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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새벽 일출 산행 - 민주지산




안도한다.

내게 아직 고요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젊은 날의 열정이 남아 있음에

세월이 가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늙지 않는 나의 가슴에

그리고 세상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에….







늦은 일을 끝내고 나서

혹시나 가고 싶지 않을까 걱정했다.

 

올해 11일 덕유 일출 산행은 고부기가 함께 했으니

작년 7월 지리산 종주 이후 거의 1년 만에 떠나는 홀로 야간산행 길

가기 전 날까지도 기대와 기쁨에 들 뜬 나를 보았다.






내 인생의 많은 변곡점을 만들었던 민주지산.

16년 전 백두대간을 함께 종주한 산친구들과 처음 산우회를 결성하자고 의기투합 한 곳도 이 곳 이었다.

아들과 백두대간 종주를 먼저 고하고 무사종주를 빌었던 곳도

답답한 날이면 새벽에 배낭을 둘러메고 홀로 떠나던 곳도

가족들, 또는 많은 친구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던 곳도 바로 여기 민주지산 이었다 

 

65일 밤 1140분 취침

66일 새벽 150분 기상

        24분 아파트 출발

330분 물한계곡 주차장 도착

340분 등산시작

5 8분 민주지산 정상도착

515분 일출

 

이쯤 되면 무릉객의 자랑인 컴퓨터 산행의 진수 아닌가?




누군들 그 맛과 멋을 알까?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계곡길을 이마에 반디불 하나 걸고 오르는 그 황홀한 경험을?

 

홀로 깊은 산길을 떠나는 두려움은 2004년 덕유종주길에서 훌훌 벗어 던졌다.

매 주말이면 한 번씩 산에 오르고 주중에도 별 일 없으면 뒷산 아침운동을 거르지 않으니 잠 안자고

오르는 거친 산 길에도 그렇게 체력이 부치지 않는다.








삶은 고행길이 아니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하지만 이젠 너무 나대거나 무모하게 들이댈 때는 지나갔다.

서산 마루에 걸린 황금 햇살이 부드러워 지듯이

즐길 수 없는 길은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하는 거지….

나는 무릉객 !

기꺼이 어둠의 들창을  열어  삶의 기쁨을 노래하고  거친 길 위에서 내 영혼의 구성진 노랫소리를 듣는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4.6km 산 길을 올랐다.

 

친구는 다섯이다.

.

칠흑의 어둠

계곡의 물소리

계곡을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

추억





내 이마의 반디등불 아래서 수 많은 날파리와 나방들이 신나는 환영인사로 군무를 쳐대더니 새벽이

깨어 나는 막바지에 몇 명의 친구가 반가운 아침인사를 건넸다.

새벽의 여명을 타고 어디선가 홀연히 날아든 흰나비 한 마리

그리고 마지막 거친 등로에서 밝은 목소리로 노래하던 이름 모를 새 한마리.

 

누가 더 낫다 할 수 있으리?

너희나 나나 똑 같은 새벽형이다.

다 같이 지금 살아가는 세상의 기쁨을 가슴 가득 누리는 ..












그리고 울컥했다.

다시 민주지산 정상에 서 맑게 깨어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 보면서 ..

 

약간 흐린 하는 속으로

그림 같은 말간 해가 조용하게 떠 올랐다.









세속의 냄새마저 탈취된 참으로 아름답고 맑은 세상

그 익숙하지만 늘 다른 새로움으로 채워져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충만한 세상.

다시 아들과 백두대간을 시작하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사위를 돌아보며 천지신명께 민주산신령님께 절을 올렸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것이라고는  

잠을 좀 줄이는 것

세상의 잡다한 것들을 비워 낸  빈 가슴





늘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살아 가면서도

그 많은 배려와 고마움에도 드넓은 하늘을 향해 또 욕심사납게 가슴 속의 소망을 말하는 나

 




자유로움

완전한 고요와 평화

자아의 심연과 대면할 수 있는 절대 고독

가슴 속에서 다시 뜨거움이 치밀어 오르는 이 곳이

세상의 중심이고

내 삶의 아카디아이고

내 영혼의 샴발라이다.











여기가 온건한 나만의, 나를 위한 내 세상이라는 사실이 좋아서

거침 없이 부는 바람에 웃통을 벗어 던졌다.

시원하지만 춥지 않은 바람이 등의 땀을 모두 날려 버리고 나는 다시 자켓까지 걸치고 요기를 하고

나서도 황금 햇살이 쏟아 지는 산정에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인생 별거야?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나의 가슴으로 느끼고

나의 방식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거지

나의 건강과, 환경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짧고도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누리다 떠나는 거지

 

범인의 행복한 삶이란

남들 눈에 비치는 삶이 아니라

내가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이면 족하지 않을까?












메뚜기도 한 철이고

나비도 두 계절 살고 가는데

무릉객이 난다 긴다 한들

몇 년을 더 삶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요?

 

이제 남은 인생길에 가장 소중한 것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

열심히 살아 온 나를 내가 응원 하는 것

 

맛 있는 음식을 먹게 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좋은 친구와 어울리게 하고

다다를 수 없는 별을 꿈꿀 수 있게 하고

영혼이 춤추고 가슴이 노래하게 만들어 주는 것

 




제 눈에 안경이고

제멋에 사는 인생인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세상 누리며 살아가면 잘 사는 거지

쉰 목청에 가끔 박자가 맞지 않아도 내 노래는 여전히 감미롭고

스텝이 엉키고 비틀거려도 내가 추는 춤은 여전히 흥에 겹다네









 

난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40여분 홀로 소요하다가 석기봉 쪽으로 길을 잡는다..

바람 따라 세월 따라 무수한 사람이 바뀌어 가도

말없이 거기 서서

세월의 마모와 침식을 묵묵히 받아내어 그 칼날 같은 날카로움으로 바람을 가르는 석기봉

 











오늘 부드럽고 시원한 날은

당신이 내게 보여준 변함없는 사랑이었어

살아가는 어느 날 역마살이 다시 도져서 동행 없이 또 다시 홀로 돌아 오는 날

야심한 밤이라도 귀찮아 마시고 오늘처럼 반갑게 맞아 주시길

 























석기봉을 휘돌고 능선을 따라 옛추억이 남아 있는 삼도봉에 오를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삼도를 가르는 넉넉한 대간의 영봉

나와 내 아들의 땀과 삶의 뜨거운 열정을 기억하는 추억의 봉우리

 





백두대간을 따라 그 길을 두 번 종횡하면서

산이 하는 말을 듣고 바람이 전하는 사랑을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무릉객은 깊어졌다.







삼도봉 아래 벤치에 누워 잠을 좀 자려 했는데

벌떼처럼 날아드는 쉬파리들 날개 소리에 잠들 수 없었다.

이녀석들 완전 성화다.

이 좋은 세상에 들고 나서 하릴없이 잠만 자려한다고

그려 황금햇살 부드러운 이리 좋은 날 아침에 잠이 웬말이다냐?

 













늘 심마골재로 하산 했는데 오늘은 계곡 산행로를 걸어 내려 보기로 했다.

길이 험하고 꽤 가파르다.

하지만 숱한 날에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사실 하나로도 나름 의미 있는 길이다.

둥글레 자생 군락이 두 군데 크게 있었고 울창한 수림아래 양치식물 군락과 요즘 급속히 영토가 줄어

들고 있는 산죽 군락이 인상적이다.





발이 불편한 거친 계곡 길은 얼마간 내리 꽂다가 아래쪽에서 정규 등산로와 합류되었다






음지말 폭포를 지나 비로소 처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간은 930

830분 경에 들머리에서 츨빌한 사람들이겠다.


 



좀더 내려가니 등로가 두 번 째 계곡 물길을 가로지르는데 들머리가 약 2km 남은 지점으로 그곳에서

계곡을 따라 철망 펜스가 쳐져 있다.

 






오잉!

작은 폭포가 있는 신선탕은 이미 지났다는 얘기

나는 다시 올라온 길을 되짚어 길에서 보이지 않는 계곡 바위 뒤 깊은 소로 스며 들었다.

 




마지막 중요한 것을 빠뜨릴 고 갈 수는 없다.

내 몸의 진폐와 영혼을 정화하는 계곡수 세례로 나와 자연이 비로소 하나 되는 의식

 




여름 산행의 진수요 묘미이자 선계입적의 마지막 관문이다.

올 들어 처음 하는 알탕이지만 올 여름 셀 수 없이 많이 하게 될 것이다.

6월 초입의 계곡물은 소스라치게 차가웠지만 나는 계곡 수에 세 번이나 뛰어 들었다.

세 번 째는 더 오래 물 속에 머물 수 있는데 그 때면 차가움 속에서 몸에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오른다.

 




빛과 어둠

고통과 기쁨이 등을 맞대고 있듯이

극한의 차가움과 뜨거움도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이 세례의식으로 일출산행은 비로소 완성되고 나는 민주나라의 신선이 되어 훨훨 날아 오르는 것이다.

 








새 옷을 갈아 입고 가볍게 남은 길을 걸어내려 백화산 자락에 있는  보현사로 떠난다.












안나푸르나를 함께 떠 돌았던 군대친구

차하사가 새롭게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는 곳

지난 3월 몽블랑을 함께 다녀 온 고산과 이른 아침에 백화산을 타고 점심 때 들렸었는데 그날 공교롭게

서울에서 내려오지 않아 차하사 농장 툇마루에서 둘이 간식만 먹고 돌아 왔다.

 

그래서 오늘은 얼굴 한 번 보고 공사진척도 볼 겸 미리 통발을 넣고 겸사 겸사 나선 길이다.

주택은 거의 완성단계로 마무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고 새집을 직접 짓느라 친구는 눈코 뜰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집 짓는 것을 구경하고 때마침 찾아 온 다른 손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한가하면 그간 밀린 얘기나 좀 나누고 천천히 오려 했는데 친구 일정이 워낙 바쁘기도 하고 또 친척

들이 와서 생각보다 일찍 집을 나서는 바람에 시간이 좀 남아서 언젠가 한 번 올라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월유봉에 올랐다가 귀로에 올랐다.

 

당초 생각으로는 풍경좋은 월유봉에 올라 신선처럼 한가롭게 소요하다가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5봉을

모두 돌아보고 반대편으로 내려오는데 꼬박 2시간이나 걸렸고 둘레 길을 걸어 차량 있는 곳 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생각같이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오후 6시경에 대전 어머님 댁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다.

새벽 새벽 2시부터 숨가쁘게 보냈던 하루의 긴 여정이 끝이 났다.

 

내 삶의 여백에 끼워 넣은 이 멋진 그림들이 내 삶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내가 오늘 그려가고 내가 채색한 그림들이 나의 내일을 더 밝고 빛나게 만들어 준다는 건

새벽 산이 조용히 내게 말해 준 삶의 비밀이었다.

 

 

 

산 행 일 : 201966

산 행 지 : 민주지산

산행코스 : 물한게곡-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물한계곡

소요시간 : 6시간 25

   ; 일출 후 약간흐리고 바람시원함

   : 나홀로

 

경유지별 시간

 

02:00  출발

03:30  물한계곡 들머리 도착

03:40  산행시작

05:08  민주지산 정상 (40분 정상 소요)

05:50  민주지산 출발

06:45  석기봉 (25분 소요)

07:10  석기봉 출발

07:37  삼도봉 (30분 소요)

08:06  삼도봉 출발

09:00  알탕소 (20분 소요)

09:20  알탕소 출발

09:58  황룡사

10:05  베이스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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