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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선운산의 신비한 겨울










































































































































출정의 아침

새벽 5

엊그제 장한 눈이 내리더니

일어나 밖을 보니 청승맞은 비가 추실거린다.

모처럼 출정인데 선운산 신령님 하루종일 비를 뿌리지는 않으시것제?

해마다 시산제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기는데

 

참 애매한 산행이다.

산신령님은 비를 뿌리시고

도립공원 지킴이들은 경방이란 이름으로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바쁜 산우들은 말이 없고….

어쨌든 비가 코스를 확정해 주었다.

애초 문학비공원에서 시작해서 멀리 좌측능선을 휘돌아 가는 코스를 택하고 싶었지만 중간

평지리에서 오르는 힐링산행으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새벽밥을 챙겨먹고 출정 여장을 꾸려 밖으로 나가니 비는 멎었고 싸늘한 대기는 신선하다.

다행이다.

버스안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지만 어째 늘 거기 있던 사람들이 많이 안보여서 썰렁한 버스 안 !

근데 웬일이래?

차 안에서 비몽사몽을 헤메다가 동쪽하늘을 보니 붉은 해가 떠올라 마구 따라오고 있다.

멋진 하루의 촉이 서는 상쾌한 아침!.

 

능선 오르는 길

평지리 마을 도착 인증샷 한 컷 찍고 저수지 쪽으로 오른다.

갈래길 에서 망설이는데 동네 아줌마가 소리쳐 길을 알려 준다.

오늘 산행대장은 무릉객이 아니라 평지리 아줌마여 !”

 

나뭇잎은 거의 떨어지고 빈 가지에 쪼그라든 딸기 같은 열매가 잔뜩 달려 있는 나무들이 있다.

그 아래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있어 그 이름을 물으니 그 유명한 구지뽕나무 란다..

그런가 보다 하고 사진 한 컷 찌고 가렸더니 인심도 좋은 아주머니 따 먹어 보라신다.

 

기다렸다는 듯 산 친구들 개떼처럼 달려들어 따먹기 시작하는데 약용열매라 씁쓸하리란 예상과

달리 처음대하는 생소한 식감의 달착지근한 맛이 오히려 부드럽게 입에 달라 붙는다.

천연제리처럼 쫄깃하고 달콤하고….

누가 다리를 절뚝거렸는지 아님 산꾼들이라 넘겨짚고 그라신 건지 센스쟁이 아주머니 왈  구지뽕

나무가 관절에 좋다고 하시는데

해서 더 많이 따 먹다가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한 번 검색해보니 구지뽕 효능이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간기능 개선

숙취해소

당뇨예방

활성산소 해소로 노화방지

암예방

혈액순환 개선

스테미너 증진

 

우야튼 환갑이 다되어 처음 먹어보는 구지뽕이다.

그만가자!  마이 묵었다 아이가!”

가딩님 서리 맞은 감하나 따먹다가 아주머니한테 밧데루 먹고 우린 평지리 저수지 옆길을 따라

능선에 오른다.

날씨는 좋기만 하고 추울 것이란 예상과 달리 무더워 흡사 봄 산행 같다.

 


낙조대 가는 길

낮은 능선은 제법 거친 낙차와 굴곡으로 국기봉 쥐바위 배멘바위를 거쳐 낙조대로 흘러간다.

태양이 구름밖으로 들락거리고 바람은 부드럽게 목을 휘감는다.

구비치는 산 길에는 바람과 우리 뿐이다.

내려다 보이는 고창벌은 평화롭고 조용히 겨울을 준비하는 선운세상에는 부처님의 자비와 불국의

평화가 펄펄 날린다.

누군가 그랬다.

떠나라! 아름다운 세상은 모두 문 밖에 있나니…”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과 사연이 잰 걸음으로 널 쫒아 오고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붙잡고 누릴 수 있는 날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짧은 법이다.

다시 돌아 보아도 나의 역사와 기쁨을 만든 건 늘 어디론가 떠나길 갈망했던 나의 역마살이었다.

 

상전벽해

우리가 살아가는 짧은 동안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몇 번이나 뒤집어 진다.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제외한 남의 세상과

남의 속을 다 뒤집어 버린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노구를 이끌고 제멋대로 돌아가는 세상을 잘 살아 가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건강과 마음의 평화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거기서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은 만나 보라 .

자연은 세상이 뒤집은 속을 되돌려 속 편한 세상을 다시 돌려 줄 것이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변함없는 것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늘 감동이었다

배맨바위와 낙조대에서 바라 본 서해 바다쪽 풍경과

천마봉에서 바라본 바위벽과 도솔 천하

그리고 불어오는 후련한 바람 까지….

불국의 수려한 자연 속에서는 바위 절벽 위에 사람이 얹은 작은 암자도 그 평화와 아름다움에

누가 되지 않았다.

 

멋지지 않은가?

우린 예전의 바닷속을 걸으며 부처님 품 속과 같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으니

여전히 건강한 채로 자유와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으니

 

시간에 쫓길 일 없는 여유로운 산행이라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도 홀가분하다.

우린 오랜만에 산우들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고창벌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 보며 즐겁게

길을 걸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한과 슬픔이 바람으로 흐느끼는 듯 낙조대에서 날씨는 더

흐려지고 바람은 더 거세졌다.

바람과 구름은 변함없는 도솔암과 바위벽을 더 장엄하게 만들어 주었고 젊은 날의 추억은 늙어

가는 노구에 마음의 기쁨이 다시 넘치게 했다.

우린 천마봉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바위봉 아래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선운사 가는 길

마치 구도와 순례의 길인 듯 마음에서 기쁨과 평화가 일었다.

산 속의 길은 스스로에게 다가가는 조용한 명상이다.

살아가는 세상의 답답함을 소나무 등걸에 걸어 놓고 휘적이며 가는 길

산길을 걸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을 만나고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미리 준비된 것 같은

엊그제 장한 눈이 내렸음에도 단풍은 아직 붉디붉은 모습으로 날 기다려 주었고

상사화와 차나무는 여전히 푸르름을 잃지 않은 채 내게 손을 흔들었다.

 

사바세계에서 벗어나 마치 부처님의 법력이 머무는 불국을 거니는 듯 풍경은 계절을 넘나들고 마음은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아랫 쪽 나무들은 모두 빈가지를 털어내고  황량한  모습으로 겨울을 기다리는데 흡사 이제 막 절정의

가을을 노래하는 듯한 도솔암과 내원궁 경내는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겨울의 길목에서 만난 아름다운 가을

거센 바람과 흰 눈에도 날리지 않은 붉은 나무 숲과 푸른 나무 사잇 길을 걷는 것은 마치 부처님의

깨달음에 다가가는 듯 스스로 맑아지고 경건해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부처님의 자비와 보살핌이려니

 

우린 불국에 휘날리는 평화를 가슴으로 느끼며  마애불과 용문굴 도솔암과 내원궁을 천천히 돌아보며

물처럼 여유롭게 흘러내렸다

가을의 서정이 펄펄 날리는  그 겨울 길을….

꼴찌가되어 모처럼 나선생님과 이러저러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호젓한  평화를 유린한 건 양반곰

회장 이었다.

술상 준비됐고 친구들이 기다리니 빨리 내려 오라고…..

아쉽게도 우린 선운사 경내도 다 돌아 보지 못하고 잰 걸음으로 고향식당으로 내려 왔다.

 

무릉객! 오늘 하루 이만하면 됐지 더 뭘 바래나?

아름다운 산하를 떠돌았고

가슴 가득 부처님의 자비와 평화를 받았고

산 친구들과 술 한잔 치며 사바세상의 기쁨까지 누렸으니….

 

 

 

2017 11 26일 일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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