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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월출산 설경













































































































































































































































11일 덕유산 해맞이 때 만났던 장쾌한 설경과 칼바람의 여운이 사라지자

도시에서 조금씩 갑갑해져 갔다.

강원도에 큰 눈이 내리면 설악이나 한 번 가야지 벼르고 있는데

입춘이 지나고 구정이 목전에 다가와도 기다리는 큰 눈 소식이 없다.

눈 없는 겨울이 계속되니 겨울이 지루하고 삭막해졌다.

이라다 겨울이 훌쩍 떠나고 는 거 아녀?”

 

눈밭을 빠대지 못해 괜히 좀이 쑤시고 몸이 찌뿌둥 하던 차 

갑자기 몇 일 날씨가 추워지더니 호남에 제법 눈발이 날린다는 소식이 날아 들었다.

황급히 그 쪽으로 가는 차 편이 있는지 몇몇 산악회를 검색해보니 충일에서 무등산에 가고

청백에서 월출산에 간단다.

광주에 내려갔던 딸이 광주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하루 더 머무르다 온다고 전갈이 왔다.

무등산은 온통 은빛 세상 이겠네….”

그래도 제대로 된 무등산 설경은 몇 번 이나 봐서 눈에 다 그려지니 겨울 월출이나 만나러 가야겠다.

용피리 님한테 연락을 넣으니 자리가 있다고 했다.

그려 이건 월출 산신령님이 내게 초대장을 보내시는 게지.”

 

월출산 가는 중에 보헤미안 산행대장님이 말씀하시길

몇몇 일행과 어제 월출산에 들어 비박을 한 산으로님과 통화 했는데 월출산에 15센치를 넘어 서는

많은 눈이 내렸단다.

비등은 고사하고 잘 못하면 월출산에도 못 가고 인근 다른 산에 갈 수도 있다고….

흐미 이게 시방 먼 말이래요?”

무등산 갈 걸 잘못 찍은 거 아녀?”

 

정읍, 고창을 지나면서부터 길의 풍경이 변했다.

완전 눈세상이다.

조막만한 땅덩어리 풍경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딸래미 말대로 광주 인근 호남지방의 가로수들은 온통 흰 눈을 뒤집아 쓰고 있다.

언제부턴가 호남 해안 쪽의 눈이 강원도 보다 많아졌다.

대전 쪽에서는 아얘 제대로 된 눈밭을 한 번 빠대보기가 힘들고….

어느 겨울인가 강원도에서 빌빌대던 눈밭에 실망을 금치 못했는데 방장산에서 무릎 까지 쌓이는

눈길을 걸었다.

어느 산이든 늘 입산통제가 풀리는 시간에 들어가면 황홀한 눈밭은 예약이다.

답답해서 산으로님 한테 핸펀을 때렸는데 밧데리가 떨어졌는지 아얘 전화를 꺼 놓았다.

다행히 월출산에 도착하기 전에 산대장님이 주능선은 개방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필이 팍팍 온다.

월출산에 큰 눈이 내린 건 확실하고

월출 신령님이 초대장을 보내시고 수문장들은 주능선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활짝 열었으니

 

 

경포대 주차장에서 바라 본 눈 덮힌 월출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아이젠은 발길이 밀리는 신호가 오면 하기로 하고 스패치만 하고 서둘러 출발 ….

 

이렇듯 아름다운 설경인데 왜 겨울 월출에 들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는지….

도갑사에서 천황사를 몇 번이나 넘나 들었는데 늘 봄이나 가을이었다.

바람재 오르는 내내 마음은 들뜨고 도시에서 메말라가던 가슴은 촉촉히 젖어 들었다.

 

역시 대한민국의 수많은 바람재들은 그냥 멀건히 붙인 이름이 아니었다.

그래 이 맛이야

이런 바람 맛 한 번 봐야 미련 없이 겨울여자를 보낼 수 있는 거지

 

또 다른 월출의 얼굴을 보았다.

바람재에 이정목에 배낭을 내려두고 구정봉을 올랐다가 되돌아 오는데 가히 환상설국이다.

대자연이 빚은 기암괴석의 조각 공원에 날린 눈발은 몽환적인 동화의 나라를 펼쳐 놓았다.

처음 대하는 월출의 멋진 겨울풍경에 아이들처럼 마냥 들뜨고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남도벌 끝자락에 있는 월출산에 휘영청 달빛이 내린 풍경이 아름답다는  말은 내 일찌기

들어  보았어도...

월광이 무색해지는  순백의  멋진 산세상 


도처에 내걸린 신의 그림들… 그리고 그 속을 걷는 홀로 나.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걸으니 여기가 신의정원이고 오늘은 내가 월출의 신선이다..

구름 사이를 들락거리던 눈부신 태양은 천황봉 가는 길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거친 바람만의 동행이었지만 춥지도 외롭지도 않은 길이었다.

 

천황봉 오르는 길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골짜기를 휘도는 광풍에  쌓여 있던 눈발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능선이 온통 자욱한 눈보라로 가려 지더니 천황봉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잠시 맑은 하늘이  열렸다.

월출 산신령님이 오늘 무릉객을 반겨 주시는 구나!”

 

통천문 삼거리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구름다리로 가는 우측 능선 길은 위험해서 폐쇄하니 출입시 과태료를 부과 한다고

개념도 상에 바람폭포 아래서도 연결되는 길이 있어서 폭포 계곡 길을 따라 한 참을 내려 갔다.

가다가 내림 길 낙차가 너무 커지는 통에 이 길로 과연 구름다리가 연결되는지 의구심이 들어

올라오는 부부산님에게 물었더니

원래 구름다리 쪽으로 하산 하려면 통천문 삼거리에서 좌측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 길로도 갈 수는 있지만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니 힘들거구 구름다리 위 기암들의 절경은

보지 못한다고

근데 어짜피 그 쪽 길은 통제라 막혀 있을 테니 이 길로 그냥 하산해야 한다고 하신다.

여긴 내 길이 아니네...

월출산에서는 으례껏 구름다리 쪽 능선 길로 오르내렸으니 바람폭포 길은 초행이라 한 번 내려

가봄 직은 하지만 저 짝 길이 더 멋지다는 데 또 어쩔 것이여?

특히 천하절경에 축복의 눈발 까지 뿌려주는 오늘 같은 날..

시간상 이 길 하산은 너무 빠르고 통제구역팻말이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풍광 유보의 다른

말이라 또 그 유혹을 떨쳐 내지 못하는 나

 

길이 험하고 단속도 할 수 있다고 걱정해주시는 산님께 추운데 과태료 받으려 거기 까정 나와 있겠시유? ..

하는 말과 인사말을 남기고 내려온 길을 다시 되올라 친다.

다시 코김 팍팍 품어 대고 오던 길을 되감기 하는 나

눈 오는 날 분위기에 뿅~가부러 졸지에 월출산에서 알바 까지 뛴다.

 

구름다리로 가는 능선길에는 철문으로 바리케이트가 쳐 있고 다시 엄중한 경고문이 나붙었다.

알바 까지 해서 되돌림한 길이니 임전무퇴를 불사하고..

날은 더 스산해지고 눈발은 굵어 지는데 눈 위에 그 길로 간 몇몇 발자국 말고는 인적이 없다.

거칠게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길, 그리고 기암 봉우리 사이 철계단을 따라 수직 낙하를 계속해야

하는 그 길은 결빙기의 겨울엔 당연히 통제될 만한 위험한 길이었다.

 

거친 그 길을 가는 내내 한 사람의 산님도 만나지 못했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가파른 철계단을 타고 내려 가는 중에 눈은 함박눈으로 바뀌어 펄펄 내린다.

다행히 반대편에서 올라오신 부부 산님들 덕분에 인증 샷 까지 하고….

시간이 빠듯한 것 같아 서둘러 내려오니 정확히 예정된 시간 3 30분에 도착했다.

 

또 하나의 기억에 남을 멋진 겨울 풍경이었다.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감동이 함께하는 길이었고 입춘대길의 현판이 내걸린 봄의 목전에서 만난

후련한 겨울이었다

떠나서 후회한 날은 하루도 없지만 훌쩍 떠나기를 너무 잘 한 날

봄이 온다는 날 월출 설릉에서 추었던 겨울여자와의 멋진 탱고

그래서 남은 2월에 강원도 설경 한 번 더 구경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해도 별다른

쉬움이 없이 이젠 이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201824일 일요일

경포대-바람재-구정봉-천황봉-구름다리-청황사 -주차장

4시간 5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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