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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내장산의 가을 - 어느 흐린날의 수채화














































































































































가을병이 도지지 않으면 나는 병든 것이다.

불타는 단풍 숲이 그립지 않으면 나는 단지 늙어 가는 것이다.

 

올해는 강천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을 보고 싶었다.

여기 저기 수소문을 하니 많은 곳에서 단풍선을 띠웠는데  

꼬리가 잘 달리지 않는다.

그 단풍선들은 결국 떠나지 못할 것이다.

 

모두들 가을을 잊고 바쁘게만 살아 가는지 ?

떠나는 습관을 잃어 버리면

고향으로 돌아오는 철새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

 

 

호남 절세미녀의 붉은 치마폭에 감추어진 깊고도 내밀한 사랑

그 타오르는 정염을 주체하지 못하는 가을 여인의 농염한 자태와 웃음은 

헤어날 수 없는 팜므파탈의  치명적인 유혹이다.

 

나의 가을여인 설악은 벌써 겨울 속으로 떠나고

나는 잊혀진 여인의 향기와 어느 뜨거웠던 가을 날을 추억하며 그렇게 가을로 

가는 마차에 올랐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손을 흔든다.

가을은 이렇게 깊어졌구나!

몽계 계곡을 따라 상왕봉으로 가는 길에는 그렇게 가을이 널부러져 있다.

 

많은 사람들 중에는 별놈이 다 많은 것처럼

많은 나무들 중에도 별종이 다 많다,

울그락 프르락 성질 사나운 놈

제 흥에 겨워 제 먼저 뜨겁게 달아 오르는넘

가을에 취하고 한잔 술에 먼저 취해서 바람길에서 이리 저리 비틀거리는 놈

술 한잔 마시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여전히 짱짱한 넘

시방 때가 어는 때 인지도 모르고 연초록 푸른 옷 입고 나대는 철부지 같은 넘

 

 

그녀를 만나러 온 건 나뿐이 아니었고.

단풍은 나뭇가지에만 매달려 있는 게 아니었다.

단풍 숲은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인 듯

무수한 인파가 단풍의 강을 이루어 오색의 길을 만들며 그렇게 밀려 갔다.

앞사람 때문에 가는 발길이 자꾸만 밀리더니 몽게폭포를 지나고 인적이 희미해졌다.

 

계곡 길에는 현란한 가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마치 경연을 하는 듯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 입은 나무들의 화려한 공연에 넋이 나가는데

 

고도가 높아 지면서 날씨는 더 흐려지고 바람이 거세진다

바람은 목쉰 음성으로 떠나는 가을을 노래하고

흩날리는 낙엽은 한바탕 살풀이 춤으로 산자의 아픔을 진혼한다.

 

그냥 비장하고 장엄했다.

하늘이 내쉬는 한숨의 바람에 가을은 색다른 우수의 옷을 입었다.

고독은 외롭지 않은 채 그렇게 처연했고 가을의 상념은 슬프지 않고도 그렇게 깊어 졌다.

 

비로소 능선에 올라섰다.

바람이 야단이다.

날리는 낙엽따라 계절의 수심과 만추의 서정이 펄펄 날린다.

이렇게 슬프고 우울한 낯빛으로 구태여 가슴속의 뜨거운 사랑을 감추려 해도

날리는 그녀의 머리칼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우리의 가을은 심오했다...

 

늘 스쳐지나 갔던 사자봉에 처음 올랐다.

가을 바람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내려다 본다

그냥 나무처럼 침묵하고 묵묵히 바라 볼 일이다.

가슴에서는 무언가 뜨거운 게 솟구쳐도

너무 남용되는 아름답다는 말 외엔 딱히 할 말이란 게 더 없으니….

                       

다소 냉소적이고 싸늘한 그녀의 표정이 더 고혹적이었는데

여인은 가끔 구름 밖으로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이 가을은 나만의 가을이 아니었고 그녀는 나만의 사랑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사랑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내장산에서 계절의 수심을 불러내는 낙엽의 슬픈 노래도 그렇게 감미롭고 아름다웠다.

 

상왕봉에서 순창새재 가는 길은 비단 길이었다.

상왕봉 까지 붐비던 인파는 백암산으로 파도치듯 흘러 가고

새재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이 길이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었구나

바람에게 소리치며 외로움을 떨쳐내던 낙엽들은 꽃 잎처럼 바람에 날리어 가며 손을 흔든다.

그들은 목쉰 음성으로 역설적인 삶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멋지지 않는가?

500미터가 넘는 중산간 산등성이에 이렇게 호젓하고 평화스러운 길이 있다.

그 길 위에 고운 빛 가을이 깊어가고

나는 그 길을 홀로 걸어 간다.

바람에 채양이 휘어지는 낡은 모자를 쓰고

비우고 비워 주저 앉은 배낭에는 옛 추억과 그리움만 담는다.

그 많은 세월 흘러 갔지만

내가 걸어 놓은 추억은 아직 나무 등걸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나는 어느 거친 길도 웃으며 걸 을 수 있을 만큼 이렇게 건강하다. 

마음 쓸 데, 마음 둘 데 많아도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고

오라는 데 없어도 갈 데는 많으니 떠남이 그리 힘들지도, 외롭지도 않은데

깊어가는 가을 따라 길을 나서면 풍진 세상이 꿈처럼 몽롱하고

텅 빈 마음도 계절 따라 이리 깊어 가는 걸….

살아감이 이만하믄 되지 더 무얼 바라나?

 

그녀의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

그리고 함께 걷는 그 길에서 만나는 감미로운 고독과 흔들리지 않는 평화

완벽하다.

나를 위해 노래하는 계절과

나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산과 하늘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나무와 바람과 구름

그리고 자연이 그리는 그림과 바람이 전하는 한 편의 시

 

내 인생의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을

어찌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 있으랴?

설령 떠나지 않아도 분명 또 다른 그 무엇이 나의 마음을 흔들 수 있겠지만

그 어떤 것이 이렇게 강렬하고, 이렇게 후련하고.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으랴?

 

가을은 심연이고

나는 고요한 호수 위에 뜬 한 조각 작은 배

그리움에 길을 물어,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 간다.

 

순창새재 바로 아래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마눌은 제주도 가서 반찬그릇에 먹던 생채와 남은 김치를 담아 왔다..

휴게소 한 켠에서 아침 콩나물 국을 두 그릇이나 먹고도 점심도시락을 두 개나 챙겨 받았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한 그릇 가지고는 부족 할 것 같아서

고시레~~~”

밥 한 숫가락을 통 크게 보시하고 혼자 밥을 먹는데….

시주받은 한 공기 밥에 먹다 남은 김치는 왜 그리 맛 잇는 지….

 

 

좋은 음식이란 비싼 음식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을 때 맛 있게 먹는 음식이다..

 

삶이란 제 멋에 겨운 거라

우린 소박한 식단으로 맛 있는 성찬을 즐길 수 있다.

 

갈켜줄까?

산이 전수해 준 건강한 섭생의 비법

 

먼저 가슴에서 근심을 멀리하고 고요와 평화를 유지하라

어떤 음식을 먹을 때라도 항상 맛 있는 입 맛 하나는 꼭 가지고 다녀라

식탁에 앉기 전에 몸을 움직여 먼저 허기를 불러 내라 .

풍요롭지만 외로운 식탁보다

조촐하고 소박하지만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식탁을 만들어라

밥맛 떨어지는 사람들만 민나고 다니지 말고

픙류와 낭만을 아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들과 인생을 논하고 음식을 나누어라!

 

돈으로 멋진 야행을 살 수 있지만 여행의 기쁨과 감동은 사지 못한다.

돈으로 어떤 음식이든 살 수 있지만 음식의 맛은 사지 못한다.

 

 

까치봉 가는 길을 계속되는 오름 길이다.

가는 길에 활력소님을 만났다.

백두대간 동기

한백투어와 함께 왔다는데 저수지 쪽에서 신선봉,까치봉 찍고 상왕봉에 올랐다가

백학봉, 백암봉에 둘러 백양사로 하산 한단다.

길목에 잠시 서서 귀연과 우리의 삶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헤어졌다.

2년 전에는 이 까치봉 가는 길 단풍나무 그늘에서 고부기를 만났다.

 

여긔가 만남이 광장인 모양이다.

까치가 반가운 친구를 물어다 주는 건지

산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 친구 고부기

 

역시 까치봉에서 바라보는 가을이 물결치는 장쾌한 산 세상은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처럼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고

돈 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런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삶이란 얼마나 행복한 여행길 인가?

 

산이 내게 말했다.

항금에 눈이 멀면 별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새상이 세뇌하는 그릇된 가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귀로 듣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남창에서 사자봉 상왕봉 찍고 까치봉,신선봉 둘러 가을이 농익어 가는 내장사로 내려왔다

6시간 반 걸려서 주차장 까지 내려 왔는데 내가 젤 꼴찌라더라

파장의 분위기가 역력한 가을 마차 한 켠에서 간신히 마콜리 3잔하고 김치찌개 한 그릇

얻어 먹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일찍 내려 왔으면 김치 찌게 세 그릇은 먹을 수 있었는데

단풍 놀이 팀 말고 금강 종주팀은 모두 건각들이여

나도 혼자 명상하면서 별로 쉬지도 않고 서둘러 댕긴 것 같은데 꼴찌라니!”

설악 비등에서 절벽 한 가운데 로프걸고 버둥거리더니

무릉객 인자 정말 늙어 가는 겨?

그랴도 꼴찌에게 갈채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모처럼 하늘을 올려다 보며 아름다운 산하의 장대한 단풍 숲을 거니는데

좀더 천천히 걷고 풍경 좋고 바람 좋은 곳에서는 좀더 느긋하게 쉬었다 가면 또 어떤가?

세월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가을이 이렇게 아름답게 깊어 가는데

 

 

20191110

 

 

단풍은 가물어서 예년 보다는 좀 못한 것 같다.

아래 쪽은 아직 좀 이르고 위에 한창인 단풍들은 끝 쪽이 말라서 말린다.

6시간 30분 정도 시간을 부여했는데 남창 지킴 센터에서 출발해서 사자봉,상왕봉,까치봉,신선봉

돌아 내장사로 내려 오는 데 6시간 정도 걸렸다.

내장사 아래에서 셔트틀버스를 타고 내장산 입구에서 내려 1주차장 까지 걸어간 다음.

1주차장에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4주차장 까지 가야한다.

집결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서 내장사에서 입구까지 걸어가면 남도 제일의 단풍 숲을 거닐게 될 것이다.