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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설악산























































































































































































































금요일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모처럼 내린 비에 무더위가 가시고 토요일은 화창할 거라고 했다.

내가 수도승이여?

66일 민주지산 새벽산행을 하고 왔다지만 보기드믄 청명한 하늘이 열릴 좋은 휴일 날에 방콕

한다는 건 당최 말이 안 되는 얘기

 

산 친구들도 가는 데가 없어 교차로 산악회 일정을 뒤적이다 보니 설악산을 가는 산악회가 하나

눈에 들어 온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거르지 않는 공룡이나 비등은 올 가을에나 갈 생각이라 잘 접어두었는데 요기는

주전골에 간단다.

주전골

계곡과 어우러진 단풍이 유난히 붉고 아름다운 데다가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가을이면 어마무시한

인파가 몰리는 곳 인데 생뚱 맞게 여름 산행의 기치를 들고 나선 것이다.

 

주전골까지만 가면  산책 수준이지만 흘림골 까지 연결해서 등선대 까지 오르면 무리하지 않고도  

제법 뻐근한 운동이 될 것이고 녹음이 짙어가는 설악의 눈부신 풍경까지 가슴에 담아올 수 있다.

근데 거기서 더 나가서 비용이 25,000

아침, 점심 주고 뒤풀이까지 해준다는 데

모하는 산악회인데 이런 가격과 조건으로 설악에 갈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강릉까지 왕복하는 고속버스 금액도 안 되는 돈으로 편하게 설악산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고 하루 세 끼 끼니 까지 해결해 준다는 거다.

그것뿐인가?

설악에 들기만 하면 천하비경에 계곡 노천탕까지 공짜인데..

신선골에서 음풍농월 하다가 목욕재개하고 나면 풍경 좋은 곳에 주안상까지 준비된다는 얘기

 

나 토요일 너무 한가해

도무지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친구가 없다고?

~

이런 멋진 날 작심하고 나서는 길에 친구가 따라 붙으면 명상과 유희에 방해만 받고 신경만 더

쓰이는 법이지.

 

예약할 수 있냐고 문자를 넣었더니 가능하다고 득달같이 회장의 연락이 오고 연달아 산행코스

및 픽업장소에 대한 안내가 쇄도한다.

우짜든 난 아주 짧은 시간에 휴일 일정을 확정하고 토요일 날 아침 75분에 유승기업에서 올

들어 처음 설악으로 가는 유람마차에 몸을 싣게 된 것이다.

 

설악 가는 마차가 만선이면 가는 길이 불편할 것 같아 유승에서 승차하면서 배낭을 아래 짐칸에

넣으렸더니 나이 지긋하신 회장님 자리가 많이 남으니 가지고 타라 하신다.

오잉!  뭔일이래?

교차로에 광고도하고 이런 가격에 설악에 가는데 자리가 남아 돈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일찌감치 만차가되어 접수를 마감했는데 오기로 한 단체팀 10명이 갑자기

취소를 해버렸단다.

~~

경우도 없는 몰상식한 사람들일세

 

모처럼 파격적인 세일과 서비스로  대대적으로 산악회를 홍보하려던 회장의 야심 찬 계획은 수

포로 돌아갔지만 덕분에 나는 옆자리에 내 배낭을 놓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설악

으로 간다.

 

이건 필경 설악 신령님이 보낸 초대장인 게여

 

얼마간 가다가 오창휴게소에서 내려 뜨거운 미역국에 뜨거운 아침 밥을 주는데 이 초짜 산악회는

국과 밥을 따로 1회용 그릇에 담아서 주고 반찬도 세 개나 준다.

일식 삼찬 백반정식이여

겉절이와 나물무침 그리고 김까지 곁들인 아침밥이 얼마나 입에 쩍쩍 달라 붙던지

너무 맛 있어서 밥과 국을 두 번 리필하고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회장님 왈

사람이 많이 안 와서 음식이 많이 남으니 마음껏 드세요!”..

아침부터 동하시는 분은 소주도 한 잔 씩 하세요한다.

 

나 이런 산악회 정말 좋아요..

 

참으로 못 먹을 것이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인 것 같다..

나처럼 불가사리 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라면과 가락국수 외에는 가성비 대비 먹을 만한 음식이 별로 없다.

그래서 꼭두새벽에 가는 산행 길에서도 늘 새벽밥은 챙겨 먹고 나왔었는데 이렇게 줄 서서 타먹는

밥이 휴게소 에서 사 먹는 밥보다 훨씬 맛 있다.

대한 민국 좋은 나라

나이 들어서 체력과 먹성만 잃지 않으면 돈도 별로 안들이고 금수강산 방방곡곡에서 신선놀 음하면서

음풍농월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좋은나라.…

 

나중에 역시 나이 지긋하신 산악대장님이 나아서 개념도를 나눠주고 신행안내를 하시는데 흘림골은

입에도 올리지 않는다.

그리고 산책코스니 다 같이 모여서 3시간 정도 천천히 트레킹하고 1시간 뒤풀이 하고 내려가자 하신다.

 

~ 차로 9시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산행시간은 갈지자 걸음으로 고작 3시간이라고?

 

네 사간은 달라는 소리가 목구녕 까지 나왔지만

아서라~~~

뒤풀이를 포기하믄 되지

모두들 싸게 와서 본전 생각이 안난다시는데….

 

용추삼거리에서 흘림골로 올라 등선대 찍고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도로를 따라 내려 오다가 다시 산

길로 오색까지 연결하면 내 걸음으로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것이다.

시간에 맞추려면 뛰다시피 하거나 차를 얻어 타고 돌아가야 할 것 같고

그 것보다는 등선대 찍고 길도 좋고 그늘도 좋은 온 길을 되짚어 다시 내려오는 편이 나을 듯 하다.

왕복 10km 정도면 평상 걸음으로 4시간 정도면 될 것이고 배낭을 놓고 비무장으로 산을 타고 내려

오면 시간단축도 가능해서 알탕까지 가능할 수 있다..

일단 계산이 서자 일행들을 뒤에 두고 혼자 서둘러 치고 나갔다.

 

흘림골은 2013년 마눌과 100대 명산 점봉산 산행 이후 처음이다.

마눌이 가장 힘들어 했던 산행이지만 곰배령 해돋이와 몽환의 운무가 흐르던 점봉산과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쯤 넋이 나갔던 날이었다.

 

용소 삼거리 까지는 바람 같이 도착했다.

사람이 없을 때를 틈타서 엄중히 드리운 철책을 훌쩍 넘어 갔다.

엊그제 깜깜한 야간산행보다도 더 긴장되고 서스펜스 넘친다.

적발되면 벌금이 30만원

흐미~~ 짜장면이 몇 그릇이여

가지 말라는 길에 들어서니 작은 소리에도 뒷덜미가 서늘하고 모골이 송연해 진다..

도둑 산행의 흔적이 거의 없는 걸 보니 의외로 단속이 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급인력인 국공 직원들이 휴일 날 할 일없이 이 인적 끊어진 계곡에 진을 치고 있겠는가?

문제는 어딘가 몰래 설치된 CCTV로 출입을 확인하고 입구에서 기다리는 것이겠지

얼마간 이런저런 불길한 생각과 상념에 사로잡혀 조심스럽게 폐쇄된 길을 걸어 갔다.

군데 군데 철계단과 데크는 파손되어 있고 나무데크의 판자는 주저 앉은 곳도 많다.

한참 가다 보니 철제사다리와 나무데크가 다 끊어져 계곡아래 나뒹구는 곳도 있다.

차라리 인공물이 없으면 눈부신 자연의 풍경일텐데 수려한 자연 속에 녹슬고 방치된 인공물은

오히려 혐오스럽고 흉물스럽다.

 

나무데크가 끊어진 곳에 배낭을 내려 놓고 일단 요기를 했다.

뒤풀이로 수육과 족발을 많이 가져 왔다니 짧은 산행일정에 괜히 밥으로 배를 다 채울 일이 없을 것

같아 떡과 우유로만 일단 허기를 달랬다.

 

간단한 점심을 끝내고 배낭은 기억하기 쉽도록 끊어진 데크 한 가운데 떡 허니 그대로 둔 채

가볍게 출발했다.

어짜피 나 말고 아무도 없을 계곡이니 누가 볼 일도 없고 설혹 누가 들고 간다 해도 쓸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흘림골은 무릉객이 접수했고 오늘은 무릉객이 흘림골 쥔장이다..

 

얼마간은 혹시 감시카메라가 있을까 싶어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진행하다 보니 지나가는 뱀의

모습에도 화들짝 놀란다.

옛날 같으면 쫒아 가서 사진을 찍는다고 법석 일텐데 인적이 없는 고립된 지역이다 보니 괜히 무서워

진다.

 

풍경은 고도가 오를수록 수려해졌다..

길은 가파라지는데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 주마간산으로 멋진 풍경들을 눈에 담으려니 마음도

바빠지고 담대해진다.

그래도 스릴은 만점이다.

설악에 들지 않고 어디서 이런 풍경을 만날까?

여러 개의 폭포는 어제 비로 밝고 세찬 물줄기를 힘차게 내려 보내고 온통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계곡의 수림은 기암봉들과 어울려 장관의 풍경을 연출한다.

 

마음은 조금씩 평화로워졌지만 빨리 산행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은 내려 놓을 수가 없다.

그래도 등짐이 없으니 여기저기 비경에 셔터를 눌러 대면서도 홀가분하게 속도산행의 기쁨에

젖을 수 있다.

오색약수 ~용추삼거리는 2.7km

용추삼거리에서 등선대는 2.3km

합이 5km이고 왕복 10,km 거리이다.

 

한 시간에 도착했던 용추 삼거리에서 다시 한 시간 만에 등선대에 올라 섰다.

5월의 봄날에 만났던 여인은 오랜 세월에도 변치 않은 모습으로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초록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푸른 외투를 걸친 채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둘만의 데이트는 감미롭고 환상적이었다.

 

생명이 약동하는 그린컬러 시네마스코프

주도권은 인간에서 다시 자연세계로 넘어가 날 것 그대로의 리얼리티 퍼포먼스

6년 만에 다시 오른 등선대에서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곡과 조화로운 설악의 풍광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려 오는 길은 발에 모터를 달았다.

달리는 말 위에서도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또, 보고도 지나 친 풍경을 세세히 담으며 빛의 속도로

하산 했다.

그리고 맑고 깨끗하게 흘러내리며 시퍼렇게 소를 이룬 계곡 물과 등로가 비로소 조우하는 곳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디 그 것 뿐이랴 ?

빛의 속도로 오르고 내리 꽂는 그 속도가 부르는 갈증만큼 그 물을 벌컥 벌컥 마셔댔다.

인적이 끊어진 산봉우리를 타고 흐르는 물이라 마셔도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짙푸른 대지의 생명력과 꿈틀거리는 원시의 야생으로 충만한 대자연의 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면 평화가 밀물처럼 가슴으로 밀려든다,

물심일여와 물아일체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내가 되는 그런 시간과 공간 어쩌면 나의 존재와 생각이 사라진 이 시간이

궁극의 도와, 최고의 선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옷을 물에 빨아 짜서 입고 다시 길을 잡으니 발길은 가볍고 마음은 마치 날개 옷을 입은 듯 설악의

계곡을 훨훨 날아 오른다.

 

용추 폭포 까지 구경하고 내려오니 3 30

정확히 3시간 30분 소요되었다.

일행들은 차 한 켠에서 뒤풀이가 한창이다.

모두들 가장 늦게 온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난 늦게 온 대가로 사진 몇 장을 찍어주고 소주에

막걸리에 풍성히 남아도는 갖은 안주로 설악유희의 마지막 까지 그렇게 푸짐하게 장식했던 것이다.

 

초여름의 전격 침투작전과 목표물 공략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 스릴넘치는 고지점령과 활공의 짜릿함

그리고 과도한 긴장과 체력소모로 인해 한동안 조용히 근신했던 미각은 펄펄 날았다.

막걸리든 소주든 따라주는 대로 마시고 수 많은 사람들이 40여분 동안 먹는 중이지만 아직도 계속

리필되는 족발과 수육을 배 부를 때까지 뜯어 먹었다.

원시의 야성이 살아 있는 흘림골

그리고 아직 늙어 갈 생각이 없는 무릉객

 

그 것들이 내 살아가는 무수한 날들의 기쁨이었고

내가 찾아낸 그 기쁨과 감동들이 내 삶을 신나는 여행길로 만들어 주었다.

살아보니 세상의 맛 있는 것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그런건 함께 동행하는 사람 쪽수와 돈의 많고 적음과는 별로 상관이 없더라

 

마음 한 구석 욕심을 비워냈는가?

그리고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인가?

 

혼자도 좋고, 여럿도 좋고

이렇게 건강하게 넓은 세상을 빠대고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다 누리고

사는데 늙어간다고 살아가는 데 재미 없을 게 무어야?

 

산 행 일 : 시크리트  20196

산 행 지 : 설악산 모처

산행코스 : 산행기참조 

소요시간 : 3시간 30(알탕 포함)

   : 비 온 다음날이라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깨끗하다.

   : 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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