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 신이 한 장의 도화지를 주셨다.
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이것도 그려 넣고 저것도 그려 넣고…
빈 여백이 아까워서 자꾸 더 많은 것을 그려 넣었지.
무엇을 그리고 싶은 지도 모른 채
내가 그려가는 그림의 의미조차 잘 모른 채
생각나는 대로 먼저 그려 대다가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들어 뜯어 고치고 자꾸 개칠을 하고
잘 그리려 애는 썼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어.
그리다 물감이 엎지러 지기도 하고 .
바람에 캔버스가 날라 가기도 하고….
오호라
사슴을 그린다는 풍신이 승냥이를 그려 놓고
아! 나는 호랑이를 그렸는데 아뿔싸 그건 고양이 얼굴 이었어.
땡땡땡 ! 시간은 왜 그리 빨리 흘러 버린 거야…
아직 그림을 다 그리지 못했는데…..
근데 이게 풍경화여 추상화여?
내가 그린 그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해거름에 주섬주섬 그림도구를 챙겨 돌아서는 데
바람길 모퉁이 돌아가며 왜 자꾸 울컥 울컥 목이 메이는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의식한 그림만 그리고 있었던 거야
이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려는데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그만 붓을 내리라 하네
또 한 장의 도화지를 받았네
그 동안 내 그림에는 내가 없었지
이젠 정말 멋진 그림을 그려야지
붓을 들었어
근데 이젠 손이 떨리네
이젠 메마른 가슴이 울지 않네….
난 알았네
내가 이미 그린 한 장의 도화지에 나를 더 많이 그렸어야 한다는 걸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 넣고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칠했어야 한다는 걸
또 알았네
시간은 너무 빠르고 세상의 풍경은 너무도 변화무쌍해서 무시로 바뀌고
세상을 그리는 그림은 마음먹은 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내 그림에 대한 사랑보다 그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던 거란 걸
설령 더 마음에 드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렸어도
세상의 바람은 계속 내 마음을 흔들었을 거란 걸
도화지는 생각보다 넓은데 생각이 너무 작았던 거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우리 생각보다 더 짧은 것이고….
붉은 황혼을 바라보며 다시 멋진 일출을 그릴 수는 없겠지
세월이 말했어
이젠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그림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어떤 그림을 그리던 그것은 내 그림이고
내 그림은 그 어떤 그림보다 내게 소중한 것이라고….
무엇을 그리던 도화지에 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있으면 그게 행복이라고…
비록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선택하고 사랑한 세상에 대한 그림이었고 내가 채색한 나의 세상이었어
그래도 내가 그린 풍경은 세상의 많은 풍경보다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기도 하다는 걸
나를 먼저 그리지 않은 내 그림으로 행복한 사람도 많았다는 걸
벌써 빛이 바래 가는 또 다른 한 장의 도화지를 앞에 놓고
다시 붓을 든다.
손이 떨리고 마음이 먼저 울지 않아도 이젠 정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 야지
내가 많이 들어간 그림
또 그림이 달라질지 모르지만 이젠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색칠을 해야지…
너무 많은 것들을 그리려 하지 않고
빈 여백을 많이 남겨 두겠어
때론 도화지에 구체화된 아름다운 그림보다 머릿속에서 그리려는 생각들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니까
어느 날 잠결에 다다를 수 없는 별의 꿈을 만나는 날
내 가슴이 다시 울리고 난 비로소 그 여백을 채울 수 있을지 아직 모르니까…
대청호 500리길 제 3구간 (호반 열녀길)
산 행 일 : 2018년 3월 18일
산행코스 : 냉천버스종점- 사슴골 – 마동산성 – 관동묘려- 미륵원 –마산동 삼거리
동 행 : 귀연 25명
날 씨 : 흐림
노란 산수유가 피고 있다드만
도시는 늘 칙칙했어…
그래도 목을 간지르는 봄바람에
남도로 떠날 생각에 엉덩이가 씰룩거리는 건
마음이 먼저 봄을 느낀다는 거
3번 째 대청호 길에도 맑은 하늘은 열리지 않았지
그래도 괜찮아..
늦잠도 좀 자고 느긋하게 아침밥도 챙겨 먹고 여유롭게 길을 나서면
한결 같은 산 친구들이 반기고
맑고 고요한 호숫가 아름다운 풍경이 뜬다
조용한 500리길 3구간을 걸었다.
냉천 종점에서 시작하여 포장된 호반 길을 따라 가다가 산 길로 이어진 조망 좋은 곳에 들러
잠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 나왔다
사스미골을 지나 벌목이 자행된 마동산성에 올랐다가 잠시 다리쉼을 하고 흔적이 희미한
산등성이를 따라 간다.
쉬는 사이 선두팀들은 사라졌다..
잘못 놓인 표지기를 따라 가다가 우린 산 길에서 오래 헤메고 있던 산 친구들을 만났다.
눈에 익은 그 전망 좋은 고흥류씨 묘소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고상한 말로 알바라 하지
그게 무슨 대수랴?
우리 옆 동네 산길이라 시간은 널널한데…
설령 길을 잃어 옥천으로 내려 간들 또 어떠랴
해거름에 올갱이국 한 그릇 말아 먹고 뽀스 타고 돌아오믄 되지
낭만 풍류파 산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빠이주도 먹고, 마호타이주도 먹고 오미자액기스에 소주와 맥주 까지…
취하는 것은 술만이 아니지
자연이 그린 그림에 취하고 풍류에 취하고….
나를 흔드는 건 술이 아니야
나를 흔드는 건 봄바람이고 코를 간지르는 봄날의 향기야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이고
잔에 흘러 넘치는 사람 사는 정과 즐거운 웃음이지….
정이 많은 갓바위님 때문에 진짜 山오징어도 먹구 일개 분대의 식량을 등짐져 나른 활력소님
덕분에 푸지게 끓인 김치찌개도 먹고 파김치도 먹고 …
미국산 치즈도 먹고 디저트도 먹고…
쬐끔 걷고 엄청 많이 먹은 오늘이 내 생일 같네
먹고 나니 힘이 마구 솟아
이젠 솟은 배를 불러들이려고 남들보다 좀더 넓게 산 길을 빠대고 나서야
우린 비로소 눈에 익은 잘 조성된 고흥류씨 묘소로 내려섰고 그 길 아래 관동묘려외 미륵원을
겨쳐 그림 같은 호반길을 따라 마산동 삼거리까지 즐겁게 걸어 갔다.
4개의 전망 좋은 뷰포인트 중에 1개 밖에 보지 못 했어도 괜찮아
여긴 70이 넘어도 내가 두고 두고 돌아 볼 길이니..
친구들과 함께하는 대청호길이 애석한 건
힐링은 되는데 체중은 자꾸 불어 난다는 거
천천히 느리게 걸으니 술빨과 밥맛만 좋아지고
산에서 먹는 음식은 원래 아무거나 맛 있는 법인데
귀연 대표 셰프들의 특선 요리 까지 죄 섭렵하고 나니
걸어도 걸어도 내 배는 꺼질 생각을 안 하는데…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내 배는 불러도 느리게 흘러 가는데 저 호반에 나룻배는 떠날 생각이 없다
늙어가면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 고맙고 더 소중해 진다는 청산님 말처럼
내 사는 곳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이 길이 고맙고
나와 함께 길을 걸어주는 산 친구들이 있어 좋구
잊지 않고 찾아 준 봄날이 고마운 거지
아무런 걱정 없이 이렇게 홀가분하게 자연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감사할 일 아닌가?…
코김이 팍팍 새나오고 혀가 턱에 닿는 거친 산길에만 카타르시스가 있는 건 아니야
고요한 호수의 평화를 가슴에 들여 놓고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길도 참 좋으이…
대청호 물가에 피어나는 개나리와 버들강아지 미소를 만나고
갈대 숲 사이 파란 새싹들 위애 내려 앉은 봄을 먼저 만났으니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이지
귀연의 더 먼 여행길보다 더 북적이는 대청호 여행 길
근데 그것 만이었을까?
쾌남님과 대청호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님 덕분에 귀가길 전망 좋은 마로니에 까페에 들러
소주와 맥주와 안주를 무한리필하고 커피까지 한 잔 마셨어
꺼지지 않은 배가 다시 탱탱해진 채 알딸딸해 졌는데
근데 그게 또 끝이 아니었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두루두루 세상사는 이야기
세상사 다 귀찮아 질 때 조용한 호숫가처럼 찾을 수 있는 곳
머리 식히면서 쌀밥 먹고 맘 편하게 힐링할 수 있는 곳에 관한 리얼 다큐멘타리…
갓바위님과 한라산님이 풀어내는 다이나믹하고 실감나는 빵 얘기까지 들으면서 우린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다는 ...
단 돈 만원의 기쁨과 살아가는 날의 정이 철철 넘치던 대청호 500리길 이야기
4구간 답사 포인트
냉천종점에서 산 길을 따라가는 전망 언덕
마동산성에서 능선 길 따라 내려선 호안 풍광 좋은 곳 2곳
윗말뫼로 돌아나오는 호안 길
더리스에서 마산동 삼거리 까지 이어지는 호반 길 풍경
관동묘려
미륵원
대청호 오백리길의 3구간은 냉천골을 지나 물이 양갈래로 갈라진다해서 '양구래'라 부르는 곳을 걸어
마산동산성이라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있는 왼쪽의 사스미골로 들어선다.
약 2킬로 정도 산바람을 맞으며 완만한 산등성이를 걷다보면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0호 마산동산성
에 오른다.
마산동산성은 퇴뫼식 석축 산성으로 지금은 거의 허물어져 그 흔적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마산동산성을 내려와 마산동반도 끝에 다다르면 고요하고 푸른 대청호가 시원하게 기다리고 있다.
반도를 돌아 사스미골 삼거리로 나와 고흥 류씨 묘소와 재를 지내는 관동묘려를 향해 걷는다.
관동묘려를 둘러보고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걸으면 대전 최초의 사회복지시설인 미륵원을 만나게 된다.
원래의 미륵원 자리는 수몰되어 사라졌지만 그 옆 언덕위에 복원해 놓은 남루와 지금도 살고 계시는
회덕 황씨의 종부를 만나 뵐 수 있다. 미륵원을 나와 냉천길 삼거리를 지나 윗말뫼에서 말뫼(마산동
삼거리)로 나오면 3구간을 마치게 된다.
(대청호 500리길 홈페이지 참조)
<코스 요약>
대전 동구 직동 냉천버스 종점 → 양구례 → 사슴골 입구 → 마산동산성 → 전망대 → 옛 농로
→ 148봉 → 전망대 → 사슴골 → 묘지길 → 고흥 류씨 묘소 → 은골(관동묘려) → 은골길 → 미륵원
→ 냉천길 삼거리 → 윗말뫼 → 대전 동구 말뫼(마산동 삼거리)
동행사진첩 (청산님 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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