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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2019 덕유 종주






























































































































































































































핸펀 사진



















출발전야

 

시간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거

 

나는 아직 늙을 생각이 없고

내 좋아하는 것을 누리고 살 만큼 몸도 마음도 건강 하다는 거

 

근데 사실 걱정이 되긴 되었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나서 많이 자제하긴 했지만 동생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고스돕도 치고 하다 보니 피로가 가중되어 몸이 휴식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틈틈히 꾸린 배낭을 둘러메보니 가공할 그 무게에 가위가 눌릴 지경이다.

더 늘어난 것이라고는 산장용 옷가지 몇 개에 버너,코펠, 연료 밖에 없는데 ..

통상 물 1리터에 도시락1개 과일 1통을 넣고 다니다가 취사장비가 들어가니 부피와 무게가 갑자기

늘어나 어깨에 걸리는 하중이 육중하다.

이걸 메고 덕유산릉에서 콧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명절날 뒤엉켜 시끌벅적했던 대 가족들이 썰물처럼 밀려가고 나서 금단현상처럼 허탈하고 공허함이

따라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TV 영화나 편하게 시청하다가 슬며시 잠들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 천천히 청소와

집안 정리를 하면 되는데, 내일 새벽 출정이니 쉴 새도 없이 서둘러 집안 청소부터 해야 했다.


정리하고 씻고 어쨌든 또 시간은 흘러 숨가쁜 하루가 야심한 밤에   마무리 되었다.

잠신을 불러낼 요량으로 TV를 켜고 편히 누웠는데 평소 같으면 쏟아지던 잠이 어디 산책이라도 갔는지

눈이 오히려 말똥말똥하다.

잠 때를 놓친건가? 아니면 출정의 부담 인가?

잘먹고, 잘싸고 잘 자는 건 일가견  있는 내가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다음날 914일 토요일

머리가 좀 무겁고 몸이 찌뿌둥하다.

잠을 푹 잤으면 컨디션은 훨~ 좋았겠지만 어디 날이 늘 맑기만 하겠나?.. 

그래도 별 상관은 없다.

꼬박 뜬눈으로 밤을 하양게 새우고 시작했던 지리산 종주도 늘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내가 누구여?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바람처럼 떠도는 남자

산전,수전, 공중전에 특공 필살기 까지 겸비한 백전노장 무릉객 아닌가베?

 

터미날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먹을 만한 음식점을 찾다가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김밥 하나를 샀다.

매표를 하다가 우연히 이선생을 만났다.

귀연 산우회 멤버로 나와 동갑인데 의사라 정년 없이 계속 일하고 있어서 시간의 귀함을 아는 친구다.

혼자 지리산에 간단다.

흐미 살판난 돼지들 바람났네!” 

종주는 아니고 오늘 백무동으로 가서 장터목에서 하루 유하고 내일 천왕봉 일출을 보고 돌아 온다고 한다..

그건 그냥 지리산에 들어 기 한 번 받겠다는 거다.

아직은 시기상조일 듯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나이에 걸맞게 지리산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나는 오늘 덕유산 종주를 하니 올 가을에는 지리산 종주 대신 한신 계곡으로 세석에 올라 장터목에서

1박한 다음 천왕봉 일출을 보고 내려 올까나?

근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벌써 11월 까지 주말 일정은 거의 매진이다.

 

구천동

약간의 두려움의 따라 왔다.

시간은 많이 흘렀고 먼 길을 돌아 다시 여기 왔으므로

 

아침이라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하나 사서 바깥 의자에서 혼자 아침을 먹는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혼자만의 여행길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고독과 낭만 멋을 알고 스스로 깊어 질 수

있다는 거

친구들과의 어울림에서 오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깊은 내면의 기쁨을 맛보고

고요함 속에서 나와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이 혼돈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게 한다.

 


옅은 물안개가 피어나는 싱그러운 아침계곡이 좋다.

아무런 방해 없이 푸른 수림을 바라보고 맑은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 나의 영혼은

위로를 받는다.

어사 길

넓은 도로를 따라가다가 중간에서 계곡 길로 내려가 일부 구간 계곡을 따라 트레킹을 해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관리소 초입부터 백련사 일주문 아래 까지 한적한 계곡길이 조성되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허기사 주로 밤에만 걸어 올랐으니….

 

이 길은 내 영혼의 순례길 이었다.

이마에 등불을 걸고 오래 어둠 속을 걸으면 멀리서 푸른 새벽을 달려오고 난 덕유의 산정에서 맑게

깨어나는 산의 아침과 븕은 태양의 축복을 만난다.

그리고 그 평화로운 능선 길을 걸으면 아름다운 세상의 무수한 기쁨과 감동이 아침햇살과 함께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 오는 것이다.

그건 오랜 세월 내 삶의 기쁨은 불러내는 주술이 되었다.

오늘도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그 감동을 잊지 못해 떠나는 길이다.

 

산 깊고 물 맑은 덕유 계곡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호젓한 길이라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백련사에

올랐다.

부처님에게 삼배를 올렸다.

처음 혼자 야간 산행으로 종주길에 오르던 그 날

어둠 속을 스쳐 지나던 그 날부터 무수히 그 길을 홀로 오르던 무릉객을 기억하시겠지….

 

그 산행은 백두대간 종주와 함께 내 삶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야심한 밤 그 길을 혼자 걸어 올라 덕유산을 종주한 날부터 초로의 오늘까지 나의 혼자 여행은 내

삶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가장 나다운 방식이 되었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향적봉 오르는 길을 그리 만만치만은 않았다.

이 길을 이렇게 무거운 무게로 오른 적이 없었으니

그 길이 새삼 삶의 진리를 일깨워 주었다.

삶의 여행을 즐기려면 가방이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먼저 삶의 근육부터 키워야지....

 

지금 조금 힘든 것은 그리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짱짱하고 능히 그 것을 감당할 만한 관록과 체력을 갖고 있다.

힘겨운 여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고 고통의 골은 기쁨의 산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기에

하지만 세월에 장사 있으랴?

수 많은 세월의 풍상은 단단한 바위에 균열을 만들고 튼튼한 쇠마저 녹슬게 하는 법이어늘

혹여 오늘을 무리한 산행이 혼자 누리는 거친 산길의 즐거움을 더 일찍 거둬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일 뿐…..

마누라와 몸은 젊은 날의 학대를 반드시 기억한다지 ?

그래도 이미 엎지러진 물이고 저질러진 일이니 이번만은 한 번 눈감아 주기를….

 

나를 앞서가던 몇 명의 산 님을 앞질렀지만 내 바로 앞서서 백련사를 출발한 노부부는 끝내 따라잡지

못하고 정상을 앞두고 젊은 친구에게 추월을 당하고 향적봉에 올랐다.

 

향적봉

무수한 인파들이 붐비고 있다.

곤도라 덕분에 땀의 대가 없이도 1600고지 고원의 풍경을 누리는 사람들

그들의 기쁨은 쌍방울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었다.…

수많은 식생을 도륙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신의 정원으로 끌어들인 불경죄로 쌍방울은 덕유 산신령의

진노를 사서 패망의 길을 걸었다.

그 것은 이 땅의 산에 인간이 가한 가장 가혹한 테러였고 인간에 대한  자연의 응징과 보복 이었다 .

 

대피소에서 햇반을 하나 사서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소중한 국물이다.

이 한 모금의 뜨거운 국물을 위해 나는 내 다리와 관절에 엄청난 테러를 가한 것이다.

 

야생화들이 시들어 가는 9월의 고원은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맑은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는

그 길을 걸어 가면서 컨디션은 점점 좋아 졌다.

관목들은 서슬푸른 초록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갈색의 가을에 동조해가고 산오이풀은 지친 모습으로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가을로 가는 길 섶에서는 야생의 들국화와 보라색 투구꽃이 씩씩하게 피어나고 있다.

 

빈 마음! 뜨거운 가슴 하나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지천인 산오이풀은 비록 시들어 가도 그 붉은 자태로 눈길을 끈다.

그 아쉬운 조락에도 거스르지 않는 자연의 순리와 시공을 초월하는 삶의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너의 젊은 날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7년을 땅 속에서 굼뱅이로 살다가 2주간 아름다운 세상을 서럽게 노래하던 매미는 어제 먼 길을

떠났다.

8월의 꽃밭을 붉게 수 놓던 너는 그 아름다운 시절을 가슴에 간직한 채 아직 남아 있는 사랑으로

너의 짧은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힘내라! 이 고원의 산릉에서 너와 나는 여전히 아름답다.”

우리가 누렸던 하늘과 바람, 우리를 키웠던 태양과 비바람

시들어도, 다시 돌아 오지 않아도 후회할 것 없이 우린 잘 살아 왔다. .

 

아들과 백두대간을 종주를 시작하던 지리산길에서 꽃보다도 단풍보다도 더 아름답고 낭만적인

산오이풀을 보았었다.

친구와 함께 한 원추리와 무수한 야생화가 피어나는 7월말의 덕유 능선이 아름다웠지만 다음에는

산오이풀이 싱싱한 팔월 중순에 덕유산에 올라야겠다.

 

중봉에서는 새까만 날파리들이 온 세상을 덮었다.

마치 환영인사라도 하듯이 내게 달려 들었다.

 

카메라가 또 고장이 났다.

몽블랑과 안나푸르나를 그 눈에 담고서

더 멋진 세상을 담을 수 없다는 듯이 녀석은 툭하면 나자빠 진다.

내가 오랫동안 바라보던 아름다운 세상을 오늘 다시 너의 눈에 제대로 담아보려

무거워도 일부러 널 데려 왔는데

 

중봉 이후에는 동엽령에서 오는 부부 산님들과 두 번 교행하고 백암산에서는 신풍령에서 올라 온

부부 산님과 홀로산님 한명 만난 게 전부였다.

명절 연휴에 부부가 함께 고원의 산길을 거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올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동엽령 까지는 길이 순하고 맑은 날에 멋진 조망이 함께 해주어서 별로 힘든 줄도 모르고 걷다 보니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동엽령에 도착했다.

동엽령은 공사중이다.

 

동엽령을 지나고부터 날씨는 흐려지고 산 안개가 자욱해졌다.

바람결은 더 싸늘해져서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으실으실 추워진다.

가끔씩 자욱한 산 안개가 바람에 흩어져 산릉과 계곡이 드러날 때 사진을 찍긴 했는데 카메라

노출이 제멋대로여서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내려가면 이 녀석을 당장 은퇴시키고 내년에는 나른 녀석을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

 

무룡산을 넘어서면서부터 어깨가 많이 아프고 피로가 누적된다..

잠도 설치고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배낭을 지고 장시간 걷는 당연한 후유증이다.

내게 늘 영감과 기쁨을 주던 덕유산

덕유에 처음 오른 날의 기억은 까마득하지만 그 날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렀다.

내 블로그에는 덕유와 함께했던 행복한 여정들이 오롯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그 추억과 감동은

가슴과 기억에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젊은 날에는 가벼운 행장으로 바람 같이 그 능선을 달렸다.

6년전인 2013년 겨울에도 고부기와 취사도구를 나눠 넣고 구천동에서 올라 향적봉과 남덕유를

주유하고 영각사로 내려오는 당일 종주를 무리없이 완성했었다.

하지만 이젠 당일 종주는 지나간 날의 추억일 뿐이다.

영고성쇠는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섭리이어늘…..

그래도 난 이렇게 하늘과 바람과 덕유의  멋진 풍경을 누리고 있다.


무룡산을 지나 무명봉을 넘어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태양의 빛이 드러나 어둑해 가던

천지를 훤히 밝히더니 얼마 걷지 않아 날씨는 다시 흐려졌다.

 

 

삿갓재 대피소

610분 경에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했다.

늘 잠시 다리싐을 하고 스쳐 지나던 산장이었다.

오늘은 덕유의 품에서 하루를 유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대피소에 도착을 알리고 잠잘 곳을 배정 받았다.

9번 침상

마눌에게 무사도착을 알리고 내 침상에 여장을 풀었다.

먼저 빗물을 받아 놓은 곳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산행이 마무리된 고원의 산장에서 맞는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바람막이는 걸치지 않고 좀 두꺼운 가을 겉옷으로 갈아 입고 취사도구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원래 취사는 밖에서 해야 하는데 저녁이 산 공기가 너무 상쾌하고 야외 벤취에서 취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도 그 곳에 자리를 잡아 취사도구를 거치하여 놓고 산장 아래로 내려가서 물을 길어왔다.


잠시 지난 날의 상념에 젖는다.

4년전 9월 하순 추석 연휴를 이용 아들과 백두대간 땜방을 하던 중 도착했던 산장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 날 우리는 산장에서 당연히 물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지고 있던 물을 충분히 마시고 물통을

거의 비운 채 산장에 도착했는데 샘이 말라서 식수를 구할 수 없다고 했다.

더 황당한 건 팔던 생수도 동이 나서 없었다.

나는 무슨 산장에 물도 없고 이런 곳이 무슨 대피소냐고 볼멘소리로 항의를 했었다.

아연하고 낙담했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국공직원이 샘물 받아 놓은 거라며 가득 채운

2리터 생수통을 슬며시 건네주었다.

아껴쓰고 반납하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나중에 새로 도착한 홀로 산객이 산장에 들어서서 물을 찾기에 나는 아들과 라면 3개를 끓여 먹고

식수를 보충한 다음 300밀리터 정도의 물만 반납했는데 그 때 지킴이 아저씨의 난감한 표정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에게 !”

내 코가 석자라 우린 황망히 떠났고 뒤늦은 산객이 라면은 제대로 끓여 먹었는지 아닌 감추어 둔

비장의 물이 더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좌충우돌 하던 와중에도 덕유의 가을 산색과 산릉을 수 놓은 단풍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다투어 3000원 짜리 생수를 구입하는데 나는 생수를 사지 않고 햇반만 하나 샀다.

그 어디 생수인들 덕유의 1600고지에서 흘러내리는 물보다 좋을 소냐?

수직 계단을 걸어 내려가 길어온 덕유의 이슬에  라면 스프를 하나 넣고 오뎅국을 끓였다.

오뎅이 좀 많기는 했는데 개봉을 해서 뜯고 남겨두면 신선도가 떨어질 것 같아서 다 넣고 끓여

버렸다.

남은 건 내일 아침에 다시 먹으면 되지.”

허기를 자극하는 냄새가 죽인다.

물을 떠오는 사이 한 명이었던 아외 테이블에 또 다른 홀로 산객과 초딩이 딸과 함께 온 두 명의

산객이 앉아 있었다,

오뎅국이 많으니 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더니 4시에 도착해서 이미 식사를 다 했단다.

나이는 좀 들어 보여도 체구가 아주 건장한 산님이 조금만 일찍 도착했으면 회를 안주로 함께 술 한잔

나눌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말을 덧붙인다.

1500고지에서 웬 회?

자기는 서울에 사는 데 해마다 한 번씩 내려와 덕유산 산장에서 하루를 묵고 간다고 한다.

거창에서 하룻밤을 자고 버스로 황점까지 와서 삿갓재에 오르는데 산행보다는 산장의 낭만과 분위기를 

즐기면서 덕유의 기를 받는 건데  이젠 빼 먹을 수 없는 연례행사가 되었다고 했..


술과 고기 회 과일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산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데 배낭의 무게가

보통 17kg에 달한다니 거의 네팔 포터 수준이다.

근데 더 대단한 건 , 이 아자씨 65세로 경로우대증을 가지고 있다는 거

재야에는 고수도 많다.

또 한 명의 산객은 내가 아들과 산행의 추억 남긴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감동을 딸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토옥동 겍곡을 올라 산장에 도착했다.

초딩아이는 아빠 따라 5~6시간 산행을 한 셈인데 지친 기색도 없이 종달새처럼 즐거운 모습이다.

마지막 산객은 울산에서 왔는데 추석날 무주 처가집에 왔다가 덕유산으로 방대를 놓았다고 했다.

안성에서 올랐는데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육십령으로 내려 간다고 했다.

내가 육십령은 대중교통이 어려운데 어떻게 돌아 가느냐 했더니 집사람이 거기로 차를 끌고 온다고

한다.

~~ 처가집을 뛰쳐나온 남편과 남편을 극진하게 위해 주는 부인이다.

원래는 남덕유에서 영각사로 내려가려 했는데 철계단 공사로 그 길이 폐쇄되었단다.

나 역시 애초에 영각사 쪽으로 내려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장수덕유에는 오르지 못하고

하산해야 한다.

어쨌든 나는 남덕유와 서봉을 거쳐 영각사 가까이에 있는 덕유교육원으로 내려갈 계획이라고 얘기

했더니 자기는 그 길을 잘 모른단다.

장수덕유 3km 넘어서면 덕유삼거리가 나오는 데 나무등걸에 달린 교육원 팻말을 따라 하산하거나

3.6km 지점의 비등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지만 정규 등로가 아니라  찾기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렇다고 선뜻 같이 가자는 말도 하지 못하겠다.

피차 하이에나급 산객들이라 서로의 동행이 불편할 것이라

 

어쨌든 세상은 넓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산에 오르고 산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추억을 만든다.

개미가 겨울을 날 먹이를 모으고 꿀벌이 꿀을 모으듯이….

그래 ! 인간은 먹이 만을 위해 세상을 살지 않는다.

가슴에 꿈이 사라지고 갈 수 없는 세상의 아쉬움이 가득한 날에 우린 추억 없이  무엇으로 살아 가는가?

인생의 겨울이 다가 온다.

그 겨울엔 난 지난 여름과 가을을 그리워하겠지만 지나간 나의 삶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을 뿐이다.

 

우린 점점 어둠이 짙어가는 덕유의 산장에서 이러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머무는 산장은 그래서 낭만적이다.

뿌듯한 하루의 피로와 보람이 있고 젊을 날의 추억을 소환하는 넉넉한 대자연의 품이 있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르고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단지 산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린 마음을 열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산은 철학자고 수도승이고 뚜쟁이다.

산이 내게 한 말과 바람이 전한 사랑은 삶의 소중한 것들을 깨우쳐 주었다.

산에서 만나 평생 친구가 된 많은 수 많은 나의 친구들처럼 산이 중매한 만남도 살아가면서 각별

한 인연이 될 수가 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 이빨을 닦고 산장으로 들어가 침상을 정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온돌이었다던 독립된 2층 침상으로 바뀌었는데 옆 사람과 떨어져 있어 아주 잠자기에 편하다.

이 정도면 가히 산장 호텔이다.

어깨며 온몸이 욱신욱신 쑤신다

조금씩 뒤척이며 설잠을 들었는데 9시가 되어 소등을 한다는 소리가 잠결에 설핏 들렸다.

온몸이 쑤시는 통증을 느끼면서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고 한참을 자다가 깨어났다..

맞은편 눈높이 침상에서 한 여자가 내 쪽을 향해 누운 채 잠들어 있고 여기저기에서 낮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240분 이다.  6사간여 취침!

래도 집에서 만큼 잠을 잔 거다.

아직도 온 몸이 욱신거린다.

조금 뒤척이다가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5시 반이 훌쩍 넘었다.

어제 설잠에다 거친 산행의 피로로 족히 8시간은 잔 셈이다.

 

입맛이 떨어지거나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가슴이 메마르고 답답해 질 때

삶에서 감동이 사라지고 사는 게 시들하게 느껴질 때

그 때는 산으로 가라

그냥 숲과 거친 산길을 묵묵히 걸으라!

지친 몸으로 산 속에  잠들고 깨어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음은 평화로워

질 것이다.

 

 

다음날 915일 일요일

딱딱한 침상에서 일어날 때는 허리가 아프더니 침상을 내려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아주

가뿐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산의 마법이다.

오래 전 영남알프스를 종주할 때도 그랬고

지리산 품에서 잠들고 깨어날 때도 그랬다.

큰 산의 산등성이에는 원적외선이 흐르고 있는지 하룻밤을 자고 나면 나는 비맞은 풀처럼 싱싱해졌다.

지리산의 기운을 받아 생체타이머는 다시 리셋되고 니는 리프레쉬되었다.

멋진 하루의 감이 팍팍오는 싱그러운 덕유의 아침!

 

취사장에서 어제 오뎅을 끓여서 건져 먹은 다음 그 물에 라면을 넣고 조리했다.

국을 끓여 햇반을 넣어도 괜찮겠지만 어제 끓인 오뎅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그렇지 않아도 불가사리 먹성인데 무엇인들 맛없겠냐 만은 산에서 먹는 라면 맛은 각별하다.

 

어제의 옷을 다시 갈아 입고 남덕유를 향해 힘차게 출발한다.

640분이다.

남덕유 까지는 4.2km 만만치 않은 오름길이다.

남덕유는 구름 속에 쌓여 있다.

 

일출을 볼까도 생각했지만 후렛쉬를 가져오지 않아서 애초에 포기했었다.

2시간 일찍 일어나 움직였어도 남덕유에 다다를 수 없었고 설령 도착했다 해도 자욱한 운무에 해돋이를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남덕유 가는 길의 장엄한 풍경을 어둠 속에 묻어야 한다.

인생이 그렇다.

늘 무언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선택은 늘 자신의 몫이고 그리고 그 결과가 자신의 길이다.

어쩌면 그 길은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파른 언덕을 치고 작은 봉우리에 오르자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시야가 트이더니 언제 거기 떠

올라 있었는지 9월의 찬란한 태양이 나를 내려다 보며 웃고 있다.

덕유 신령님이 무릉객이 온 걸 알고 계시는 거야.

 

 

삿갓봉

삿갓봉에 오르는 길에서 얼굴에 척척 거미줄이 걸린다.

아무도 이 길은 지나가지 않았구나 !”

고원의 쓸쓸한 준봉

고요한 묵상, 그리고 하이에나의 고독한 입 냄새

변함 없는 그 모습에 왈칵 반가움이 인다.

덕유에는 자주 들었지만 삿갓봉과의 해후는 아들과 백두대간을 타던 날 이후 4년만인가 보다

나를 닮은 봉우리라고 했다.

이름도 모습도

세상의 번잡에서 놓여나 홀로 호젓한 세상과 고독의 향기 속을 떠도는 나처럼   

삿갓봉은 아름다운 곳에 조용히 앉아서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내년 8월 중순 산오이풀이 싱싱한 날에 다시 오겠어.”

그리고 내년엔 너와 함께 덕유의 멋진 일출을 감상하고 싶다

세상일이야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만

조금씩 조금씩 세월에 낡아간다 해도 70까지는 우린 만나야 하지 않을까?

 

남덕유 가는 길

운무는 오락가락 하며 덕유의 장대함과 신비감을 더 해주고 있다.

늘 지친 몸으로 힘겹게 오르던 그 길을 덕유산의 기를 받아 기운차게 오르는 길이다.]

몸을 휘감는 서늘한 대기! 그리고 발이며 몸에 묻어 나는 들풀의 차가운 이슬이 심산의 상쾌한

아침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구름이 밀려가면서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산릉의 풍경이나 앞을 막아서는 웅장한 남덕유의

위엄이 할 말과 다른 진부한 생각들을 잊게 한다.

나는 덕유의 주릉을 활공하면서 내 생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날을 기쁨과 감동으로 장식하는 한 마리

나비다.

 사라질 찰라의 영상을 카메라의 눈으로 표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카메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녀석도 황홀경에 취해 오락가락 제정신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끔 제정신이 드는 녀석을 기다리며 얼르고 달래는 수 밖에 없다.

내 눈에만 담으려니  눈 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장대한 파노라마는 보면 볼수록 아쉽고 아까울 뿐이다.

 

300미터 전방 서봉 갈림길에 베낭을 내려 놓았다.

우측으로 가면 서봉

직진해서 가파를 길을 오르면 남덕유 산이다.

남덕유 봉우리 100미터 아래 서봉 갈림길에 배낭을 놓고 오르는 게 더 낫긴 하지만 발딱 일어나

앉은  길을 무거운 베낭을 메고 가기 싫어서 빈 몸으로 올랐다.

 

 

남덕유

드디어 이곳에 섰다.

멋진 풍경을 두고 카메라와 씨름 하느라 세시간 가까이 걸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는 운무만 자욱하고 무수한 날파리들 만이 나를 반겨 주었다.

마치 환영 퍼레이드를 하는 듯 내가 움직이는 쪽으로 따라 움직인다.

 

한 번 태양이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지만 나는 북으로 뻗어 올라가는 장엄한 덕유 주릉도,

기암준봉이 도열한 영각사 쪽 풍경도 볼 수 없었다.

봉우리가 조금 드러나던 서봉도 구름에 묻혀 버렸다.

 

외로운 고봉에서 혼자 조용히 묵상하며 기다렸지만 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고 덕유의 바람이

자욱한 운무를 더이상 걷어 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괜찮아

너의 장대한 세상은 내 기억에 너무도 뚜렷하게 남아 있으니….

그리고 아직 돌아 올 날이 너무 많이 남아 있으니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무엇이 내 영혼을 춤추게 하는가?

그건 세상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내야 할 내  비밀이다.

 

행복한 인생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무엇을 먼저 듣고 무엇을 먼저 보는가?

무엇을 먼저 느끼고, 무엇을 먼저 생각하는가?

중요한 것은 여행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은 다는 것이다.

시간에 따라 세상의 중요한 가치는 바뀌어 가는 법인데 우리는 세상이 세뇌하는 그릇된 미망에서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칠리의 삶을 살아가는 한 마리 나비이면서 영생을 사는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욕심 내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끊임없이 집착하고 불평한다. 

 

어쩌면 우린 선천적으로 비관적이거나 후천적으로 비관에 길들여 왔다.

굳이 수 많은 행복 속에 숨겨진 슬픔 하나를 들추어 그 색으로 삶의 도화지를 채색하고.

슬픔과 불행을 과장하고, 행복을 비교해서 다시 불행에 빠뜨린다.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넓은 집과 멋진 차가 없어도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을 벗삼아 이름 모를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아름다운 고원을 누릴 수 있다..

굳이 산해진미가 가득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빌딩의 스카이라운지가 아니면 또 어떤가?

우린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신들린 허기와 미각을 불러 낼 수 있다.

느덜이 고원의 멋진 전원레스또랑 투명 창가에 앉아 눈부신 풍경을 내려다 보며 바람 악사의

감미로운 음악을 즐기며 먹는 오뎅 백반의 맛을 알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의 가치를 재평가 할 수 있다면

스스로 내 안의 두려움과 초조함을 키우내지 않는다면

단지 내가 가진 것과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매미처럼 흥겨운 삶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우린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사간은 지금도 말없이 흘러 가고 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디엠 !.

 

날파리들의 현란한 환송을 받으며 서봉으로 발 길을 옮기는 나

서봉으로 가는 길에 동윤이 전화가 왔다.

장모님이 돌아 가셨다고….

전환이에게 연락하여 공지를 부탁하고 친구들이 모여 갈 수 있는 시간을 알아봐 달라고 얘기 했다.…

오늘의 연휴의 끝자락이니 어둡기 전에 일찍 출발하면 좋으련만 내가 빨리 도착한다 해도 6시나

되어야 할 것 같다.

 

 

서봉(장수덕유)

서봉에서는 마치 하늘 대문이 열리 듯 아랫세상과 육십령으로 뻗어가는 능선의 모습이 구름사이로

언뜻 언뜻 드러났다.

드넓은 덕유세상은  한눈에 들어 오는데 날씨는 화창해지고 바람은 시원해서 산행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이제 고행은 끝이 났다.

3.5km의 능선 하산과 2km남짓 하산 길만 남았다.

 

누가 이 재미를 알까?

홀로 먼 길을 걸어서 만나는 이 멋진 풍경과 황홀한 고독의 맛을….

 

장수덕유에서 덕유 산신령에게 빌어 본다.

고독과 그리움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뜨거운 가슴과 튼튼한 두 다리가 내 곁에 오래 남아 있기를…..

배가 고파서 꿀호떡 10개 중에 9개를 먹었다.

물도 양껏 먹고 나니 거의 바닥수준이다.

 

덕유교육원 하산길

이곳에서는 능선으로 3.5km 정도 내려가서 덕유교육원으로 하산하면 2시간 이면 족할 듯하다.

이젠 구름이 거의 사라지고 태양이 에전의 기운을 되찾아 가면서 조금씩 바람도 약해지고 무더워졌다.

육십령으로 흘러가는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가면서 교육원 삼거리는 또다시 놓쳐 버렸다.

열심히 내려가다 보니 새해 벽두에 고부기와 하산한 비등지점이 나타나서 아쩔 수 없이 또 그 길을

따라 하산했다.

하지만 사실 교육원 삼거리 하산로 보다 이 길이 더 편하다.

게다가 오늘은 큰 길로 나가기 전에 교육원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작은 산허리 길을 따라 갔는데

교육원 바로 아래에서 제법 큰 계곡을 만났다.

덕유 하산의 비단길과 오아시스를 개척한 셈이다.

풍부한 수량의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넘실거리며 흘러 가고 있으니 무릉객 진짜 물 만났다.

어디에도 인적은 없어서 만패불청하고 바지만 벗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대장정 순례의 멋진 피날레고 내 영혼의 해탈이었다..

20여분 물 속에 몸을 담그니 산행의 피로가 완전히 사라진다.

어제는 덕유의 품에서 잠들고 깨어나 높고도 깊은 대지의 기운을 받았고 오늘은 내 몸과 정신에 달라

붙은 세상의 진폐와 수심을 말끔히 씻어 냈다.

이 한 번의 순례길이 내 삶과 정신을 되돌아 보게 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자꾸만 잊어가는 삶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일깨워 준다.

 

영각사에서 215분 버스를 타고 서상으로 나와서 함양가는 버스를 타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함양

까지 가지 않고 안의에서 내린 것은 실수였다.

서상에서 대전가는 버스는 오후  740 1

함양에서 대전 가는 버스는 320분과 4

안의에서는 350

근데 안의에서 함양까지는 25분 정도 걸리니 320분 차는 탈 수가 없어서 안의에 내려서 늦은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탔는데 웬걸 이 버스가 함양을 거쳐서 대전을 간다.

~

덕분에 30분이 더 늦어지고 나와 같이 문상을 가려고 기다리던 친구들은 7시가 되어 어둑어둑 해질 때야

비로소 대천으로 떠날 수 있었다.

 

 

에필로그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2일간으 거친 여행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나는 나와 아름다운 세상을 즐겁게 돌아보고 무사히 귀환했다.

 

난 여전히 짱짱하다.

나의 체력보다 60에도 두려움 없이 이 길을 나설 수 있는 나의 늙지 않는 영혼과 아직 뜨거운 가슴이

더 자랑스럽다.

그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힘들었지만 행복한 여행길 이었다.

난 덕유의 주릉을 바람과 같이 흘러 가며 내 영혼의 즐거운 노래 소리를 들었다.

 

 

나의 거친 여행길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건 신의 소관이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삶을 즐기고 그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고통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은 늘 기쁨과 등을 맞대고 있고 그 고통이 멋진 배경이 되어 주어야 기쁨이 더 커지고 그 참

맛이 살아나는 법이니

하지만 여행길은 즐거워야 한다.

고통이 여행의 기쁨을 억누르게 해서는 안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체력으로 고행 길을 만들어 여행길의 본말을 전도시키는 것은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리고 더 오래 그 기쁨을 누리고 싶다.

고통과 기쁨에 중독되어 나를 계속 몰아 붙이다 보면 난 더 일찍 산을 내려와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틀 동안 걸은 길이 30km에 달한다.

평탄한 길도 있지만 백련사-향적봉, 그리고 삿갓재-남덕유-서봉 구간과 같은 거친 오름 길도

많은 길이다.

그 길을 45리터 배낭이 터질 것 같이 채우고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걸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나는 계속 괜찮을 수 있을까?

내 몸이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조만간 비명을 질러 대는 건 아닐까?

 

 

산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길을 가면 어깨가 무거워 지고 여행길이 힘들어 진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법이다.

영혼의 순례 길에 세속의 기쁨까지 함께 욕심을 내면 통행세를 더 내야 할 것이다.

 

이제 덕유에 들 때는 동행이 있을 때만 취사장비를 가져가야겠다.

나는 한 번의 뜨거운 미역국과 1번의 오뎅탕과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 무거운 취사장비를

계속 지고 다녔다.

밑반찬 두어개와 빵 그리고 선식과 계란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먹을 물 한 통 외에 물과 햇반은 대피소에서 조달하면 고산주유의 기쁨과 아름다운 풍경을 더 많이

가슴에 담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내년 8월에는 가벼운 행장을 꾸리겠다.

복합터미날에서 710분 차로 서상으로 가서 거기서 영각사 까지 이동하면 930분 쯤이면  

덕유교육원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고  서봉, 남덕유 찍고 삿갓재에서 1박한다음 역으로

능선을 따라 향적봉으로 흘러 내릴 수 있다..

그러면 길도 훨씬 수월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게다가 덕유의 기를 듬뿍 받고 나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싱그러운 아침햇살을 맞으며 덕유능선을

증주할 수 있을 터이니 아름다운 덕유세상을 콧노래를 부르며 더 편하고 즐겁게 누릴 수 있을 것

이다.

물론 해돋이는 삿갓봉에서 보고

 

산 행 일 : 2019914~915

산 행 지 : 덕유산

산행코스 : 구천동-백련사-향적봉-동엽령-산갓재대피소-남덕유- 서봉-덕유교육원

산행거리 : 30km

소요시간 : 16시간

          첫째날 9시간 , 둘째날 7시간

 

경유지별 거리 및 소요시간

구천동-백련사 :     6.2km  1시간 50

백련사-향적봉 :     2.5km  1시간 20    3시간 10

향적봉-동엽령 :      4.3km   2시간 30   5시간 40

동엽령-무룡산 :                (1시간 55)

동엽령-삿갓재 :      6.2km   3시간 11  8시간 51

 

남덕유-서봉    :      0.,8km   1시간 30(30분 휴식)

서봉-교육원갈림길  3.6km    1시간 30

알탕소           :                  40

영각사정류장  :                  20         7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