 추울지도 모르니 오리털 파카를 비닐에 싸서 배낭 깊숙히 넣고 궂은 날에 대비한 우비도
넣었습니다.
여벌바지 1벌, 여벌상의 반팔2벌, 긴팔1벌, 갈아입을 팬티1벌, 토시1개, 쿨스카프1개
(먹거리)
배낭무게를 고려해서 코펠과 버너는 가져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30곡 미숫가루를 6큰술씩 6봉지를 만들고 다이소에서 산 1000원 짜리 조미료 통에 꿀을 담았습니다.
그 외 종상이가 보내준 콩고물 무친 쑥떡 2줄과 오늘 사온 빵 네 개
그리고 내일 점심 한끼용 도시락 한통 (밥,고추장,된장찌개,열무김치)
(기타)
선글라스, 선블락로션,카메라,모자,스틱,빈물통2개,등산스틱
배낭을 꾸리고 TV를 보다가 잠시 졸다 보니 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구례구로 가는 열차는 서울발 서대전 역 12시 43분 출발 열차 입니다.
마눌이 차로 데려다 주었는데 밤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 12시 15분에 서대전 역에 도착했습니다.
쉰 목소리일망정 다시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보아줄 이 없어도 내 장단에 맞추어 홀로 신명나는 한바탕 춤을 추고 싶습니다.
6월이 가기 전에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난 지리산으로 떠납니다..
나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
열차안에서
열차가 10분여 연착되었습니다.
1호차 34호석
사람들이 많기도 합니다.
대부분 눈을 감고 있는데 선반 위에는 배낭이 가득합니다.
그들의 행선지도 지리산 입니다.
구례구 역에 3시 4분 도착이라 2시 50분에 알람을 맞추었습니다.
작년에는 프로폴리스라도 맞은 듯 2시간이 잠깐처럼 단잠에 삐졌었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열차 안이 너무 더웠습니다.
누군가 다른 칸은 시원하다면서 차장에게 냉방을 틀어달라고 얘기했는데 그러마 하고 떠난 차장은
다시 오지도 않았고 냉방도 내내 침묵했습니다.
날씨도 무더운데다 생각까지 많아져서 그런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는데 내내 잠들지 못했습니다.
구례구역
붉은 수은등이 뜬 플랫폼에 나오니 차가운 새벽공기가 온 몸을 휘감아 옵니다.
버스를 타지 않을 거라 서두르지 않고 플랫폼 새벽풍경 몇 장 핸드폰에 담으며 느릿느릿 걸어 나갔는데
기다리던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기 무섭게 떠나버렸습니다.
남은 일부는 택시에 분승하여 성삼재로 서둘러 떠나고 일행들과 함께 온 또 다른 일부는 불을 밝힌 식당
으로 들어갔습니다.
모임에서 저녁으로 삼겹살에 맥주 두 잔을 마셔서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혼자인 저는 식사를 하면 택시를
타지 못할 까봐 호객하는 기사의 택시에 탔습니다.
택시 안에는 각기 혼자인 중년 여자 1명과 남자 1명이 타고 있었는데 끝내 한 명을 더 태우지 못한 바람에
우린 인당 13000에 흥정을 하고 성삼재로 출발했습니다.
성삼재 가는 길
날이 가물어서 그런지 해발을 높여가며 더 짙어지는 바람에 흩날리던 자욱한 안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광포하게 질주하는 운전기사와 침묵하는 사람들
침묵이 어색해서 제가 몇 마디 질문을 던졌지만 짧은 대답 후에 폭주 택시 안은 다시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질주하는 불빛에 누군가 어둠 속에서 홀로 배낭을 메고 산 길을 올라 갑니다.
“설마?” 30여 키로 떨어진 산 아래부터 걸어 올라오진 않았겠지요.
아마 차를 몰고 와서 도로 빈터 어딘가에 주차했을 겁니다.
반나절에 만원 가량 성삼재 종일 주차비가 꽤 비싼터라…
삼한시대 마한군은 진한군에 밀려 지리산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지리산 중턱 달궁에 궁전을 세우고 사방 적이 넘어오기 쉬운 길목마다 수비군을 배치 했는데 남쪽은
아주 중요한 군사적인 요충지라 성씨가 서로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 방어토록 한데서 성삼재 지명이
유래되었습니다.
지리산 오지의 대 변혁이지요
지리산 1억 3000만평 가운데 가장 사람이 붐비는 곳
인간이 자연에 가한 가혹한 테러 중의 하나 입니다.
지리산 관통도로는 안하무인의 인간이 얼마나 가공할 파괴력으로 자연을 유린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입니다.
설악산에서도, 덕유산에서도 인간에 의해 뒤틀리고 파헤쳐진 그 모습에 한 없는 슬픔과 아픔을 느낍니다.
원래 지리산 종주라 함은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 25km 주능선을 타고 천왕봉을 찍고 내려서야 완성
되는 것인데 우린 만원을 내고 콘크리트 카펫을 즈려 달려 10km 가파른 산길의 땀을 기꺼이 포기합니다.
물론 이 도로 덕분에 지리산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가끔 생각해 봅니다.
지연을 도륙한 문명의 칼날에 대하여….
지리산 도로를 내지 않았더라면 …
덕유산 스키장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
문명과 격리되고 원시의 생태계가 보존된 아름다운 우리의 산들이라면 그 숲에 더 많은 생명과 사랑이
깃들 수 있었을 겁니다.
차가운 공기가 목을 휘감는 성삼재 붉은 수은등아래서 만 삼천원을 건네주고 우리는 뿔뿔히 어둠 속을
흩어졌습니다.
노고단 가는 길
무거운 카메라까지 넣어 배낭이 더 무겁긴 하지만 지난해처럼 어깻죽지를 내리 누르지는 않았습니다.
축축한 숲의 냄새도 지리산 그리움 중의 하나 입니다,
은은한 반달아래서 후랫쉬 불빛 없이도 흐릿한 길의 형체와 나무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어둠에 쌓여 혼자 걷는 길
홀로 어둠 속을 길을 올라 덕유의 일출을 만난 날부터 나를 둘러싼 어둠과 고요는 가슴저린 황홀한
고독이었습니다.
낭만적인 달빛과 별빛은 지리산 자락에 남아 있는 세월의 기억과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달빛산행 !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상념입니다.
숲길을 벗어나 노고단 산장에 도착하자 희끄무레한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홀로 벤치에 앉아 차가운 노고단 물을 받아 미수가루 한 봉을 타서 마시고 떡을 먹고 소시지를 먹었
습니다.
나의 위대한 에피타이트!
어느 때나,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는 타고난 먹성은 여행길의 든든한 동반자 입니다.
노고단 산장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취사를 안 하니 딱히 할일도 없고 몽롱했던 기분도 지리산 새벽공기에 정상으로 돌아 왔으니 다시
배낭을 들쳐메고 내처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노고단에서
반야봉 위 동편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다소 싸늘하지만 아주 상쾌하고 쾌적한 새벽 공기가 온몸을 휘감아 왔습니다.
먼저 도착한 몇몇 사람들은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바위에 걸터 앉아 일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과 시원한 바람.
여긴 이른 유월부터 우리를 힘들게 하는 폭염과 가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비라다 보이는 능선 어느 곳에서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옵니다.
서울에서 5시 10분에 해가 뜬다니 30분 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기념 사진을 찍고 일출을 기다리는데 으실으실 추워 옵니다.
다들 기다리다 하나 둘 일출을 포기하고 떠나 갑니다.
30여분 조용히 열리는 지리산의 새벽을 바라보며 바위 위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여행길에서 가끔 물끄러미 나를 바라 봅니다.
세상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참 멋진 동행입니다.
세상의 혼탁에 물들지도 않았고
세상에 가위 눌리지도 않았습니다.
노는 물이 달라졌지만 한결 같은 삶의 방식은 그대로 입니다.
아직 식지 않은 열정으로 갈 수 없는 나라를 꿈꾸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갈망으로 기꺼이 배낭을
맬 수 있는 멋진 남자!
자연인이고 낭만객이고 모험가고 탐미주의자이고 낙천주의자인 YOLO족 무릉객
난 압니다.
산은 어떻게 넘어가고 길은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언제 내 영혼이 노래하는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먼 길을 걸을 수 있는 건강과 떠날 수 있는 시간과 자유가 있으니
인생은 아름다운 여행길입니다.
5시 40분 까지 기다리다 해가 뜨지 않아 임걸령을 향해 떠납니다.
임걸령 가는 길
날이 밝아오자 무수한 새들이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마치 “ 무릉객님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듯 합니다.
고원의 평평한 숲길은 걸어 갑니다.
마음이 편안 해지는 기분 좋은 아침 숲길 입니다.
가는 길 숲 사이로 붉은 태양이 떠오릅니다.
마지막 한 순간의 기다림을 참지 못해 놓쳐버린 수 많은 인생의 아쉬움처럼…
어쩌면 우리 삶이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늘 내가 다했다던 최선은 마지막 10분을 기다리지 못했던 안타까운 타협과 포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반야봉 옆으로 떠오른 노고단 일출은 동해에서 떠 오른 해를 30분 늦게 만난 것이고 전 노고단을 지나
반야봉 가는 길목에서 10 분 뒤에 그 태양을 만난 것이지요
숱한 날 한국의 명산에서 제게 영감과 감동을 불러 일으키며 떠오른 무수한 태양은 아직 내 마음 속에서
지지 않았습니다.
임걸렬 샘터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너도 이번 폭염과 가뭄에 많이 힘들었구나!”
음양의 이치를 거스른 뜨거운 태양에 별의 눈물도 메마른 모양입니다.
별의 눈물이 달빛을 타고 내려와 맑은 안개와 이슬로 대지를 적시는 지리산 주능의 두번 째 샘물
늘 내가 지리산 최고의 물맛이라던 임걸령 물줄기는 안스럽게 약해졌습니다.
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시린 물맛은 변함없이 그 맛 그대로 입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해갈되는 내 갈증처럼 머지 않아 단비가 축축히 대지를 적실 날이 올 것입니다.
반야봉 가는 길
노루목에서 휴식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오늘은 젊은 남녀들이 많이 보입니다.
수 많은 젊은 날의 유혹과 자극에도 힘든 산을 찾는 그들이 대견합니다.
그들을 보며 잠시 내 젊은 날의 상념에 젖었습니다.
떠남에 늘 목마르던 그 날들
달빛을 목에 걸고 하루 종일 걷고 새벽 같이 출근하는 고달픔도 잠재우지 못했던 야생의 허기는 내 삶의
동력이고 열정의 근원이었습니다.
노루목에서 반야봉 오르는 길 중간 갈림길 나무등걸에 배낭을 걸고 반야봉에 오릅니다.
딸과 함께 종주길에 오른 아줌마도 많은 젊은이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반야봉에 오릅니다.
왕복 2km 한 시간여 추가되는 고단함을 감수하며 기꺼이 오르려는 그곳엔 많은 추억과 그리움이 걸려
있습니다.
반야봉
하늘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佛道)를 닦고 있는 도인(道人) 반야를 만나 결혼하여 8명의
딸을 낳고 천왕봉에 살았는데 반야는 어느날 득도한 후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홀연히 반야봉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고할미는 하염없이 반야를 기다리다 반야봉을 바라보는 석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고할미의 애틋한 그리움은 처연한 붉은 노을로 반야봉을 붉게 물들이고 그 슬픈 눈물은 반야봉 자락에
안개와 구름으로 흘러 갑니다.
지리산 제 2봉! 늘 외로움과 고독이 묻어나는 밤야봉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지리산 8경 중의 하나
입니다.
사진 찍어줄 이 없이 저만 홀로 남았던 지난 해 반야봉의 호젓한 적막과 고요는 사라졌습니다.
잠시 바위에 걸터 앉아 허리에 구름을 두르고 말없이 흘러가는 산릉을 바라 보았습니다.
훗날 반야봉에서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날에 혹여 수심과 망상을 벗어난 반야의 깨달음을 만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산다는 건 가끔 허물어 지는 가슴을 끌어 안고 숨죽여 울음을 참는 것입니다.
하지만 흐르는 슬픔과 고인 눈물이 있어 기쁨은 더 빛나고 우리 삶은 더 깊어집니다.
늙는다는 건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조금씩 가벼워 지고 세상에 둥글어 지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세월을 보내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감사의 순례입니다.
대자연의 기쁨을 누리고 내게 주어진 삶의 행복에 감사하기 위해 떠나는 길입니다.
그 여행길에서 도시에서 잃어버린 기쁨과 설레임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더 맑아지고 가슴은 더 따뜻해 집니다.
연하천 가는 길
조망이 별로 없는 대부분 한적한 숲길입니다.
고도가 조금씩 올라가도 아직 선연하게 남아있는 지난 해 고통의 기억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코펠과 버너만 뺏을 뿐인데…
어깻죽지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없어 한결 가벼운 발걸음 입니다.
노고단에서 5.5km 지점에 삼도봉이 있고 그 곳에서 천왕봉은 20km 입니다.
삼도봉에서 0.8km 더 가면 뱀사골 갈림길 화개재에 당도하고 1.2km 더 진행하면 토끼봉 입니다.
조망은 삼도봉과 화개재에서 잠시 터집니다.
임걸령에서 물을 한 병만 뜨고 중간 삼도봉에서 미수가루를 타먹어 버리니 연하천 까지 물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노고단에서 화개재는 6.3km 약 2시간 30분 걸립니다. (반야봉 경유시 1시간 추가) 화개재에서 반선까지
뱀사골 하산길은 9.2km 역시 약 3시간 30분은 족히 걸립니다.
마눌과 함께 노고단에서 화개재 찍고 백무동으로 내려가면 7시간 정도 소요될 것입니다.
연하천 산장
드디어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반야봉 오름길 노루목에서 6km 지점
노루목에서 반야봉 올랐다가 여기까지 오는데 3시간 38분 걸렸습니다.
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세차게 흘러 나오는 물줄기가 감동입니다.
가슴을 저미는 시원한 물맛은 이번 지리산 여행길 중 단연 최고 입니다.
산장 한 켠에 배낭을 내리고 여유롭게 휴식합니다.
시원한 물로 미수가루를 타먹고 빵과 소시지도 먹었습니다.
햇빛은 뜨겁지만 그늘 밑은 시원합니다.
배가 부르자 몸이 나른해 집니다.
한잠 자고 가면 좋겠지만 입실을 허락하지 않으니 물을 뜨러 온 산님에게 부탁해서 사진 한 장 찍었
습니다.
잠시 휴식하다 토시와 목스카프에 찬물을 적셔서 착용하고 다시 베낭을 둘러 멥니다.
벽소령 가는 길
햇빛이 조금씩 강해 집니다.
숲 속은 바람이 있어 여전히 시원했습니다.
폭염 주의보 메시지가 날아 들었습니다.
아래 세상은 엔간히 뜨거운 모양 입니다.
해가 갈수록 벌겋게 달아오르는 지구에서 사람들은 그 에너지가 빠져나갈세라 도시에 두터운 방호막을
치고 살아 갑니다.
이 살기 힘든 세상 기꺼이 훈제되어 도시의 미이라로 남겠다는 현생인류의 몸부림은 대물림 되어질
DNA에서 원시의 야성을 거세하고 정서불안을 기본 탑재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 막힌 혈을 열고 숨을 쉬기 위해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기 위해서 우린 다시 거친 자연
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산길은 햇빛에 노출된 뜨거운 조망바위와 형제봉 바위를 지나 오름길을 능선을 따라 벽소령 산장으로
이어집니다.
벽소령 .
태양이 가장 뜨거워 지는 시간쯤 12시 40분에 도착했습니다.
노고단에서 14km 걸었고 그곳을 떠난지 7시간 만 입니다.
반야봉 다녀온 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6시간 만으로 준수한 편 입니다.
숲이 사라지고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벽소령 대피소는 밀납 인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벽소령 머리 바로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은 그 거대한 산장 주변에 쉴 만한 그늘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대피소를 한 바퀴 돌고 서야 남쪽 벽에 한뙤기 그늘을 발견했습니다.
그 가느다란 그늘 띠를 따라 몇몇이 배낭을 내리고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식단을 펼쳤습니다.
열무비빔밥
조선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마지막 6km 세석오름길을 위해 한끼는 밥을 먹어야지요.
마눌이 싸준 된장과 고추장에다 열무를 넣고 썩썩 비벼먹었습니다.
1000고지의 력셔리한 성찬 입니다.
벽소령 대피소는 추억이 많습니다.
산우들과 지리산 종주 중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폭우를 만나 눈물을 머금고 음정마을로 하산했던 곳도
바로 이 곳 입니다.
음정마을에 내려서자 비가 그치고 흐르는 비안개 사이 붉은 접시꽃이 반겨주는데 완성하지 못했던 종주가
못내 아쉬웠고 혼자 떠나는 일정을 바꾸어 구태여 산 친구과 합류했기에 지리산 신령님이 노하셨다고 자책해
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미완의 종주는 행복한 실패로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치열한 폭우 속의 산행이 갑자기 한가하고 나른한 시간으로 바뀌어 우린 지리산 자락에서 사우나도 하고
꺼먹돼지 안주로 술 한잔 치면서 예정에 없는 여유와 낭만을 누렸습니다.
야생마처럼 종횡하던 한참 젊을 날이었습니다..
아들과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올라 세석을 거쳐 벽소령대피소에 7시간이 걸쳐 도착
했습니다.
처음 걸어본 먼 길에 다리도 아프고 많이 힘들었던 아들이 지친 몸으로 겨우 도착했는데 음정 하산 6.7km
이정표를 보고 낙담하던 그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세월은 또 많이 흘렀고 그 아픔과 시련을 더 많은 성숙과 완주의 기쁨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세월은 언제나 똑 같은 속도로 흘러 갑니다.
그 속도를 제어하는 건 마음이지요
오랜 세월 마음은 높은 산을 오른 만큼 더 깊어지고 먼 길을 걸은 만큼 더 넓어졌습니다.
삶의 내공은 더 고강해졌습니다.
오랜 세월 산에서 도를 닦으면 등을 맞댄 기쁨과 슬픔이 보이고 손을 맞잡은 번뇌와 고요가 보입니다.
일체 유심조
모든 건 마음이 만들어 내는 조화이고 흔들리는 건 내 마음일 뿐입니다.
나는 나무이고 숲이고 바위이고 산입니다.
나는 무수한 가지를 내려 놓는 가을 나무이고 누군가의 숲이고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거기
서 있어야 할 산 입니다.
가지가 부러져도 살아서 잎과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날려야지요.
바람 부는 날에는 난 바위고 산이어야 합니다.
힘든 시간도 지나고 나면 모두가 아름다운 시간일 뿐입니다.
태양은 이제 본격적으로 뜨거워질 준비를 합니다.
오늘의 목적지가 세석대피소이니 시간은 많이 남아 돕니다.
쉬었다가 태양이 한풀 꺾일 때 갈까 아님 지금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베낭을 둘쳐 맵니다.
“놀면 뭐해요?”
세석 가는 길
점점 순례 길의 피로가 밀려와서 발도 무겁고 어깨도 무거워 졌습니다.
세상살이 이치도 다 그렇습니다.
길이 멀고 등짐이 많으면 여행이 힘들어 집니다.
나의 우주가 팽창되고 내 책임이 많아지면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법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무게가 날 세월과 세상에 떠내려 가지 않게 붙잡아 두었는지 모르지요.
이젠 인생의 가을날 입니다.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욕심과 욕망으로 살아온 날들은 저물었습니다.
이젠 욕심을 내리고 내가 가진 만큼의 사랑과 행복을 누려야 할 때입니다.
수 많은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험한 길에 지치고 동행이 사라져 적막한 외로운 길을 걷게 되더라도 단 한가지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나쁜 길만 계속되는 법은 없고 나쁜 길도 생각하기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거
길을 걷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즐겁게 걷는 거란 거
세월이 늘 말했습니다.
“살아가면서 고이는 오래된 슬픔과 외로움은 애써 퍼내지 말아라.
이 땅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듯
지리산 안개비가 물 되어 흐르듯
수림의 바다가 바람에 출렁이듯
그대로 두라
그냥 고요히 바라보라.
그것이 네 삶의 역사이고 네 기쁨의 어머니고
그 고독과 슬픔이 네 삶의 새 물을 긷는 영혼의 샘터이거늘…”
저보다는 몇 살 어려 보이긴 하지만 또래 길동무가 뒤늦게 하나 생겨 이러 저런 말과 생각들을 주고
받으며 함께 걸었는데 이 친구도 혼자 나선 길이라 합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라산의 겨울풍경에 감동 먹고 한국의 큰 산과 찾아 오르고 있다 합니다.
산과 멀어 있었던 젊은 날이라 이런 멋진 세상을 이제사 만난 것이 너무 아쉽다고 했습니다.
세석 산장에서
오늘 빨래끝~~
산장에 4시 50분 도착했습니다.
노고단에서 20.4km 소요시간 11시간 30분
성삼재에서 12시간 걸린 셈입니다.
무수한 사람들은 산장에서 취사중입니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피안의 땅에 도착한 그들의 뿌듯한 성취감과 한잔의 술이 불러 내는
흥분과 들뜬 기쁨을 저는 압니다.
삼겹살을 굽고 돼지 두루치기를 만들면서 줄창 순배를 돌려가며 건배를 외칩니다.
“우리가 남이가?”
대단합니다. 삼겹살에, 후라이 판에 , 압력밥솥 까지…
한 번의 만찬을 위해 그 수 많은 장비와 식자재를 등에지고 1000고지를 오르는 그들의 정성과
가상한 노력도 제겐 젊은 추억입니다.
배는 고팠지만 별로 먹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는 순례길 수도중 이니까..
저 아래 세상에서 너무도 자주 너무도 많이 먹고 댕기는 거니까
5시가 넘어 가면서 바람이 서늘해 져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본격 저녁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스님의 선식처럼 정갈한 식단 입니다.
우선 30곡 미수가루 6큰술 분량을 분리 보관한 비닐봉지를 교반용 물통에 넣고 꿀과 물을 넣어
흔듭니다.
삶은 계란 1개
빵 한 개
떡 일곱 덩이
소시지 5개
억지로 먹은 게 아니라 맛있게 먹은 양입니다.
소박한 식단이라고 얘기하지만 칼로리로 보면 결코 적은 량이 아닙니다.
점심에 열무 비빔밥을 먹었지만 계속되는 오름길과 마지막 세석능선을 치고 오르면서 체력소모가
많았다는 얘기 입니다.
식사를 해결하고 나서도 해는 아직 서산 마루에 있는데 1000고지 평화로운 고원에서 별로 할일이
없습니다.
세면도구를 주섬주섬 챙겨서 음수대로 갔습니다.
상부 음수대는 전립선이 고장난 영수놈 오줌빨 보다도 더 시원찮게 흘러내립니다.
하부 음수대는 좀 낫긴 하지만 두 줄기 물줄기가 혹독한 가뭄에 견디지 못하고 빌빌 대고 있습니다.
지리산 고원의 가장 큰 산장 세석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닙니다.
우야튼 젊은 친구들이 들락날락하는 음수대 한 켠에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좀 떨어진 숲 속에
들어가 양치도 했습니다.
음수대가 한적해져서 내친김에 웃통을 벗고 손수건에 물을 적셔 열심히 땀에 젖은 몸을 닦아내는데
코펠에 쌀을 담은 젊은 아가씨가 내려왔습니다.
내심 당황했는데 이 아가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쌀을 씻고 세수까지 합니다.
몸을 씻고 나서 옷을 갈아 입고 마지막으로 오늘 가장 고생한 놈 나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습니다.
지금 까지도 가장 고생이 많았고 앞으로도 고생길이 훤한 아주 소중하고 믿음직한 나의 동반자 입니다.
관리실로 올라가 예약을 확인했습니다.
공단 관리인은 주민등록증을 보더니 끝자리가 편하실거라면서 끄트머리 자리를 배정해 줍니다.
“벌써 경로우대에 들어 가는 겨?”
그래도 그 마음씀이 고마웠습니다.
한 번도 기운이 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백두대간 2차도 짱짱하게 마무리 했고 산악회에서도 젊은 녀석들 따라가기가 어려운게 아니라 녀석들이
산꼭대기나 나를 따라다니기 어렵다고 엄살을 피고 요령을 피웠습니다.
잠 한숨 못자고 12시간 걸은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무리 했으니 오늘 푹 자고 내일 촛대봉과 지리산에서
산신령님께 선물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멋진 선물
오늘 지리산에 등을 대고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비 맞은 풀처럼 다시 싱싱해 질 것입니다.
들어와서 내 자리로 가니 2층 침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헐~ 다들 아직도 삼겹살 파티 하는 겨?”
편안해지니 비로소 밀어내기 신호가 왔습니다.
지리산 천 고지에 내 영역표시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발판도 없고 넓은 푸세식 변기통에 다리를 쩍벌리고 쭈그리고 앉아 힘을 주는 거
쪼그려 뛰기 200회가 무색합니다.
허벅지 근육의 힘은 전혀 필요 없고 오로지 12시간 걸은 다리의 오금쟁이와 관절의 힘으로 받아내야
하는 섭생의 슬픈 고뇌,
보내려는 자와 터져 나오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애슬픔과의 건곤일척 한판 승부는 치열했습니다.
결국 평화가 찾아 오긴 했지만 힘겨운 전투를 치르느라 모았던 기를 모두 빼앗기고 지쳐버렸습니다.
다시 침상으로 돌아 왔는데 너무 더웠습니다.
외기는 쌀쌀한데 이상해서 관리 직원에게 야그 했더니 침상아래 난방밸브를 조절했습니다.
헐~ 뻑하믄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는 삼복더위에 웬 난방 ?
대단한 세석산장 입니다.
이쯤되면 역발상으로 겨울종주를 해도 되겠습니다.
마눌이 떡이 쉰다고 떡부터 먹으라 했는데 너무 많아 다 못 먹었으니 남은 계란 하나와 함께 비닐봉지에
싸서 서늘한 숲 나무 아래 갈무리하고 다시 침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밖은 환한데 벌써 7시가 넘어 갑니다.
침구와 배낭을 정돈하고 잘 준비를 마친 다음 홀로 침상에 누웠는데 거부기 한테서 카톡이 왔습니다.
세속을 떠난 순례길에서 고요를 비집고 끝까지 따라 붙는 마치 업보 같은 문명과 인연의 끈 입니다.
몇 번 카톡질하다가 그냥 잠에 빠졌습니다.
자다가 두 번 깨었습니다.
11시 40쯤 한 번
4시간 정도 자고 난 후였는데 목도 칼칼하고 마루 침상이 배기고 온몸이 쑤시면서 다리가 뻐근 합니다.
흐미 먼 일이래?
침상 하나 건너 누군가 거꾸로 자고 있고 침상 반대편 구석 쪽 말고는 텅 비어 있습니다.
다른 침상을 보니 어허 내가 거꾸로 자고 있었습니다.
잠결에 “이상타~ 하면서 다시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2시가 넘어 덥고 소란해서 다시 깨었는데 많은 침상은 여전히 텅 비어 있습니다.
다른 침상에서 배낭을 꾸리는 사람들은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야간산행을 하는 사람들인 듯 합니다.
그 것도 방법이 되겠네요
시설 좋은 세석산장에서 바고 은실 같은 달빛아래 산릉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장터목으로 가는 목가적인
달밤 산행
난방을 또 틀었는지 너무 더워서 웃통을 벗고 팬티만 입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는 3시 40분에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1분도 안되어 예약이 매진되는 산장에 자는 사람이 이렇지 없는지 공단직원에게 물어 본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촛대봉 가는 길
주섬주섬 어둠 속에 옷을 입고 배낭을 꾸립니다.
숲에서 어젯밤 갈무리한 떡과 계란을 회수하여 배낭에 챙기고 후렛쉬 불빛을 비추며 촛대봉으로 떠납니다.
발걸음과 등에 진 배낭은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심산의 품에서 잠들고 일어난 오늘 다시 지리산의 마술을 온 몸으로 느끼며 몸맵시 날렵한 달을 보며
혼자 걷는 길입니다.
청명한 고원의 공기는 가슴과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촛대봉이 둥둥 떠오르고 어둠 속에 실루엣이 드러난 천왕봉 주위에는 붉은 여명이 떴습니다.
무수한 별들은 희미해진 하늘에서 여전히 웃고 있는 아름다운 지리산의 새벽입니다.
아직 아이의 호기심과 젊은이의 열정을 잃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아직 무수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고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있어 난 오늘도
기꺼이 배낭을 메고 새벽의 들창을 열어젖힙니다.
심산의 가슴에서 출렁이는 고요한 바다를 봅니다.
오랜만에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 치며 조용히 솟구쳐 오르는 감동을 다시
만났습니다.
세상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푸른 새벽의 어깨를 밟고 묵상하는 바위 능선을 따라 깊고 고요한 태고의 침묵에 다가 갔습니다.
신비로운 풍경과 가슴 시린 바람 앞에서 그 엄숙하고 숭고한 느낌을 함축할 어휘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어둠이 있어 동트는 새벽이 더 아름답고 빛나는 기쁨은 슬픔의 언덕 너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천왕봉 옆으로 붉은 해가 떠 올랐습니다.
결국 만났습니다.
늘 천왕봉 해돋이만 보다가 세석에서 천왕봉 옆으로 아름답게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 봅니다.
촛대봉에서 처음 만나는 새날의 붉은 축복 !
"내 늙어도 아름다운 세상의 축복이 오래 내 곁에 머물게 하소서
내 늙어도 대자연의 사랑을 잃지 않게 하소서"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다 너무 쌉니다.
이렇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새벽이 열리는 시간 위에 서 있는 것도
녹담 만설 고원에서 춤추며 내려 오는 눈들이 온 산을 뒤덮고 내가 그 눈 밭의 한 점 풍경이 되는 것도…
깎아지른 암봉에 걸터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이 쓰는 시와 바람과 안개가 그리는 그림을 감상
하는 것도…
뜨거운 가슴과 튼튼한 두 다리 만으로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장터목 가는 길
황금 햇살이 쏟아 지고 눈부신 초록의 아침이 맑게 깨어납니다.
수풀 속에서 노래하는 새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바람결에 실려오는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너무 상쾌하고 황홀한 지리산의 아침 입니다.
흐트러진 마음이 정돈되고 마치 도를 깨우치듯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 집니다.
그 느낌이 좋습니다.
상쾌한 향기와 바람이 나를 감싸는 느낌
그 멋진 능선 길을 걸으면 내가 가진 게 너무 많음을 느낍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
가족들
좋은 친구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광활한 세상
멋진 소나무 능선에서 시진을 찍고 가다가 짚신을 신고 가는 젊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설악산에서는 맨발로 걷는 아줌마를 보았고 어제는 목욕탕 신발 신고 걸어가는 친구를 보았었는데
짚신은 또 처음 입니다.
말을 붙여 보았더니 어제 목욕탕 신발의 주인공도 바로 그 친구였습니다.
좀 힘들기는 해도 발바닥에 자극이 되어서 피로가 잘 풀리고 산장에서 잠도 잘 온다고 합니다.
젊은 친구가 그 정도 내공을 쌓았으면 심신 모두 도인의 경지에 오를 날이 멀지 않은 듯 합니다..
어제 길동무와 다시 만나 산장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부여 받듯 지치지 않은 기와 체력을 지리산으로부터 다시 리필 받았는지 몸이 가볍고
마음은 내내 즐거웠습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잊고 세상을 잊고, 자신을 잊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일찍 찾아 낸다면 세상이 보편화하는 중요한
가치들과 상관없이 자신의 행복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왕봉 가는 길
도착하자 마자 입추의 여지가 없는 취사장에 들러 배낭을 한 켠에 벗어놓습니다.
스틱과 카메라만 챙겨 천왕봉으로 향합니다.
어쩌면 이것도 욕심이지요.
혼자 만나고 싶은 지리산 청왕봉 욕심
동행하던 친구가 너무 서두르는 저를 보며 의아해 합니다.
시간이 급해서 그런다고 그냥 천천히 오란 말만 남기고 서둘러 천왕봉으로 오릅니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지나 하늘로 연결되는 길
머릿속에서 변함없이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길입니다.
오래도록 나의 삶을 지켜준 교훈과 영감의 큰 산
전 묵묵하게 막바지 순례의 길을 걸어 깊고 장엄한 세상의 끝에 다가 갑니다.
궁극의 기쁨과 도에 닿아 있는 길입니다.
제가 하는 것이라고는 그냥 바람과 구름이 피어나는 산길을 묵묵히 걸으며 산이 보여주는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리산이 늘 비우고 채워 주었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알게 됩니다.
내가 나에게 준 선물과 지리산이 저에게 준 선물
내 가슴에 담긴 맑은 하늘과 바람 그리고 추억과 사랑
통천문 전에 내려오는 이에게 천왕봉에 사람이 많으냐고 물었습니다.
산님 왈 "지금은 몇 명 없는데 산악회에서 온 아줌마들이 벌떼처럼 올라 갑니다.”
아뿔싸 !
지난해와 같은 호젓한 혼자만의 천왕봉을 물건너 갔습니다.
잘못하다가는 기념사진을 찍지도 못할 듯 합니다.
점점 거칠어지는 길에서 속도를 한껏 올렸습니다.
가장 가파른 구간에서 숨이 턱에 차지만 배낭이 없으니 떠들며 사진 찍으며 오르는 모든 사람들을 기세
좋게 따돌리고 순레의 마지막 언덕을 올라 갑니다.
천왕봉
만세!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
드디어 순례의 종착지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6월에도 내 영혼의 성지 천왕봉에서 세상을 발아래 내려다 보며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난 무릉객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바람처럼 떠도는 남자.
내멋에 사는 남자
산에 가고 싶으면 산에 가고
섬에 가고 싶으면 섬에 갑니다.
친구가 그리우면 친구에게 달려가고 지난 추억이 그리우면 홀로 배낭을 둘러 맵니다.
내가 가진 가장 값진 재산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내 머릿속의 보물지도
그리고 내 가슴속에 쌓여 있는 추억과 감동
계절이 바뀌면 바람 편에 수 많은 전갈이 옵니다.
그리움으로부터
가슴 시린 추억으로부터.
난 늙어 갈 수가 없습니다.
더 아름다운 세상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내 사는 곳에서 더 멀고 높은 곳에 있으니 …
세상에는 아직 걸어가지 않은 길과 돌아 볼 아름다움이 너무 많이 남아 있으니…
표석에서 사진을 찍고 발아래 세상의 풍경을 조망하다가 아줌마들이 떼로 올라 오기 시작할 때쯤
온 길을 되짚어 장터목 산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산장에서 선식과 빵과 계란으로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즐기고 백무동으로 하산 했습니다.
하산 길 노송이 있는 바위봉에 올랐다가 참샘에서 목을 축이고 하동바위를 거쳐 비밀의 계곡에서 이틀간
몸에 쌓인 진폐를 모두 씻어 냈습니다.
가물어 계곡 물이 많이 말랐지만 명색이 지리산인데 제 몸하나 씻을 물이야 넘쳐 납니다.
먼저 주능선의 바람이 저의 소프트웨어에 쌓인 먼지를 날려 주었고
지리산 능선을 흐르는 청수가 오장육보에 쌓인 세속의 때와 욕심을 씻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곡의 맑은 물이 몸 밖으로 배출된 세속의 찌꺼기와 땀을 말끔히 씻어 주었습니다.
날아 갈 것 같은 상쾌함
그리고 정신이 다시 리셋되는 것 같이 맑아지는 청정함
이쩌면 그건 순례의 마지막 의식이고 한번의 득도와 현세에 경험하는 천국인지도 모릅니다.
함양가는 버스 안에서 타들어 가는 땡빛 산하를 나른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지난 이틀이 꿈꾸듯 몽롱
해졌습니다.
조금 전 까지 맹렬한 차가움으로 뼈속 까지 얼어 붙고 머리까지 얼얼했는데….
무릉도원을 거닐었던 이틀은 내 삶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에필로그
그렇게 2017 지리산 순례 길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지리산은 늘 거기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보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넉넉함으로….
나는 단지 빈 가슴으로 그 장중한 침묵에 다가가 세상의 위대한 스승이 설파하는 삶의 교훈과
영혼의 울림을 만납니다.
지리산이 늘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인생은 견디는 게 아니라 즐기는 거라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새털처럼 가벼워지라고
가슴에 담긴 무거운 돌들을 하나씩 내려 놓고
가벼워진 몸으로 훨훨 날아 오르라고….
멋진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리 많치 않습니다.
세월에 술이 그윽한 향으로 익어가듯 내가 어제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한 시간이 오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오늘 내가 추는 신명나는 한바탕 춤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모아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내년에는 5월에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더 가벼운 몸과 발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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