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2일차 락블랑
락블랑 가는 길
나비가 포르락 거리며 나른다.
나비야 너나 나나 다 똑 같구나 …
찬바람 불면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흔적없이 흩날려 가야 하는…
바람처럼.. 이슬처럼….
잠자리 날개 옷을 입은 선녀가 달밤에 바위에 내려 앉았다가
다시 올라 가기를 반복해서 그 바위가 하얀 가루가 되어 부스러지는
긴 세월을 겁이라 하지
옷깃을 스쳐도 수만겁의 인연이라는데…
우린 지난 생의 길고 긴 인연으로 만나 찰라를 스쳐가는 만남으로 헤어지는 구나…
몽블랑의 겨울이 오면 네가 먼 길을 떠나고
뒤 따라 올 내 인생의 겨울이면 나도 먼 길을 떠나야 하겠지
그렇게 짧아서 아쉽고 더 아까운 우리 삶인 것은…..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이네
아름다운 알프스나
이 황홀한 세상을 같이 나르는 너와 나도 모두…
그래도 얼마나 멋진 날인가?
이 눈부신 대자연 속에서 함께 만난 오늘은…..
이 황홀한 풍경을 누릴 수 있는 우리 기쁜 젊은 날은?.
TMB를 타고 콜데몽테(1,417m)로 이동했다.
흡사 우리나라 장승촌 같이 수 많은 장승이 도열한 언덕과 양떼들이 노니는 들판을 지나
락블랑 도보 산행 들머리 까지.
멀리 에귀디미디와 몽블랑이 만년설의 위용을 드러내는 곳
Aiguilles Rouges 라는 팻말이 서 있는 그 곳에서 우리는 행장을 수습하고 산자락을 따라 지그재그로 나 있는 산 길을 따라 오른다.
몽블랑 앞 산 자락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땅 속에서 차가운 용천수가 솟구친다.
이 길 아래 어딘가 빙하가 녹이 흐르는 물길이 있는 모양이다.
산 중턱쯤에서 일행 중 몇 명이 길을 잘 못 들어 젊은 가이드와 용필이님이 뛰어 내려가 견인해왔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야 답답한 시야가 후련하게 터진다.
락블랑 가는 길은 가장 알프스 다운 풍경이었다.
부드러운 초원의 구릉과 능선으로 이루어진 어제의 길과는 또 다른 거친 바위산과 야생화 화원이
멋진 조화을 이루는 길이다.
우리는 좌측으로 구름을 머리에 두른 웅혼한 설산을 바라 보고 우측으로는 산 안개에 가린 초록
바위의 암릉 들을 올려다 보는 고원의 산 길을 걸었다.
흡사 차마고도 분위기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훨씬 더 현란하고 아름다운 길
꽃밭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은 차가웠고 우리는 아무 곳에서나 빙하가 녹아 내리는 그 물을 받아 먹었다.
특등품 애비앙 생수는 모두 공짜였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눈을 멀게 할 것 같이 햇빛은 강렬했다.
“재네들 가죽은 쇠가죽이여?”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도 우람한 근육과 비키니 차림으로 검게 그을린 맨살을 드러내며 트레킹을
즐기는 건강미 넘치는 젊은이들이 많기도 하다.
스위스에서 왔다는 노부부는 그늘에서 쉬면서도 바위 위의 산양을 보지 못했다.
내가 머리 위 산양을 알려 주었고 우린 즐겁게 웃으며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다.
“ really envy you !
I cordially hope you have a successful 뚜르드 몽블랑 ! “
마지막 말은 나의 진심 이었다.
그 나이에도 부부가 같이 땀 흘리며 알프스 트레킹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알프스에서 모두들 건강하게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멋진 자연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저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그 꽃 밭을 나르는 나비도…
그리고 먼 이국 땅을 찾아와 탄성을 올리는 우리도…
누군 더 많은 돈을 벌고
누군 더 많은 장미 봉우를 모으려 애쓰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 보낸 우린 이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가 애써 모은 수집품들의 가치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삶과 시간의 함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의 세뇌하는 기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더 이상 잃지 말아야 할 삶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놓치게 될 것이다.
남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는 대자연의 피조물이 한데 어우러져 한바탕 멋진 삶의 춤을 추는 곳…
그것이 알프스가 아름다운 이유였다..
아! 나는 웅대한 알프스에 날아든 한마리 나비였다.
알프스를 넘어 다시 알프스가 솟아 오른다.
브레스테이킹 !
숨을 멎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끝없이 이어진다.
가는 길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40대에 이 길을 걸을 수 있었으면….”
한국의 산에 푹 빠져 늘 어디론가 떠나기 바빴던 그 젊은 시절에 이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면...
난 좀 더 멀고 넓은 아름다운 세상을 욕심내지 않았을까?
더 늙기 전에 세상의 더 많은 아름다운 추억과 감동을 가슴에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부질 없는 상념이었지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한 내 인생의 가을날
알프스 산자락을 불어간 한 줄기 아쉬운 비람 이었다.
세월이 그저 말했다.
삶이란 그런 거라고
저 하늘 구름처럼 말 없이 흘러가는 것이고
뜨거운 태양에 녹는 빙하가 아무르 강으로 흘러 바다로 가고…
다시 구름이 되어 눈으로 쌓이는 거라고…
어느 산모퉁이 이름 모를 꽃이 건
모두에게 주목 받는 정원에 핀 장미이건
누가 더 아룸다운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고 그 아름다운 세상을 사랑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삶이란 저마다의 눈으로 바라보고 저마다의 가슴으로 그리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구름이 없는 설산위로 점점 더 많은 뭉게구름이 피어 올랐다.
어제도 오늘도 ....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더 많은 구름이 산위로 몰려들었다.
신이 알프스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알프스 산신령은 구름을 풀어 뜨거운 태양을 가리게 하고 그 큰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삶들이
언제까지라도 목마르지 않고 알프스를 즐길 수 있게 지켜주고 있다.
설산은 내게 손을 흔들고
하루 종일 나를 따라 왔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을 내게 보낸 건 사랑이겠군요…
자신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은 당신의 삶에 대한 사랑!
또 말했다.
비우고 싶은 것 그 어떤 것이라도 바람에 훨훨 날리고...
가지고 싶은 것 그 무엇이라도 가슴에 모두 담아 가세요”
내 남은 삶에서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난 태고의 침묵과 대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알프스와 장중한 영혼의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락블랑에 올랐다.
덧없이 지나는 짧은 인생 길에 더 욕심 부릴 일이 무에 있을까?
난 이렇게 건강하게 이 장엄한 풍경 속을 떠돌고 있는데…
플레제르 산장(1877m) 가는 길에 바위 암벽 사이 폭포를 만났다.
한낮의 태양에 녹은 청정 빙하가 쏟아져 개을을 이루는 곳이다.
웅장한 설산을 배경으로 깔고 야생화 흐드러진 초원 위를 쏟아져 거침없이 흐르는 알프스의 눈물
그 차갑고 시린 물처럼 너무 아름다운 풍경 이었다.
그 곳에서 배낭을 벗어 던졌다
계곡의 꽃밭에서 떠 왔던 물을 다 버리고 다시 받았다.
그리고 뱃속에서 꿀럭이는 소리가 날 때까지 그 거룩한 대지의 눈물을 마셨다..
계곡물에 머리 감고 발 담그며 참으로 편안하고 여유롭게 머물렀지만 발은 채 1분도 계속해서
담글 수 없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다.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바람처럼 떠 도는 무릉객이지만
오늘은 바로 내가 알프스의 신선이다.
우리는 즐거운 계곡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플레제르 산장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알프스의 바람과을 즐기고 전원까페의 낭만을 누리다가 알프스 산허리를 휘감은
깊은 숲을 가로질러 샤모니로 돌아 왔다.
돌아 오는 길에 사계절님이 산길을 먼저 치고 나가더니 사라졌다.
하산 길 중간에 갈림 길이 있었다.
이정표에 사모니는 오르쪽으로 가고 직진해서 내려가면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야 한다.
하산길이라 분명히 직진했을 거라 걱정했는데 우리가 샤모니에 당도하기 한참 전에 사게절님은 벌써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고 전갈이 왔다.
저녁에 숙소 앞에 보이는 깎아지른 폭포 산행루트로 정상까지 올라가 보겠다고 했는데 락블랑의
거친 길을 오르락락 내리락하다가 돌아 오니 몸은 지쳐서 더 산행할 마음이 훌쩍 달아나 버렸다.
고부기 같으면 하고도 남았겠지만 인자 무릉객은 옛날 무릉객이 아녀…
발음이 션찮은 산꼭대기 말처럼 이라다 진짜 무능객 되는거 아녀?
저녁에 돼지고기 수육이 나와서 소고기 연회는 다음으로 미루고 가져온 술과 맥주로 조
촐하게 샤모니의 밤을 자축하다.
큰방 침대에 이불의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깔고 잔 것이 이불이었다.
애초 얘기했던 대로 방을 바꾸자고 제안했는데 종범이 형이 번거로우니 그냥 쓰던대로
하자고 한다..
늘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거실 인데 너무 미안스럽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기꺼
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그 정이 너무 고맙다.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이불을 걷어서 거실로 보내고 목욕가운을 되돌려 받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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